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세데스-벤츠 E 300 아방가르드

발행일자 | 2010.05.17 15:02

AMG 스포츠패키지

지난 해 여름에 국내 출시된 현행 E클래스를 벤츠는 ‘9세대’ 모델로 칭한다. ‘마스터피스’ 모델로 국내에서 인지도를 얻었던 1980년대 후반의 W124를 초대 E클래스로 생각해온 이들에게는 다소 당황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얘기지만, 벤츠가 생각하는 1세대 모델은 1947년의 170V라는 것이다. 136시리즈, 즉 W136인 170V는 벤츠의 첫 중형 클래스 차였다. 아무튼, 1993년 처음으로 ‘E클래스’라는 이름을 썼던 코드네임 W124는 이후 1995년의 W210, 2003년의 W211을 거쳐 2009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데뷔한 이번 W212로 이어졌다.

글 / 민병권 (RPM9.COM에디터)


사진 / 박기돈 (RPM9.COM팀장)

메르세데스-벤츠 E 300 아방가르드

7년 만에 풀 체인지 된 뉴 E클래스는 W210때 첫 선을 보여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그리고 다수의 유사품을 낳았던) 4눈박이 헤드램프를 계승, 발전시켰다. 원형이었던 것을 각지고 날카롭게 다듬어 단단한 느낌을 주는 것이 도드라진 변화다. 전대에 비하면 전체 실루엣에도 직선을 기조로 각을 세워 세단의 3박스 구성요소를 또렷이 했다. 이런 점 때문에 S클래스보다는 나중에 나온 C클래스나 GLK 등 신세대 모델들과 잘 어울리는 인상이고, 이는 실내에서도 재차 확인된다.

구형과 비교하면 몸에 좀더 타이트하게 맞춰진 수트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치수상으로는 커졌지만 움직임이 왠지 가뿐해진 것 같아 기분을 상큼하게 한다. 구형이 엘레강스했다면 이번엔 아방가르드한 느낌. 물론 벤츠에서 말하는 엘레강스, 아방가르드는 옵션 등급을 나누는 명칭이니 이와는 별개다. 이번 E클래스의 E 300만 해도 엘레강스와 아방가르드의 차 값 차이는 천 만원 이 넘는다. 덕분에 엘레강스가 6천만 원대인데 비해 아방가르드는 8천만 원대. 수입차시장의 베스트셀러인 E300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어떤 버전일지를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메르세데스-벤츠 E 300 아방가르드

시승차인 E 300 아방가르드에는 덤으로 AMG패키지가 얹어져 외관이 한결 스포티하다. 검증된 제품을 구입한다는 차원에서 베스트셀러(E 300)를 선택하지만, 그 와중에도 남과 차별화된 개성을 뽐내고 싶다는 이들을 위한 설정이다. 앞뒤 범퍼와 사이드 스커트, 알로이휠이 죄다 AMG스타일이고, 차고까지 더 낮다. 앞쪽에 245/40R18, 뒤쪽에 265/35R18 사이즈의 브리지스톤 RE050A를 끼웠고 타공 브레이크 디스크까지 적용한 것을 보니 그저 폼만 잡다 말 기세는 아니다.

앞범퍼의 흡기구에 ‘ㄱ’자로 배치된 LED램프는 본디 주간주행등이지만 국내 법규 때문에 실제로는 켜지지 않게 돼있다. 설정메뉴에서 주간주행등을 활성화시키면 LED대신 헤드램프가 점등된다. 헤드램프에는 저속, 고속 코너링 라이트 기능 등 복잡다단한 조명지원을 제공하는 액티브 라이트 시스템이 적용되어 있다.

메르세데스-벤츠 E 300 아방가르드

공격적이기까지 한 앞모습에 비해 뒷모습은 상대적으로 심심해 보인다. 가로로 비스듬히 그은 테일램프는 엉덩이를 쳐져 보이게도 하는 것 같다. 다행히 시승차의 AMG 패키지는 이 대목에서도 힘을 발휘한다. 범퍼일체형의 사다리꼴 배기파이프 장식으로부터 힙을 탱탱하게 모아 올려주는 착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꼭 그렇지는 않더라도 1950년대의 폰톤 쿠페를 흉내 냈다는 후륜 휀더로부터의 볼륨감은 꽤 볼만 하다.

