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토반서도 통했다, 토요타 86 독일 시승기

발행일자 | 2012.10.22 15:42

드리프트를 부르는 이름 하찌로꾸, 토요타 86

아우토반서도 통했다, 토요타 86 독일 시승기

모두가 잠든 이른 새벽, 아키나의 산길을 미끄러지며 빠르게 내려오는 흰색과 검정색 투톤의 스포츠카를 만난 이들은 그것을 유령이라고 말했다. 그 아키나의 유령은 전 세계적으로 매니아들을 양산하며 드리프트의 마력에 빠지게 만든 토요타의 ‘트레노’, 코드명 ‘AE86’이었다. 뒤 늦은 86 열풍으로 스포츠카 개발에 잠시 주춤했던 토요타가 움직였고, 마침내 우리 곁에 그 이름을 물려받은 새로운 스포츠카 86이 다가왔다.

글 / 박기돈 (RPM9 팀장)


사진 / 박기돈, 한국 토요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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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바루와의 공동 개발을 통해 낮은 무게 중심을 가능하게 한 203마력의 4기통 2.0 직분사 박서엔진을 장착하고, 예전 86이 그랬던 것처럼 힘은 넘치지 않지만 최고 수준의 뛰어난 밸런스로 무장한 새 86은 스포츠카 매니아들의 마음을 다시 한 번 뜨겁게 달구기에 충분했다. 한국에도 공식 출시되어 사랑을 받고 있는 새 86을 일본 아키나의 산길도, 한국의 서킷도 아닌 자동차의 본고장 독일의 폐쇄된 공항과 속도 무제한인 아우토반에서 다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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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독일 쾰른에서 열린 ‘토요타 86 글로벌 미디어 익스피리언스’의 첫 일정은 86을 가장 멋지게 돋보여 줄 드리프트를 체험하는 것이었다. 86의 드리프트를 만끽하기 위해 선택된 장소는 한 때 파일럿 훈련과 육군 헬리콥터 공항으로 이용되었던 독일 맨딕 비행장. 지금은 다양한 자동차 브랜드들의 테스트 및 레이싱 프로그램에 활용되고 있는 그 곳에서 86으로 코너링, 급제동, 슬라럼, 가속, 빗길 주행 등의 다양한 테스트를 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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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한국에서의 시승을 통해 경험했던 뛰어난 밸런스는 한계 상황까지 몰아 부치는 비행장 레이스 코스에서도 빛을 발했다. 80km/h로 코너를 달리는 중에 급제동을 해도 주행 라인을 벗어나지 않게 안정적으로 멈출 수 있었고, 장애물 회피를 위한 급 차선 변경과 연속되는 슬라럼에서도 탁월한 안정감은 빛을 발했다. 빗길을 가상해 물을 뿌려 놓은 젖은 노면에서의 급제동과 재 출발을 통해서 ABS와 DSC가 차체를 컨트롤하는 과정을 경험하기도 했다. 이번 체험을 통해서 일반 도로에서는 쉽게 경험하기 힘든 86의 한계를 경험할 수 있었고, 잠재된 가능성도 충분히 가늠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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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는 레이싱 드라이버들이 모는 86에 동승해 화끈한 드리프트 퍼포먼스를 경험했다. 300 마력 이상을 뿜어내는 고성능 스포츠가 아님에도 86은 환상적인 드리프트를 선보였다. 과거 여러 드라이빙 행사에서도 드리프트를 체험했지만 드리프트의 원조나 마찬가지인 86과 함께하는 드리프트는 그 의미가 남다르게 다가왔다. 단순히 옆 자리에서 체험만 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언젠가는 나도 직접 멋진 드리프트를 펼쳐 보이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기회였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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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시승을 통해 이미 86의 매력적인 드리프트를 조금 경험했었는데, 충분히 짐작이 가능한 순간에 매우 정직하게 뒤가 흐르는 86의 모션은 조금씩 더 높은 수준의 드리프트를 연마하고픈 욕구에 불을 붙였었다. 그야말로 86은 ‘드리프트를 부르는 주문’이라고 할 만하다. 한편, 먼 독일의 폐쇄된 공항까지 날아간 만큼 참석한 기자에게도 조금이나마 드리프트를 연습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면 더 좋았을 텐데 동승만 허락된 것은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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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둘째 날에는 86을 몰고 쾰른 근교의 국도와 아우토반을 달렸다.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독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절의 깔끔한 국도에서는 수동 변속기의 정교한 움직임과 민첩한 응답성, 예리한 핸들링을 즐길 수 있었다. 수동 6단 변속기는 클러치의 반발력이 적당해 강하고 빠르게 왼발에 힘을 주어 클러치 페달을 밟는 것이 즐겁고, 단절감이 매력적인 기어 레버를 움직이는 동작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다. 특히 엑셀 페달의 높이와 브레이크 페달과의 간격이 힐앤토를 구사하기에 적당해 수동변속기로 정교하게 86을 컨트롤하는 재미가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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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클러치를 끊은 상태에서 엑셀을 툭 치면 매끄럽고 빠르게 회전이 상승하는 엔진 덕분에 더블클러치나 힐앤토 같은 기술을 구사할 때 정교하게 회전수를 맞추기도 유리하다. 이처럼 오랫동안 다양한 스포츠카를 만들어 온 경험과 드리프트에 대한 완벽한 이해가 86의 메커니즘 곳곳에 녹아 들어 있음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을 이야기 하자면 수동 변속기 기어 레버 길이가 좀 더 짧으면 더 다이나믹 하겠다는 것이다. 아마 애프터마켓에서 더 짧은 기어 레버로 바꾸는 이들이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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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도를 따라 달리다 라인 강을 건너야 할 지점에 다다랐을 때, 다리가 아닌 배로 강을 건너는 경험도 이채로웠다. 화물 운송에 라인강을 적극 활용하는 독일이다 보니 배의 통행에 방해가 되는 다리를 많이 건설하지 않아서 생긴 것이 배를 통한 도강이었던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도 역시 배를 타고 강을 건넜는데, 그 때는 시승차에 USB로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크게 틀어 놓고 함께 춤도 따라 하면서 신나는 시간을 가졌다. 시승에 참가한 아시아 각국의 기자들 중 강남스타일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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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 와인 산지의 포도밭 가운데 있는 고택을 개조한 식당에서 각양 피자들로 점심을 들고, 언덕 위의 아름다운 저택에서 라인강을 내려다보며 휴식을 취한 후에는 아우토반에 86을 올렸다. 7,500rpm까지 매끄럽게 회전을 올려주는 박서 엔진은 6,000rpm을 넘기면서 자극적이고도 화려한 엔진 사운드를 선보였고, 정교한 변속을 자랑하는 6단 자동 변속기는 속도 무제한의 아우토반에서 86을 220km/h 이상의 속도로 밀어 부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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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00rpm에 이르면 연료가 차단되면서 회전을 제한하고, 각 단에서는 60, 100, 140, 180, 220km/h의 최고 속도를 기록했다. 6단에서 100km/h로 주행할 때 회전수는 2,500rpm, 5단으로 내리면 3,300rpm으로 올라간다. 6단 기준으로 500rpm 증가에 속도가 20km/h씩 높아져, 2500rpm에서 100km/h, 5,000에서 200km/h를 기록하므로 6단에서 7,500rpm까지 올릴 수 있다면 속도는 300km/h에도 이를 수 있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5단에서 220km/h를 기록하고 6단으로 넘어가면 240km/h에서 속도가 더 올라가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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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의 주행은 직진 고속 주행보다는 정교한 코너링에 더 많이 포커싱 된 만큼 아우토반의 고속 주행이 별 재미를 줄 수 있을지 의심되기도 했지만, 중고속 영역에서 두터운 토크로 가속을 부추기는 파워가 고속 주행에서도 기대 이상의 재미를 선사했다. 잠재력이 높은 섀시를 갖춘 86인만큼 과급기 등으로 엔진 파워를 끌어 올린다면 아우토반을 주름잡는 것도 무리한 꿈은 아닐 것이 확실했다.

