2008년 4월말, 용인에서의 트랙데이(경기장주행) 행사와 함께 국내에 소개된 미니 쿠퍼S JCW는 흔히 ‘미니의 고성능 버전’이라 불리는 쿠퍼S의 성능을 더욱 강화하고 내외장을 치장해 차별화된 즐거움을 제공하는 일종의 튜닝카다. 미니와 쿠퍼, 그리고 JCW의 관계를 중심으로 일반 쿠퍼S와의 차이점을 살펴봤다.
글 / 민병권 (rpm9 기자)
사진 / 박기돈 (rpm9 편집장), 민병권, BMW
익숙해질 때도 되었건만, 아직도 미니를 시승하기 전날은 약간의 설레임으로 잠을 설치게 된다. 톡톡 튀는 외모와 아기자기한 실내, 작은 차체에 얹힌 암팡진 엔진과 똘똘한 변속기가 선사하는 민첩한 몸놀림은 금단현상을 부를 정도의 중독성을 가진다. 게다가 이번 시승차는 JCW 버전. 2년 전 필자가 ‘올해 타본 차 중 최고’로 꼽았던 ‘JCW 미니쿠퍼S’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았다.
국내에는 2006년에야 처음 소개되었고 아직도 여전히 낯선 느낌이 들긴 하지만, 사실 JCW는 미니와 뿌리부터 얽혀있다. 자동차에 별 관심이 없을 것 같은 여성들조차 ‘미니’가 아닌 ‘미니 쿠퍼’라고 콕 집어 얘기하는 요즘이지만, 그 ‘쿠퍼’가 JCW의 설립자인 존 쿠퍼로부터 유래한 것임은 잘 알려지지 않는 듯 하다.
미스터 쿠퍼를 찾아서
영국 출신인 존 쿠퍼(John Cooper, 1923~2000)는 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6년, 아버지 찰스 쿠퍼와 함께 ‘쿠퍼 자동차회사’를 세워 자신들의 이름을 건 경주용 차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이들이 탄생시킨 경주용차들은 후안 판지오, 잭 브라밤, 브루스 맥라렌, 스털링 모스 같은 당대 최고의 드라이버들을 태우고 활약했으며, 특히 1950년대에 선보인 미드십(엔진이 운전석 뒤에 놓인) 포뮬러원 경주용차는 뛰어난 성능으로 미드십에 대한 당시의 편견을 깸으로써 이후 전세계 자동차 경주의 양상을 바꾸어놓았다.
이러한 쿠퍼씨네가 미니와 엮인 것은 1960년을 전후로 당시 BMC에서 내놓았던 오리지널 미니의 고성능 버전 개발에 참여하면서부터다. 미니의 개발자인 알렉 이시고니스와 협력해 탄생시킨 ‘미니 쿠퍼’는 각종 자동차 경주에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특히 성능을 더욱 높인 ‘미니 쿠퍼S’는 1964년과 65년, 그리고 67년에 몬테카를로 랠리에서 우승을 따냄으로써 다시 한번 쿠퍼라는 이름을 세계 자동차경주사에 남기게 되었다.
이처럼 의미가 있는 만큼, Cooper라는 이름 여섯 자는 미니가 BMC에서 로버를 거쳐 BMW로 완전히 넘어가기까지 계속 모델(버전) 이름 중 하나로 애용되었다. 특히 BMW는 완전히 새로운 미니(2001년 출시)를 계획하는 과정에서 기본형보다 스포티한 모델에 ‘쿠퍼’, 가장 성능이 뛰어난 모델에 ‘쿠퍼S’라는 이름을 쓰기로 했다. 그것이 현재 대중에 알려진 미니 쿠퍼와 미니 쿠퍼S다. (국내에는 들어오지 않았지만 BMW 미니에는 보급형인 ‘미니 원’과 디젤 버전도 존재한다.)
BMW 미니와 JCW
존 쿠퍼는 뉴 미니의 개발과정에도 초기부터 자문 역할로 참여했다. 그 동안 ‘존 쿠퍼 개라지’를 통해 오리지널 미니를 위한 튜닝부품들을 공급해왔던 만큼, 새로운 미니의 튜닝을 계획하게 된 것도 당연했다. 비록 그는 2000년에 77세를 일기로 사망했지만 아들인 마이클 쿠퍼가 그의 뜻을 이어 ‘존 쿠퍼 웍스(John Cooper Works, JCW)’로 이름을 바꾼 회사를 꾸려나감으로써 미니 및 BMW와의 관계는 계속된다.
