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된 호적수의 등장, GM대우 라세티 프리미어

발행일자 | 2008.11.01 21:49

지인인 A씨가 B사의 준중형차를 샀다. 지난 주에 출고된다던 차가 업체 사정으로 늦어져서 이번 주 초에 받게 됐는데, 덕분에 30만원을 아꼈단다. 이번 주 월요일부터 추가 DC조건이 적용됐다나? 수요일, 비닐도 안 뜯은 A씨의 새 차를 시승해보았다. 그리고 목요일 새벽에는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로 향했다. 같은 준중형급인 GM대우의 신차, 라세티 프리미어의 시승행사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글/민병권 (rpm9 에디터)


사진/ 박기돈 (rpm9 편집장)

라세티 프리미어의 11월 출시소식은 필자뿐 아니라 A씨도 잘 알고 있었다. 심지어, A씨는 위장막 없이 돌아다니는 테스트차량을 직접 본적도 있다고 했다. A씨는 B사의 준중형차를 꽤 오래 전부터 점 찍어 왔었고, 차량교체시기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이라 결국 라세티 프리미어를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그래도 같은 급의 신모델이 나온다는데 조금만 더 기다렸다가 비교해보고 사야 하지 않겠냐’고 살짝 말렸더니, 싫다고 했다. ‘테스트차량을 살펴봤더니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라는 것이 이유의 전부였다.

포르테 출시를 전후해 시작된 GM대우의 밑밥 뿌리기가 이 사람에겐 오히려 역효과를 부른 셈이다. 먼저 차가 출시되고 긍정적인 평가가 쏟아진 뒤 실물을 접했더라면 생각이 달라졌을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어찌됐던 정작 필자는 실차를 보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설득의 여지는 없었다. 나중에 되려 아쉬운 소리를 듣게 될지도 모르는데 검증되지도 않은 새 차를 굳이 편들 이유도 없었다.

특히 GM대우의 신모델이라면 선뜻 추천하기가 불안했다. 요즘 ‘디자인의 기아’가 주목 받고 있긴 하지만 그보다 앞서 디자인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GM대우였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먼저 공개된 디자인이나 스펙에 반해 잔뜩 기대했다가 실물을 경험해보고 난 뒤에는 마음을 돌릴 수 밖에 없었던 사례들이 되풀이되었다. 실내가 값싸게 보인다거나, 엔진 이 시끄럽고 덜덜거린다거나, 핸들링의 개념이 안드로메다로 가버렸거나… 이유는 조금씩 달랐지만 결과적으로 남들에게 권할 차, 혹은 본인이 구입할만한 차의 리스트에 올리기에는 매번 결격사유를 지니고 있었다.

이런 쓴 소리를 감히 늘어놓는 것은 그만큼 이번에는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라세티 프리미어는 흡사 캐딜락 뉴CTS가 미국차에 대한 고정관념을 날려버린 것처럼 GM대우 차에 대한 인식을 바꿔 놓을 만 하다. 토스카나 윈스톰 때 진작 이러한 혁신을 이뤘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들 또한 이번 차의 놀라운 도약을 위한 디딤돌이었을 게다. 라세티 프리미어는 GM대우가 앞으로 선보일 차세대 모델들의 첫 주자라는데, 일단은 그 출발이 성공적이다.

라세티 프리미어는 GM계열인 독일 오펠에서 만든 아키텍쳐(기본 구성)를 토대로 GM대우가 차량개발을 담당한 GM의 글로벌 제품이다. ‘글로벌 컴팩트 카 아키텍쳐’라고도 불리는 라세티 프리미어의 델타II 플랫폼은 앞으로 속속 등장하게 될 오펠의 신형 아스트라와 GM대우의 레조 후속모델, 사브의 소형차들에도 활용된다. 레조후속과 마찬가지로 실내외 디자인은 GM대우 디자인팀의 솜씨. 300시리즈의 첫차인 ‘J300’ 라세티 프리미어는 ‘시보레 크루즈’ 등의 이름을 달고 세계 130여 개국에서 판매될 예정인데, GM대우 군산공장의 생산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것으로 예측되어 미국과 유럽에서의 생산이 예정되어 있다.

제주의 이국적인 정취가 오감을 자극하는 가운데 차의 첫 느낌을 살폈다. 사진은 미리 공개가 됐었지만 실물을 접하는 것은 처음. 얼굴은 토스카를 닮았고 측면 윈도우 라인은 기존 라세티와 별 다를 바 없는 듯 하며, 어깨선은 BMW를, 짧은 데크와 테일램프는 혼다 시빅 세단을 연상시킨다. 아니, 사실은 그 모두와 구별되는 자신만의 멋이 있다.

