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지 않는 스포츠카의 대명사 포르쉐 911. 모든 911들은 한 눈에 911임을 알아 볼 수 있을 만큼 디자인적인 특징에서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새 모델이 등장할 때마다 혁신적인 변화가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911에 자동변속기를 달아? 911이 4륜 구동? 911 엔진을 수냉식으로 바꿔? 911 헤드램프가 어떻게 원형이 아냐? 세계 최고의 스포츠카 포르쉐 911이 그 동안 새로운 시도를 할 때마다 골수 911 팬들은 이러한 변화에 반대의 목소리를 높여 왔다. 그만큼 911을 사랑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런 수 많은 시도들로 인해 911은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고, 7세대로까지 진화하게 된 것이다.
5세대 911에서 원형 대신 박스터와 같은 헤드램프를 잠깐 사용했지만 6세대부터 다시 원형으로 돌아왔고, 6세대 페이스리프트 모델에서는 직분사 엔진과 듀얼클러치 변속기 PDK를 적용하면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7세대 911은 이전 모델의 무려 90%를 새롭게 개발했다고 한다. 새로운 소재와 기술이 접목되다 보니 많은 부분을 새로 설계하고 제작한 것이다. 그렇게 바뀐 90%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100mm나 늘어난 휠 베이스다. 911의 예리한 핸들링은 짧은 휠베이스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짧았던 911의 휠베이스 2350mm가 이제 2450mm로 늘어났다. 그래도 여전히 소형 2인승 로드스터 수준에 가깝다. 하지만 911에 있어서 그 변화는 무척이나 컸다.
우선 시각적으로 새 911은 보다 안정적인 자세를 선보였다. 길이가 56mm 늘어났는데 높이는 6mm 낮아졌고, 휠베이스가 100mm 늘어나면서 앞뒤 오버행이 짧아진 결과다. 첫 눈에도 늘씬해 보인다. 특히 옆모습을 보면 앞 뒤 바퀴의 거리가 멀어지면서 비례적인 안정감이 크게 향상되었음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참고로 각 세대별 차체 길이와 휠베이스의 변화를 살펴보면, 최초의 911은 길이 4,290mm에 휠베이스 2,211mm였다. 2세대인 930은 4,290mm에 2,271mm, 3세대인 964는 4,275mm에 2,271mm, 4세대인 993은 964와 동일한 4,275mm에 2,271mm, 5세대인 996는 4,432mm에 2,352mm, 그리고 6세대인 997은 길이 4,435mm에 휠베이스 2,350mm였다. (각 세대 페이스 리프트 모델과 파생 모델에 따라서 수치는 조금씩 차이가 난다.) 7세대 911은 길이 4,491mm, 너비 1,808mm, 높이 1,303mm에 휠베이스 2,450mm다.
디자인에서는 얇고 길어진 LED 주간 주행등이 범퍼와 통합되는 형상에서 앞머리가 더 낮고 더 넓어진 분위기를 연출한다. 앞부분이 전체적으로 997에 비해 보다 안정적인 이미지다. 플랙 타입으로 바뀐 사이드미러는 이제 자동으로 접힌다. 휠베이스가 길어지면서 지붕라인이 뒤로 떨어지는 것도 더 완만해졌고, 뒷면의 라인들은 엉덩이를 더 풍만하게 보이도록 넓어졌다.
엔진 커버가 가변 리어 스포일러 역할을 함께 했던 이전 세대와 달리 엔진 커버 아래 쪽에 리어 스포일러가 분리되어 자리했다. 덕분에 엔진 커버 면적이 작아져 커버를 열어도 예전처럼 911의 엔진을 제대로 볼 수가 없게 됐다. 리어 램프는 앞 LED 주간 주행등과 짝을 이룬 듯 날렵하다. 뒷모습도 보다 안정적인 분위기가 돋보인다. 카레라는 타원형의 듀얼 머플러를, 카레라 S는 원형의 듀얼 트윈 머플러를 채택했다.
