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ENT 연극] ‘리차드 3세’(2) 투사와 투사적 동일시를 디테일 있게 표현한 황정민

발행일자 | 2018.02.14 00:24

2월 6일부터 3월 4일까지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리차드 3세’는 셰익스피어 원작, 서재형 연출, CJ E&M, 샘컴퍼니 주최, 샘컴퍼니 제작으로 진행된다.

리차드 3세는 세상을 속이는 연기를 하겠다고 극 중에서 말하는데, ‘투사적 동일시(projective identification)’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의 내면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 알 수 있는데, 그에 대한 전반적이면서도 디테일한 것들을 제대로 표현한 황정민의 연기에 더욱 감탄하게 된다.

‘리차드 3세’ 연습사진. 사진=샘컴퍼니 제공
<‘리차드 3세’ 연습사진. 사진=샘컴퍼니 제공>

◇ 대상관계이론, 멜라니 클라인의 투사적 동일시

대상관계이론(Object Relations Theory) 심리학자 멜라니 클라인(Melanie Klein)은 투사(projection)가 투사적 동일시로 이어지는 것을 정립한 학자이다. 투사는 자기 내면에 있는 스스로 견디기 힘든 부분을 무의식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전가해 고통과 괴로움을 줄이려는 것을 뜻한다. 자기 마음 안에 있는 것을 외부 세계에 있는 대상으로 돌리려는 것인데, 주로 죄의식, 열등감, 공격성, 수치심 등 직면하기 어려운 면들이 투사된다.

내가 투사한 대상을 내 마음이 투사한 상태로 그냥 두지 않고 투사한 것이 실제로 일어나도록 만드는 적극적인 투사가 이뤄질 수 있는데, 클라인은 이를 투사적 동일시라고 했다.

‘리차드 3세’에서 황정민은 자기의 분노와 적개심을 다른 사람에게 투사해 그 사람이 황정민에게 분노와 적개심을 가진 것으로 전가하는데, 그냥 전가해 마음의 안전을 얻는데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다른 사람이 황정민에게 분노와 적개심을 가지도록 만드는 투사적 동일시를 사용한다.

‘리차드 3세’ 연습사진. 사진=샘컴퍼니 제공
<‘리차드 3세’ 연습사진. 사진=샘컴퍼니 제공>

◇ 투사적 동일시의 대표적인 네 가지 종류 : 의존적 투사적 동일시, 힘 투사적 동일시, 성적 투사적 동일시, 환심사기 투사적 동일시

투사적 동일시는 수많은 형태로 나타날 수 있는데, 그중 의존적 투사적 동일시, 힘 투사적 동일시, 성적 투사적 동일시, 환심사기 투사적 동일시가 대표적인 네 가지 종류이다.

의존적 투사적 동일시는 무의식적 상태에서 “나는 너 없이는 살 수가 없어”라고 의존하는 마음을 상대에게 전가해 상대방이 나를 도와줄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반대로, 힘 투사적 동일시는 “너는 나 없이는 살 수가 없어”라는 힘의 메시지를 무의식적으로 전달해 상대방을 자신의 통제 하에 두려고 하는 것을 뜻한다. 힘 투사적 동일시는 상대방을 불완전한 존재로 보며, 의존적 투사적 동일시는 자기를 불완전한 존재로 본다.

‘리차드 3세’ 연습사진. 사진=샘컴퍼니 제공
<‘리차드 3세’ 연습사진. 사진=샘컴퍼니 제공>

성적 투사적 동일시는 나도 모르게 표현하는 유혹적인 몸짓과 움직임을 통해 상대방을 완벽하게 성적으로 각성하게 만드는 것이다. 성적 투사적 동일시를 당한 상대방은 스스로의 자발적 선택으로 행동한 것이 아니 아니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투사적 동일시를 행한 사람을 유혹했다는 인정하기 힘든 불편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

환심사기 투사적 동일시는 자기의 헌신과 공로를 상대방이 인지하게 한다. 상대가 자기에게 빚진 마음으로 늘 미안해하게 만드는데, 많은 자기희생적 행동을 인정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환심사기 투사적 동일시를 행하는 경우가 많다.

‘리차드 3세’ 연습사진. 사진=샘컴퍼니 제공
<‘리차드 3세’ 연습사진. 사진=샘컴퍼니 제공>

◇ 투사와 투사적 동일시를 모두 사용한 황정민

‘리차드 3세’에서 리차드 3세는 자기의 콤플렉스를 삐뚤어진 세상에 투사한다. 투사의 상대방이 개인이 아닌 사회라고 볼 수도 있지만, 특정 개인이 아는 불특정 다수의 대상에 대해 자기의 콤플렉스를 동시에 투사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전쟁에서 승리하는데 큰 일조를 한 영웅이지만 전쟁이 끝난 직후 자기의 존재감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 견딜 수 없는 리차드 3세는 답답한 내적 억울함을 외부로 전가하는데, 때로는 투사만 사용하기도 하고 때로는 적극적인 투사인 투사적 동일시를 사용하기도 한다.

