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ENT 갤러리] 성낙진 개인전 ‘Social Narcissism Service’ 특별한 의미에만 매달리진 않지만 특별한 의미를 추구한다

발행일자 | 2018.03.15 17:54

성낙진 개인전 ‘Social Narcissism Service(소셜 나르시즘 서비스)’가 3월 14일부터 4월 3일까지 인사동 희수갤러리에서 전시 중이다. 사각의 앵글 안에서 무엇이 가치가 있고 어떤 것이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작가는 밝힌 바 있는데, 일러스트레이션 같은 그림을 집중해서 감상하면 특별한 의미에 목숨을 걸지는 않을 뿐 특별한 의미를 추구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작가는 ‘Social Narcissism Service’의 작품들을 통해 단순화하려고 하면서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혹은 슬쩍 끼워 넣는 재치를 발휘하는데, 이런 모습은 앞으로의 발전 방향을 더 궁금하게 만든다.

◇ ‘외톨이, 116×80.3cm, Acrylic on canvas, 2018’

‘외톨이, 116×80.3cm, Acrylic on canvas, 2018’(이하 ‘외톨이’)는 원색의 대비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그렇지만 원색을 그대로 사용하지는 않고, 파란색의 경우 검은색을 넣어 명암을 만들며, 초록색을 표현할 때는 거친 붓 터치를 그대로 살리고 있다. 빨간색은 그림자가 있는 공간과 아닌 공간으로 나뉘는데, 그림자가 없는 공간을 모두 채우지 않고 의도적으로 약간의 여백을 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외톨이, 116×80.3cm, Acrylic on canvas, 2018’. 사진=희수갤러리 제공
<‘외톨이, 116×80.3cm, Acrylic on canvas, 2018’. 사진=희수갤러리 제공>

‘외톨이’의 남자는 목 디스크가 있는 듯 약간 불편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왼쪽 어깨가 더 뭉쳐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림 제목은 남자를 외톨이로 지정하고 있는데, 차려입은 모습은 신사적인 멋쟁이로 보이기도 한다.

양팔로 팔짱을 끼면서 완전한 고립을 추구하지도 않고, 양손을 자연스럽게 놓아 올 수도 있는 누군가를 반길 준비를 하지도 않는다. 양손으로 물건을 쥐고 있으면서 긴장을 놓지 않는데, 오른 무릎 위에 하트가 화면에 뜬 폰을 올려놓았다는 점을 반드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하트 폰은 프로이디안 슬립과 같은 뉘앙스를 준다. 프로이디안 슬립은 프로이트의 말실수라고도 하는데, 은연중에 속마음을 들키는 실언을 하는 것을 뜻한다. 만약 남자가 하트 폰을 행커치프가 있는 주머니에 넣었을 경우 강력한 의지의 표명이라고 볼 수 있을 텐데, 무릎 위에 살짝 놓았다는 것은 심장에서 멀어졌다는 것을 뜻할 수도 있고 누군가 알아채주기를 바라며 슬쩍 내비쳤다고 볼 수도 있다.

◇ ‘실루엣, 53×40.9cm, Acrylic on canvas, 2018’

‘실루엣, 53×40.9cm, Acrylic on canvas, 2018’(이하 ‘실루엣’)은 제목만 들으면 여자를 생각할 수도 있는데, 실제 그림에서는 남자 세 명이 나온다. 선입견에 대한 일침일 수도 있고, 역선입견의 표현이라고 볼 수도 있다.

‘실루엣, 53×40.9cm, Acrylic on canvas, 2018’. 사진=희수갤러리 제공
<‘실루엣, 53×40.9cm, Acrylic on canvas, 2018’. 사진=희수갤러리 제공>

세 명의 남자는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는데, 약간 방향을 틀고 있는 한 남자의 시선은 차별성을 가지고 있고, 입고 있는 옷은 다른 두 남자와 공통점은 있으면서도 디테일에서는 다르게 표현되고 있다.

간략하게 표현하기 힘들기 때문에 얼굴을 표현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지만, 익명성을 나타내기 위해 그렇게 표현했을 수도 있다. 머리카락 또한 한 남자는 표현돼 있지만 다른 두 남자는 생략돼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세 사람의 얼굴과 손, 상의의 모습을 보면 색이 먼저 칠해진 후 검은색으로 실루엣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테두리가 그려졌는데, 경계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은 경계가 아닌 실루엣이 더 적합한 제목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만든다.

◇ ‘어느새2, 53×40.9cm, Acrylic on canvas, 2017’

‘어느새2, 53×40.9cm, Acrylic on canvas, 2017’(이하 ‘어느새2’)에서 여인은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오른발이 바닥에서 떨어져 있는 것을 보면 움직이는 동작이라는 것이 확실하다. 작가는 그림 속 모든 것을 채우지 않으면서도 그림자를 통해 이런 움직임의 여부를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어느새2, 53×40.9cm, Acrylic on canvas, 2017’. 사진=희수갤러리 제공
<‘어느새2, 53×40.9cm, Acrylic on canvas, 2017’. 사진=희수갤러리 제공>

‘외톨이’에서의 하트 폰의 하트는 작고 진한 빨간색이지만 프로이디안 슬립 같은 소심함을 표현하고 있다면, ‘어느새2’에서의 하트는 상대적으로 옅은 색을 띠지만 여인의 마음의 기본 배경인 것처럼 당당하게 표현돼 있다.

‘어느새2’에서의 하트는 여인의 날개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외톨이’에서 분리된 하트와 대비된다. 작가는 ‘좀 더 멋지게, 좀 더 자극을, 좀 더 하트를!’이라고 작가노트를 통해 밝혔는데, ‘외톨이’와 ‘어느새2’를 보면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을 그림 속에 투사해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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