포르쉐의 독보적인 슈퍼카 카레라 GT와 스포츠 세단 파나메라를 닮은 모습으로 완전히 새롭게 디자인된 실내는 고급스러움 속에 역동성이 잘 살아있다. T자 형태와 수직 센터페시아 등이 거의 변하지 않고 유지되어 왔던 이전 911들의 인테리어와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어서 스포츠카 911의 인테리어로 익숙해지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다행히 파나메라를 시작으로 카이엔까지 같은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있어 큰 저항감이 들진 않는다. 특히 무척 고급스러워진 부분은 911의 정체성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고민하게 되는 부분이다.
시트에 앉으면 정면에 보이는 스티어링 휠은 디자인이 변하지 않았다. 전통적으로 5개의 원으로 구성되는 계기판도 디자인의 변화가 크지 않은데 기존의 게이지 6개를 4개의 원에 재배치하고 오른쪽에서 두 번째 원은 바늘이 없는 디지털 모니터로 대체해 컴퓨터가 제공하는 다양한 정보를 표시해준다.
특히 그 창으로 제공되는 정보 중 ‘G-forces’가 흥미롭다. 주행 중 911에 가해지는 중력 가속도를 수치로 보여주는 장치로, 전후좌우 네 방향으로 수치가 표시된다. 가속할 땐 뒤쪽, 감속할 땐 앞쪽, 코너링 때는 좌우의 수치가 올라가고, 가속하면서 좌측으로 코너링 하는 상황이라면 수치는 뒤쪽과 우측에 분산되어 나타난다.
강력한 코너링 성능을 자랑하는 스포츠카를 탈 때면 엄청난 횡 G를 경험하게 된다고 표현했었지만 사실 그 때 어느 정도의 G-forces가 생기는지는 정밀한 계측 장비를 장착하지 않으면 측정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그 동안 궁금했었는데, 이제 991을 통해서 직접 측정해 볼 수 있게 되었다. 이전 세대부터 제공된 스포츠 크로노 패키지의 초시계에 이은 두 번째 계측기인 셈이다.
G-forces가 크게 작용할 정도로 빠르게 달릴 때는 순간적으로 변하는 수치를 바라 볼 겨를이 없다. 따라서 주행이 끝난 후에 게이지에 기록되어 있는 최고 수치로 조금 전의 주행이 얼마나 과격했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시승하는 동안 극한의 코너링을 시험해 볼 기회는 없어서 좌, 우측 G-forces는 의미 있는 수치가 만들어지지 않았던 반면, 급가속과 급정지를 통해서는 나름 의미 있는 수치를 얻었다. 급가속 때는 0.9, 급정지 때는 1.3의 중력 가속도를 기록했다.
센터페시아 중앙 상단의 크로노는 초를 잰 후 정지된 상태에서 다른 기능으로 빠져나가면 측정된 데이터를 그대로 보여주게 되고, 리셋 후 다른 기능으로 빠져 나가면 즉시 시계 모드로 전환되어 아래쪽의 게이지가 시간을 보여주게 된다.
센터페시아의 전체적인 디자인은 많이 바뀌었지만 그 속의 터치스크린 모니터와 오디오, 공조장치 등은 기존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오디오는 USB MP3를 지원하고, 블루투스는 전화와 오디오 스트리밍을 모두 지원한다. 이제 911에서도 음악을 듣는 것이 무척 편리해졌다.
마침 시승차에는 옵션으로 제공되는 버메스터 오디오가 장착되어 있었다. 300와트를 뿜어내는 140mm 서브우퍼를 포함해 총 12의 스피커와 800와트 이상의 출력을 자랑하는 16개의 앰프 채널로 구성된 시스템은 주파수 범위가 35~2000Hz이고, 지속 가능한 음압 수준이 120dB을 초과한다. 엔진 사운드가 강력한 911의 특성상 비트가 강한 댄스 음악을 위주로 들어 본 결과 음압은 지금까지 들어본 카오디오 중 최고 수준이었다. 스피커를 떠난 음파가 가슴을 때리는 것에서 클럽이 연상될 정도였다. 911에는 기본형 오디오도 뛰어난 수준을 자랑하지만, 원할 경우 보스 오디오 시스템이나 더 강력한 버메스터 오디오 시스템을 선택할 수 있다.
