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삼성디자인센터에서 르노 디자인 아시아로 승격 쾌거
18일, 르노삼성자동차가디자인센터 지위 상승을 기념해 오픈하우스 행사를 개최했다. 기자단을 경기도 기흥에 위치한 중앙연구소로 초청해 디자인센터를 공개한 것이다. 지난 2009년 말, 3세대 SM5의 출시를 앞두고 이곳을 공개했던 것에 이어 두 번째 공식 행사다.
르노삼성 디자인은 연구소 내 여러 건물 중 한 동의 한 개 층에 자리했다. 휴대전화와 카메라를 맡기고 보안출입문을 통과해 중앙 홀의 높은 계단을 올라가자, 실제 차의 4분의 1 크기로 축소된 디자인 모형들이 전시된 복도가 나타났다. 르노의 콘셉트카도 있었고, 현재의 SM7 출시 전 모터쇼에서 먼저 선보여 큰 호응을 얻었던 SM7 쇼 카의 모형도 눈에 띄었다.
이번에 르노 그룹 차원에서 ‘르노 디자인 아시아’로 승격된 르노삼성 디자인센터 내부는 이미 표지 등을 새 이름으로 바꾼 상태였다. 르노그룹은 르노삼성을 아시아의 허브로 키워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꽤 오래전부터 언급해왔으나 이번에 좀 더 실질적인 방안이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디자인 센터의 지위 승격 외에도 SM5 후속과 QM5 후속의 디자인 및 개발을 르노삼성에 위임한 것이다.
르노삼성 디자인 센터의 공간은 크게 2개의 스튜디오로 구성되며, 디자인 부서와 모델링 부서로도 나뉜다. 먼저 들어간 곳은 스튜디오1의 디자인실. ‘자동차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말할 때 많은 사람들이 떠올릴법한 ‘차를 그리는’ 작업이 이뤄지는 곳이다. 하지만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기자단의 방문에 대비해 미리 치워놓은 탓도 있겠지만, 디자이너들의 작업대 위에서는 종이나 마카, 펜 등을 별로 찾아볼 수 없었다. 요즘은 스케치단계에서부터 디지털 작업을 주로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디자이너의 펜을 쥔 손동작을 디지털화 해주는 디지타이저-태블릿에 모니터의 역할까지 합쳐진 액정 태블릿이 설치되어 과거의 그림도구들을 물론 덩치 크고 복잡한 컴퓨터 세트까지 대체했고, 덕분에 작업대 위가 한결 한산해진 모습이었다.
모르고 본다면 멀티미디어 열람이 가능한 도서관의 일부분처럼 보일법했다. 어떤 디자이너는 자리 주변에 로봇 모형들을 세워놓기도 했다. 이들을 자동차 디자인과 연관 지을 단서는 오히려 길게 배치된 테이블 위에 줄맞춰 놓인 수십 대의 모형자동차들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까 복도에서 본 것들과는 달리 시중에서 구입할 수 있는 1/18 사이즈의 다이캐스트 모형들로, 디자이너들이 수시로 보면서 영감을 얻거나 참고할 수 있도록 다양한 모델들이 구비돼 있었다.
전반적인 분위기는 차분하면서도 쾌적한 느낌이었다. 비교적 넓은 공간이지만 이곳에서 근무하는 디자이너는 9명뿐이라 여유가 많아 보였다. 안쪽에서는 르노에서 파견 온 외국인 디자이너 2명이 인사를 건네 왔다. 본사에서 진행하던 작업을 르노삼성 측에 인계하기 위해 와있다고 했다. 이번에 발표된 바에 따르면 SM5 후속 중형세단의 경우 르노 연구소에서 1년 여 동안 선행개발 업무를 마친 상태에서 르노삼성에 넘겨지며, QM5 후속은 선행계발단계에서 업무이관이 이루어진다. 한편, 이번 행사에는 르노삼성 출신의 르노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파리 테크노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는 오정선 씨도 참석했다.
트림 작업이 이루어지는 공간엔 들어가지 못했고, 먼발치에서 눈길만 준 뒤 디자인실 옆에 있는 모델실로 이동했다. 가구가 없는 빈 공간에 실제 크기의 자동차가 서있고, 그 아래로 금속 재질의 바닥판이 깔려있었다. 안내를 맡은 르노삼성의 디자인 리더 성주완 씨가 “0점 세팅을 한 곳이니 바닥판을 밟지 않도록 주의해 주세요.”라고 주문했다. 디자인 모형 제작 시 실측을 위한 도구들이 기준점으로 삼는 것이 바로 이 바닥면이기 때문에 정확하게 수평으로 맞춰 제작돼 있다는 얘기다. ‘모델링 서피스 플레이트’, 또는 정반이라고 부른다.
