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깊은 장맛, 스바루 레거시 3.6

발행일자 | 2010.06.24 11:16

레거시는 스바루 기술의 절정이다. 스바루를 대표하는 모델인 만큼 패키징의 완성도도 가장 높다. 3.6리터 엔진은 토크가 풍부하고 끈질기게 힘을 쏟아낸다. 자동 5단의 회전수 매칭 기능은 생각지 못한 보너스이다. 핸들링을 포함한 운동 성능은 포레스터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할 만하다.

글/ 한상기 (rpm9.com 객원기자)


사진/ 박기돈 (rpm9.com 팀장)

속 깊은 장맛, 스바루 레거시 3.6

스바루 레거시는 왜건이 더 유명하다. 정확히 말하면 왜건 때문에 뜬 케이스이다. 90년대 초반 일본에서 스타일리시 왜건의 붐을 일으켰던 것이 레거시 왜건이다. 왜건은 세단의 가지치기 모델이기 때문에 이것은 다소 특이한 경우라 하겠다. 물론 일본 이외의 지역에서는 세단이 주력이긴 하다. 국내에도 당연히 세단이 들어왔다.

국내에 들어온 레거시는 포레스터와 함께 쓰는 2.5리터 4기통, 그리고 6기통 3.6리터 모델이 팔린다. 3.6리터는 스바루 엔진 중 가장 큰 배기량이다. 경쟁을 위해서 차체가 커지면서 엔진도 같이 커졌다. 3리터급 엔진이 요 근래 3.5~3.7리터로 커진 추세를 반영했다. 시승차는 3.6리터 모델이다. 스바루는 임프레자와 레거시 때문에 터보에 대한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에 자연흡기 3.6리터의 성능도 관심이 간다.

속 깊은 장맛, 스바루 레거시 3.6

레거시는 많이 커졌다. 미국의 미드사이즈 클래스에서 경쟁하기 위해 차체를 키운 것이다. 이전의 레거시가 컴팩트하고 날카로웠다면 지금은 중후하고 다소 두루뭉실해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이전 레거시가 더 좋지만 시대의 흐름에 맞춰 차가 커진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특징적인 모습이 없는 것은 스바루의 특징이기도 하다. 다른 스바루들처럼 무난한 디자인을 지향하고 있다. 억지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이게 장점이라면 장점이다. 이런 디자인은 단숨에 마음을 당기는 임팩트는 적을지 몰라도 쉽게 질리지 않는 장점이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한 세대 전의 폭스바겐이나 아우디도 이랬다. 한편으로는 쉽게 유행을 타지 않고 급격한 변화가 없기 때문에 보수적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속 깊은 장맛, 스바루 레거시 3.6

사이즈는 전반적으로 한 둘레가 커졌고 트레드가 넓어진 게 눈에 띈다. 주력인 미국에서는 미드사이즈, 국내에서는 중형급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외관을 보면 특별한 장식도 많지 않다. 그릴에 집중적으로 쓰인 크롬이 눈에 띌 뿐이고 범퍼의 굴곡도 비교적 자제한 것처럼 보인다. 색상이 검정이어서 그런지 보닛의 주름이나 불거진 펜더가 두드러지진 않는다. 3.6 모델임을 알리는 배지는 트렁크에만 붙어 있다.

레거시 사이즈에 3.6리터 배기량의 엔진이면 18인치 휠이 달리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만큼 요즘은 휠을 크게 쓰는 추세이다. 하지만 레거시는 겸손하게 17인치이다. 스바루는 휠, 타이어에서 크게 오버하지 않는다. 타이어는 225/50R 사이즈의 브리지스톤 투란자 EL400이다. 수입차에 흔히 달리는 성능 지향이라기보다는 OEM에 가까운 트레드 패턴이다.

