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ENT Paper] 국가 재난 피해자 보상 및 지원에서의 상담의 역할과 전망: 2017년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심리상담’ 사업을 중심으로(연세대 권수영 교수)

발행일자 | 2018.03.11 00:50

전문적으로 훈련 받은 상담사들은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피해를 입은 국민들에게 보다 용이하게 접근할 수 있고, 피해자들에게 정서 및 심리지원을 효율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인력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2017년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심리상담’ 사업의 연구책임자였던 권수영 교수(연세대)는 이 사업의 성과를 중심으로 권수영, 이신형(2018), ‘국가 재난 피해자 보상 및 지원에서의 상담의 역할과 전망: 2017년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심리상담’ 사업을 중심으로,’ 「한국기독교상담학회지」 29(1), 9-34(이하 논문)를 발표했다.

오는 4월부터 국민들이 정신의학과 치료 시 정신치료를 활성화하기 위해 보험수가가 인상되고 본인 부담금은 낮아진다. 이는 모두 의료기관 내에서 이루어지는 정신의학 전문 치료행위에 한해서다. 국민들이 병원 밖에서 상담 전문가에게 받는 심리상담과는 무관하다.

일반 국민들에게는 정신치료와 심리치료, 심리상담과 전문상담 등 다양한 용어부터 헛갈리기 십상이다. 병원 안에서 이루어지는 정신치료(심리치료)와 상담 전문가들이 제공하는 심리상담(전문상담) 서비스의 차이를 명확하게 보여준 정부 주도 사업이 최근 실시된 바 있다.

‘국가 재난 피해자 보상 및 지원에서의 상담의 역할과 전망’ 논문. 사진=한국기독교상담심리학회 제공
<‘국가 재난 피해자 보상 및 지원에서의 상담의 역할과 전망’ 논문. 사진=한국기독교상담심리학회 제공>

바로 작년 3월부터 실시된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자를 위한 ‘심리상담’ 사업이다. 발주기관은 환경부 산하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이었고, 주관단체는 정신건강의학 분야가 아닌 상담 분야 연합기구인 ‘한국상담진흥협회’였다. 이번 사업은 단 한순간의 대형 사고나 일정 지역의 재해로 인해 발생한 사건이 아닌 지속적인 가습기살균제 사용으로 의해 전국적으로 수많은 국민들이 경험한 사회적 재난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7년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심리상담’ 사업은 사업명과는 달리 피해자로 인정받은 이들을 대상으로 한 사업이 아니었다. 피해자로 인정받은 이들은 경제적 보상과 함께 장례비 지원, 그리고 지정된 병원으로부터 의료지원을 받을 수 있었지만 정신의학적 도움을 받으려 신청한 이들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한편, ‘심리상담’ 사업의 대상자는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입었지만,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해 정부로부터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한 일반 국민들이었다. 피해자 인정결과를 기다리는 신청자들도 심리상담 사업 대상자에 포함되었다. 사업 신청자만 해도 1,200명이 넘었다.

