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출신의 다른 메이커들보다 한발 늦게, BMW코리아도 디젤 승용차를 들여오기 시작했다. 첫 타자는 2008년 11월에 출시된 320d. 며칠 후 520d와 535d가 뒤를 이었다. 강원도의 고갯길 시승코스에서 만났던 320d는 다방면에서매력적인 차였으나 가솔린 모델 대신 택하기에는 망설여지는 부분이 없지 않았다. 그 정도의 소음과 진동이라면 토크와 연비 등 디젤차의 장점을 포기하고라도 가솔린 모델을 선택하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이번에 만난 520d는 달랐다. 520i는 물론 528i도 부럽지 않다. 글/ 민병권 (www.rpm9.com 에디터)사진 / 박기돈 (www.rpm9.com 편집장)
520d는 320d와 같은 엔진을 얹었다. 피에조 인젝터의 3세대 커먼레일 직분사 시스템을 적용한 1,995cc 직렬 4기통 디젤 엔진. 같은 엔진을 얹은 모델이라곤 하지만 차를 이리저리 접하며 체감하게 되는 세련미는 3과 5라는 숫자 차이를 훌쩍 뛰어 넘는 듯 하다. 스티어링 컬럼에 키 뭉치를 넣고 시동버튼을 눌렀을 때의 ‘부릉~’ 하는 소음부터 차라리 경쾌한 쪽이다. 요란한 시동음도, 신경 쓰이는 진동도 없다. “시트에 진동이 있네?” 동반석의 일행이 말했다. “어? 그래요?” 진위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몸뚱이의 감각에 제법 집중을 해야 했다. 그러고 보니 확실히, 진동이 있었다. 변속레버를 P에 놔둔 상태에서도 허리부분이 간질간질하다. 그런데, 불쾌하거나 의식하게 되는 정도가 아니라서 이후로는 다시 무감각해졌다.
시동이 걸린 채로 보닛을 열어보면 엔진 커버는 물론 엔진 상단부의 보기류까지 요동을 치고 있다. 소리도 제법이다. 하지만 보닛을 열었을 때와 닫았을 때가 딴 세상이고, 창문을 열었을 때와 닫았을 때가 딴 세상이다. 노면 나름이긴 하지만 주행 중에는 깜짝 놀랄 정도의 적막이 찾아오기도 한다. 속도를 높이면 오히려 조용해진다고 하는 요즘 디젤차들의 일반적인 수준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소음과 진동면에서 확실한 대책을 세우고 있어 특정 상황을 제외하면 가솔린 차가 부럽지 않다. 엔진은 고회전에서의 가속페달 가감에 대해 ‘따르르륵~’하고 간헐적인 소음을 낼 때가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부드럽게 상승한다. BMW의 상징적인 ‘직렬6기통’이 아닌 것은 520i나 520d가 마찬가지인데, 그나마 최신 터보 디젤의 토크로 무장한 520d는 520i보다 성능이 뚜렷하게 높기 때문에 모자란 실린더 2개에 대한 아쉬움이 덜하다.
0-100km/h 가속은 8.4초로, 520i의 10.6초와 단박에 비교된다. 변속모드를 D에 둔 채 가속페달을 급하게 밟아보면 운전자 자신의 체감가속은 그리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다른 승객들을 가죽시트에 파묻히게 할 정도의 기본기가 쉽게 드러난다. 특히 6단 자동변속기의 레버를 스포츠모드로 옮기면 가속페달 가감에 대한 반응이나 펀치력의 변화가 뚜렷해 운전하는 재미가 배가된다. 원한다면 수동모드에서의 조작도 가능하지만 디젤 엔진의 특성을 고려해 제때 변속을 해주지 않으면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아 가속하면 D에서는 4,000rpm직후, S에서는 4,500rpm, 수동모드에서는 5,000rpm직전에서 시프트업이 진행되는데, 수동모드 기준으로는 45, 70, 115, 155km/h에서 변속을 거쳐 5단에서 200km/h를 찍는다. 제원상 최고속도인 226km/h와는 약간의 갭이 느껴지지만 여기까지의 여유로운 가속을 보면 스포티하다는 표현을 쓰기에 부족함이 없다. BMW다운 엔진소리와 배기음도 흡족하다.