속 깊은 장맛, 스바루 레거시 3.6

포레스터의 실내에서 조금 실망했다고 레거시에 대한 기대까지 접으면 안 된다. 레거시는 적어도 포레스터 보다는 훨씬 낫다. 우드와 메탈 ‘룩’ 장식을 혼용해 마감한 레거시의 실내는 포레스터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 할만하다. 다만 우드와 메탈 장식에서 플라스틱 티가 나는 것이 흠이다.

국내에서 장착한 올인원 내비게이션은 포레스터와 동일하다. 내비게이션과 오디오, MP3, 카다이어리 같은 여러 기능들이 내장돼 있고 화질도 상당히 좋다. 모니터 바로 밑에는 커버 달린 수납함이 있는데, 손이 쑥 들어갈 정도로 깊어 꽤나 많은 물건을 보관할 수 있다. 물건이 미끄러지지 말라고 깔판도 달려 있다. 하단의 공조 장치는 별도의 액정이 있고 듀얼 온도 조절 기능도 지원된다.

기어 레버는 길이가 상당히 짧은 게 특징이다. D에서 레버를 왼쪽으로 젖히면 수동 모드가 되고 수동 기어 조작은 시프트 패들로만 가능하다. 컵홀더는 용량이 크고 내용물을 지지하는 날개도 달려 있다.

속 깊은 장맛, 스바루 레거시 3.6

계기판은 심플한 구성이다. 속도계가 260까지 새겨져 있는데, 엔진 성능으로 본다면 이 속도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 특이한 것 중 하나는 수온계 대신 연비 게이지가 있다는 점이다. 이 게이지는 연비 효율을 보여주는 것으로, 연료 소모가 적으면 +쪽으로 붙는다. 실시간 연비는 대시보드의 작은 액정으로 확인할 수 있다.

스티어링 칼럼 좌측에는 미러 조절과 전자식 브레이크, VDC, 트렁크 등의 버튼을 한데 모아 놨다. 실내의 구성을 본다면 전자식 브레이크는 나름 호화 장비이다. 유리는 운전석만 상하향 원터치가 적용된다. 실내의 전반적인 마무리는 좋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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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트는 등받이의 쿠션이 강조돼 등을 탄탄하게 받쳐준다. 반면 좌우로 지지하는 기능은 평범하다. 앞시트는 모두 전동으로 조작할 수 있고 열선 버튼은 기어 레버 뒤에 위치해 있다.

2열은 상당히 넓다. 포레스터도 그랬지만 스바루는 실내 공간을 꽤나 넓게 뽑아내고 있다. 1열의 등받이 형상 때문에 레그룸이 더 넓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1열 등받이는 활처럼 휘어 있다. 쿠션은 1열 보다 좀 더 탄탄하다. 3명이 탑승할 수 있는 공간 자체는 충분하지만 플로어가 불룩 튀어나왔기 때문에 가운데 앉는 사람은 조금 불편한 게 사실이다. 2열에는 별다른 편의 장비가 없다. 앞좌석 등받이 그물이 오른쪽에만 달린 건 좀 이상하다.

속 깊은 장맛, 스바루 레거시 3.6

레거시 3.6의 파워트레인은 수평대향 6기통 엔진과 5단 자동변속기로 조합된다. 출력은 260마력, 최대 토크는 34.2kg.m으로, 동급 최고는 아니지만 수준급의 힘을 낸다. 이 엔진은 북미에만 팔리고 있다. 국내에는 터보가 달린 2.5GT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변속기가 5단인 것이 조금 맘에 걸릴 수 있지만 포레스터의 4단을 생각하면 훌륭하다. 포레스터와 달리 아이들링 시 진동도 거의 없고 정숙성도 좋다.

레거시는 초반부터 시원하게 뻗어나간다. 저속 토크도 좋지만 중간 영역 대에서의 반응도 샤프하다. 거기다 고회전에서도 끈질기게 힘을 뽑아낸다. 외지 기록을 보면 0→100km/h 가속 시간은 6초대 중반이다. 제원상 기록도 빠르지만 체감 가속력은 더 빠르다. 그리고 100km/h 이상의 속도에서도 가속력 저하의 정도가 덜하다.