준중형 최대 사이즈인 차체는 시각적으로도 쉽게 인지된다. 이 정도면 ‘중형 잡는 준중형’이란 표현도 아깝지가 않겠다. 하기야 수치상으로는 지난날의 ‘작은 중형’이었던 대우 레간자를 넘어설 만큼 커진 것도 사실이다. 길이가 7cm 짧은 것 빼고는 폭, 높이, 휠베이스까지 모두 라세티 프리미어가 더 크다. 미련 맞게 덩치만 키운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잘 요리해서 강하고 역동적인 분위기로 풀어낸 것에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얼굴은 파리모터쇼에서 공개된 시보레 크루즈 버전이 더 나아 보인다는 의견들이 많은데, 개인적으로는 GM대우 버전이 더 좋다. 시보레의 금색 십자(혹은 ‘보타이’)마크가 싫어서다. 시보레 버전이 더 스포티하게 보이는 것은 사실이라 젊은 층이 선호할 것 같긴 하지만 더 많은 소비자들을 만족시키기에는 토스카 혹은 젠트라와의 패밀리 룩이 안전할 것이다. 상대적으로 중후한 느낌?

바깥쪽을 검정색으로 둘러친 헤드램프와 함께 가로핀 외의 안쪽 부분을 검게 처리한 라디에이터 그릴의 센스가 돋보인다. 반면, 차체 색상 그대로 노출된 범퍼 아래쪽 흡기구의 격자 형상은 모처럼의 신선미를 떨어뜨리는 요소라 할 수 있겠다. 어느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관찰하면 차의 앞부분이 살짝 들려 보이기도 하는데, 그렇게 보이게 하는 범퍼 끝 단 아래로는 에어댐 형상의 검정색 플라스틱이 두드러진다.

헤드램프의 기본 형상은 거의 직사각형에 가까워, 혹자는 ‘시보레 트럭같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실제로 보면 그 정도로 강인한 이미지가 풍겨 긍정적이다. 헤드램프의 바깥쪽은 앞범퍼와의 경계로부터 뚜렷한 라인을 그리며 올라가는 휀더를 따라 화살처럼 위로 치켜져 올라간다. 윗면과 옆면을 명확하게 구분한 보닛은 가운데부분에도 캐릭터라인을 그었으며, 휀더 및 헤드램프로 꺾어져 내려가는 굴곡 또한 드라마틱하다. 앞 휀더에서 시작돼 테일램프까지 이어지는 어깨선은 디자인팀이 ‘음과 양의 동양적 조화’라고 일컬은 부분. 일부분만 보자면 BMW 5시리즈의 그것과 유사한 듯 하나 앞휀더에서 볼록했다가 차츰 오목하게 바뀌어 끝까지 이어지는 굴곡은 개성을 갖고 있다.

와이퍼는 플랫타입이 아닌 재래식이고 사이드미러는 강한 이미지의 차체와 달리 부드럽고 예쁜 형상인데, 이것이 제법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미 유행이 지났다고 판단했는지 사이드미러에 추가 깜빡이(사이드 리피터)를 다는 대신 전통적인 위치인 휀더에 위치시켰는데, 이 또한 나름 독특한 형상이다. 시승차는 스마트키가 적용된 사양이었는데, 그립형인 도어 손잡이에는 고무 버튼 대신 터치패드를 적용하고 있어 되려 심심한 느낌을 주었다. 캐딜락 뉴CTS에서 느꼈던 어색함과 비슷하달까. 라세티 프리미어는 리모컨의 작동거리가 30미터나 된다는 점도 자랑의 하나다. 도어를 잠글 때인지 열 때인지, 아무튼 요란하게 ‘삑삑~’하는 신호음이 울리는 것은 거슬렸다.

A필러/앞유리에서 지붕을 거쳐 C필러/뒷유리까지 이어지는 속도감 있는 아치 형상은 디자인팀이 ‘4도어 쿠페’ 형상이라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이 급에서는 처음 시도된 것이라고 한다. 문제는 보기 전부터 걱정했던 대로 그닥 ‘쿠페’의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것. 너도나도 쿠페를 들먹여 놓은 탓인지, 그 자체가 뭔가 특별하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쿠페랍시고 멋을 부리느라 지붕을 잔뜩 낮춰놓아 목 가누기가 불편해지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블랙 아웃처리 된 윈도우 라인 안쪽은 C필러와의 경계부분을 패턴처리하고 벨트라인에 크롬도금을 넣는 등 섬세하게 신경 썼다.

