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ENT 영화] 서울국제여성영화제(9) ‘어두운 강’ 어둡지 않은 영상으로 어두운 정서를 전달하다

발행일자 | 2018.05.22 06:57

클리오 바나드 감독의 <어두운 강(Dark River)>은 제2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SWIFF 2018) 새로운 물결 세션의 한국 프리미어(Korean Premiere) 상영작이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15년 만에 처음으로 고향 마을을 찾은 앨리스는 가족농장이 마땅히 그녀의 소유라고 생각하고 농장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려 한다.
 
영화는 영상을 어둡게 만들지 않으면서도 어두운 정서를 유지하는데, 감독은 관객에게 감정을 강요하거나 주입하기보다는 알아서 느낄 수 있게 보여준다는 점이 눈에 띈다.

‘어두운 강’ 스틸사진. 사진=서울국제여성영화제 제공
<‘어두운 강’ 스틸사진. 사진=서울국제여성영화제 제공>

◇ 어두운 정서가 영화를 관통하다
 
스펙터클한 사건, 화려한 미장센과 격한 갈등 구조에 익숙해진 관객은 서서히 진행되는 영화의 정서가 답답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어두운 강>은 영상이 전반적으로 어둡게 펼쳐지지는 않지만, 어두운 정서는 영화를 관통하고 있다.
 
감독은 관객이 앨리스에게 감정이입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안내하지 않는다. 극영화이지만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려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 적극적으로 공유하고 공감하게 만들기보다는 보여줌으로써 관객이 선택하게 만들고 있다고 여겨진다.
 
어두운 정서를 펼치면서도 영상을 어둡게 몰고 가지 않는 것 또한 감독의 보여주기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은 없다는 것처럼, 감독은 관객을 느끼게 만들기보다는 스스로 뭘 느껴야 하는지도 찾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된다.
 
<어두운 강>에서 어두운 정서를 가장 친절하게 전달하는 것은 배경음악이다. 그렇지만 배경음악 또한 계속 이어지지는 않고, 아무런 배경음악이나 음향효과 없이 펼쳐질 때도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어두운 강’ 스틸사진. 사진=서울국제여성영화제 제공
<‘어두운 강’ 스틸사진. 사진=서울국제여성영화제 제공>

◇ 여자 감독이 바라보는 여자 배역
 
영화 전반부에서 가장 역동적인 장면은 양털을 깎는 장면이다. 영화 초반에 잘 드러나지 않는 등장인물의 성향은 양털을 깎는 스타일에서 추정할 수 있다. 그렇지만, 영화가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는 그렇지 않다. 영화 후반부의 앨리스는 수동적이지도 의존적이지도 회피적이지도 않는다. 남자인 조 벨이 그런 성향을 더 가지고 있다고 보인다.
 
<어두운 강>에서 여자 감독이 그리고 있는 여자 배역은 여성적이지도 그렇다고 남성적이거나 중성적이지도 않다는 점이 주목된다. 여자 배역을 멋지게 보이도록 하려고 포장하지도 않고, 지나치게 남녀의 대결구도로 몰고 가지도 않는다.
 
여자 감독이 만든 영화라는 것을 모르고 관람할 경우 <어두운 강>은 남자 감독의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가능하다. 여자 감독이 만든 영화는 특정한 감성과 정서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추정 또한 선입견일 수 있다는 것을 <어두운 강>은 알려주고 있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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