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대형 럭셔리 세단 시장에 탁월한 경쟁력을 갖춘 뉴 페이스가 등장했다. 벤츠 S클래스, BMW 7시리즈, 아우디 A8을 경쟁상대로 하지만 보다 특별한 고객들에게 사랑 받아 온 재규어 XJ가 완전히 새롭게 바뀐 모습과 첨단 기술력으로 무장하고 당당히 출사표를 던졌다.
글 / 박기돈 (RPM9 팀장)
사진 / 박기돈, 재규어 코리아
제주도에서 만난 뉴 XJ는 앞 모습이 무척 멋지다. 아주 오랫동안 전통적인 스타일을 고수해 오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재규어는 당연히 고전적이고 우아한 라인 속에 동그란 헤드램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뉴 XJ는 럭셔리함에서는 조금도 양보하지 않았지만 전통을 벗어나 지극히 모던하고 신선한 이미지를 선보이고 있다. XK와 XF를 통해 미래 재규어의 모습을 선보여 왔다면 이제 새로운 XJ가 그 변화의 완성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겠다.
무엇보다 XF 등장 이전에 선보였던 컨셉트카 C-XF의 날렵했던 헤드램프가 XF를 건너뛰고 XJ에서 실현된 점이 반갑다. 유명한 디자이너 이안 칼럼이 선보였던 이전의 두 모델 XK와 XF의 헤드램프는 다소 실망스러웠던 터라 XJ의 헤드램프가 더욱 돋보인다. 라디에이터 그릴은 과감하게 돌출되었고, 헤드램프는 날카롭게 빛난다. 램프는 주행 방향에 따라 비추는 각도도 따라가고, 전방 차량의 유무에 따라 상, 하향등 조절도 자동으로 이루어진다
반면, 이안 칼럼은 XJ의 뒷모습을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매혹적인 뒷모습이라고 자찬하면서 깊은 의미를 두었다. 핵심은 C필러를 블랙 하이그로시로 처리해 유리창이 옆에서 뒤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듯한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다. 물론 뒷창문을 최대한 길게 뻗어 지붕선이 트렁크까지 연결되는 듯한 스타일도 독특하다. 세로로 길게 뻗은 리어 램프에는 바 타입의 LED가 적용되었는데, 맹수가 할퀸 발톱 자국을 연상케 한다. 뒷모습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아직까지는 반반인 듯하다. 분명 개성이 넘치고 뭔가 끌리는 부분도 있지만 어색하다는 평도 만만치 않다.
잘 알려져 있듯이 재규어 XJ는 지난 세대부터 알루미늄으로 차체를 제작한다. 알루미늄으로 제작된 차체는 이전 세대에 비해 강성은 높이고 무게는 더 줄였다. 차체는 스탠다드와 롱 휠베이스의 두 가지 크기로 만들어지는데, 스탠다드 휠 베이스 모델도 길이가 5m를 훌쩍 넘는다. 장x폭x고는 5,122 x 1,894 x 1,448mm이며, 휠베이스는 3,032mm이다. 롱 휠베이스 모델은 너비와 높이는 같고, 길이는 125mm 더 늘어난 휠베이스만큼 더 긴 5,247mm이다.
롱 휠베이스 모델을 기준으로 벤츠 S클래스와 비교해 보면 길이가 22mm 길고, 폭이 24mm 넓은 반면, 높이는 32mm가 더 낮다. 휠베이스는 8mm 짧다. 벨트 라인이 높고 창문이 얇으면서 지붕이 많이 낮다 보니 차체는 길고 날렵하며, 재규어답게 우아한 라인이 돋보인다.
실내로 들어서면 역시 화려함이 빛을 발한다. 명품으로 꾸민 듯한 실내 구석구석에서 이안 칼럼의 열정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XJ도 몇몇 럭셔리 모델들처럼 실내를 고급 요트 형상으로 디자인했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도어에서 데시보드를 지나 다시 도어까지 이어지는 큰 곡선이 핵심이다. 그런데 그 모습은 운전석보다 뒷좌석에 않았을 때 첫 눈에 요트의 갑판 이미지가 떠 오를 정도로 강렬하다.