3면 중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남는 것은 뒷모습이다. 바깥쪽이 축 쳐진 테일램프는 못생겼거니와, 각을 세운 얼굴과 잘 어울리지도 않는다. 이번에도 테일램프 안쪽에는 실린더 형상을 만들어 넣었는데 이러한 원에 대한 집착은 언제쯤 버려질 지 궁금하다. 안쪽에 원만 그려 넣지 않았어도 훨씬 예뻤을 GM대우차가 수두룩하다. 아무튼 테일램프는 어깨선으로부터 입체적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실제로 보면 시빅을 연상시키는 면은 덜하다.

범퍼는 테일램프로부터 오목하게 패인형상으로 이어지는데, 유행을 잘 따른 모습이다. 트렁크 리드 역시 리어스포일러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끝이 부드럽게 튀어나온 형상으로 되어 있다. 범퍼 아래쪽을 쳐다보면 기운이 쏙 빠진다 디퓨저 형상으로 긴장감을 주긴 했지만 배기구가 지면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어 범퍼에는 있어야 할 구멍이 없다. 구멍 하나만 뚫어주었어도 인상이 크게 바뀌었을 터다.

라세티 프리미어를 뒤쪽 측면에서 바라보면 차체에서 튀어나온 휀더의 굴곡이 예사롭지 않다. WTCC경주차의 오버휀더를 연상시킬 정도로 ‘보디 인, 휠 아웃’의 테마를 잘 살리고 있어 뒤측면이 넓고 낮게 보이는 효과를 준다. 그만큼 스포티한 분위기가 물씬한데, 머플러가 보조를 맞추지 않고 있는 셈이다. 이런 머플러 구조는 머플러팁을 끼우더라도 구멍위치가 아래로 축 처져 우스운 꼴이 난다. 토스카가 좋은 예였다.

이유 없이 만든 것은 아니겠으나 내년에 나올 디젤버전에서라도 변경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개발단계의 스케치를 보면 라세티 프리미어는 컨셉카 ‘WTCC울트라’의 직계 같은 인상을 줄 정도로 역동적으로 디자인됐었다. 차체를 낮추고 디퓨저를 다른 색으로 꾸미거나 윙 타입 리어스포일러를 다는 등 조금의 변화로도 상당한 포스를 뿜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처럼 차체가 커지고 휀더가 강조되면 휠에 대한 부담도 커진다. 왠 만큼 큰 휠을 끼우지 않고서는 ‘자세’가 안 나오기 때문이다. 다행히 시승차의 5스포크 17인치 휠은 플랜지리스 타입이고 디자인이 단순하면서도 시원시원해 차체의 스포티함과 잘 어우러졌다. 기본 사이즈의 휠은 어떨지. 참, 색상표를 보니 차체 색상에는 붉은색 계열이 없는 모양이다. 어째서 일까.

겉모습에서도 어느 정도 눈치챌 수 있었지만 GM대우의 혁신은 실내에서 확연해진다. 실내의 품질이나 고급감면에서 드디어 만족스러운 수준에 이르렀다. 아니, 조금만 빨리 나왔더라도 ‘럭셔리 준중형’이라는 표현은 이 차의 차지가 되었을 것이다. 실내 디자인의 핵심은 GM의 스포츠카- 시보레 콜벳의 그것과 같은 ‘듀얼 콕핏’ 형상으로, 스포티한 느낌뿐 아니라 운전자와 동승자가 동일한 공간을 공유한다는 느낌을 주고자 했다는 것이 디자인팀의 설명이다. 이 듀얼 콕핏은 라디에이터 그릴, 측면의 어깨선과 함께 앞으로 나올 제품들에도 공통적으로 이어나갈 디자인적 특징이란다.

