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ENT 갤러리] ‘정일영 초대전’ 생동감이 넘칠 수도 불안할 수도, 관람객이 마음을 투사해 볼 수 있는 작품

발행일자 | 2018.03.11 03:12

갤러리 바이올렛 기획 ‘정일영 초대전’이 3월 7일부터 20일까지 인사동 갤러리 바이올렛에서 전시 중이다. 서양화가 정일영 작가의 작품은 떨어져서 전체적이며 관조적으로 쳐다보느냐, 근접해서 집중해서 쳐다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도 있는 작품이다.

관람객의 마음에 따라 생동감이 넘치는 에너지 충만한 작품으로 볼 수도 있고, 불안감을 자극하며 마음을 건드리는 작품으로 볼 수도 있다. 촘촘하게 만들어졌지만 관람객의 내면이 투사, 투영할 수 있는 숨어있는 공간을 내준다는 점이 흥미롭다.

◇ ‘뉴저지 숙소, 72.7×60.0cm, Acrylic on canvas, 2016’

전시장에 들어서서 ‘뉴저지 숙소, 72.7×60.0cm, Acrylic on canvas, 2016’(이하 ‘뉴저지 숙소’)를 만난 첫 느낌은 아름답고 이국적인데, 우리나라의 모습이라고 봐도 큰 무리가 없을 정도로 친숙함 또한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뉴저지 숙소, 72.7×60.0cm, Acrylic on canvas, 2016’. 사진=갤러리 바이올렛 제공
<‘뉴저지 숙소, 72.7×60.0cm, Acrylic on canvas, 2016’. 사진=갤러리 바이올렛 제공>

호기심에 가까이 다가가면, 마치 미디어 아트가 펼쳐지는 듯 안정적이었던 그림은 살아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근접해서 바라볼 경우 그림 속에는 사람을 포함한 동물 혹은 움직이는 물체가 전혀 보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정적인 느낌보다는 동적인 느낌이 강하게 전달된다.

집과 도로의 색은 흑백 또는 파스텔 톤 같은 안정된 색감을 가지고 있고, 눈의 피로를 덜어준다는 초록색이 전체적인 정서를 만들고 있지만, 곳곳에 배치된 빨간색이 관람객으로 하여금 양가감정을 느끼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된다. 양가감정은 같은 대상에 대해 정반대의 감정이 공존하는 상태를 뜻한다.

◇ ‘백련사 배롱나무(강진), 116.8×91.0cm, Acrylic on canvas, 2015’

‘백련사 배롱나무(강진), 116.8×91.0cm, Acrylic on canvas, 2015’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 중 특징을 살려 부각한 작품으로 보이기도 하고, 작가가 해체해 재구성한 작품처럼 보이기도 한다.

‘백련사 배롱나무(강진), 116.8×91.0cm, Acrylic on canvas, 2015’. 사진=갤러리 바이올렛 제공
<‘백련사 배롱나무(강진), 116.8×91.0cm, Acrylic on canvas, 2015’. 사진=갤러리 바이올렛 제공>

나무줄기는 상하의 구도를 봤을 때도 안정성을 가까스로 유지하고 있다고 보이고, 좌우로 볼 때도 현재의 정적인 모습을 위해 버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줄기는 세월의 풍파로 많이 쇠퇴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마치 말랐지만 잔근육이 발달된 팔뚝처럼 보이기도 한다.

붉은색과 초록색은 동일 공간에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매직아이를 보듯 색을 분리해 보면 근경에는 붉은색이 자리 잡고 원경에는 초록색이 자리 잡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분리해 바로 보면 불안감과 분열은 더 커질 것으로 예상할 수 있지만, 실제로 붉은색과 초록색 둘 중 하나에 집중해 감상하면 오히려 안정적으로 느껴진다. 작가는 구도뿐만 아니라 색의 조합을 통해 그림과 그림 속 식물들을 살아 움직이게 만들었다고 느껴진다.

◇ ‘마산항, 60.6×90.9cm, Acrylic on canvas, 2016’

‘마산항, 60.6×90.9cm, Acrylic on canvas, 2016’에서는 ‘뉴저지 숙소’와 비슷한 정서를 찾을 수 있다. 그림에서 약간 떨어져서 볼 때는 안정적이고 평안한 풍광인데, 시선을 고정해 천천히 그림에 다가갈수록 정지한 그림이 영상으로 변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마산항, 60.6×90.9cm, Acrylic on canvas, 2016’. 사진=갤러리 바이올렛 제공
<‘마산항, 60.6×90.9cm, Acrylic on canvas, 2016’. 사진=갤러리 바이올렛 제공>

전제적으로는 안전감이 느껴지지만 분리해 바라보면, 높이가 다른 산은 어느 한 쪽으로 움직이거나 미끄러지는 듯하고, 항구는 언제든 움직일 준비가 돼 있는 정박해 있는 큰 선박처럼 보이기도 한다. 오히려 바닷물은 크게 벗어나지 않고 그 자리를 지켜줄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 흥미롭다.

‘정일영 초대전’의 작품들은 대체로 움직이는 느낌을 가지고 있다. 관람하는 사람의 느낌에 따라 생동감이 넘칠 수도 있고, 불안감이 엄습할 수도 있는 그림이다. 그림 자체가 가진 이미지와 뉘앙스를 관람객에게 전달될 수도 있지만, 관람객이 자신의 마음을 그림 속으로 투영하고 투사할 수 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하나의 그림을 두세 시간 볼 수 있는 관람객이나 상상력이 좋은 관람객에게 작가의 작품은 지루할 틈을 주지 않을 것이다. 거침과 섬세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작가가 표현한 정적일 수도 있고 동적일 수도 있는 이미지가 호기심을 지속적으로 자극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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