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ENT 영화]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3) ‘하인’ 벌레는 소심한 나의 또 다른 자아

발행일자 | 2017.10.07 16:44

아베디레나니 파르누시 감독의 ‘하인(The Servant)’은 제19회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BIAF2017) 국제경쟁 섹션의 단편 애니메이션 영화이다. 벌레가 하인이 되고 하인이 주인이 되는 이 이야기는 상상력과 아이디어의 산물로 다른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재미를 주기도 하지만, 무척 강한 내적 갈등과 아픔을 가지고 있다.

‘하인’은 12세 관람가의 영화인데 그 내부에 간직하고 있는 잔인한 내적 자아를 직면하게 된다면 마음의 상처를 크게 받을 수도 있기에, 이해력과 상상력이 풍부한 청소년이라면 오히려 어른이 된 후 관람하기를 추천하는 작품이다.

‘하인’ 스틸사진. 사진=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제공
<‘하인’ 스틸사진. 사진=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제공>

◇ 창작의 고통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고 싶었던 감독의 상상과 내면

‘하인’에서 자살 충동을 느끼던 작가는 벌레를 잡아 유리병에 가두는데, 죽이려다 말고 방치한 벌레는 점점 우울하게 변해가고, 작가와 벌레는 서로 충돌하며 역할을 교체하기 시작한다.

‘하인’에서 표현된 작가는 감독 자신을 지칭하는 사람일 수 있다. 작가의 경우 등장인물의 캐릭터를 분리하기 위한 작업을 강하게 하다 보면 자신의 머릿속에서 분열이 일어날 수도 있는데, 그런 상황을 영화에 대입해 해석할 수도 있다.

‘하인’ 스틸사진. 사진=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제공
<‘하인’ 스틸사진. 사진=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제공>

◇ 벌레는 우울함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 충동을 느끼던 내가 분리한 또 다른 자아일 수 있다

‘하인’에서 처음에 벌레는 작가와 분리된 존재였는데, 둘의 역할이 바뀌는 것을 보면 벌레는 우울함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 충동을 느낀 작가가 자신에게서 분리한 또 다른 자아일 수 있다.

작가는 자신이 가장 단순하다고 생각했던 벌레라는 존재에 자신의 우울함과 자살 충동을 부여해 분리했다고 가정할 수 있다. 벌레가 점점 커졌다는 점, 점점 커지면서 점점 생각이 많아지면서 우울해졌다는 점, 커지며 우울해진 벌레는 작가 자신과 주변을 다시 위협하는 존재가 됐다는 점을 생각하면, 벌레는 내가 견디기 힘들어 나 자신에게서 떼어내 가둔 대상일 수 있다.

‘하인’ 스틸사진. 사진=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제공
<‘하인’ 스틸사진. 사진=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제공>

처음에 벌레를 바로 죽이지 못하고 병에 가둔 것도 같은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다. 없애고 싶은 모습이지만 그 또한 자신의 모습이기에 바로 죽이지 못하고 유리병에 가둔 채 방치한 것인데, 방치된 또 다른 자아는 원래의 자아를 위협할 정도로 무서운 존재가 된 것이다.

‘하인’은 실제로 작품 내 작가와 같은 아픔을 겪는 사람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겨줄 수 있다. 차마 다른 사람들에게 꺼내지 못하는 이야기를 영화를 통해 공감하면서 힐링과 치유를 선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유리병 안에 벌레를 단단히 가둬 놓은 관객에게는 자신이 가둬놓은 자신의 벌레가 있다는 것을 직면하게 만들 수도 있다. 12세 관람가이기 때문에 청소년의 관람이 가능하지만, 똑똑한 청소년들은 나중에 어른이 된 후에 관람하기를 필자가 바라는 이유이기도 하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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