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는 거들뿐, BMW 액티브하이브리드5 시승기
BMW코리아의 연례 기자단 시승행사로 열린 ‘BMW GRAND TOURING EXPERIENCE DAY 2012’에서 BMW 액티브하이브리드5를 시승했다. 액티브하이브리드7, 액티브하이브리드X6에 이어지는 BMW의 양산 하이브리드 모델로, 국내에서는 지난 5월 2012년 부산모터쇼를 통해 첫 선을 보인 후 시판에 들어갔다.
글 / 민병권 (RPM9.COM 에디터)
사진 / 민병권, BMW코리아(MJcargraphy)
2008년 기준, BMW그룹은 1995년과 비교해 전체적으로 25% 향상된 연비를 실현했다. CO2 배출은 지난 15년간 30% 감소시켰다. 현재 유럽에서 판매 중인 BMW그룹의 30개 모델이 120g이하의 CO2 배출 수치를 제시하고 있다. 아울러 BMW그룹은 2025년까지 전 세계에서 판매되는 자사 차량의 CO2 배출을 25% 더 줄이겠다는 목표를 발표했다. 이를 충족시키기 위한 ‘이피션트 다이내믹스(Efficient Dynamics)’ 전략의 핵심 축은 네 가지로 나뉘는데, ‘기존 차량의 최적화’, ‘액티브 하이브리드’, ‘전기’, ‘수소’가 그것이다.
BMW의 하이브리드 기술을 지칭하는 ‘액티브하이브리드(ActiveHybrid)’는 과거와 미래를 잇는 BMW 이피션트 다이내믹스의 현주소를 축약해 보여준다. ‘기존 차량의 최적화’, 그리고 ‘전기’라는 두 가지 축을 바로 지금의 BMW 액티브하이브리드 모델들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런데, 120g/km이하의 CO2 배출을 실현한 BMW그룹의 모델 30종 중 14개 모델은 MINI이고, 2개의 MINI 가솔린 모델 외에는 모두 디젤 엔진을 탑재하고 있다. 유럽 기준으로 최저가 139g/km인 가솔린-전기 하이브리드만을 선보이고 있는 액티브하이브리드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2009년 BMW의 첫 양산 하이브리드 카 듀오로 등장한 ‘액티브하이브리드 7’과 ‘액티브하이브리드 X6’는 유럽 외 시장, 특히 미국을 위한 구색 맞추기 모델이라는 인상이 짙었다. 다임러(벤츠)/크라이슬러, GM등과의 공동 개발을 통해 탄생한 하이브리드 구동계를 적용한 이 차들은 4.4리터 트윈터보 가솔린 엔진에 작은 모터와 배터리를 추가한 구성이라 전기 구동계의 역할이 미미했다. 두 개의 전기모터를 가진 X6는 그나마 EV(전기차)모드 주행이 가능했지만, 7시리즈는 이 마저 할 수 없는 마일드 하이브리드 방식이었다. 두 모델이 서로 다른 제휴관계를 통해 서로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도 ‘간 보기’처럼 비춰졌다.
하지만 적과의 동침을 정리한 후 처음 내놓은 액티브하이브리드5는 방향성을 보이고 있다. 3.0리터 직렬 6기통 트윈파워 터보 가솔린 엔진과 8단 자동변속기에 40kW 전기모터와 리튬 이온 배터리를 추가해 구성한 액티브하이브리드5의 풀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이후 등장한 신형 액티브하이브리드7과 액티브하이브리드3에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하나의 하이브리드 구동계를 3,5,7시리즈가 함께 쓰는 것이다. 양산 세단을 바탕으로 한 이들과 달리 독자적인 플랫폼으로 만들어지는 스포츠카 i8에는 1.5리터 직렬 3기통 트윈파워 터보 가솔린 엔진과 전기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탑재할 예정이다. 한편, 결별 후 벤츠는 디젤 하이브리드를 들고 나왔다.
BMW 5시리즈 하이브리드 - 액티브하이브리드5의 외관은 언뜻 보기에 평범한 5시리즈와 별다르지 않다. 오히려 M스포츠 패키지를 두른 5시리즈 옆에 세우면 그냥 묻힐 정도다. 그나마 시승차는 색상이라도 튄다. 액티브하이브리드의 상징색으로, 5시리즈 중 액티브하이브리드5에서만 선택할 수 있는 ‘Bluewater’메탈릭 컬러이다.
