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ENT 뮤지컬] ‘사의찬미’(2) 우울한 정서로 공기까지 왜곡된 느낌을 준 안유진

발행일자 | 2017.08.08 09:10

◇ 휘몰아쳐 돌아 들어오는 느낌과 확산돼 나가는 느낌을 동시에 담고 있는 무대

뮤지컬 ‘사의찬미’는 사선으로 올라가는 무대를 가지고 있다. 1층의 무대는 몇 개의 작은 단으로 높이 차이를 나타내고 있고, 2층의 무대는 경사로의 직선과 회전의 사선이 연결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무대는 극 중 상황과 보는 시야에 따라 휘몰아쳐 돌아 들어오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확산돼 나가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매우 불안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평온하고 안정적이지도 않은 구조는, 운명의 무게중심이 나뉘는 장소라는 이미지를 형성한다는 점이 주목된다.

‘사의찬미’ 안유진(윤심덕 역). 사진=NEO PRODUCTION(주식회사 네오) 제공
<‘사의찬미’ 안유진(윤심덕 역). 사진=NEO PRODUCTION(주식회사 네오) 제공>

‘사의찬미’ 무대의 이런 형태는 김우진(제1차 정문성, 김경수, 제2차 정동화, 이율, 고상호 분)과 윤심덕(제1차 안유진, 곽선영, 제2차 최유하, 최수진, 최연우 분) 그리고 사내(제1차 정민, 이규형, 제2차 최재웅, 김종구, 성두섭 분)의 각자 내면 및 상호 관계에 빗대 해석할 수 있다.

‘사의찬미’가 펼쳐지는 장소는 관부연락선으로 바다 위에서 역동적인 움직임이 펼쳐지기도 하지만, 실내는 안정적이고 조용한 분위기가 형성되기 때문에 이런 이중적인 무대 구조와 등장인물의 내면은 맥을 같이 한다.

‘사의찬미’ 안유진(윤심덕 역), 정민(사내 역). 사진=NEO PRODUCTION(주식회사 네오) 제공
<‘사의찬미’ 안유진(윤심덕 역), 정민(사내 역). 사진=NEO PRODUCTION(주식회사 네오) 제공>

◇ 우울한 정서로 공기까지 왜곡된 느낌을 준 안유진

‘사의찬미’에서 윤심덕 역을 맡은 안유진은 뮤지컬 전반부에서 “약속해, 날 데려가 줘, 그 어디로든”라고 말하고, 후반부에는 “지금은 그대 여자이고 싶어”라고 노래를 부른다.

훅 들어오는 연기를 펼친 안유진은 행동뿐만 아니라 마음도 그렇게 느껴지게 했는데, 매력적이면서 호소력 있었다. ‘사의찬미’에서 안유진은 윤심덕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윤심덕이거나, 아니면 그냥 안유진이라고 여겨진다.

‘사의찬미’ 안유진(윤심덕 역), 정문성(김우진 역). 사진=NEO PRODUCTION(주식회사 네오) 제공
<‘사의찬미’ 안유진(윤심덕 역), 정문성(김우진 역). 사진=NEO PRODUCTION(주식회사 네오) 제공>

놀라운 점은 안유진이 만드는 우울한 정서는 공기까지 왜곡된 느낌을 줬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머리로만 생각하는 것을 행동으로 표현하는 모습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마치 자기장이 왜곡된 것처럼 안유진 주변으로 공기가 고정되지 않고 움직이는 느낌을 줬는데, 그때의 조명은 빨간 느낌으로 나선형 소용돌이의 에너지가 안유진에게서 느껴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안유진은 담배 피우면서 뮤지컬 넘버를 소화해야 하는 악조건 속에서 연기를 했는데, 엎드려 있는 상황에서도 노래를 불렀다. 다른 장면에서도 그랬지만 특히 엎드려서 노래 부르는 장면에서 안유진은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정서와 에너지가 주변 공기까지 변화시킨 느낌을 준다는 것이 돋보였다.

‘사의찬미’ 이규형(사내 역), 안유진(윤심덕 역), 정문성(김우진 역). 사진=NEO PRODUCTION(주식회사 네오) 제공
<‘사의찬미’ 이규형(사내 역), 안유진(윤심덕 역), 정문성(김우진 역). 사진=NEO PRODUCTION(주식회사 네오) 제공>

◇ 생명력, 생기, 치명적인 밝음 또한 선사한 안유진

안유진은 얼굴 위쪽과 아래쪽이 다른 분위기를 만든다는 점이 주목된다. 얼굴 위쪽은 온화하게 아름다움을 전달하고, 아래쪽은 상대적으로 뾰족하고 날카로운 느낌을 준다. 순수함을 간직하면서도 섹시하게 느껴지는 얼굴이라고 볼 수 있는데, 안유진은 윤심덕, 그 자체로 생각된다. 정민도 얼굴의 위, 아래 분위기가 다른데, 안유진과 정민의 이런 얼굴은 복잡한 내면 표현에 개연성을 불어 넣는다는 점이 흥미롭다.

안유진은 의자에 올라가서 다리를 꼬는 디테일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빠르게 의자에 올라가 빠르게 다리를 꼬는 과정, 다리를 꼰 이후 포즈는 그 자체로 강약 조절이 이뤄지는데, 동적인 행동 뒤 정적인 여운을 남긴다.

‘사의찬미’ 곽선영(윤심덕 역). 사진=NEO PRODUCTION(주식회사 네오) 제공
<‘사의찬미’ 곽선영(윤심덕 역). 사진=NEO PRODUCTION(주식회사 네오) 제공>

안유진의 디테일한 움직임은 그녀의 얼굴이 가진 이중적 매력과 더불어 ‘사의찬미’가 어쩌면 윤심덕의 이야기가 아닌, 안유진의 진짜 이야기처럼 느껴지도록 만든다는 점이 놀랍다. 안유진이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윤심덕이 와 있는 듯한 전율이 느껴지는데, 만약 윤심덕이 ‘사의찬미’에서 안유진을 본다면 어떤 생각이 들지 궁금해진다.

안유진의 행동과 대사, 노래는 만들어낸 생명력, 표현한 생기로 느껴지지 않는다. 치명적으로 밝은데 절대 가볍지가 않다. 연기적 내공만이 아닌 인생의 내공이 안유진에게 있다는 것이 보인다. 다른 작품에서의 모습, 무대 밖에서의 모습이 무척 궁금해지는 배우이다.

‘사의찬미’ 김경수(김우진 역), 정민(사내 역). 사진=NEO PRODUCTION(주식회사 네오) 제공
<‘사의찬미’ 김경수(김우진 역), 정민(사내 역). 사진=NEO PRODUCTION(주식회사 네오) 제공>

‘사의찬미’는 대부분 무겁게 진행됐는데, 거의 유일하게 밝은 장면이 있다. 안유진, 김경수, 정민이 처음 같이 만나는 장면인데 짧은데 아름다운 느낌은 뮤지컬의 전체적인 무게를 약간 줄여 산뜻함의 향기를 남긴다.

안유진은 노래를 부를 때, 행동을 할 때 예쁘게 보이려고만 하지 않는다. 그녀는 가식이 없을 때의 매력이 주는 힘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된다. 가식을 부리지 않고 감정대로 했을 때도 매력을 발산하는 안유진은 무척 부러운 장점을 가지고 있는 것인데, 그녀의 걸크러쉬적 매력은 여자 관객들이 대부분인 ‘사의찬미’에서도 호평을 받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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