성주완 리더는 모델실을 “주된 크리에이티브 작업이 이루어지는 곳”이라고 표현했다. 옆방에서 디자이너들이 그린 2차원의 그림은 이 방에서 크레이 모델러들의 작업을 거쳐 3차원의 모형으로 거듭난다. 디지털 모델링의 역할이 커졌지만 사람이 직접 보고 만지면서 확인해야 하는 감성적인 부분이 있기에 인공진흙을 붙이고 깎아 만드는 방식의 클레이 모델링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파티션에 스케치를 붙여놓고 봐가면서 테이프를 붙이고 진흙을 깎고 덧붙이고 다시 스케치하기를 반복하기 때문에 디자이너들 또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라고 했다.
실차 제작에 앞서 4분의 1 사이즈 모형을 10~15개 정도 제작하며, 그 중 가장 나은 디자인을 선별해 실차 크기의 모형으로 만들게 된다. 기자단이 방문했을 때는 정반 위에 QM3 실차와 르노 캡쳐 콘셉트 카의 1/4 모형이 올라 있었고, 안쪽에는 인테리어 디자인 모형으로 보이는 물체가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직원 휴식공간과 디자인 PQ(감성 품질)담당 부서를 지나 들어간 스튜디오2의 모델실은 스튜디오1보다 공간이 더 넓고 정반 면적도 그만큼 더 커서 여러 대의 차가 들어와 있었다. 현재 판매중인 뉴 SM3, 그리고 뉴 SM5 플래티넘과 함께 베일에 가려진 중형차가 한 대 서있었는데, SM5의 다음 번 페이스리프트 버전이라고 했다. 신형 플랫폼의 차세대 중형차가 나오기 전까지 시간을 벌기 위해 뉴 SM5 플래티넘의 후속으로 출시될 차다. 이 곳 모델실의 옆 공간은 디지털 모델링 부서의 작업실이라 아까의 디자인실보다는 좀 더 일반적인 모니터들이 책상 위에 놓인 모습이었다.
한편, 이번 행사의 기자간담회가 이루어진 곳은 ‘파워 월’로 불리는 VR룸이었다. 실제 사이즈에 가까운 이미지를 화면에 띄워놓고 다양한 디자인 요소들을 확인하는 공간이다. 대기하는 동안 화면에는 QM3가 해외로 보이는 도로를 주행하는 영상이 상영되고 있었는데, 어디에서 촬영했나 싶어서 유심히 살펴보고 나서야 컴퓨터 그래픽인 것을 알 수 있었을 정도로 정교한 것이었다. 화면 반대편에는 지난 해 부산모터쇼에 출품됐던 캡처 콘셉트카와 QM3의 실제 사이즈 모형이 전시됐다.
르노는 전 세계에 다섯 개의 디자인센터를 두고 있는데, 르노삼성 디자인센터, 즉 르노 디자인 아시아는 그 중 두 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500명에 가까운 르노 디자인 네트워크의 전체 구성원 중 르노삼성의 인원은 44명에 불과하지만, 파리를 제외한 나머지 디자인센터들의 인원이 10~20여 명씩인 것과 비교하면 꽤 큰 편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곳의 디자이너는 9명이고, 디지털 디자인 10명, 모델러는 8명, 컬러 및 재질 5명, 인지품질 6명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르노 디자인 네트워크를 전체적으로 보면, 디자이너가 156명으로 가장 많고, 클레이 및 디지털 모델러 138명이 뒤를 잇고 있다. 르노 디자인 아시아는 르노그룹이 중요시하고 있는 중국 등 아시아 시장에서의 주도적인 역할을 맡았기 때문에 향후 관련 프로젝트들을 맡을 가능성이 높고, 따라서 인력은 그에 따라 조정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번에 르노 디자인 아시아의 총괄이 된 르노삼성의 디자인 책임자 알랭 로네 상무는 르노 디자인의 익스테리어 총 책임자인 앤서니 로의 휘하에 있다.
르노 디자인은 승용차뿐 아니라 경상용차, 경주용차, 콘셉트 카, 애프터마켓용품, CI 등 다양한 디자인 업무를 담당하며, 르노, 르노삼성 외에도 다치아(Dacia), 알핀(Alpine)까지 4개 브랜드를 디자인한다. 르노 디자인 아시아로의 승격과 함께 이런 다양한 디자인 분야에 대한 르노삼성 디자인센터의 제안이 받아들여질 여지도 높아졌다고 그룹 임원들은 설명했다.
로렌스 반덴애커 르노디자인 총괄 부회장은 “예를 들어, 아시아시장에서 중시되는 세단의 권위적인 감각이나 상징성 등은 프랑스 디자이너들보다 한국 디자이너들에게 익숙한 부분”이라면서 르노삼성의 디자인 역량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으며, 성주완, 오정선 디자이너는 이번 승격을 계기로 향후 출시될 르노삼성 자동차의 제품들에는 한국 시장의 취향이 잘 반영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 기흥=민병권 기자 bkmin@rpm9.com
사진 / 르노삼성자동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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