캐딜락 뉴 CTS가 실내를 온통 V로 뒤덮었다면, 라세티 프리미어는 중심의 Y자로부터 실내각 요소로의 가지를 키워나갔다. Y자의 양끝이 좌우로 넓게 퍼지면서 실내 디자인의 또 다른 핵심인 대시보드 커버링으로 연결된다. 대시보드를 가죽으로 뒤덮는 것은 고급차에서나 볼 수 있는 설정이고, 그렇지 않은 차들은 어두운 회색이나 검정색 플라스틱에 가죽을 흉내낸 패턴을 넣어 대시보드(혹은 인스트루먼트 패널, IP)를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GM대우 디자인팀은 이러한 진부함을 거부하고 색상과 소재 면에서 새로운 시도를 했다. 센터페시아를 제외한 대시보드의 상당 부분을 인조가죽 또는 직물로 덮어버린 것이다. 이는 대시보드에서 도어트림까지 일체감 있게 연결되어 듀얼콕핏의 느낌을 완성한다.

시승차에는 벽돌색깔의 인조가죽이 덮여있었는데 차급을 뛰어넘는 고급스러운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다른 시승차들에 적용된 회색가죽이 덜 튀고 덜 부담스러워 무난하게 보였다. 고급차일수록 대시보드를 눌러보면 부드러운 재질인 것을 알 수 있는데, 라세티 프리미어의 이 가죽 부분은 말랑말랑하지는 않다. 아쉽게도 이번 시승행사에서는 제대로 접할 기회가 없었지만, 이 인조가죽보다 더 돋보이는 것은 직물커버링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가죽으로 덮거나 그런 패턴을 입히는 것은 누구나 하는 방식이지만 실제 직물로 덮은 것은 다분히 실험적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사용되는 직물은 입체적인 느낌을 주는 메쉬 타입으로, 스포츠 의류나 신발 등에서 볼 수 있는 그것과 유사하며, 시트에도 사용된다. 일부에서 제기된 오염우려에 대해서는 충분히 검증된 소재이기 때문에 적용할 수 있었다는 것이 디자인 및 엔지니어링 팀의 설명이었다. 매일같이 엉덩이를 비벼대는 시트에도 사용되는데 대시보드에 적용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직물 색상은 파란색과 회색으로, 가죽에 비하면 오히려 차급에 어울리는 만족감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대시보드는 단면 자체가 앞으로 뾰족하게 돌출되어 있는데, 듣자 하니 이러한 부분이 실제로 제품화되려면 디자인과 엔지니어링 파트간에 첨예한 대립이 이루어진단다.

대시보드 중앙 상단에는 경쟁사 모델처럼 덮개 달린 수납공간을 마련하고 있는데, 열리는 느낌이나 안쪽의 완충처리 등이 제대로다. 물론(?) 기본형 모델에는 이 덮개가 달리지 않는다. 센터페시아는 기존의 ‘액자형’, 혹은 ‘벽돌형’ 구조를 탈피해 오디오와 공조장치 제어부가 하나로 통합된 느낌을 주는 것이 특징이다. 센터페시아 가장 윗부분의 가로로 넓은 액정부분은 해상도가 떨어져 다소 값싼 느낌을 주는 것이 흠. 내비게이션 빠진 SM5의 그것과 비슷한 허전함이 느껴지는데, 라세티 프리미어에는 순정 내비게이션 옵션 자체가 준비되어있지 않다. 일부 시승차에는 상단 수납함 자리에 팝업식 내비게이션 모니터가 내장되어 있기도 했는데, 이것은 ‘GM대우 액세서리’ 측의 사외품이라 출고 후 장착하는 방식이라고 한다. 가격표에는 빠져있는 이유다.

오디오는 기본형에 4스피커, 고급형에 6스피커를 쓰는 일반적인 구성으로, 최저가모델부터 MP3CDP와 AUX단자, 속도감응형 음량 조절 회로가 적용되어 있는 점이 눈에 띈다. 가장 비싼 모델인 시승차(CDX 고급형)에는 인대시 타입 6CD 체인져 MP3가 달렸다. 듣기로는 스피커 8개짜리도 있다는데 국내사양은 아닌 모양이다. AUX단자는 센터콘솔의 팔걸이 겸 수납함 안쪽에 들어있고 핸즈프리 연결단자는 컵홀더 벽면에 붙어있다. 실제 사용시 몸을 뒤틀어야 하니 편하지는 않을 것 같다. 경쟁사에서 제공하고 있는 USB 연결 단자나 블루투스 지원기능을 제공하지 않는 것은 아쉽다.