논문에서 권 교수는 국가 재난 발생 후 피해자들을 위한 정부 보상과 지원에 대한 논의에서 늘 뒷전에 밀려왔던 피해자들의 심리지원의 중요성을 보여준 사업이라고 그 의미를 밝혔다. 또한 재난 피해자 정신건강 지원에 있어서 그간 정부는 주로 정신의학 전문가들에 의한 고위험군 발굴 및 위기개입에 중점을 두어 왔고, 상담을 통한 심리지원에 대한 부분은 미미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하지만, 권수영 교수는 심리상담 사업의 제약을 몇 가지 지적했다. 국가적 재난의 피해자들은 보통 경제적 보상에 비해 자신들의 심리적 돌봄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기에 그들의 심리상담에 대한 동기가 높지 않았다는 점과 용역사업의 성격상 심리상담이 4-5회기로 완결되어야 하는 시간상 제한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에 권 교수는 심리상담 대상자들의 동기를 강화하여 적절한 심리상담을 제공하기 위한 전문성을 갖추고, 회기 제한이 있는 단기 상담의 경우라고 할지라도 대상자들이 보이는 트라우마 스트레스 반응을 집중도 있고 효과적으로 다루기 위해 상담자들을 위한 매뉴얼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권 교수는 매뉴얼 사용이 상담사들에게 재난 상담에 대한 불안을 낮추고 자신감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평가했다. 권 교수는 사업 종료 후 최종보고서에서 대상자들에게서 나타난 가시적인 효과도 보고했다. 수도권의 대상자들에게 상담경험의 만족도를 묻는 회기사정척도(10점 만점 리커트 척도) 평가에서 상담 초기 평균점수(3.9) 보다 회기 종료 후 대인관계(5.2)와 개인생활(4.6) 등에서 유의미한 만족도 상승이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권 교수는 “심상작업을 통해 잃어버린 가족을 애도하는 심리상담을 경험할 수 있었던 이들은 정해진 총 6회기 상담을 마친 후, 자비를 들여서라도 심리상담을 지속적으로 받겠다고 자청”한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다. 결국 사업을 종료 후 발주기관은 즉시 지속적으로 심리상담이 필요한 이들을 대상으로 후속 2차 사업을 실시했고, 3월 1일에 종료됐다.

논문의 결론에서 권 교수는 국가 재난 상황에서 피해자 지원체계는 처음부터 신체적인 의료지원과 심리적인 지원이 균형감 있게 지원되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즉, 의료비 지원과 경제적 보상에 관심을 집중할 수밖에 없는 피해자들이 자신의 심리적 상태에 대한 돌봄을 선순위에 두지 않더라도 국가는 이런 부분을 고려하여, 처음부터 제도적으로 충분한 심리적 지원을 제공할 수 있는 사회서비스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권 교수는 미국의 재난 심리지원 체계(Crisis Counseling Assistance & Training Program)를 소개했다. 재난 발생 초기 피해자들을 섣불리 질환자로 판단하는 행위를 배제하는(diagnosis free) 원칙을 가지고, 그 대신 위기상담 지원과 교육을 속히 진행한다는 점에서 한국과 차이점을 보이는 체계이다. 그는 국가가 재난 초기부터 효과적이고 지속적인 심리지원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선진국처럼 위기 상담지원 및 교육을 통해 모든 피해자들의 심리적 상황을 파악하고, 개별적 상황에 따른 정신의학적 의료 서비스는 물론 지역 사회복지 서비스로 연계하는 후속지원이 가능하도록 하는 정부의 ‘종합적인 지원체계’의 확립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권수영 교수. 사진=연세대학교 상담·코칭지원센터 제공
<권수영 교수. 사진=연세대학교 상담·코칭지원센터 제공>

심리상담은 피해자 보호와 보상이라는 인도주의적 차원뿐만 아니라 사회적 비용이라는 측면에서도 무척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논문에서 검증한 효능에서 추정하면, 심리상담 서비스를 발주한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의 역할이 기업이나 공공기관으로 확대됐을 경우 더 큰 효과를 예측할 수도 있다.

재난 성금 모금 시 심리상담에 특정할 경우, 피해자가 심리상담을 받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줄일 수도 있고, 심리상담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리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성금을 내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이미지를 제고할 수도 있고, 개인 성금의 경우에도 기부자가 자신의 경제적 지원이 심리적 지원으로 연결된다는 안전감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비단 재난 피해자들만이 아니다. 미국과 같은 서구사회에 비해 정신의학적 치료에 대한 문화적 거부감이 훨씬 심한 한국인들에게는 심리상담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리라 본다. 이에 국민 모두의 정신건강 증진을 위해 심리상담이 보다 내실 있고 체계적으로 제공될 수 있는 국가적인 시스템이 반드시 필요하리라 전망된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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