옆 부분을 둘러보면 요란스러운 휠이 눈길을 끈다. 이 휠, 어디서 본 것 같다. 2009년에 컨셉트 카로 나왔던 i8의 전신, ‘비전 이피션트다이내믹스’의 휠 디자인에서 모티브를 얻은 모양이다. 휠의 가장 앞 단면에는 가느다란 5개의 스포크만 튀어나와 있고, 그 뒤로 어두운 색상의 회전톱날 같은 형상이 두드러진다. 회전 방향을 나타내는 화살표도 새겨져 있다. 회전하면서 공기역학적인 효과를 발휘하려면 제 방향으로 장착해야 한다는 것이다.
타이어는 던롭 SP SPORT MAXX GT를 끼웠다. 그렇다. 에코 타이어가 아니다. 사이즈는 245/45R18이다. 기본 휠은 17인치이지만 국내 사양에는 액티브하이브리드5 전용 옵션 휠이 적용되었다.
이 외에 하이브리드 모델임을 알 수 있는 증거는 트렁크 덮개와 C필러 하단에 붙은 ‘ActiveHybrid5’로고뿐이다. 실은 헤드램프와 그릴 장식도 다르지만, 그리 눈에 띄지 않는다. 양 갈래로 뽑은 배기파이프가 무광 회색인 것도 마찬가지다. 후드를 열어보면 엔진 커버가 특별하긴 하다.
트렁크를 열어보면 단단해 보이는 격벽이 뒷좌석 등판을 가리고 있다. 격벽에 붙은 ‘ActiveHybrid POWER UNIT’배지가 눈길을 끈다. 96셀, 675Wh의 리튬이온 배터리를 트렁크- 후륜 휠 하우스 사이-에 탑재하면서 적재 용량은 145리터나 줄어든 375리터가 되었다. 일반 5시리즈와 비교하면 적재공간의 길이가 많이 줄었는데, 모르고 보면 원래 이 정도가 아닌가 넘겨버릴 수도 있겠다. 물론 뒷좌석 폴딩은 할 수 없다. 이와 달리, 나중에 나온 액티브하이브리드3는 배터리와 전기장치를 트렁크 바닥 아래에 묻어 격벽을 없앴고, 그래서 뒷좌석도 접을 수 있다.
시승차는 하이브리드 카의 순결한(?)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 크림색 가죽 시트를 적용했다. 통풍 기능을 갖춘 것은 물론이고, 옆구리 조임이나 허벅지 받침 길이까지 전동으로 조절할 수 있다. 등받이는 상단부 각도를 따로 조절할 수 있다. 사양이 워낙 좋다. 하이브리드 카니까 효율 향상을 위해서 사양을 덜고 무게를 줄여…그런 자세는 보이지 않는다. 엔진부터 535i급이고 차 값이 1억이니 안 그럴 수 없을 것이다.
문을 닫을 때는 소프트 클로징으로 스스륵 물리고, 트렁크도 전동으로 여닫힌다. 차 주위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서라운드 뷰 시스템, 뒷좌석 좌우까지 개별 조절할 수 있는 4존 에어컨 시스템과 B필러 송풍구도 달렸다. 주행과 관련해서는 전자식 댐핑 컨트롤, 스포츠(!) 변속기 옵션이 적용됐다. 스포츠 변속기는 더 다이내믹한 특성을 가질 뿐 아니라 변속 레버 디자인이 다르고 운전대에는 변속 패들이 달린다.
그 외에는 흔히 보이는 5시리즈와 다를 바 없다. 문턱과 컵 홀더 커버에 붙은 ‘ActiveHybrid5’ 장식이 그나마 시동을 걸기 전부터 일반 5시리즈가 아님을 보여줄 뿐이다. 시동 버튼을 눌러도 일반 5시리즈와 확연히 다른 부분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잘 보면 계기판의 엔진회전계 다이얼 아래쪽에 모터의 보조나 에너지 흐름을 보여주는 그래픽이 뜬다. 그리고 i드라이브를 이용하면 대시보드 중앙의 ‘컨트롤 디스플레이’ 화면에 하이브리드의 실시간 작동 현황을 띄울 수 있다.
BMW의 주행모드 변환 장치인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 컨트롤’은 ECO PRO/COMFORT/COMFORT+/SPORT/SPORT+로 구성된다. COMFORT+는 다이내믹 댐핑 컨트롤 옵션이 적용된 덕분에 추가된 모드이다. 에코 프로 모드는 변속기를 포함한 파워트레인은 물론, 전기를 잡아먹는 편의장치들의 작동까지 통제해 에너지가 샐 곳을 틀어막는다. 개인 설정도 가능한 데, 제한 속도와 냉난방 장치 간섭 여부만 체크할 수 있다. 에코 프로에서는 EV모드를 더 적극적으로 쓴다.