JCW는 뉴 미니를 위한 다양한 튜닝 부품과 액세서리들을 선보였고, BMW로부터 그 실력과 정통성을 인정받아 미니의 공식 튜너로 대접받기에 이른다. JCW의 튜닝부품들은 미니의 딜러나 옥스포드 생산라인에서도 장착이 가능해졌고, 이 경우에도 차에 대한 보증은 유효했다.
미니끼리 경주를 벌이는 원메이크 레이스용의 ‘챌린지’ 경주차 역시 JCW의 부품들로 꾸며졌다. 브랜드 가치를 높이 평가한 BMW는 결국 2007년, JCW의 인수를 발표했다.
‘미니 JCW 챌린지’의 실제 경주 모습
완전히 BMW 소유가 된 이후 JCW의 대표작으로는 지난 해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소개된 ‘미니 JCW 챌린지’와 올 초 제네바 모터쇼에서 데뷔한 ‘미니 JCW’가 있다. 미니 JCW 챌린지는 2세대 뉴 미니(2006년 데뷔)를 베이스로 한 원메이크 경주차로, 양산형 쿠퍼 S에 비해 출력, 토크, 가속력, 최고속도가 모두 높아졌다. 엔진의 피스톤과 흡배기, 전자제어 계통을 손보고 터보차저까지 새로 세팅한 덕분이다. 최고출력이 210마력이고 강화된 6단 수동변속기를 이용해 0-100km/h 가속 6.1초, 최고속도 240km/h의 성능을 낸다. 하지만 인증관계상 일반 도로주행은 할 수 없는 경주 전용 차다.
‘미니 JCW 챌린지’의 실내
반면, 미니 JCW는 미니 JCW 챌린지의 도로용 버전이라 할 수 있다. 동일한 출력이 나오도록 엔진을 튜닝해 0-100km/h가속 6.5초, 최고속도 238km/h의 성능을 낸다. 4피스톤 브레이크 캘리퍼와 17인치/16인치 디스크, 강화 클러치 및 개량된 6단 수동변속기, 스포츠 서스펜션으로 하체도 보조를 맞췄다. 실내는 챌린지처럼 내장을 뜯어내거나 롤케이지, 소화기를 장착하는 대신 스포츠 스티어링휠과블랙 피아노 장식, 회색 천정마감 등으로 스포티하게 꾸몄다. BMW에서만 쓰던 DTC(다이내믹 트랙션 컨트롤)를 미니로서는 처음으로 이식 받았고, 속도계도 260km/h까지 표기된다. 8채널 앰프와 10개의 스피커로 오디오도 업그레이드했다.
이처럼 구구절절이 설명하는 이유는 국내에서 판매하는 ‘쿠퍼S JCW’와의 혼동을 막기 위해서다.
한국형, 미니 쿠퍼S JCW
국내에 출시된 미니 쿠퍼S JCW는 위에 언급한 두 가지 JCW버전과는 다르다. 패키지화 되어있거나 개별 선택이 가능한 JCW의 몇 가지 옵션을 골라 쿠퍼S를 튜닝한 모델로, 말하자면 튜너에서 선보인 최고 사양의 데모카와 그 중 일부만을 적용한 마일드한 튜닝카의 차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적어도 외관상으로는 미니 JCW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어느 쪽이건 JCW의 ‘에어로 다이내믹 패키지’를 적용해 외관을 꾸민 탓이다. 겉보기에 두 모델간 차이점은 흡기구의 엠블럼 위치 같은 소소한 부분에 국한된다.
에어로 다이내믹 패키지에는 검정색 라디에이터 그릴 테두리와 앞뒤 범퍼, 사이드 스커트가 포함되는데, 가짜 흡기구와 통풍구가 많이 달렸다. 과장이 지나친 것 같긴 하지만 미니의 장난스러운 제품 성격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요란한 형상의 뒷날개 도 마찬가지. 카본문양이 돋보이는 이 리어스포일러는 구형JCW의 것과 흡사하다. 전체적으로, 복잡하고 모난 인상이었던 구형에 비해서는 한결 무난해진 외모다.
새 모델이 좀 더 부드럽게 보이는 데는 휠 형상의 영향도 있다. 미니JCW의 경우 17인치 ‘챌린지’ 휠을 기본으로 하고 18인치를 옵션으로 준비 한데 비해, 국내사양은 18인치를 기본으로 달았다. 물론 쿠퍼S와의 차별화를 위해서다. 시승차에 끼워진 것은 ‘스타스포크’ 휠인데, 기본 사양이라는 ‘더블스포크’ 휠을 끼우는 편이 차를 더 야무진 인상으로 꾸밀 수 있겠다.