검정색 Y형상의 중심에는 비상등스위치가 자리했고, 왼쪽 가지에는 도어록 버튼이, 오른쪽 가지에는 ‘멍텅구리 스위치’가 달려있다. 실내 디자인의 렌더링을 보면 이 Y형상의 검정색 부분은 고광택 처리되어있고 오른쪽 가지 부분에는 작은 액정화면이 삽입되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이런 사양이 추후에라도, 혹은 수출용으로라도 적용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이 액정부분은 좌우 공간의 실내온도를 따로 표시했던 CTS의 그것을 연상시킨다. 라세티 프리미어의 온도조절 레버는 한 쌍이 대칭을 이루고 있어 얼핏 듀얼 온도조절장치로 착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왼쪽이 온도조절용, 오른쪽이 풍량 조절용이다. 레버에는 고무를 둘러놓아 촉감이 좋고, 그 안쪽에는 3단계로 작동하는 시트 열선 버튼을 넣어놓았다.

Y자에서 변속기 부분까지 그대로 이어지는 아래쪽 기둥부분에는 공조장치를 위한 버튼들이 배치되어 있는데, 모서리를 깎아놓은 형상이 볼보의 그것처럼 세련된 느낌을 준다. 공조장치를 켜고 끄는 메인 스위치에 전원스위치용의 빨간색 아이콘을 그려놓은 것도 특이하다. 에어컨은 습도까지 인식해 앞 유리 습기를 자동으로 제거해주며, 뒷유리 열선도 온도에 따른 자동제어로 설정 가능하다. 에어컨 필터로는 숯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하는 카본필터를 적용했고 유해가스 차단장치인 AQS도 달려있다.

스위치류의 전반적인 조작감은 눈으로 보고 기대했던 수준을 만족시키고, 메탈룩의 장식을단순히 은색 페인트로 칠하는 대신 촉각을 살린 입체 패턴으로 처리하고 있는 점도 돋보인다. 변속기 레버의 이동구간은 크롬적용 부분이 넓어지면서 자칫 싸게 보일 수도 있었으나 이번에는 아슬아슬하게 넘어가고 있다. 변속기레버가 달린 센터 터널부분은 컵홀더가 자리한 센터콘솔보다 몇 층 정도 높게 위치해 레버 조작시 팔을 들어올린다는 느낌이 더 들게 되는데, 이것도 운전시 스포티한 느낌을 주기 위해 일부러 설정된 것이라고 한다. 자동변속기 모델이야 그렇다 치고, 수동변속기 모델에서는 실제적인 효과가 어떨지 궁금한 부분이다.

시승차에는 주행안정장치인 SESC(Sensitive Electronic Stability Control)가 달려 그 스위치가 변속레버 오른편에 위치했다. 센터터널의 오른편, 즉 동반석쪽으로 가방 걸이 대신 얇은 맵 포켓을 마련해 놓은 것이 눈에 띈다. 실제 이번 시승에서는 주최측에서 제공한 시승코스 지도를 꽂아두는데 사용했었는데, 모서리의 마무리가 거친 느낌을 주었다.

사실 실내를 꼼꼼하게 살펴보면 고급스러운 첫인상과는 다르게 조금씩 마무리가 부족한 부분들을 발견할 수 있다. 다만 훌륭한 첫인상 덕분에 그러한 면들은 눈감아 줄만 하며, 특히 예전의 대우차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발전한 것이라 충분히 만족스러운 수준이다.

운전자의 정면에 펼쳐지는 요소들 또한 상당히 멋을 부렸다. 계기판은 3연 실린더 타입이고 ‘플라잉 바이저’라고 부르는 덮개가 공중에 떠있는 듯한 형상으로 이들을 덮어주고 있다. 세 개의 원통 테두리에는 크롬링을 둘렀고, 주간에도 점등되는 LED 타입의 계기판은 아이스 블루의 휘황찬란한 조명을 내뿜는다. 정교한 느낌을 주고자 한 듯 눈금을 촘촘하게 나눠놨는데 조금은 복잡하고 시인성이 떨어지는 면도 있다.

연료계에는 주유구 위치가 함께 표시된 반면, 도어 열림 경고등은 어디가 열렸는지 까지는 가르쳐주지 않아 친절도면에서 차이를 보인다. 가운데에 자리한 액정화면에는 순간연비와 평균연비 등 자세한 내용이 표시되는데, 라세티 프리미어에는 이외에도 오디오, 에어컨, 조명, 도어 키의 작동 등을 개인 기호에 맞게 설정할 수 있는 ‘그래픽 인포메이션 디스플레이 차량설정 조절시스템’까지 적용되어 있다.