EV모드가 없었던 초대 액티브하이브리드7과 달리, 이 차는 최대 60km/h까지 엔진을 끈 채 전기만으로 달릴 수 있고, 완전 충전된 상태에서 35km/h의 평균속도를 유지한다면(그럴 수 있다면) 최대 4km를 전기 차처럼 주행할 수 있다. 토요타의 하이브리드와 달리, EV모드 버튼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가속페달을 급하지 않게 밟아 가속하면 출발 후 60km/h까지는 엔진 작동 없이 주행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엔진은 부드럽게 꺼지고 슬며시 살아난다. 계기판이나 모니터를 보지 않으면 알아챌 수 없는 정도다. 정차 중 엔진이 자동으로 꺼지는 차는 요즘 널렸지만, 주행 중에도 엔진 회전계가 0으로 뚝 떨어지는 것은 독특한 경험이다. 과거의 액티브하이브리드7을 비롯한 마일드 하이브리드 카는 주행 중 엔진이 꺼질 일이 없고, 프리우스 같은 풀 하이브리드 카에는 엔진 회전계가 없는 경우가 많다.
주행 중 엔진이 꺼지는 것은 비단 EV모드가 작동하는 60km/h까지의 영역에 그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는 최대 80km/h, 에코 프로에서는 160km/h에서도 탄력 주행이 가능한 상황이면 엔진이 꺼진다. 운전자가 가속페달을 늦출 때 엔진과 구동축의 연결을 잠시 끊어 엔진을 공회전 상태에 둠으로써 연료소모를 줄이는 ‘코스팅’ 주행은 요즘 많은 차들에서 강조되는 기능이다.
하지만 액티브하이브리드5는 부하 차단을 넘어 아예 엔진까지 꺼버린다. 포르쉐가 카이엔/파나메라 S 하이브리드에서 ‘세일링’이라는 이름으로 선보였던 기술이다. 160km/h에서 엔진 시동이 꺼진다니, 효율도 좋지만 아무래도 좀 무섭다. 물론 가속페달을 다시 밟는 순간 휙 살아나는 엔진은 구동 축과 회전수를 맞춰 매끄럽게 연결된다. 에어컨 컴프레서는 전기모터를 구동하는 고전압 리튬이온 배터리로 가동되기 때문에 엔진 시동이 꺼지더라도 실내 쾌적성에는 지장이 없다.
그럼 실제 연비는 어떨까? 차를 처음 받았을 때, 트립 컴퓨터에 남겨진 과거의 연비 기록은, 530km 주행의 평균이 10.5km/L였다. 과감히 초기화시키고 시승에 임했다. 첫 100km는 소극적인 연비 주행이었다. 당진을 출발해 주로 차적이 드문 고속도로를 타고 청양까지 이동했다. 주행 모드를 에코 프로에 놓았고, 가속페달은 급하거나 깊게 밟지 않았으며, 제한속도 정도의 속도를 유지했지만, 노심초사하지는 않았다. 그 결과 이 구간의 평균연비는 14.7km/L를 기록했다. 공인연비(고속 12.8km/L)보다 낫게 나온 셈이다.
이후의 80km 구간은 코스 자체가 고속도로를 벗어나 구불구불 했고, 운전자를 바꿔가며 각자 마음 내키는 데로 운전하게 됐다. 그 결과 전체 연비는 다소 낮아져 11.6km/L가 되었다. 어쩌다 보니 공인연비(복합 11.4km/L)에 가까운 수치가 나왔다. 이후 추가 시승이 있긴 했으나 연비 측정은 여기까지. 도심 구간은 없었으니, 공인연비(도심 10.4km/L)만큼의 수치가 나올지, 535i와 비교하면 얼마나 나은 수준 일지 궁금하긴 하다. 그나저나, 공인연비가 4등급이다. 기대보다 연비는 낮고 성능은 높다.
이 차에 탑재된 엔진의 힘을 잠시 잊고 ‘하이브리드카’라는 이미지만 생각한 채 가속페달을 깊이 밟았다간 당황하기 쉽다. 직렬 6기통 3.0리터 트윈스크롤 터보 엔진이 306마력을 내는데다, 55마력(40kW) 전기모터가 힘을 더한다. 8단 자동변속기의 토크컨버터 자리에 붙은 이 모터는 출발과 동시에 21.4kgm의 최대토크를 발휘한다. 535i와 비슷한 운전감각이면서도 저속에서는 저소음 부스터가 붙은 듯 부드럽게 가속되는 것이 특징이다. 8단이 아니라 하이브리드에 흔한 CVT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은연중에 제한속도를 넘어서는 교묘한 박력이 있다.
