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군의 재팬 골프 리뽀또] 신지애 슬로플레이의 허실

발행일자 | 2018.06.18 14:52
[오군의 재팬 골프 리뽀또] 신지애 슬로플레이의 허실

일본 지바현 소데가우라 컨트리클럽 신소데 코스는 신지애(30ㆍ쓰리본드)의 우승 텃밭이다. 올해도 예상이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17일 끝난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 니치레이 레이디스(총상금 8000만엔ㆍ우승상금 1440만엔)에선 준우승했지만 2014년부터 5차례 출전해 우승 3회, 준우승 1회라는 거짓말 같은 기록을 남겼다.

대회장인 신소데 코스는 페어웨이 폭이 좁고 러프가 길어 고도의 정확도를 요한다.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을 만큼 까다로운 코스여서 좀처럼 언더파 스코어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집중력과 정확도가 발군인 신지애와는 천상의 궁합을 뽐내왔다. 5년간의 성적표가 그것을 증명한다.

니치레이 레이디스와 신소데 코스가 신지애에게 영광과 환희만 안긴 건 아니다. 본격적으로 JLPGA 투어 무대에 뛰어든 2014년부터 줄곧 구설수에 오른 슬로플레이가 기자들의 보이지 않는 담합으로 이어진 곳이기도 하다. 2016년 니치레이 레이디스 최종 3라운드 가쓰 미나미(20ㆍ일본)와의 챔피언 조 플레이가 발단이다.



당시 여고생 아마추어였던 가쓰는 2014년 KKT배 반테린 레이디스 오픈에서 JLPGA 투어 최연소(15세 293일) 우승을 달성한 기대주다. 스타 부재로 골머리를 앓던 JLPGA로선 혜성처럼 나타난 흥행카드였다.

△2016년 일본 이바라키현에서 만난 신지애. (사진=오상민)
<△2016년 일본 이바라키현에서 만난 신지애. (사진=오상민) >

하지만 2라운드까지 선두였던 가쓰는 마지막 날 1번홀(파5)에서 버디를 잡고도 신지애에게 역전 우승을 허용했다. 경기 중반부터 연속 보기를 범하며 자멸한 것이다. 현지 기자들은 신지애의 슬로플레이로 인해 가쓰의 리듬감이 깨졌다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평소 신지애의 수준 높은 플레이와 놀라운 성실성에 감탄하던 그들이다. 하지만 일본선수들과의 경쟁에서 얄미울 정도로 차곡차곡 승 수를 쌓아올린 신지애의 모습에서 위기감을 느낀 걸까. 황금세대 기수 가쓰의 눈물을 지켜보며 숨겨왔던 본심을 드러냈을 지도 모르겠다.

현지 기자들의 변심은 유도질문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둘째 날 경기를 마친 가쓰가 프레스룸을 찾았을 때 기다렸다는 듯 신지애의 슬로플레이에 대한 유도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가쓰는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라며 웃음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이후에도 일본 기자들의 유도 질문은 계속됐다. 신지애와 같은 조 플레이를 한 선수에게는 ‘신지애의 슬로플레이로 힘들지 않았냐’는 질문이 빠지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공개 석상에서 신지애의 슬로플레이에 불만을 털어놓은 선수는 없었다.

문제는 지난해 8월 열린 니토리 레이디스 골프 토너먼트였다. 경고를 받고도 우승을 차지한 신지애를 향해 일본 언론의 집중 사격이 시작됐다. 이번에는 맹렬했다. 특히 타블로이드판 석간신문 닛칸 겐다이(日刊現代)는 확신범(確信犯)이라며 비난 수위를 높였다.

△2016년 니치레이 레이디스에서 3연패를 달성한 신지애. (사진=오상민)
<△2016년 니치레이 레이디스에서 3연패를 달성한 신지애. (사진=오상민) >

사실 일본에는 신지애 못지않은 늑장플레이어가 많다. 2016년 니치레이 레이디스 최종 라운드에서 신지애에게 져 준우승한 가쓰 역시 플레이 속도가 빠르진 않았다. 중요한 순간 압박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실수를 연발한 것이 결정적 패인이다.

신지애의 슬로플레이를 두둔하고 싶진 않다. 편파적일 만큼 신지애 저격에 혈안인 일부 일본 언론의 비난 수위에 문제점이 있음을 지적하고 싶다. 또 외신에 기댈 수밖에 없는 국내 골프팬들에게 신지애 슬로플레이의 허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을 뿐이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통산 9승이자 한때 세계랭킹 1위 미야자토 아이(33ㆍ일본)를 영웅으로 둔갑시킨 일본 언론이다. 미야자토를 둘러싼 온갖 스캔들 속에서도 한없는 아량을 베풀던 그들이 신지애의 미묘한 슬로플레이엔 범죄자로 몰아넣었다.

중학교 3학년 때 교통사고로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기적처럼 세계정상에 우뚝 선 신지애다. LPGA 투어 11승 포함 전 세계에서 51승을 휩쓴 그는 한ㆍ미ㆍ일 3국 투어 통합 상금여왕까지 노린다. 그들의 영웅 미야자토와는 차원이 다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언론과 골프팬들은 진정한 영웅 신지애에 대해 한없이 무관심하다.

필자소개 / 오상민

골프·스포츠 칼럼니스트(ohsm31@yahoo.co.jp). 일본 데일리사 한국지사장 겸 일본 골프전문지 월간 ‘슈퍼골프’의 한국어판 발행인·편집장 출신이다. 주로 일본 현지 골프업계 및 대회장을 취재한다. 일본 가압골프추진기구에서 골프 전문 트레이너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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