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는 ABS, 21세기는 ESC?
여자 1 :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남자는, 급하게 서울로 떠났어.
그 어두운 길을 달려오는데, 차가 그만 미끄러진거야.“
여자 2 : “그래서?”
여자 1 : "그 차 팔고 ESC 달린 차 새로 샀다더라“
위의 대화 내용처럼 ESC(Electronic Stability Control) 달린 것과 안 달린 것은 대단히 큰 차이가 있다. ESC는 위급한 상황에서 운전자를 대신해 차의 자세를 바로 잡아 준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능동적 안전 장비가 ABS라면 21세기는 ESC라고 할 수 있다. ESC가 90년대 중반에 나오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채용이 확대된 것은 2000년 대 들어서다.
ESC의 시작은 1995년 메르세데스-벤츠 S 클래스에 적용된 ESP(Electronic Stability Program)다. 각 휠을 개별적으로 제어해 차체의 거동을 바로 잡아주는 ESP는 대단히 혁신적인 기술이었고 그 효과는 시간이 갈수록 인정받고 있다. S 클래스가 선구자였기에 한동안(또는 지금도) ESP가 자세제어장치의 대명사격으로 불리기도 했다. 현재는 자세제어장치를 통칭해 ESC로 부른다.
알려진 것처럼 ABS는 휠의 잠김을 방지하고 트랙션 컨트롤은 휠 스핀을 감지해 엔진의 출력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ESC는 ABS와 트랙션 컨트롤을 합친 기능 이상의 역할을 하는 기술이다. ESC의 각 센서들은 자동차의 거동과 드라이버의 조향, 즉 스티어링 앵글을 지속적으로 모니터한다. 만약 스티어링 앵글이 자동차가 진행하는 방향과 어긋날 경우 위험 상황으로 인식해 즉시 각 휠에 개별적으로 제동을 걸어 차의 자세를 바로 잡는다.
적극적 안전도의 개념에서 운전자의 실수를 커버해주는 것이 ESC이다. 불가피한 언더스티어나 오버스티어 발생 시 일반적인 운전자가 행할 수 있는 대응은 한계가 있다. 대부분의 운전자들이 위급 상황에서 브레이크와 스티어링 휠을 효과적으로 다루지 못하는 부분을 ESC가 대신해 주는 것이다. ESC는 각 4개의 휠에 개별적으로 제동을 걸어 틀어지기 시작하는 차체의 거동을 바로잡아 준다.
ESC는 유압 모듈레이터와 컨트롤 유닛, 각종 센서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앞서 밝힌 것처럼 각 센서는 스티어링 앵글과 휠 스피드를 체크해 이 정보를 컨트롤 유닛으로 전달하고 유압 모듈레이터는 각 브레이크의 압력을 높인다. ESC는 각 휠에 제동을 거는 것뿐만 아니라 엔진의 출력도 줄인다. 그래서 ESC가 빠르게 개입하는 자동차는 재미가 없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ESC가 처음 나왔을 때는 높은 효용성을 인정받기도 했지만 한편에서는 운전의 자유도를 빼앗는 것이 아니냐는 불평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불만은 없다. 없어서 못 다는 게 아쉬울 정도로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일부 모델에 한해서 과도한 개입이 아쉽다는 불만 정도만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ESC의 세팅도 다양하다. ESC의 세팅에 따라 메이커가 지향하는 적극적 안전을 엿볼 수 있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독일차는 ESC의 개입이 늦은 편이고 렉서스는 개입이 빠른 대표적인 브랜드이다. 어느 것이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운전자의 취향에 따라서는 호불호가 확실하게 갈린다. 또 대부분의 ESC는 기능을 오프해도 안전을 위해 완벽하게 해지되지는 않는다. 일반적으로 ESC 오프는 개입 시점을 조금 늦춘다고 봐야한다.