911은 포르쉐 노트(포르쉐의 엔진 사운드)가 가장 아름다운 음악인데 오디오 시스템이 왜 필요한가라고 묻는 이들도 있긴 하다. 일부 공감하긴 하지만 아무리 아름다운 포르쉐 노트라 하더라도 가끔은 음악이 그리울 때도 있는 법이고, 그럴 땐 포르쉐 노트를 덮고 제대로 된 음악을 들려 줄 수 있는 강력한 오디오 시스템이 필요하다. 실제로 기자는 911에서 비트가 강한 음악 듣기를 즐기는 편이다.
휠베이스가 늘어난 만큼 실내 길이가 살짝 늘어났지만 국내 법규상 2인승으로 승인이 나는 실내는 많이 넓어졌다는 느낌을 받기 힘들다. 하지만 시트를 뒤로 눕혀 보았을 때 거의 수평에 가까울 만큼 눕혀지는 시트가 달라진 공간의 여유를 말해주는 듯했다. 이제 911로 여행하다 잠시 쉴 때도 시트를 편안하게 눕히고 쉴 수 있겠다.
엔진도 더욱 강력해졌다. 카레라와 카레라 S에 모두 직분사 시스템을 적용했으며, 카레라는 기존의 3.6리터 345마력 대신 3.4리터로 배기량을 줄이면서 최고출력은 350마력으로 높였다. 카레라 S는 전과 같은 3.8리터 배기량에 회전수를 6,500rpm에서 7,400rpm으로 높이면서, 출력을 385마력에서 400마력으로 15마력 더 높였다. 400마력이라는 수치는 이 전전 세대 BMW M5가 5리터 8기통 엔진으로 만들어 내던 상징적인 수치다. 최대토크는 44.9kg.m/5,600rpm이다.
변속기는 세계 최초로 7단을 적용한 수동 변속기가 기본이고, 7단 PDK를 선택할 수 있다. 직결감에서는 여전히 전통적인 수동 변속기가 앞서지만 (7단 수동 변속기를 직접 운전해 본 것은 아니다) 연비와 성능 면에서는 PDK가 모두 앞선다. 시승차에는 7단 PDK와 시프트 패들이 장착되었다. 그리고 스포츠 크로노 패키지도 장착되었다. PDK와 스포츠 플러스가 더해지면 론치 컨트롤을 사용할 수 있으며, 런치 컨트롤을 사용하면 가속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 출력이 높아진데다 무게는 약 40kg 정도 더 가벼워져 론치 컨트롤을 사용한 경우 0~100km/h 가속 시간은 4.1초가 걸린다. 자연흡기 911로 3초대 가속력을 코앞에 둔 것이다. 최고속도도 302km/h로 높아졌다. 슈퍼카급 가속성능이다.
정말 아찔할 정도로 빠르게 가속하는 새 911 카레라 S는 65, 115, 175, 225, 270km/h에서 각각 변속한다. 변속 시 회전수는 무려 7,600rpm 부근이다. 모든 단에서 회전수의 상승은 지금까지 자연흡기 911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수준으로 빠르고 매끄럽다.
변속기가 7단이다 보니 100km/h 주행 시에도 회전수는 1,620rpm에 불과하다. 이 상태에서 스포츠 버튼을 누르면 기어가 6단으로 내려가면서 회전수가 2,180rpm으로 올라가고, 다시 스포츠 플러스를 누르면 4단 3,580rpm으로 올라가면서 전투 준비 태세를 강화한다. 스포츠 모드는 카레라와 카메라 S에 모두 기본으로 장착되는데, 스포츠 버튼을 누르면 새롭게 적용된 사운드 심포저에 의해 강력한 엔진 사운드가 실내로도 더 짜릿하게 전달되어 제대로 된 포르쉐 노트를 즐길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수없이 많은 변화들이 모여 새 911의 연비가 15%나 향상된 것도 무척 이채롭다. 그 숨은 공신들 중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것들은 주행 중 차가 멈춰서면 자동으로 시동을 꺼 주고, 출발할 때 다시 자동으로 시동을 걸어주는 ‘오토 스타트/스톱’ 기능과 탄력주행으로 연비를 절감하는 ‘코스팅(coasting)’ 기능이다.
