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디젤, 재규어 XF 3.0D

발행일자 | 2010.02.26 23:56

재규어에서 멋진 디젤이 나왔다. 3리터 트윈 터보이고 XF에 처음으로 얹힌다. 275마력과 240마력 두 가지로 나오는데, 성능과 연비, 정숙성까지 모두 만족스럽다. 240마력 버전인 XF 3.0D는 직선에서도 좋지만 코너에서는 더욱 즐겁다. 프리미엄 미드사이즈 중에서는 가장 퓨어하지 않을까 싶다. 포드의 냄새가 물씬한 실내는 재규어에 실례다.

글 / 한상기 (rpm9.com 객원기자)


사진 / 박기돈 (rpm9.com 팀장)

맛있는 디젤, 재규어 XF 3.0D

거리의 간판을 보면 세월이 지나도 그대로인 곳이 있고 수시로 바뀌는 곳이 있다. 간판이 바뀌는 곳은 거의 장사가 안 돼서이다. 장사가 잘 되면 간판 바꿀 일이 없다. 이는 자동차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잘 되는 5 시리즈와 E 클래스는 수십 년 째 같은 차명이다. 반면 XF의 전작인 S 타입은 단 7년만 존재했다. 럭셔리 브랜드의 핵심 모델로는 흔치 않은 경우이다.

그래서 XF는 재규어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단순하게 봐선 포드 산하에서 나온 마지막 모델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보다는 회사 전체를 살려야 하는 책임을 지고 태어났다. XJ와 XK로는 큰 수익을 기대하기 힘들고 막내인 X-타입은 그보다 더 부진해 단종된다. 이제 라인업의 허리라고 할 수 있는 XF가 나서야 할 때이다. 다행히 XF는 출시와 동시에 큰 인기를 얻었다. 재규어로는 회생의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맛있는 디젤, 재규어 XF 3.0D

판매가 부진한 브랜드의 특징 중 하나는 엔진의 업데이트가 빠르지 못하다는 것이다. 재규어 역시 그렇다. 하지만 타타로 경영권이 넘어가면서 재규어는 세계 최고 수준의 디젤 엔진을 내놨다. 이 디젤 엔진은 가장 큰 기대를 걸고 있는 XF에 처음 얹혔다. 진즉에 나왔어야 했고 오래 기다린 만큼 그 완성도가 매우 높다. 역시 투자하면 이렇게 괜찮은 물건이 나온다.

재규어가 새로 개발한 디젤은 3리터(AJ-V6D Gen III S)이다. 재규어 같은 럭셔리 브랜드에 3리터 디젤은 매우 중요하고 판매에서도 주력이 된다. 새 디젤을 내놓는다면 당연히 3리터가 돼야 한다. 물론 2.7리터라는 괜찮은 디젤이 있지만 독일 3사의 3리터에 대항하기에는 2% 부족했다. 우선 출력만 보아도 딸린다. 하지만 새 3리터 트윈 터보 디젤은 출력에서도 클래스 최강이라는 BMW의 3리터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맛있는 디젤, 재규어 XF 3.0D

같은 3리터 디젤이라고 해서 시스템이 같은 건 아니다. 재규어의 접근은 조금 다르다.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BMW가 작은 터빈→큰 터빈인 것에 반해, 재규어는 그 반대다. 첫 터빈이 크고 작은 터빈이 나중에 더해진다. 가솔린과 디젤을 막론하고 트윈 터보에서 첫 터빈이 큰 것은 쉽게 보기 힘들다. 트윈 터보가 더해지면서 커먼레일도 분사압 2천 바의 3세대로 진화했다.

그리고 BMW와 달리 첫 번째 큰 터빈만 VTG(Variable Geometry Turbocharger)가 적용된다. 작은 터빈은 고정식이다. 큰 VTG는 엔진의 모든 영역에서 돌아가고 작은 터빈은 2,800 rpm부터 작동해 추가적인 힘을 보탠다. 작은 터빈은 회전수가 2,800 rpm이 되면 0.3초 만에 작동한다. 재규어는 이런 방식이 펌핑 로스를 최소화 할 수 있고 연비에도 유리하다고 밝혔다.

맛있는 디젤, 재규어 XF 3.0D

방식이야 어쨌든 성능은 근사하다. 3리터 배기량으로 275마력, 최대 토크는 61.2kg.m을 뽑아냈다. 거기다 1,500rpm이라는 낮은 회전수에서 2.7리터 보다 61%나 많은 토크를 발휘한다. 재규어에 따르면 반응이 빠른 VGT 터빈 때문에 아이들링을 벗어난 후 0.5초 만에 50.9kg.m의 힘을 발휘한다. 재규어는 275마력과 함께 240마력을 내놓아 2가지 버전으로 세분화 했다. 240마력 버전은 출력이 소폭 낮지만 최대 토크는 51.0kg.m으로 만만치 않다.