스티어링 휠은 본격적인 스포츠 모델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상당히 스포티하고도 입체적인 형상으로, 혼다 시빅의 것과 닮은 듯 하면서도 더 무게감이 있다. 은색페인트로 처리된 부분이 3스포크 디자인을 ‘V’, 혹은 ‘Y’자로 강조해주고 있으며, 림 부분은 엄지를 걸 수 있는 부분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다. 가죽의 부드러운 감촉도 좋다. 윗급의 스포츠 세단과 같은 분위기를 만드는데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는 부분이다.

깜빡이 및 와이퍼 조작 레버가 기다란 실린더 형상인 것은 역시 캐딜락으로부터 친숙한 형태인데, 조작감은 그럭저럭이다. 등화장치의 점등 스위치는 이 부분이 아니라 유럽차들처럼 스티어링 컬럼 왼편에 달려 있어 조금은 수입차 기분을 내게 해준다. 스티어링휠의 오디오 리모컨이나 등화스위치, 계기판 조명 조절장치에 리턴방식 스위치를 적용한 것도 흥미롭다.

스티어링 컬럼의 오른편 대시보드 상에는 Y자의 왼쪽 가지에서 연장된 부분에 시동버튼이 자리하고 있다. 눈에 익은 원형 버튼에 크롬링을 두른 형태가 아니라서 왠지 아쉬운데, 버튼에 그려진 시동/정지 표식은 역시 GM계열에서 쓰고 있는 그것이다. 일부 차량과 달리 시동은 브레이크를 밟아야 걸리도록 되어있다. CDX급에 적용되는 스티어링휠의 거리 조절 기능은 그 폭이 넓어 만족스럽다. 여기에 시트 앞뒤 거리와 높이 조절(펌핑타입) 폭도 각각 24cm와 6.5cm로 넓게 잡아 다양한 체형을 만족시킬 수 있도록 하고 있다. 130개 나라에서 팔 차로서 준비를 꼼꼼히 한 셈이다.

대시보드처럼 벽돌색과 회색의 투톤으로 처리된 시승차의 시트는 색상조합이 다소 거북하게느껴졌지만 시트의 기능 자체는 일단 합격이었다. 편하면서도 코너링시 쏠리는 몸을 잘 잡아주어 역시 스포티한 분위기를 이어간다. 최고급사양이라 동반석까지 헤드레스트 틸팅이 되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도어 유리는 운전석만 원터치 업다운이 되지만, 나머지 유리도 모두 원터치로 내릴 수 있는 것은 동급 최초 사양이다. ECM룸미러는 중간급인 SX고급형부터 적용되며, 사이드미러 전동접이 기능은 별도의 버튼을 두는 대신 조절 레버를 아래로 젖혀주는 것으로 작동하도록 되어있다.

뒷좌석에는 잠깐 앉아본 것으로 만족해야 했는데, 일단 공간은 동급 최대라고 주장하는 부분이고 (차이가 크지는 않겠지만) 실제로도 그럴 것으로 보여진다. 기존 라세티보다 8.5cm가 늘어난 2,685mm의 휠베이스를 갖고 있는데, 현대/기아의 경쟁모델들보다 3.5cm가 더 길다. 11월 출시예정인 현대 i30 CW의 경우 해치백보다 휠베이스를 연장시켰기 때문에 라세티 프리미어를 능가하지만(2,700mm), 차종이 다르니 동급최대라는 표현에는 무리가 없다고 하겠다.

뒷좌석 헤드레스트는 분리/조절형이긴 하나 요즘 많이 볼 수 있는 투구형이 아닌 스탠딩 타입이라 후방 시야를 가리는 편이며, 그래서인지 가운데 좌석용은 제공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 상태 그대로- 즉, 헤드레스트를 분리하거나 숙이지 않고도- 등받이의 완전한 폴딩이 가능하니 레그룸의 여유를 실감할 수 있다. 등받이는 어깨부분의 손잡이를 이용해 6:4로 폴딩이 가능하며 조작감은 나쁘지 않다. 트렁크 바닥과는 층이 다르지만 용도에 비추어 딱히 불만사항은 아니라 하겠다.

트렁크는 요즘 차들이 대게 그렇듯이 아주 널찍하다. 바닥 밑에는 자리만 마련되어 있을 뿐 스페어타이어가 갖춰져 있지 않으며 대신 타이어 수리용 키트를 내장하고 있다. 계기판에 타이어 모양과 함께 ‘T/C’라고 적힌 경고등이 있어 공기압 모니터링 장치가 있나 했는데 그에 대한 설명은 찾지 못했다. CTS는 같은 표식의 버튼을 누르면 주행안정장치가 해제됐었다. 트렁크덮개는 전자식으로 터치하면 튀어 오르듯 가볍게 열린다.

