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ENT 영화]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시시껄렁한 B급 애니메이션? 끝까지 보고 다시 이야기해야

발행일자 | 2018.03.18 20:15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의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夜は短し歩けよ乙女, NIGHT IS SHORT, WALK ON GIRL)’는 판타스틱 밤마실 로맨스를 담고 있는 애니메이션이다. 이 작품의 원작은 모리미 도미히코의 최고의 수작으로 꼽히는데, 일본 누적 판매 130만 부를 기록했다.

영화에 대해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이 관람할 경우 처음에는 시시껄렁한 B급 정서의 영화, B급 코드의 애니메이션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 안에 담긴 마음속 깊숙한 곳을 들여다보게 되면서 감정의 반전을 통해 급격한 공감을 할 수 있다. 끝나기 전까지 절대 단정하면 안 되는 작품이다.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스틸사진. 사진=미디어캐슬 제공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스틸사진. 사진=미디어캐슬 제공>

◇ 내면 심리를 고백하는 내레이션, 어른들을 위한 2D 애니메이션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는 검은 머리 아가씨와 선배의 사랑이야기이면서, 인간관계에서 이어지는 인연에 관한 이야기이다. 사랑을 포함한 인간관계는 각자의 스타일과 각자의 타이밍이 있다는 것을 영화는 보여주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공감하게 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 작품은 어른들을 위한 2D 애니메이션이라고 볼 수 있다. 2D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란 세대에게는 2D 애니메이션은 향수이자 애니적 감성을 자극하는 장르이다. 반면에, 3D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란 세대에게 2D 애니메이션은 과거 기술력으로 표현된 작품으로 고전적일 수도 있고 오히려 신선할 수도 있다. 각각 같이 산 시대에 대한 향수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스틸사진. 사진=미디어캐슬 제공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스틸사진. 사진=미디어캐슬 제공>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가 만약 3D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으면 어땠을까? B급 정서, B급 코드의 표현에 제약이 있었을 수 있고, 화려한 영상 속에 감성의 반전이 덜 부각됐을 수도 있다.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가 만약 실사 영화로 만들어졌으면 어땠을까? 디테일까지 완전 일본 정서의 실사 영화였으면 지금보다 더 불편했을 것이다. 미투(#MeToo)에 해당되는 성추행 장면도 있는데,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논란이 됐을 수 있다.

표현 방식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일본 실사 영화가 아니라 일본 애니메이션이라는 게 긍정적인데, 감정이입하기도 더 용이하고 감정에서 빠져나오기도 더 용이하기 때문이다.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스틸사진. 사진=미디어캐슬 제공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스틸사진. 사진=미디어캐슬 제공>

◇ 희한한 포인트에서의 공유와 공감 : 궤변! 술 마시기 내기!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는 희한한 포인트에서 공유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궤변과 술 마시기 내기에 대한 공유와 공감은 흥미롭다. 내기 중에 가장 무식한 내기는 술 마시기 내기라는 말이 있는데,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은 한 번씩은 꼭 해봤을 술 배틀의 객기 또한 추억에 대한 공감을 소환한다.

많은 사람들의 개별적인 이야기를 통해 다양성을 확보하는 스토리텔링은 처음에는 소동극처럼 느껴지게 만들지만, 산재된 이야기의 구슬이 매듭을 지으면서 강한 일관성을 확보하게 된다는 점이 주목된다.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스틸사진. 사진=미디어캐슬 제공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스틸사진. 사진=미디어캐슬 제공>

◇ 인간 내면의 고독과 외로움, 공허함과 허무주의를 인연이라는 끈으로 이어주는 대반전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는 중반 이후까지도 마니아틱한 영화처럼 여겨진다. 고백하는 용기, 솔직한 진심은 다소 어울리지 않는 정서처럼 생각될 때도 있다. 상대의 마음은 물론 솜사탕처럼 둥실대는 자신의 마음도 모르는 내면 심리의 핵심으로 점점 들어가면서 영화의 감동은 소환돼 커진다.

인간 내면의 고독과 외로움, 공허함과 허무주의를 인연이라는 끈으로 이어주는 대반전은 신선하고 감동적이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외로움이 주된 화두이겠지만, 막대한 부를 포함해 다 가진 것 같은 이백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결핍은 마음속 깊은 곳의 고독이 더 크게 작용한다. 다른 무엇으로도 채우지 못하는 공허함에 대해 공감하는 관객들은 많을 것이다.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스틸사진. 사진=미디어캐슬 제공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스틸사진. 사진=미디어캐슬 제공>

B급 정서의 영화로 생각하며 그냥 킬링타임으로 즐기다 보면 인간 내면의 고독과 외로움, 공허함과 허무주의를 인연이라는 끈으로 이해하고 어루만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감정과 느낌의 대반전은 긴 여운을 남긴다.

정말 사귀고 싶으면서도 실제 사귄다고 구체적으로 생각하면 자신이 없어서 도망가고 싶은 양가감정의 마음을 공감하게 표현한 점도 인상적이다. 양가감정은 같은 대상에 대해 서로 대립되거나 모순되는 정반대의 감정이 공존하는 상태를 뜻한다.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스틸사진. 사진=미디어캐슬 제공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스틸사진. 사진=미디어캐슬 제공>

무엇을 하고 지냈는지 궁금해지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감수성과 디테일이 강한 관객들에게 더욱 와닿을 수 있다. 뮤지컬신은 코믹하게 진행되지만, 노래의 가사는 솔직한 진심을 담고 있다는 점 또한 관객의 마음속 깊은 곳을 건드릴 수 있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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