240마력의 XF 3.0D는 작년의 행사에서 잠시 맛을 본 적은 있다. 그때는 줄 맞춰 달리느라 갖고 있는 힘을 모두 만끽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이른바 ‘노 타치’ 상태. 와인딩의 입구에서 XF 3.0D를 만났다.

맛있는 디젤, 재규어 XF 3.0D

와인딩 앞에 서면 차종에 따라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어떤 차는 굳이 내키지 않아 의무감(?)에 달리는 반면 어떤 차는 기대감이 생긴다. 재규어는 후자에 속한다. 혹시 재규어의 고급스러운 외관과 날랜 핸들링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 재규어라는 이름에 걸맞게 날렵하다. 지금까지 경험한 재규어는(X-타입 제외) 하나 같이 퓨어한 운동 성능을 보였다.

XF 3.0D는 2차선 도로에서는 조금 부담스러울 정도로 빠르다. 있는 출력을 다 쓰지 못하기 때문에 엔진을 달래야 한다. 코너를 만나면 출력을 줄여야 하는 게 아쉬울 정도다. 코너가 이어지는 상황에서는 엔진의 응답성이 중요해지는데, 3.0D는 디젤로서는 최고 수준이다.

맛있는 디젤, 재규어 XF 3.0D

보통은 코너 앞에서 회전수가 떨어졌다가 다시 올리려면 시간이 걸린다. 맘 급한 사람은 이 순간도 답답할 것이다. 하지만 3.0D는 늘 돌아가는 큰 터빈 때문에 그런 답답함이 상대적으로 덜하다. 회전수를 2천 rpm 이상만 유지해주면 OK다. 초반부터 뿌듯하게 밀어주는 토크가 마음을 여유롭게 한다.

2,800 rpm에서 0.3초 만에 작동된다는 작은 터빈은 돌아가는지 느끼기가 힘들다. 그만큼 작동이 부드럽다. 오른발 힘 조절만으로도 웬만큼은 적극적인 드라이빙을 즐길 수 있다. 큰 토크가 넓은 구간에 나온다는 장점이 여실히 드러난다. 거기다 회전의 질감도 나무랄데가 없고 레드 존 근처에서도 토크 하락을 느끼기 힘들다. 수동으로 조작하면 회전수의 한계가 낮은 게 아쉬울 따름이다.

맛있는 디젤, 재규어 XF 3.0D

포커스가 엔진에 맞춰지긴 했지만 6단 변속기도 많은 개선이 있다. XF의 6단 변속기는 모드에 따라서 꽤나 다른 느낌을 선사한다. 우선 D에서는 럭셔리 세단에 맞는 부드러운 변속감을 제공하지만 S와 다이내믹 수동으로 갈수록 스포티해진다.

우선 S 모드로 기어를 수동 조작하면 레드 존에서 자동으로 시프트 업 되는 기능이 해제된다. 즉 수동처럼 시프트 업은 운전자가 직접 해야 한다. 시프트 업 하지 않으면 타코미터의 바늘은 레드 존에 걸리고 엔진의 회전이 제한된다. 다운 시프트 시에는 회전수를 보상하는 기능도 보다 정교해지고 빨라졌다. 그리고 다이내믹 수동 모드는 가장 스포티한 변속 패턴이다. 다이내믹 모드에서는 변속할 때마다 머리가 흔들릴 정도로 충격이 발생한다. D와 S, 다이내믹 수동 모드에 따라 상당히 다른 감각을 즐길 수 있다. 다이내믹 모드에서는 스로틀 반응도 날카로워지고 스티어링 중심 부분도 민감해진다.

맛있는 디젤, 재규어 XF 3.0D

재규어 하체의 특징이자 신기한 점 중 하나는 부드럽지만 접지력이 좋다는 것이다. 즉, 어느 정도의 롤은 허용하지만 하체가 노면을 지지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이런 점은 푸조와도 느낌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재규어는 한층 더 정교하면서도 한계가 높고 적극적이라는 차이가 있다.

XF도 그렇다. 높은 속도로 코너에 들어서면 타이어가 미끌릴듯 하고 언더스티어가 크게 발생할 것 같다. 하지만 부드러우면서도 끈끈하게 타이어가 땅을 내리 누른다. 몇 번 경험한다면 보다 자신 있고 빠른 속도로 코너에 들어설 자신감이 생긴다.

맛있는 디젤, 재규어 XF 3.0D

물론 속도가 높을 경우 언더스티어가 발생하긴 하지만 잠시뿐이다. DSC가 곧바로 자세를 바로 잡고 머리가 안쪽을 향하게 한다. DSC의 개입도 럭셔리 세단으로서는 늦은 편이다. 반면 급격한 커브에서는 확실하게 엔진의 출력을 줄인다. XF 3.0D에 달린 던롭 타이어의 접지력도 훌륭하다. 하체는 승차감과 핸들링을 모두 아우르는 성능이라 하겠다.