크롬으로 감싼 링에 프로펠러 스타일의 개폐기를 갖춘 공기 배출구는 클래식한 이미지로 실내에서 가장 강한 액센트를 부여한다. XF를 통해 처음 선보인 재규어 드라이브 셀렉터는 크롬 옆면을 까칠하게 엠보싱 처리해 화려함이 극에 달한다. 스티어링 휠에는 시프트 패들이 달리고,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버턴을 2층 구조로 배열하는 등 기능성과 화려함이 공존한다.
새로운 기능이면서 아주 재미있는 것으로는 12.3인치 디스플레이로 표현되는 가상 계기판이다. 계기판이 있는 위치에 실제 미터와 바늘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평면 디스플레이가 대신하고 있다가 전원이 켜지면 디스플레이에 계기판이 나타난다. 일반적인 계기판에 비해 화려함이나 입체적인 느낌이 부족하긴 하지만 다양한 그래픽으로 많은 정보를 제공할 수 있어 재미를 더한다. 대표적으로 변속모드가 스포츠모드로 바뀌면 계기판 테두리 색이 빨간색으로 변하면서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수동모드에서는 패들 시프트로 변속할 때마다 기어 단수가 옆으로 슬라이딩 되면서 변한다.
글로브 박스와 룸 램프에는 XF처럼 손을 갖다 대면 작동하는 재규어 센스가 적용되었다. XF의 그것보다 좀 더 예민해 진 듯 잘 작동된다.
시트는 앞, 뒤 좌석 모두 냉방기능을 더했다. 앞 좌석에는 마시지 기능이 더해졌는데, 모니터에서작동 시킬 수 있다. 뒷좌석은 최상위 모델에서도 전동 조절이 안 된다. 재규어는 당연히 운전석이 상석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일까?
뉴 XJ에는 강력한 사운드 시스템 또한 자랑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실내 오디오 시스템으로 정평이 나 있는 바우어스&윌킨스(B&W) 오디오 시스템이 전 트림에 기본으로 장착되어 있다. 무려 20개의 스피커가 최적의 위치에서 자신의 소리를 내며, 출력은 1200W에 이른다. 섬세한 사운드의 질감을 살려내는 실력이 탁월하다.
국내 판매되는 모델은 신형 5.0리터 V8 수퍼차저 엔진을 장착한 최상위 모델 ‘수퍼스포트’에 스탠다드 와 롱 휠베이스 모델, 5.0리터 V8 자연흡기 가솔린 엔진에 ‘포트폴리오’ 및 ‘프리미엄 럭셔리’, 그리고 3.0리터 V6 트윈터보 디젤엔진을 탑재한 ‘3.0D’ 프리미엄 럭셔리에 스탠다드 및 롱 휠베이스 모델 등 총 3가지 엔진에 6가지 트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번 시승회에서 기자는 3.0D 스탠다드 휠 베이스 모델과 수퍼스포트 롱 휠베이스 모델을 시승해 보았다.
3.0리터 디젤 엔진은 트윈 시퀀셜 터보차저를 장착해 최고출력 275마력/4,000rpm, 최대토크 61.2kgm/2,000rpm를 발휘한다. 자주 듣게 되고, 또 기자 스스로 반문도 해 보는 질문이 ‘과연 이런 럭셔리 세단에 디젤 엔진이 어울릴까?’, ‘이 정도로 고급차를 사는 사람이 디젤 엔진을 선택할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막상 타 보면 그 매력에 흠뻑 빠져들게 되는데, 이번 뉴 XJ 3.0D 역시 여러 면에서 장점이 두드러졌다.
가속력은 그 동안 기자가 타본 디젤 모델들 중 빠른 수준인 0~100km/h 가속 6.4초를 자랑한다. 이 정도의 정숙성에 이 정도의 가속성은 사실 더 이상 부러울 게 없는 수준이다. 3.0D에도 재규어 시퀀셜 시프트 (패들 시프트)가 장착되어 있긴 하지만, 역시 디젤답게 시프트 패들을 사용하는 것보다 스포츠 모드를 사용하는 게 더 재미있다. 스포츠 모드로 주행하면 거의 모든 순간에서 강력한 토크를 즐길 수 있다. 연비까지 12.7km/l로 우수해 대형 력셔리 세단의 진정한 실력자이자 실속파라 할 만하다.