타이어는 205/40R18 사이즈의 피렐리 P제로 런플랫으로, 단면 폭 수치 자체는 205/45R17을 쓰는 쿠퍼S와 다르지 않다. 결국 그 차이는 고스란히 사이드월의 높이 감소에 반영되어 코너링을 비롯한 차의 운동성능을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당연히 승차감은 더 나빠졌다. 저속이나 감속 시 좋지 않은 길에서는 노면을 타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실수로 도로표지병이라도 밟는 날에는 다크서클이 놀라서 달아날 정도로 요란스러운 반응을 보인다. 실제 노면충격이 크게 전달된다기 보다는 여과되지 않은 충격음이 이를 과장 시키는 면도 있다.
2세대 모델로 접어들면서 쿠퍼S 역시 승차감이 개선된 덕분에 초반부터 피곤하게 느껴질 정도로 통통 튀는 것은 아니지만, 개인 취향으로는 일상주행에서도 부담이 덜한 17인치 쪽이 더 좋았을 뻔 했다는 생각이다. 특히 미니 JCW의 17인치 챌린지 휠-타이어 조합은 경량임을 내세우고 있는데, 18인치 쪽은 어떨지 궁금하기도 하다.
앞바퀴 휠 안쪽에서는 JCW로고가 그려진 빨간색 브레이크 캘리퍼와 타공/슬릿 처리해 방열성을 높인 V. 디스크가 눈길을 끈다. JCW의 16인치 스포츠 브레이크 시스템인데, 휠이 18인치인지라 공간 여유가 많아 보이는 편다. 특히 작은 직경의 순정 솔리드 디스크 그대로인 뒷바퀴는 그 여백이 허하다. 다행히 더블스포크 휠에서는 덜 두드러져 보이는 모양이다.
JCW 엔진 튜닝 킷
미니 JCW는 강화 피스톤과 실린더 헤드를 사용해 안정성을 확보하고 1.3바까지 높아진 최대 부스트압에 가스켓과 밸브를 개량해 압축비를 낮추는 등 상당 폭의 구변(?)이 이루어졌다. 그에 비하면 국내사양은 얌전한 편이다. JCW의 엔진 튜닝 키트를 적용해 ECU와 에어필터, 배기가 바뀐 정도인데, 최고출력은 쿠퍼S보다 17마력이 올라간 192마력, 최대토크는 1kgm가 올라간 25.5kgm로 되어있다. 수치상 쿠퍼S와 미니JCW의 딱 중간인 셈이다. 최대토크의 최저 발생시점은 쿠퍼S보다 근소하게 높은 1,750rpm부터이고 이것이 5,000rpm까지 발휘되는 것은 동일하다. 오버부스트시의 최대토크 역시 27.6 kg.m로 높아졌다. 단, 4,000rpm을 넘기 전까지는 일반 쿠퍼S보다 오히려 더 낮은 출력이 나온다. 제로섬 게임에 임하면서 ‘고회전에서의 출력상승’으로 목표를 뚜렷이 한 까닭이다.
원래도 조용하지 않았던 쿠퍼S이지만 흡배기를 건드림에 따라 소리는 더욱 커졌다. 공회전시 차 밖에서 들을 수 있는 소음은 배기음이 엔진음에 묻히는 정도. 하지만 운전석에 앉아보면 ‘드드드드’하는 나지막한 배기음과 진동이 자극을 시작한다. 운이 없어 뒷좌석에 앉게 된 이는 반-장난의 두통을 호소하기도 했는데, 실제로 에어컨을 켰을 때는 기본 회전수가 높아지고 작동음이 섞이면서 다소 시끄럽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부담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소리를 키운 것은 물론 운전의 즐거움을 배가시키기 때문. 굳이 ‘SPORT’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저속에서의 반응은 이미 예민한 것으로 여겨지며, 회전수를 높게 쓰는 스포츠 모드에서의 통쾌함은 얌전모드에서의 소음에 대한 불만을 불식시키고도 남는다. 구형 JCW가 수퍼차져 특유의 엥엥거리는 소음을 키워 꽉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귀여운 이미지였다면, 이번에는 한결 진지해진 분위기를 풍긴다. 순정보다 더 큰 직경으로 뽑아진 두 개의 스테인리스 배기파이프는 미관상의 효과도 높다.