LED가 들어간 테일램프는 급제동 때 자동으로 점멸해 뒤따르는 차에게 더욱 확실한 경고를 보내는 어댑티브 브레이크 라이트 기능을 갖췄다. 해외사양의 벤츠에는 진작부터 적용됐었지만, 국내에는 법규상의 문제로 한동안 들어오지 못하고 있었다. (비상등이 아니라 제동등이 점멸한다는 점이 문제였다.)

메르세데스-벤츠 E 300 아방가르드

아방가르드에 AMG패키지가 얹혔으니 실내도 기본형인 엘레강스와는 사뭇 다르다. 고무징을 박은 스포츠 페달과 AMG매트, 옆구리를 단단히 잡아주는 스포츠시트가 사뭇 심각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 중에서도 단연 압권은 아래쪽을 평편하게 깎은 스티어링 휠이다. 나파가죽으로 마감된 이 운전대는 엄지손가락 거는 부분을 강하게 강조한 림의 굴곡 탓에 어루만지는 느낌까지 좋다. 변속레버가 운전대 뒤에 붙어있는 컬럼시프트 방식이라 조금 어색하긴 하지만, 어차피 주행 중에는 스티어링 휠의 변속 패들을 이용하면 되므로 레버는 만질 일이 없다.

시트는 동반석까지 메모리 기능을 제공하고, 헤드레스트의 높이도 전동으로 조절할 수 있다. 물론 조절레버들은 모두 도어 트림의 바로 ‘그 자리’에 위치하고 있는데, 요추받침 전동조절레버만큼은 방석 옆 부분에 따로 떨어져 나와있다. 스티어링 컬럼은 전동으로 조절되고 물론 이지액세스 기능을 제공한다. 안전벨트를 착용하면 탄탄하게 한번 쫘악 당겨졌다가 다시 느슨해지는데, 어쩐지 ‘나 믿지? 내가 지켜 줄께.’라는 속삭임이 들리는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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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플라스틱 질감이 모호하고 가죽 패턴으로 처리된 부분이 의외로 단단한 것을 제외하면 실내는 예전보다 고급화된 인상을 준다. 금속 장식과 디테일을 활용하는 감각이 더욱 세련되진 덕분인 듯 하다. 특히 거의 피아노 블랙 마감에 가깝게 보이는 시승차의 어두운 우드 장식은 단정하고 묵직한 느낌을 주는 것과 동시에 AMG패키지의 스포티함과도 잘 어울려 보였다. 야간에는 대시보드와 도어트림의 우드장식 아래 틈새로 무드 조명이 새어 나와 고급차다운 면모를 보여준다. 커다란 아날로그 시계가 계기판에 한 자리를 꿰차고 있는 것은 구형과 마찬가지다.

파노라마 선루프는 E 300 아방가르드부터 기본사양. 반면 키리스 엔트리(스마트키)는 E 350 아방가르드에서부터 기본이기 때문에 시승차는 키를 꽂고 돌려야 시동을 걸 수 있었다. 하지만 정말 아쉬운 것은 여전히 사제 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글 내비게이션이다. 터치스크린이 아닌데다 커맨드 컨트롤러가 아닌 별도의 리모컨을 써야 하고 화면의 질도 벤츠에 어울릴 수준은 아니다. 후진할 때 카메라 화면을 보려면 내비게이션 화면을 켜주어야 하는 것도 불편하다. 사이드미러는 후진연동으로 자동하향이 되고, 도어록에 연동해 접히고 펴지도록 설정할 수 있다. 야간에는 눈부심 방지기능도 작동한다.

메르세데스-벤츠 E 300 아방가르드

뒷좌석은 별난 것이 없다는심심함 외에외에 별다른 아쉬움 없이 그저 편안하다. 발에 걸리지 않도록 납작하게 만들어놓은 앞좌석 시트레일이 기특한 정도다. 시트에는 히팅 기능이 있고, 필요할 때는 등받이를 한번에 평편하게 접어 짐칸을 확장할 수도 있다. 뒷좌석승객이 높이 뽑아놓은 헤드레스트는 앞좌석에서 버튼을 눌러 한번에 원위치 시킬 수 있다. 앞이나 뒤로 젖혀지는 방식과 비교하면 후방시야 확보 면에서는 아쉽게 느껴진다.