86을 개발한 주역인 타다 테츠야 수석 엔지니어와의 질의 응답에서도 타다 테츠야 씨는 86이 더 강력한 파워 트레인에도 적합하도록 충분한 잠재력을 갖추고 있어서 다양한 형태로의 튜닝에 적합하다고 답변을 했고, 실제로 이번 행사 기간 중 토요타 모터스포츠 Gmbh (TMG)를 방문해서 86의 뼈대를 최대한 유지한 상태에서 르망 레이스 GT2 클래스에 적합하도록 튜닝된 모델을 직접 살펴 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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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 후 국내에서도 기본이 뛰어난 86을 베이스로 다양한 튜닝 문화가 생겨날 것이고, 놀랄만한 퍼포먼스 상승을 자랑하는 괴물 86들도 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만화(애니매이션) 이니셜 D와 그 주인공 86이 전세계 자동차 매니아들에게 드리프트의 열망을 심어줬다면 이제 새로운 86이 그 열망을 현실로 만들어 줄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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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독일의 아우토반으로 돌아와서) 정글과 같은 아우토반에서 86보다 태생적으로 더 빠른 차들이 다가오면 순순히 1차로를 내 줘야 하기에 아우토반의 1차로를 달릴 때면 수시로 사이드미러로 뒤를 확인해야 한다. 그럴 때마다 사이드미러에 비친 뒤 펜더의 양쪽 아치와 앞쪽 낮은 노즈 좌우의 봉긋한 펜더에서 아우토반의 정복자 포르쉐의 향기가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이순간 이 아우토반의 정복자는 86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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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타 86 독일 시승 고화질 사진 갤러리
<토요타 86 독일 시승 고화질 사진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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