이 엔진은 177마력의 최고출력을 4,000rpm에서, 35.7kgm의 최대토크를 1,750~4,000rpm에서 뽑아낸다. 수동모드에서 기어를 6단에 둔 채 80km/h을 1,500rpm으로 달리다가도 가속페달만 지그시 밟아주면(급하게 밟으면 수동모드에서도 시프트다운이 일어난다) 별 부담 없이 200km/h까지의 가속이 이루어진다. 520i보다 몸무게가 55kg 더 무겁고 이 차이가 앞쪽에 쏠려있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지만 일상주행에서 그러한 사실을 의식하게 될 일은 없을 것이다. (520d가 528i보다는 105kg가볍다.) 같은 엔진을 얹은 320d는 100km/h에서의 회전수가 더 낮게 나오지만 그렇다고 더 조용한 것은 아니고, 0-100km/h 가속 역시 0.5초가 더 빠를 뿐이다. 5시리즈 대비 가벼운 차체는 앞쪽이 무겁다는 느낌을 감추는 데 불리하게 작용하기도 한다. 그래 봐야 520d가 320d의 운동성능을 따라갈 순 없지만 연비는 따라갈 수 있다. 공인연비가 15.9km/L로 같고 연료탱크는 7리터가 더 큰 70리터이니 체감 연비상으로는 520d가 더 만족스럽게 여겨질 수도 있다. 520i의 공인연비는 11.2km/L이니 물론 비교대상이 되지 못한다. 시승차에 남겨진 770km 구간 연비는 12.6km/L, 342km를 주행한 시승구간의 연비는 14km/L였다.
520d의 최대토크는 528i은 물론 530i도 넘어선다.
고속에서의 안정감은 기대에 못 미친 부분이 있으나 타이어를 생각하면 이해해 줄만 하다. 디젤의 여유로운 토크에도 불구하고 520i와 동일한 사이즈인 225/55R16의 피렐리 P7을 끼워 실리를 챙겼다. 연비는 둘째치고 상대적으로 유연한 승차감이 이득으로, 고속주행과 시내 주행을 번갈아 해보면서 잘난 체하는 서스펜션과 타이어의 조화에 어쩔 수 없이 감탄하게 된다. 뒷바퀴가 휠아치보다 안으로 쑥 들어가 보이는 BMW를 두둔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여기 달린 16인치 휠은 간결하고 시원시원한 디자인이라, 사이즈만 크고 생기기는 어중간한 휠보다는 차라리 보기 좋다. 520d의 사양은 520i와 같은 수준으로, 윗급의 5시리즈에서 볼 수 있었던 고급사양 몇 가지는 빠져있으나 크게 티가 나거나 아쉽게 느껴질 정도는 아니다. 530i나 535d의 가격이 3천 만원 이상 더 비싸 1억 원에 가깝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이 520d 역시 어지간한 사양들은 두루 잘 갖추었기 때문이다. 후진 시 자동 하향되는 눈부심 방지 사이드미러와 그래픽으로 표시되는 전후방 주차보조시스템, 메모리 전동시트, 전동조절 스티어링 컬럼, 헤드 업 디스플레이, 듀얼 온도조절장치… 시승차에서 신경 쓰였던 것은 빠진 옵션이 아니라 우드도, 메탈도, 피아노블랙도 아닌 어두운 회색의 실내장식이었다.
오디오는 CD체인저가 없고 스피커가 6개뿐인 기본 시스템이지만 USB나 CD에 담긴 음악을 내장 하드에 옮겨 담을 수 있어 요즘 트렌드에 잘 어울려 보인다. 8.8인치 화면을 이용한 고해상도 한글 내비게이션과 신형 i드라이브도 만족감을 높이는 부분. 다만 i드라이브 조작부는 다소 뒤로 물러나 있는 듯 느껴졌다. 스티어링 휠의 버튼에서 알 수 없는 기호를 빼버리고 대신 공조장치의 외기유입 모드를 넣은 것도 재미있는 설정이다. 물론 자동제어도 되긴 하지만 운전자가 미리 판단해서 좋지 않은 외기의 유입을 원천 봉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520i와 520d의 가격차이는 300만원으로, 동일한 옵션과 힘의 여유, 유지비 면에서의 경제성을 생각하면 본전을 뽑고도 남을 투자다. 저속에서의 디젤 소리가 신경 쓰인다거나 6기통 BMW의 매력을 놓칠 수 없다면 460만원을 더 보태 528i로 갈 수도 있겠지만 어지간해서는 520d에 머무르더라도 충분한 만족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힘 좋고 오래가며 매너까지 좋으니 더 이상 바라기가 조금은 조심스러워진다.▶ [rpm9] BMW 520d 시승사진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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