반면 가스 리프터가 달려있지 않은 후드는 꽤 무겁다. 엔진룸 공간은 여유가 있어 보이는데, 2.0 디젤이 올라가면 어떻게 바뀔지 궁금하다. 엔진에 커다랗게 박힌 ‘ECOTEC’ 로고가 색다르게 다가온다. 에코텍은 GM의 글로벌 엔진 브랜드명으로, 그 효시는 1986년 월드카 르망에 얹혔던 엔진이었다. 라세티 프리미어에 얹힌 것은 올 1월 GM대우의 부평 엔진 공장에서 양산이 시작된 3세대 에코텍으로, 1.4리터(수출용)와 1.6리터 버전이 젠트라/젠트라엑스에 먼저 쓰였다. 개발은 GM의 유럽 파워트레인연구소와 협력한 것으로 되어있는데, 구형 엔진 대비 너비와 길이를 5cm와 2cm씩 줄이고 무게도 12kg 감량시킨 것이 특징이다. 엔진무게는 110kg. 타이밍벨트 수명이 6만에서 16만km로 늘어났고, 오일필터는 통째로 쓰고 버리는 캔 타입 대신 내부 필터교환식을 적용해 경제성과 친환경성을 살렸다.

젠트라에서 110마력, 15.1 kg.m였던 성능수치는 이번에 114마력과 15.5kgm로 올라갔다. 124마력, 15.9kgm를 내는 현대/기아의 경쟁모델들에는 여전히 뒤지는 수치. 이 차급에서 중요한 것은 수치의 최대값이 아니라 실용영역에서의 토크이지만, 라세티는 가장 큰 덩치만큼이나 가장 무겁기도 해서 불리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라세티 프리미어의 몸무게는 1,305kg, 포르테와 아반떼는 각각 1,187kg과 1,191kg이다. 무거워서 개중 안 나간다는 소리를 듣는 i30도 1,227kg이니 답은 나온 셈이다. 여기서 한가지 변수는 동급은 물론 중형급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6단 자동변속기로, 기어비를 잘게 쪼개서 최적화시켰다면 어느 정도 만회도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하게 되는 부분이었다.

그렇다면 실제 실력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차는 역시 굼뜨다. 일단 가속페달을 가볍게 노크했을 때의 반응이 경쟁차량들과는 다르게 나타난다. 초기반응을 키워놓아 살짝 살짝만 밟아도 움찔움찔 시늉이라도 하는 것이 그들의 태도라면, 라세티는 운전자가 언성을 높이기 전까지는 자신이 적당히 명령을 걸러가며 능글맞게 움직이는 타입이다. 디젤승용차들의 초기 응답이 늦은 것과도 비슷한 움직임이라 할 수 있겠다. 다만 가속은 꾸준하게 이루어져서 어느 정도 토크감은 느껴지는 편이다.

이러나 저러나, 차체대비 작은 엔진을 얹었기는 매일반. 급가속을 시도하면 울화통이 터지니 자제해야 한다. 시승차에는 두 명이 탔을 뿐이었지만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건, 변속기를 수동으로 조작하건 간에 속 시원한 가속은 무리였다. 해외에서 발표된 0-100km/h가속시간은 12.4초로 11초대인 i30(수동 11.1초, 자동 11.4초)에 뒤진다. 추월할 때 괜찮을까? 한편으로는 걱정되면서도 이 정도면 일상적으로 얌전히 타고 다니기에는 그리 나쁘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신호대기 시에는 운전석 시트에 약간의 진동이 느껴지는 편이고, 스티어링 휠이나 페달을 통한 진동은 두드러지지 않는다. 기본적인 엔진소음은 딱히 거칠다고 할 수준은 아니나 급가속시에는 동반석에서도 뚜렷한 진동과 굉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시승차는 어딜 다녀왔는지 이미 2,500km나 주행한 상태였지만 고회전 영역의 길들이기는 이루어지지 않은 듯 회전수 높이기를 버거워 하는 모습이었다. 최고출력은 6,400rpm에서 나오고 레드존은 6,500rpm부터 시작되는데, 변속기를 수동모드에 놓으면 6,500rpm을 넘겨도 자동변속이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6,800rpm을 경계로 회전수만 제한된다. 이때 차가 특별히 꿀렁거리거나 하면서 부조화를 일으키지 않고 자연스럽게 주행을 유지하는 것이 특이하다. 이 상태로 체크한 3단에서의 최고속도가 105km/h 내외였다.