기존의 2.7과 비교하다면 3.0D는 모든 면에서 다르다. 성능은 물론 소음과 진동 면에서도 대폭 좋아졌다. 2.7리터도 정숙성 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3.0D는 한 차원 더 높다. 아이들링도 그렇지만 주행 시에도 엔진 음량이 꽤나 낮다. 힘에서는 그 성능을 유감없이 드러내지만 소리에서는 존재감이 없다고 할 수 있다.

맛있는 디젤, 재규어 XF 3.0D

성능은 가속 페달을 조금만 밟아도 늘어난 힘을 느낄 정도이다. 그만큼 지체 현상이 적다. 제원 상으로는 최대 토크가 2천 rpm 조금 못 미쳐 나오지만 실질적인 추진력은 1,500 rpm부터 시작되는 느낌이다. 그리고 레드 존까지 미끈하게 회전수가 뻗는다.

3.0D는 일상적인 상황에서도 여유 있는 힘을 발휘하지만 뻥 뚫린 도로에서도 힘찬 추진력을 제공한다. 그리 길지 않은 직선에서도 어렵지 않게 200km/h를 넘는다. 그리고 220km/h까지도 무난히 가속된다. 이 속도에서도 자세는 매우 안정적이며 하체의 방음이 잘 돼 있어 기분 좋게 크루징 할 수 있다.

맛있는 디젤, 재규어 XF 3.0D

엔진을 포함한 주행 성능에 너무 힘을 써서일까. 실내는 재규어의 격에 맞지 않는다. XF의 실내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재규어와 포드의 공존이다. 엔트리 모델도 아니고 재규어의 미드사이즈에서 포드의 냄새를 느끼는 것은 유쾌하지 않은 일이다. 특히 센터페시아의 회색 플라스틱과 버튼은 실내의 다른 소재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질감이다. 이런 질감은 기어 레버 주위도 마찬가지다. 랜드로버는 그렇지 않은데 재규어의 실내는 (전) 모회사의 냄새가 많이 배여 있다.

내비게이션과 모니터도 만족스럽지 않은 건 마찬가지다. 우선 모니터의 크기도 작을뿐더러 맵도 예쁘지가 않다. 화질은 요즘 내비게이션의 맵이라고는 보기 힘들 정도로 구형 티가 난다. 인터페이스도 다소 어지럽다. 아우디처럼 내비게이션에서 바로 공조 장치 화면으로 전환되지 않는다. 작동은 되지만 표시는 되지 않는 것이다. 별도의 버튼을 눌러야 한다. 공조 장치에서도 바람 세기를 조절하기 위해서는 ‘CLIMATE’ 버튼을 한 번 더 눌러야 한다. 시동을 켰을 때 기어 다이얼이 솟아오르면서 손에 쏙 들어오는 건 참신한 아이디어이다.

맛있는 디젤, 재규어 XF 3.0D

재규어는 더 이상 실내가 좁은 브랜드가 아니다. 과거의 재규어는 차체 크기에 비해 실내, 특히 2열이 좁았지만 이제는 다르다. XF는 2열도 넉넉하다. 성인 3명이 앉아도 충분하고 헤드룸과 레그룸까지 부족하지 않다. 2열 시트는 1열처럼 가죽의 질이 좋고 다소 미끄럽다. 1열 시트의 가죽은 처음엔 미끄럽게 느껴지지만 와인딩을 달려도 몸이 흔들리거나 하진 않는다.

트렁크는 용량은 꽤 커 보이지만 완전히 반듯하진 않고 가운데도 튀어 올라있다. 가운데가 튀어 올라온 이유는 양 옆을 가로지르는 스트럿바 때문이다. XF 같은 고급차가 리어 스트럿바도 있는 건 쉽게 보기 힘들다. 그만큼 XF는 핸들링 성능을 위해 세심한 신경을 썼다. 무게 배분을 위해 배터리도 트렁크에 있다.

맛있는 디젤, 재규어 XF 3.0D

XF 3.0D는 장단점이 확실하다. 장점은 동급에서 가장 활발하고 퓨어한 운동 성능이며 특히 부드러우면서도 강력한 디젤 엔진에는 마음이 절로 끌린다. 3.0D는 최근 타본 디젤 중에서는 가장 쫄깃한 맛이다. 그런 반면 실내의 일부 재질은 그런 장점을 갉아 먹는다. 재규어는 여전히 모든 면을 만족시키지 못하지만 그게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a target="_blank" href="http://gallery.rpm9.com/breakEgg/offline_list.html?GalleryType=Thumb&amp;qservice_uid=1&amp;qgallery_uid=463">▲ 재규어 XF 3.0D 시승사진 갤러리</a>
<▲ 재규어 XF 3.0D 시승사진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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