시스템 합산 출력은 340마력, 최대토크는 45.9kgm이지만, 8단 자동변속기를 거친 제원상의 정지 가속 성능은 사실 306마력, 40.8kgm의 535i보다 낫지 않다. 물론 0-100km/h 가속 5.9초라는 성능 자체가 이미 아쉬움을 남기는 수준은 아니다. 가령, 이것은 포르쉐 파나메라 S 하이브리드를 0.1초 앞서는 수치이다. 최고속도의 경우, 포르쉐는 270km/h까지 허용했지만 BMW는 250km/h에서 제한했을 뿐이다.
사양에 따라 다르지만, 액티브하이브리드5는 535i보다 140~150kg 무겁다. 흔히 듣는 얘기인데, BMW 역시 ‘하이브리드 시스템으로 인해 늘어난 무게가 주로 뒷바퀴 쪽에 집중되어 무게 배분 개선에 도움이 됐다’고 말하고 있다. BMW는 원래가 50:50으로 설계되어 더 이상 개선할 것이 없는 차가 아니던가? 외지의 측정에 따르면 액티브하이브리드5의 앞뒤 무게 배분은 49:51이라고 한다.
일반도로를 따라 달리면서 그 미묘한 차이를 말하기는 쉽지 않다. 액티브하이브리드5도 강하게 몰아 붙이거나 말거나 우수한 핸들링과 안정된 자세를 유지한다. 그립이나 댐핑도 흔히 생각하는 하이브리드카의 그것과는 다른 차원이다. 하기야, 독일 출장 때 잠시 뒷좌석 신세를 지며 느꼈던 액티브하이브리드5의 첫 인상은 별로 였다. 털썩거리듯 승차감이 좋지 않았고, 동력 전달도 매끄럽지 않은 듯 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뒷자리 신세를 졌던 5시리즈 디젤의 부드럽고 편안한 느낌과 단박에 비교가 됐었다. 이번 시승에서는 뒷자리에 앉을 일이 없었고, 사양도 그 때와는 차이가 있어서인지 몰라도 그런 부정적인 느낌은 전혀 받지 못했다.
커브가 연속되는 산길에서 ‘액티브’하이브리드의 진가가 나타났다. 촬영을 위해 동일한 코너 구간을 몇 차례 반복 주행한 후, “차 어때?”하고 필자에게 묻던 사진 기자가 금새 질문을 주어 담았다. ‘차에 미쳐 가정을 등진 가장의 얼굴’을 필자에게서 보았다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고 입은 귀에 걸려있었던 것일까? 차마 거울을 볼 용기는 나지 않았다.
가격인하와 한시적 개별소비세 인하를 적용 받은 액티브하이브리드5의 가격은 9,980만원. 5시리즈중 M5를 제외한 최상위 모델인 550i xDrive M스포츠 패키지(1억 1,180만원) 다음으로 비싸다. 액티브하이브리드5의 바로 아래 모델은 4륜 구동인 535i xDrive(9,500만원)이고, 이 부류의 기본형이라 할 수 있는 535i는 9,200만원이다.
535i는 구 연비 기준치만 나와있어 맞 비교가 안되므로, 535i xDrive와 액티브하이브리드5를 비교해보면, 0-100km/h 가속은 액티브하이브리드5가 0.1초 뒤지고, 연비는 각각 9.1km/L, 11.4km/L이니 액티브하이브리드5가 좀 낫다. CO2 수치는 195g/km대 149g/km이다. 여기까지는 해볼만하다.
그런데, 5시리즈 라인업에는 535d M스포츠 에디션이라는 사기 캐릭터가 있다. 가솔린 535보다 출력이 낮은 대신 토크가 월등히 높고, 5.5초의 0-100km/h 가속 실력은 550i(4.8초)에 버금간다. 연비와 CO2수치도 액티브하이브리드5를 압도하는 14.8km/L와 133g/km이다. 가격은 액티브하이브리드5보다 870만원 더 저렴하다. 535d는 디젤이니 당연히 더 시끄럽고 무게배분도 앞으로 더 쏠렸을 것이다. 액티브하이브리드5만큼 부드럽지도, 강렬한 가속감을 오래 끌 수도 없을 것이다. 이렇게라도 깎아 내리지 않으면 액티브하이브리드5를 옹호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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