D, 혹은 6단에서는 100km/h 주행시의 엔진 회전수가 2,300rpm내외로 2,700~2,800대인 4단 자동 또는 5단 수동에 비해 뚜렷한 효과를 나타낸다. 동일 속도에서 엔진 회전수를 낮출 수 있으면 연료 소비는 물론 구동계 소음도 낮출 수 있다. 공인연비는 13.0km/L로 14.1km/L인 4단 자동보다도 못하지만, 그 사실 만으로 6단 자동변속기의 의의를 폄하할 수는 없다. 6단은 분명한 프리미엄이다. 5단 수동대신 자동변속기를 선택할 경우 추가비용은 165만원으로, 경쟁사의 4단 대비 30만원 정도가 더 비싸다. 기어 두 단을 더 다는 비용으로는 지불할 가치가 있어 보인다.

GM대우는 i30 2.0이나 내년에 나올 포르테 2.0의 대항마도 준비하고 있다 수출형 모델에는 에코텍III의 1.8 가솔린 버전도 얹히지만 그 엔진은 아니고, 기존 라세티처럼 2.0 디젤을 얹는 다는 것이다. 기존 라세티 디젤은 가변 지오메트리를 거세당했었지만 이번에는 윈스톰, 토스카와 동등한 VGT 디젤을 얹어 150마력의 최고출력을 낸다고 하니 제대로 된 실력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으로는 그 외에도 해외시장용으로 출시된다고 하는 1.4 터보 엔진이 있는데, 1.6보다 여유 있는 힘을 내면서도 2.0에 비해 세제상 유리하니 국내실정이 딱인 차가 아닌가 싶지만 아직 국내 적용계획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앞쪽이 맥퍼슨 스트럿, 뒤쪽이 토션빔 액슬 타입인 서스펜션의 세팅은 다분히 유럽적인 취향에 맞춰진 것으로 보인다. 묵직하게 가라앉아 노면에 밀착되어 달리는 것 같은 무게감은 가볍게 들뜨는 경쟁모델들의 주행감각과 차별화되어 예전 대우차의 특성을 떠올리게 한다. 독일 오펠에 뿌리를 두었던 르망에 대해 당시 사람들이 갖고 있었던 것과 비슷한 이미지라면 이번에도 유효할 것이다. 조향조작에 대한 반응도 유격이 적어 민첩하게 움직였다. 라세티 프리미어의 비틀림 강성은 기존 라세티 대비 140% 향상되어 이러한 주행특성을 뒷받침할 뿐 아니라 NVH성능 향상에도 기여하고 있다. 회전수를 급격히 높이지 않는 이상 주행감각은 부드럽고 고급스럽다. 시승차는 215/50R17 사이즈의 한국타이어 옵티모 H426을 끼웠다.

안전 측면에서는 유럽과 미국, 한국, 중국 모두에서 최고수준의 충돌평가 점수를 획득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한다. ABS는 1,205만원(SE고급형)부터, 후륜 디스크브레이크는 1,372만원(SX일반형)짜리 사양부터 포함되고 주행안전장치 SESC와 사이드에어백, 커튼에어백은 가장 높은 급인 CDX에서만 선택할 수 있다. SESC에는 코너링 브레이크와 엔진 드래그 컨트롤 기능이 추가되어 있다. 시승자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던 것 중 하나는 주행 중 잠겼던 도어가 변속기를 P 위치에 놓으면 자동으로 풀리도록 한 것이었다.

시승차는 CDX 고급형 A/T로, 기본가 1,770만원에 선루프 50만원과 SESC 40만원을 더해 1,860만원의 가격표를 달았다. 이 정도면 디자인과 품질, 가격 면에서 충분히 해 볼만 하다. 잘 만들었다고 해서 무조건 잘 팔린다면 라세티 프리미어는 성공을 거둘 수 있는 차다. 나머지 변수들이 문제일 뿐이다. 디자인이 마음에 안 들어서 다른 차를 샀다는 A씨는 의외로 GM대우 브랜드 자체가 싫었던 것은 아니라고 했다. A씨에게는 그저 ‘라세티 프리미어도 좋더라.’ 라고 간단하게만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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