이번 E클래스의 E300은 구형의 E280에 해당한다. 엔진 자체의 배기량이나 최고출력(231ps/6,000rpm), 최대토크(30.1kgm/2,500-5,000rpm)가 같고, 변속기도 7G트로닉이니 구성상의 변화가 없다. 3.0리터 엔진을 얹고도 280이라는 이름을 쓰던 억울함을 이제 떨쳐 버린 셈인데, 자연히 BMW의 528i와 비교가 되어 재미있다.

메르세데스-벤츠 E 300 아방가르드

움직임은 최신의 벤츠에 기대할 수 있는 딱 그것이다. 승차감도, 핸들링도, 동력성능도 한결같이 차분한 매끄러움으로 귀결된다. 하다 못해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아 킥다운을 하더라도 매끄럽고 담백한 엔진소리를 유지하며 –역시 매끄럽게- 튀어나간다. 실제 기어단수가 7단에서 3단까지 한달음에 바뀌고 엔진회전수는 널을 뛰지만 운전석은 평온하기만 하다.

정지상태에서부터 풀 가속을 해보면 수동(M)모드를 기준으로 50,80, 120, 170에서 다음 단으로의 변속이 이루어진다. 그 상태로 5단에서 6천rpm을 넘기자 속도계가 228km/h를 가리킨다. 제원상 0-100km/h 가속 7.3초, 최고속도 248km/h의 충분하고도 남는 성능을 가졌지만, 체감가속이 많이 떨어져 배기량을 의심했을 정도다.

100km/h에서의 엔진 회전수는 1950rpm이다. AMG패키지의 유난스러운 타이어와 강화된 하체가 약간의 훼방을 놓는 것을 제외하면 승차감도 정숙성도 더할 나위 없다. 나름 스포츠 세팅이라는 하체에서도 이 정도의 승차감을 지켜내고 있는 것은 주행상황에 맞게 자동 조정되는 다이렉트 컨트롤(DIRECT CONTROL) 서스펜션의 효과가 아닐까 싶다. 역설적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운전 자체는 별다른 재미가 없다. 즉, 힘을 준 실내외의 모습과는 딴판이라는 것이다. 최고속도를 5분의 4쯤 채울라 치면, 안정감도 기대에 못 미칠 수 있다.

메르세데스-벤츠 E 300 아방가르드

벤츠가 지향하는 ‘자극과 스트레스를 배제한 안락한 달리기’를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뉴E클래스다. 많이 부드러워졌다고 얘기하는 신형 5시리즈의 523i조차도 밟으면 꿈틀하는데, 바로 그런 면에서 성격차이가 쉽게 느껴진다고 할 수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너무 편해서 졸릴 정도인 차가 뉴E클래스다. 그래서 벤츠는 주의 어시스트(ATTENTION ASSIST) 기능으로 졸음운전에 대한 예방책도 마련했나 보다. 사실 우리나라의 도로여건에서 단단한 서스펜션의 독일 차들이 인기를 얻는 것은 조금 이상한 일이기도 했다. 뉴E클래스의 지향점에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메르세데스-벤츠 E300은 BMW 528i와 수입차 시장의 베스트셀러 자리를 놓고 엎치락뒤치락 해온 사이다. 지난 해 수입차 판매대수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은 3,098대가 팔린 528i. 그에 비해 E300은 1,814대가 팔려 4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E300은 8월에 뉴 E클래스가 들어오면서 새로 소개된 모델이니, 넉 달 남짓 만에 이 만큼이 팔렸다는 얘기. 지난 해 11,12월을 캠리와 어코드에게 내줬을 뿐, 출시 이후 올해 2월까지는 수입차 판매 1위 자리를 지켰다는 점에서도 E300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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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 4월 누적판매 대수에서도 E300은 1위였다. 2008년만 해도 연간누적판매대수 10위권 안에서 E클래스를 발견할 수 없었음을 생각하면 새 모델의 출시와 함께 가격을 낮춘 것이 상당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맞수인 신형 5시리즈는 4월1일에 신차발표회를 가졌지만 528의 경우 지난해 예약물량이 이제야 막 공급되기 시작한 터라, 본격적인 대결은 이제부터라 할 수 있다.

* 차량가격 (2010년 1월1일 기준)

- E 300 엘레강스 6,970만원

- E 300 아방가르드 8,150만원

* 시승차는 2009년 출고 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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