JCW 튜닝키트가 미니JCW보다 좋은 점은 (외국의 경우) 기존 출고차에도 적용이 가능하다는 것과 (우리나라의 경우) 자동변속기를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어차피 소수를 위한 모델이니 수동변속기도 좋았겠지만 서로 장단점이 있으니 이 자체를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다.
기존 쿠퍼S에 엔진 튜닝키트만 추가했기 때문에 기어비의 변화는 없다. 100km/h 정속 주행시의 회전수는 6단에서 2,000rpm 부근. 변속기를 DS모드로 전환하면 5단으로 바뀌면서 2,600rpm 정도가 된다. 풀 가속시에는 6,250rpm을 기준으로 40,80,125,175km/h에서 시프트업이 진행된다. 0-100km/h 가속시간은 쿠퍼S보다 0.4초가 단축된 6.9초인데, 시원시원한 배기음으로 인해 체감성능은 더 높게 느껴진다. 5단으로 넘어간 이후로는 아무래도 가속력이 떨어지지만, 여건만 허락된다면 제원상 최고속도를 찍는 데는 그리 무리가 없어 보였다. 게다가 고속안정성은 작은 차의 한계를 잊을 만큼 좋다. 이것이 타이어와 에어로 다이내믹 패키지의 힘일까? 거슬리는 것은 130km/h를 넘어서면서부터 두드러지는 바람소리뿐이다.
스티어링 휠과 계기판 사이에는 ‘시프트 인디케이터’, 즉 ‘변속시점 지시기’가 달려있다. 가운데에 녹색 LED를 점등하고 있다가 엔진회전수가 5천rpm 이상으로 높아지면 2개의 오렌지색과 3개의 빨간색 LED를 순차적으로 점등시켜 회전한계와 최대 가속을 얻기 위한 변속시점이 가까워졌음을 알려준다. 요즘 기름값들을 아끼느라 경제적인 운전습관을 기르도록 도와주는 장치가 관심을 끌고 있는데, 미니는 그 반대의 운전을 조장하는 셈이다.
340km를 주행한 시승기간의 평균연비는 10.3km/리터가 나왔다. 공인연비는 12.1km/리터이다.
밝은 LED 불빛을 얼굴에 쏴줌으로써 시선을 아래로 내리지 않고도 대략의 회전수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이 장치의 기능인데, 자동변속기 차량에는 사실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수동모드라 할지라도 회전한계에 앞서 자동으로 시프트 업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그저 반짝반짝 거리면서 운전에 흥을 돋워주는 액세서리인 셈이다. 야간주행 시에는 이 LED불빛이 상당히 눈부시기 때문에 뒤편의 뭉툭한 스위치를 이용해 끌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시동을 걸면 스위치에 상관없이 다시 켜지면서 나름의 세레모니를 펼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LED광선을 맞아야 한다.
이외의 실내는 일반 쿠퍼S와 동일하기 때문에 차별화된 만족감을 얻기는 힘들다.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도어를 열고 들어갈 때 발판부분에 보이는 (스테인리스 재질이 아닌) 에폭시 타입의 JCW 도어스커프가 남다름을 내비치는 거의 유일한 단서. 미니JCW처럼 속도계를 260km/h까지 표시할 필요는 없겠지만 스포츠시트와 스포츠 스티어링 휠 등은 옮겨 달았어도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차 값이 얼마나 올랐을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물론 이러한 것들은 의지만 있다면 별도로 구입해서 장착할 수도 있는 사양들이다. 실내 외를 카본파이버 무늬로 도배할 수도 있고 체크 무늬 바닥매트를 깔거나 무광 검정색 휠을 달 수도 있다. 그 베이스가 꼭 JCW버전이어야 할 필요도 없다. 그저 미니면 된다. 성능이든 외관이든 남과 다른 자신만의 차를 갖기 위해 노력하는 미니 매니아들을 위한 장난감 백화점 같은 곳이 바로 JCW니까.
쿠퍼S JCW는 튜닝카의 성격이면서도 메이커에서 직접 개발하고 장착해 보증해주는 만큼 신뢰도와 내구성 면에서 안심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2006년에 국내에 소개됐던 구형 미니 쿠퍼S의 JCW버전은 비슷한 성능과 가격에 30대만 한정 판매됐었는데 이번에는 제한이 없어졌다. 다음에는 수동모델이 들어오지 말란 법도 없다는 생각에 혼자 흐뭇해하던 중독증 환자는 몸을 부르르 떤다. 차를 반납한 후 찾아온 금단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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