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ENT 영화] 딸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잊지도 못하는 엄마 ‘줄리에타’

발행일자 | 2016.11.08 13:11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줄리에타(Julieta)’는 12년 전 갑자기 사라진 딸 안티아를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포기하여 잊지도 못한 채 사는 엄마 줄리에타의 숨겨진 고백이 담긴 작품이다.

엠마 수아레스, 아드리아나 우가르테가 2인 1역으로 줄리에타 역을 맡아 영화 속 나이의 변화를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다. 영화는 줄리에타의 섬세한 감정선을 여자의 시선으로 함께 하고 있는데, 감독은 남자라는 점이 눈에 흥미롭다.

‘줄리에타’ 스틸사진. 사진=콘텐츠게이트 제공
<‘줄리에타’ 스틸사진. 사진=콘텐츠게이트 제공>

◇ 변화하는 감정, 하나로 이어지는 감정선

‘줄리에타’는 카메라가 붉은 천을 가까이 주시하면서 시작한다. 야릇한 상상을 할 수도 있지만, 그 안에 심장이 뛰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감독은 영화 시작부터 줄리에타의 심장을 감각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인트로가 한참 흐른 후 영화의 타이틀이 나오는 최근 영화들의 경향과는 다르게, ‘줄리에타’는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영화 타이틀을 내보낸다는 것도 이런 느낌과 연결된다.

‘줄리에타’는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앨리스 먼로의 단편집 ‘떠남’에 수록된 ‘우연’, ‘머지않아’, ‘침묵’에서 영감을 받아 2년여 각색 작업 끝에 완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랑, 행복, 이별, 희망으로 감정이 변화하면서도 줄리에타의 감정선은 용기라는 하나로 이어지는데, 이런 감정선의 흐름은 단편의 영감이 이어진 것이라고 느껴진다.

‘줄리에타’ 스틸사진. 사진=콘텐츠게이트 제공
<‘줄리에타’ 스틸사진. 사진=콘텐츠게이트 제공>

줄리에타가 고백하며 마음을 털어놓는 편지, 내면을 고백하는 내레이션은, 마치 관객에게 하는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고해성사처럼 들린다. 편지를 통한 독백은, 관객들에게 제3자가 아닌 당사자로 이야기를 듣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만든다.

◇ 눈앞에 보이는 슬픔, 마음속에 사무치는 그리움

‘줄리에타’에서 감각적인 아슬아슬한 사랑은, 지울 수 없는 기억으로 이어진다. 죽음 앞에서 움직이는 줄리에타의 마음에 관객들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눈앞에 보이는 슬픔, 마음속에 사무치는 그리움은 진한 여운을 남긴다.

‘줄리에타’ 스틸사진. 사진=콘텐츠게이트 제공
<‘줄리에타’ 스틸사진. 사진=콘텐츠게이트 제공>

사랑이 전부였던 날들, 행복이 가득했던 날들, 이별로 외로웠던 날들, 희망으로 용기냈던 날들! 그녀이기에 더욱 아름다웠던 날들을 우리는 ‘줄리에타’를 통해 공유할 수 있다.

영화는 줄리에타의 감정이 현재인지 과거의 기억과 추억인지 명쾌하게 구분하지 않는 지점이 있다. 실제 우리 주변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사랑은 현재의 감정인지 과거의 기억과 추억에서 소환된 감정인지 명쾌하게 구분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줄리에타의 마음에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빠져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줄리에타’ 스틸사진. 사진=콘텐츠게이트 제공
<‘줄리에타’ 스틸사진. 사진=콘텐츠게이트 제공>

◇ 한정되어 있지만 머물지 않고 계속 움직이는 공간

열차 객실이라는 한정된 공간,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그 좁은 객실을 통째로 움직이는 열차는, 줄리에타의 삶을 영화 초반에 이미지적으로 보여준다. 한정되어 있지만 머물지 않고 계속 움직이는 공간, 그 공간의 시야에서 벌어지고 보이는 자극적인 사건들.

기차 안에서 누군가를 만난다는 판타지 속에, 사슴을 보았다는 사람들과 거짓말이라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데, 두 부류의 사람들 모두 확신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스스로 믿고 싶은 대로 보게 되는 정서가 암시처럼 깔려있는 것이다.

‘줄리에타’ 스틸사진. 사진=콘텐츠게이트 제공
<‘줄리에타’ 스틸사진. 사진=콘텐츠게이트 제공>

음흉한 표정의 남자, 야릇한 표정의 여자, 달리는 기차에서의 정사는 감각적으로만 보일 수도 있지만 유리창을 통해 비치는 모습은, 영화 후반 유리창을 통해 바다가 훤히 보이는 소안(다니엘 그라오 분)의 집과 파도치는 바다와 이미지적으로 연결된다. 이미지적 연결은 감정선을 연결하기도 한다.

‘줄리에타’는 상실감에 힘든 줄리에타의 감정을 따라가는 영화이다. 12년째 행방불명인 딸에 대하여 제대로 모르는 엄마, 딸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잊지도 못하는 엄마의 모습은, 우리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사람의 모습이라고 막연히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쩌면 우리도 가까운 주변 사람들을 잘 모르면서 살고 있을 수도 있다. 남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감정이입하여 관람한 ‘줄리에타’가 건드린 작은 반향 중의 하나이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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