오토 스타트/스톱은 활성화 된 상태가 기본이고, 원하지 않을 경우 기능을 끌 수 있다. 신호 대기 등에서 잠깐 정차할 때 시동을 꺼주면 그 시간 동안 연료가 전혀 소모되지 않으므로 기름값 굳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새 911의 엔진이 자동으로 멈추고, 다시 걸릴 때 진동이나 반응은 무난한 편이다. 다만 기본적인 엔진 사운드가 워낙 큰 차라 엔진이 정지하면 순간적으로 주변이 적막해 진 느낌이 아주 강하게 들면서 째깍거리는 시계소리가 크게 부각된다. 음악을 듣고 있던 중이라면 등 뒤에서 낮게 둥둥거리던 엔진 사운드가 사라지면서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이 베메스터 오디오가 들려주는 매력적인 음악을 즐기기에 아주 좋은 환경으로 변신한다. 신호를 기다리는 시간에 새로운 활력소가 생긴 셈이다.
보통은 엔진이 꺼졌다 다시 시동이 걸리면 어느 정도 이상의 거리를 이동한 후에야 다시 시동이 꺼지게 되는데 911은 아주 살짝 움직인 후에도 상태에 따라 시동이 꺼지는 것이 특이하다. 그리고 오토 스탑 가능 여부가 계기판에 표시되어 보기 좋고, 불과 몇 미터만 움직여도 다시 가능 상태 불이 들어오고, 시동을 꿀 수 없는 경우에는 불가능 표시가 계기판에 표시된다. 차를 세워서 엔진이 멈춘 상태에서 기어를 P에 놓으면 꺼진 상태를 유지하는 것도 편리하다. 물론 배터리 충전 상태 등에 따라서 브레이크를 밟고 있는 중에 자동으로 시동이 걸리기도 한다.
도로를 달리고 있는데 어느 순간 시선 아래 쪽에서 계기판의 바늘이 갑자기 휙 돌아가는 그림자가 느껴져 자세히 보니, 주행 중 가속 페달을 놓을 때 순간적으로 엔진 회전수를 공회전 수준으로 내린 체로 탄력 주행을 하는 것이었다. 이때 엔진 회전수는 620rpm정도였다. 하이브리드 차량이라면 상황에 따라 아예 엔진을 꺼 버리고 탄력 주행이 가능하지만, 911로서는 공회전 수준으로 내리는 것 만으로도 주행 중 수도 없이 많이 발생하는 상황에서 그 때마다 연료 소모를 조금씩 줄일 수 있어서 무척이나 대견하다. 스포츠카의 대명사에 하이브리카에서나 보던 기능이 더해진 것이다.
늘어난 휠베이스는 주행에서도 확실히 높아진 안정감과 편안함으로 다가왔다. 거기다 지난 세대부터 적용된 서스펜션 매니지먼트 PASM이 한층 업그레이드되어 이제 911은 서스펜션 모드 ‘노멀’에서는 아주 편안한(?) 스포츠카가 됐다.
코너링 실력도 더 강화됐다. 코너링 중 롤을 최대한 억제해 주는 성능을 강화한 포르쉐 다이내믹 섀시 컨트롤(PDCC)이 새롭게 적용되어 코너링 상황에서 네 바퀴의 접지력을 더욱 높일 수 있게 되었고, 911 터보에 적용되었던 포르쉐 토크 벡터링(PTV)과 다이내믹 엔진 마운트를 카레라 S에도 적용해 코너링 상황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차체를 콘트롤하면서 코너링 속도를 높일 수 있게 되었다. 수평대향 엔진의 낮은 무게 중심으로 인해 가장 강력한 코너링 성능을 자랑해 왔던 포르쉐 911이 이제는 첨단 제어 장치의 도움으로 일반 도로는 물론 서킷 상황에서도 그 한계를 가늠하기 힘들 만큼의 뛰어난 코너링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이들 외에도 새 911은 이루 다 설명할 수 없을 만큼의 많은 첨단 기능이 업그레이드 됐다. 911 매니아라면 당연히 하나하나 모두 알고 싶은 내용들이겠지만, 가끔은 그런 사소한(?) 것 들은 911이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두고 운전자는 그저 놀랍도록 빨라진 스피드와 뛰어난 안정성을 즐기는 것으로 충분할 때도 있다.
새 911은 오늘날의 스포츠카 구매자들이 원하는 안락함과 고성능에다 시대가 요구하는 친환경까지 고려한 스포츠카의 본보기로 자리매김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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