속 깊은 장맛, 스바루 레거시 3.6

기어비는 간격이 상당히 넓은 편이다. 레거시 3.6은 2, 3단으로 115, 170km/h를 찍고 4단으로 최고 속도가 나오는 기어비 세팅이다. 엔진의 힘이 있기 때문에 3단까지는 상당히 빠르게 가속되지만 4단으로 넘어가면 약간은 지루한 감이 있다. ‘이쯤에서 변속이 되겠지’라고 생각해도 여전히 4단에서 가속하고 있다.

4단에서 250km/h 조금 못 미치게 가속했는데, 이때의 회전수는 6천 rpm이 되지 못했다. 회전수의 여유를 생각하면 250km/h 이상도 충분히 넘길 기세다. 물론 4단으로 이 속도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긴 직선이 필요하긴 하다. 6단이었으면 좀 더 기어비를 잘게 나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5단은 항속 기어이다. 톱 기어로 100km/h를 달리면 회전수는 2천 rpm 정도에 그친다.

속 깊은 장맛, 스바루 레거시 3.6

5단 변속기는 기대 보다 성능이 우수하다. 우선 주행 또는 정차 시 변속 충격이 적고 엔진의 동력을 충실하게 전달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수동 조작은 시프트 패들로 한다. 시프트 업은 평범하지만 시프트 다운의 기어 변경은 대단히 신속하게 이뤄진다. 거기다 기어를 내릴 때 회전수 보상 기능도 내장돼 있어 더욱 빠르게 느껴진다. 허용 회전수 이하에서 변속하면 경고음이 울린다.

고속에서의 자세는 흠 잡을 데가 없다. 타이어는 탄탄하게 노면을 지지하고 롤이 다소 있는 편인 것을 감안하면 고속 안정성은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반면 타이어 자체는 고속 주행을 지원하기에 부족한 부분이다. 속도가 230km/h을 넘어가면 타이어 접지력의 한계가 드러난다. 둥둥 뜬다고 할까. 앞 타이어와 노면의 밀착이 약해지는 게 두드러진다.

속 깊은 장맛, 스바루 레거시 3.6

핸들링 성능은 포레스터와 흡사한 특성을 띈다. 플랫폼과 AWD 시스템이 같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주행 시 좌우로 흔들리는 것을 보면 코너를 잘 돌아나가는 게 다소 신기하다. 주어진 타이어 그립을 빠듯하게 사용하면서 AWD도 차체 중심을 잡는다. VDC의 세팅 역시 적극적으로 언더스티어를 줄이면서 운전의 재미를 살리고 있다.

VDC를 끄면 보다 원초적인 매력이 나타난다. 대신 언더스티어 현상이 훨씬 커진다. 따라서 확실하게 차를 컨트롤할 자신이 없다면 VDC를 끌 이유가 별로 없다. VDC의 개입도 다른 차종 보다 늦으니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VDC의 개입은 포레스터 보다는 조금 빠른 것 같다. 비포장도로에서 더 재미있는 것은 WRC에서 갈고 닦은 스바루의 DNA인가 보다.

속 깊은 장맛, 스바루 레거시 3.6

차체의 움직임은 제동 할 때도 마찬가지다. 제동 시 차체가 앞뒤로 흔들리는 피칭 현상이 꽤 큰 편인데, 제동력 자체는 상당히 좋다. 제동력은 차가 완전히 멈출 때까지 일정하게 발휘된다. 브레이크 페달을 밟았을 때 반응도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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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거시는 스바루의 차만들기 전력이 잘 나타난 모델이다. 대중 브랜드의 자동차로서는 개성이 강하다. 보통 레거시가 포진한 세그먼트의 자동차는 누구에게나 어필할 수 있는 성격을 지향하지만 레거시는 조금 다르다. 외모만 보고 쉽게 판단해서는 안 될 일이다. 겉은 지극히 평범하지만 오랜 기간 숙성된 기술력이 레거시를 차별화 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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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바루 레거시 3.6 시승기 사진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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