최근에 나온 일부 ESC는 개입 시점을 다단계로 설정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개입의 정도를 운전자가 선택할 수 있는 것으로 주로 스포츠 성향의 모델에 적용된다. 운전의 재미를 떨어트리지 않는 성격으로는 코너에서 약간의 휠 슬립을 허용하기도 하며 초기 모델 대비 작동 시 진동도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다. 또 ESC의 의무화가 진행되면서 소형차에도 적용이 쉽게 크기 자체를 줄이는 것도 하나의 트렌드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은 2006년 9월 NHTSA(National Highway Traffic Safety Administration)가 ESC의 의무화를 제안했다. 이는 승용차 보다 동적 능력이 떨어지는 SUV를 위한 것으로 ESC의 의무화를 가장 먼저 지정했다. VDA(Verband de Automobilindustrie)에 따르면 독일 승용차의 90% 이상이 ESC가 기본이며 유럽 전체로는 50%에 육박하고 있다. 2007년 기준으로 ESC의 점유율은 북미가 45%인 반면 날씨가 춥고 눈이 많이 오는 북유럽은 78~93%를 형성하고 있다.
보쉬는 ESP를 처음 개발했던 업체답게 ESC의 개량에도 앞장서고 있다. 보쉬가 2006년 말에 내놓은 ESP프리미엄은 브레이크 압력을 더욱 빠르게 높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작동에 따른 진동도 거의 없앴다. 이는 펌프의 피스톤을 2개에서 6개로 늘렸기 때문으로, 작동의 반응 자체도 빨라졌다. 보쉬는 종전의 ESP와 ESP프리미엄, ESP플러스로 소형차부터 럭셔리카, 상용차까지 커버하고 있다. CAS(Continental Automotive Systems)도 컨트롤 유닛에 요와 가속 센서를 통합한 ESC를 내놓고 있다.
ESC가 본격적으로 화제가 된 것은 A 클래스가 무스 테스트에서 전복 사고를 당하면서부터이다. 메르세데스는 전복 사고 이후 13만대를 리콜하면서 A 클래스에 ESC를 기본 장착했다. ESC가 달린 A 클래스는 무스 테스트를 통과했다. 메르세데스는 1999년 업계 처음으로 ESC를 모든 라인업으로 확대했다. ESC의 대표적인 제조사로는 독일의 보쉬와 콘티넨탈, 미국의 델파이와 TRW, 아이신, 니신 코교와 히타치, 만도, 벤딕스 등이다.
그럼 ESC의 효능은 어느 정도인가. NHTSA가 2004년 가을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ESC의 장착에 따라 충돌 사고가 35% 감소했고 특히 SUV는 ESC 미장착 차량 보다 67%나 사고 발생률이 적었다. 같은 해 IIHS(Insurance Institute for Highway Safety)도 ESC 때문에 미국에서만 연간 7천 건의 사망 사고가 줄어들며 2006년에는 연간 1만 건의 대형 사고를 줄일 수 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기술들이 그렇듯 ESC 역시 코스트가 대중화의 걸림돌로 작용했다. ESC는 요와 횡가속, 스티어링 앵글 센서와 컨트롤 유닛 등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다른 안전 장비 보다 높은 코스트를 형성하고 있다. NHTSA의 발표에 따르면 2005년 기준으로 ABS의 평균 코스트는 368달러지만 ESC는 여기서 111달러가 더 추가된다. 단독 옵션으로 제공될 경우의 가격은 450달러 정도로 알려져 있다.
ESC의 확산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스웨덴은 2003년만 해도 ESC가 신차에 장착되는 비율이 15%에 불과했지만 2005년에는 58%까지 늘어났고 2007년에는 93%에 달했다. 미국도 올해부터 4.5톤 이하의 자동차에는 ESC가 의무화 된다. 미국은 2009년형 모델 기준으로 장착 비율이 55% 넘어섰다. EU도 2012년부터 팔리는 모든 승용차와 상용차에 ESC가 의무 장착된다.
메이커에 따른 ESC 표기
ESC의 원리와 기능은 대동소이하지만 메이커들에 따라 이름은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ESP는 한때 벤츠의 트레이드마크였지만 볼보에게 라이센스를 시작한 이래 많은 메이커들에게 확산됐다. 현재는 메이커는 물론 특정 모델과 판매하는 국가에 따라서 ESC의 이름이 달라진다.
ESP - 다임러, 폭스바겐 그룹, 크라이슬러, PSA, 오펠, 피아트, 르노 등
DSC - BMW 그룹, 알파로메오, 재규어, 랜드로버, 마쓰다
VDC - 피아트, 현대, 닛산
VSA - 혼다
스태빌리트랙 - GM
CST - 페라리
어드밴스트랙 - 포드
VSC - 토요타
MSP - 마세라티
ASC - 미쓰비시
PSM - 포르쉐
VDCS - 스바루
DSTC - 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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