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ENT 국악] 정동극장 ‘적벽’ 군무가 강조된 형식의 창극? 무용 판소리극? 판소리 무용극?

발행일자 | 2018.03.15 13:29

정동극장 기획공연 ‘적벽’이 3월 15일부터 4월 15일까지 정동극장에서 공연된다. 1800년 전 중국의 적벽대전을 우리식으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무용이 강조된 형식의 창극이라고 볼 수도 있고, 무용 판소리극 혹은 판소리 무용극으로 볼 수도 있는 작품이다.

‘적벽’ 공연사진. 사진=정동극장 제공
<‘적벽’ 공연사진. 사진=정동극장 제공>

판소리를 주축으로 공연은 전개되는데, 연극적 요소보다는 무용적 요소가 훨씬 강한 작품이다. 예습 없이 관람하는 관객에게는 신선한 재미를 분명히 줄 것인데, 기대하는 것을 명확한 상태에서 관람을 선택한 관객으로부터는 평가가 갈릴 수도 있는 작품이다.

‘적벽’ 공연사진. 사진=정동극장 제공
<‘적벽’ 공연사진. 사진=정동극장 제공>

◇ 군무가 강조된 형식의 창극? 무용 판소리극? 판소리 무용극?

정동극장에서 공연되는 작품의 특징 중 하나는 두 가지 이상의 장르에 걸쳐있는 작품이 많다는 것이다. 전통공연과 현대를 융합하면서, 두 가지 이상의 장르의 장점을 창작에 활용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적벽’ 공연사진. 사진=정동극장 제공
<‘적벽’ 공연사진. 사진=정동극장 제공>

‘적벽’은 판소리 다섯 마당 중 가장 장중하고 화려하다고 평가받는 ‘적벽가’를 새로운 스타일로 창작한 작품이다. 타악, 아쟁, 신디/피리, 대금, 고수의 연주팀이 함께 하고 도창(해설자)의 역할이 있는 점에서는 소극장 창극, 작은 창극이라고 볼 수도 있고, 쉼 없이 펼쳐지는 군무는 무용극의 요소를 강하게 가지고 있으며, 판소리를 기본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판소리극이라고 볼 수도 있다.

‘적벽’ 공연사진. 사진=정동극장 제공
<‘적벽’ 공연사진. 사진=정동극장 제공>

연기적인 면 또한 분명히 있지만 무용에 비해 비중이 작다는 점은 흥미롭다. 연기라기보다는 안무 또는 퍼포먼스에 가까운 시간이 더 많은데, 마지막에 관우가 조조를 풀어주는 장면에서는 집약된 연기적 몰입감을 준다.

‘적벽’ 공연사진. 사진=정동극장 제공
<‘적벽’ 공연사진. 사진=정동극장 제공>

‘적벽’은 군무가 강조된 형식의 창극, 무용 판소리극, 판소리 무용극, 그 외에 다른 표현 또한 가능한데, 관객의 성향에 따라서 다른 느낌과 감동을 받게 될 것이다. 틀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것은 이론적으로 볼 때는 무척 훌륭한데, 실제적으로는 장단점을 동시에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적벽’ 공연사진. 사진=정동극장 제공
<‘적벽’ 공연사진. 사진=정동극장 제공>

◇ 외국 관객들에게는 이런 시도 자체가 신선할 수 있다. 그런데, 국내 관객에게는?

‘적벽가’는 영웅들의 이야기라고 볼 수도 있지만 패배한 졸병들이 주인공인 이야기이다. 초반의 ‘군사설움 타령’이 대표적인데, ‘적벽가’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이유는 일반 졸병들의 개인적 스토리텔링이 초반의 정서를 이끌고 가기 때문이기도 하다.

‘적벽’ 공연사진. 사진=정동극장 제공
<‘적벽’ 공연사진. 사진=정동극장 제공>

‘적벽가’ 초반의 개인적 정서가 ‘적벽’에서는 병졸들의 전체적 정서로 표현된다. 개인의 대사라기보다는 병졸들이 한꺼번에 같은 대사를 하는데, 군무 또는 노래와는 달리 같은 대사를 동시에 할 경우 통일감을 주기보다는 대사 전달력만 약화시키는 경향이 있는데 ‘적벽’ 또한 그러하다. 애절한 마음과 안타까운 마음은 기존에 판소리를 들어서 알고 있는 사람만 기억을 소환해 느낄 수도 있다.

‘적벽’ 공연사진. 사진=정동극장 제공
<‘적벽’ 공연사진. 사진=정동극장 제공>

‘적벽’은 땀을 뻘뻘 흘리며 추는 격렬한 군무가 인상적인데, 이렇게 춤을 추면서 창을 라이브로 한다는 것이 경이롭게 느껴진다. 대극장이 아닌 정동극장에서 19명의 등장인물이 계속 변화는 대형을 맞추면서 안무의 동선을 지킨다는 점 또한 주목된다. 안무의 역동성과 경이로움은 국내외 관객들에게 모두 어필할 수 있을 것이다.

‘적벽’ 공연사진. 사진=정동극장 제공
<‘적벽’ 공연사진. 사진=정동극장 제공>

‘적벽’은 군무가 강조되고, 대사도 함께 하는 경우가 많아 관객은 개별 인물에 초점을 맞춰 관람하기보다는 전체적으로 보게 될 수 있다. 초반의 개별 병졸의 이야기가 생략되고, 독보적 주인공이 없다고 볼 수도 있는 구조에서 관객은 누구에게 감정이입해야 할지 선택하기 힘들다.

‘적벽’ 공연사진. 사진=정동극장 제공
<‘적벽’ 공연사진. 사진=정동극장 제공>

모든 관객이 공통적으로 혹은 남자 관객과 여자 관객이 각각 감정이입할 수 있는 대상이 친절하게 표현됐으면 ‘적벽가’ 관람 없이 ‘적벽’을 처음 보는 관객들이 더 편하게 관람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적벽’ 공연사진. 사진=정동극장 제공
<‘적벽’ 공연사진. 사진=정동극장 제공>

한나라 말엽, 도원결의, 삼고초려, 동남풍 등 8개의 주요 공연 장면의 제목이 자막으로 제공되는 것은 긍정적인데, 대사나 창 또한 자막으로 제공됐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판단된다. ‘적벽가’의 내용을 꿰뚫고 있는 관객이 아니라면 대사나 창의 가사에 집중하느라 장면이 주는 디테일한 뉘앙스를 놓칠 수도 있고, 군무에 몰입해 있다 보면 대사와 가사를 놓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적벽’ 공연사진. 사진=정동극장 제공
<‘적벽’ 공연사진. 사진=정동극장 제공>

완창 판소리 공연의 경우에도 자막이 제공될 때 관객들의 호응이 좋다. 스토리텔링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하는 우리나라 관객은 자막이 제공되지 않는 완창 판소리 공연을 볼 때 마치 수업을 듣는 것처럼 대본을 펼쳐 놓고 보는 사람이 꽤 많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적벽’을 포함한 전통예술 공연에서 한국어 자막을 제공할지를 심도 있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프레스 리허설에는 자막이 제공되지 않았지만, 본 공연에서는 한국어와 영어 자막이 제공된다는 점은 긍정적인 선택으로 여겨진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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