‘리차드 3세’ 연습사진. 사진=샘컴퍼니 제공
<‘리차드 3세’ 연습사진. 사진=샘컴퍼니 제공>

◇ 힘 투사적 동일시와 의존적 투사적 동일시를 동시에 그리고 교차적으로 사용하는 황정민

‘리차드 3세’에서 리차드 3세는 왕가의 혈통이라는 자신감과 곱사등이라는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자기의 힘에 다른 사람들이 굴복할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의 도움이나 다른 사람을 이용하지 않고는 자기가 권위를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리차드 3세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은 힘 투사적 동일시이다. 온갖 악행을 실행하는 심복 버킹엄(김도현 분), 권력 암투를 증폭하는 리버스(임기홍 분), 자기와 결혼하기를 원하는 앤(박지연 분)에게 하는 대화와 행동은 기본적으로 힘의 굴복을 전제로 하고 있다.

‘리차드 3세’ 연습사진. 사진=샘컴퍼니 제공
<‘리차드 3세’ 연습사진. 사진=샘컴퍼니 제공>

힘을 있는 그대로 발휘해 상대를 굴복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내가 너를 진압하거나 키워줄 수도 사랑해줄 수도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어필해 상대를 움직이게 만드는 힘 투사적 동일시를 사용하는 것인데, 황정민은 이 두 가지의 차이를 디테일한 연기력으로 표현한다. 그냥 보면 내면 연기를 참 잘한다고 느낄 수 있는데, 힘 투사적 동일시에 대한 표현력이 탁월한 것이다.

리차드 3세는 힘만 발휘하는 게 아니라 힘 투사적 동일시를 사용하는 대상에게 전혀 반대의 투사적 동일시인 의존적 투사적 동일시를 사용한다. 버킹엄이나 리버스 등 자기를 따르는 인물이 없을 때 자기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꾸준히 어필하며, 앤에게도 너만이 나를 완전하게 만들 수 있는 인물이라는 것을 직접 어필하기보다는 의존적 투사적 동일시의 방법으로 전달한다.

‘리차드 3세’ 연습사진. 사진=샘컴퍼니 제공
<‘리차드 3세’ 연습사진. 사진=샘컴퍼니 제공>

힘 투사적 동일시와 의존적 투사적 동일시를 같이 사용하는 리차드 3세는 입체적인 인물일 수밖에 없는데, 황정민은 이 두 가지 상반된 모습과 내면을 정말 리얼하게 표현한다. 그것도 표면적인 표현이 아닌 투사적 동일시를 잘 살려 표현하기 때문에, 관객은 황정민이 연기를 무척 잘한다는 공감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각각 세부적인 면은 다르게 느낄 수 있다.

◇ 성적 콤플렉스를 성적 투사적 동일시로 사용하고, 자기의 속내를 숨기기 위해 환심사기 투사적 동일시를 전반적으로 사용한다

‘리차드 3세’에서 리차드 3세는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지만, 자기가 앤을 만족시켜 줄 수 있다는 것을 어필하고 싶은데 그 방법으로 권력과 성적 능력이 대두된다.

‘리차드 3세’ 연습사진. 사진=샘컴퍼니 제공
<‘리차드 3세’ 연습사진. 사진=샘컴퍼니 제공>

연극을 보면 관객은 리차드 3세가 어쩌면 성적인 능력은 뛰어날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어쩌면 앤에게 감정이입한 관객이 성적 투사적 동일시에 일정 부분 걸린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리차드 3세는 맏형이자 요크 왕가의 황제인 에드워드 4세(정웅인 분), 둘째 형 조지(이갑선 분)에게 꾸준히 자기가 얼마나 정성을 들였는지를 환심사기 투사적 동일시를 통해 은연중에 전달한다.

‘리차드 3세’ 연습사진. 사진=샘컴퍼니 제공
<‘리차드 3세’ 연습사진. 사진=샘컴퍼니 제공>

“말 곱게 합시다. 진심 앞에. 장모님!”이라는 표현 또한 환심사기 투사적 동일시를 행한 사람이 자기의 의지대로 되지 않았을 때 하는 대표적인 표현이다. 내가 얼마나 정성을 다했는데 너는 그걸 모르냐는 식으로 억울함과 답답함을 표현할 때 황정민은 감정을 억제하면서도 억제하지 못하는 것처럼 나타냈는데, 환심사기 투사적 동일시의 본질을 꿰뚫은 연기라고 볼 수 있고 알면서 보면 더욱 감탄하게 된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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