변속기는 모든 모델에 자동 6단이 장착된다. XF처럼 시동을 걸면 솟아 오르는 드라이브 셀렉터로 변속한다. S모드로 옮길 때는 셀렉터를 살짝 눌러서 돌리는 것도 같은 방식이다. 이제 많이 익숙해져서 상당히 편리하다.
자연흡기 V8 5.0 직분사 엔진은 최고출력 385마력/6,500rpm과 최대토크 52.6kg.m/3,500rpm을 발휘하고, 0~100km/h 가속에는 5.7초가 걸리며 연비는 7.6km/L다. 최고속도는 3가지 엔진 모두 250km/h에서 제한된다.
두번째 시승한 모델은 수퍼카에 버금가는 강력한 성능을 자랑하는 5.0 수퍼차저 수퍼스포트 롱휠베이스 모델이었다. 기존의 4.2리터 수퍼차저 엔진은 420마력/6,100rpm과 55.3kg.m/3,500rpm의 파워로 이전 XJ SV8 모델에서 0~100km/h 가속 5.3초의 성능을 발휘했었다. 신형 5.0리터 V8 직분사 수퍼차저 엔진은 배기량을 5리터로 확대하고 직분사를 더해 최고출력 510마력/6,000~6,500rpm에 최대토크 63.8kg.m/2,500~5,500rpm를 발휘한다.
그리고 뉴 XJ 5.0 SC 수퍼스포트 모델은 0~100km/h 가속이 이전보다 0.4초 줄어든 4.9초의 폭발적인 가속력을 선보여, 럭셔리 세단과 슈퍼카의 경계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이 파워와 가속력은 같은 엔진을 얹은 뉴 XFR과도 동일하다. 최고속도는 250km/h에서 제한되지만 XFR이 363.188km/h를 기록한 것을 감안할 때, 제한을 해제한다면 이 거대하고 멋진 세단이 얼마나 빨리 달릴 수 있을지 마냥 궁금해진다.
타이어는 디젤 모델과 5.0 프리미엄 럭셔리 모델에는 19인치 휠과 타이어가 장착되고, 5.0 포트폴리오와 수퍼차저 모델들에는 앞 245/40R20과 뒤 275/35R20 타이어가 장착된다.
긴 시간을 시승해 보지 못해서 각 단에서의 성능과 구간 가속, 최고속에서의 주행 상태 등에 대해서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잠깐 동안의 만남으로도 510마력과 4.9초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XJ의 전륜에는 고성능 코일 스프링이, 후륜에는 에어 서스펜션이 장착되었으며, 첨단 어댑티브 다이내믹스가 노면과 주행 상황에 따라 감쇠력을 조절하면서 탁월한 안락함과 함께 스포츠 주행에서의 안정성과 뛰어난 핸들링을 함께 확보하도록 노력했다. 5.0 수퍼스포츠 모델에는 후륜의 좌우 동력을 상황에 따라 배분해 주는 액티브 디프렌셜 콘트롤까지 갖추었다. 이외에도 앞 차와의 차간 거리를 유지하며 정속으로 주행하는 첨단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이 모두 장착되었는데, 앞차의 급제동 시 비상모드로 전환되는 최신 안전 기능을 더했다.
뉴 XJ의 변화가 놀랍다. 우선 디자인에서 미래를 향한 힘찬 발걸음을 잘 보여주지만, 그 속을 꽉 채운 첨단 기능과 기술 발전을 살펴보면 과연 재규어가 이 모든 걸 다 한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알차다. 멋지긴 하지만 무언가 많이 빠져 있던 과거의 재규어는 이제 잊을 때가 되었다. 멋지고, 빠르고, 첨단 장비까지 고루 갖춘 미래의 재규어가 우리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럭셔리 스포츠 세단의 진수를 보여주는 뉴 XJ에서 즐기는 천상의 사운드는 1억 2990만원(3.0D 프리미엄 럭셔리 SWB)에서 2억 840만원(5.0 수퍼스포트 LWB)을 지불하는 최고의 VIP에게 바치는 사랑의 아리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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