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군의 재팬 골프 리뽀또] 캐디와 함께 우승컵을

발행일자 | 2018.08.20 15:56
[오군의 재팬 골프 리뽀또] 캐디와 함께 우승컵을

잊지 못할 시상식이다. 1년 전 이케다 유타(33·일본)의 일본골프투어기구(JGTO) 통산 17번째 우승 세리머니는 메마른 감성에 쏟아진 단비였다. “저의 캐디를 소개합니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그래서 더 놀랐던 이케다의 공개 우승 인터뷰는 지금도 가슴속 깊은 곳 울림으로 남아 있다.

매년 8월 말이면 후쿠오카 서부 이토시마시(糸島市)는 축제 분위기로 술렁인다. 늦여름 록페스티벌을 즐기기 위해 게야(芥屋)골프클럽에 몰려드는 사람들 때문이다. 올해로 46년째 후쿠오카의 늦여름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는 라이잡(RIZAP) KBC 오거스타 골프 토너먼트(총상금 1억엔·우승상금 2000만엔)가 그 화려한 무대다.

골프대회에 록페스티벌을 접목시킨 이 대회는 후쿠오카 지역민의 큰 자랑이다. 골프를 즐기지 않는 사람도 이 대회에 자긍심을 가지고 여행을 권할 만큼 골프와 지역축제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모범적 사례다. 골퍼와 비(非) 골퍼가 따로 없고, 세대 간 갈등도 존재하지 않는다. 게야골프클럽의 광활한 대지 위에 펼쳐지는 골프와 음악ㆍ댄스의 향연에 몸과 마음을 내려놓을 뿐이다.



지난해 축제의 대미는 이케다가 장식했다. 2016년 JGTO 상금왕이자 이 대회에서 세 차례나 우승한 이케다는 하우스 캐디와 콤비를 이뤄 첫 우승을 따냈다. 이케다의 캐디로서 대회 기간 내내 주목받은 주인공은 게야골프클럽 소속 5년차 야마자키 아리사(23·일본·女)다.

△JGTO 통산 19승을 달성한 이케다 유타. 2016년엔 상금왕까지 오른 일본의 간판스타다. (사진=오상민)
<△JGTO 통산 19승을 달성한 이케다 유타. 2016년엔 상금왕까지 오른 일본의 간판스타다. (사진=오상민) >

두 사람의 첫 만남은 지난해 3월에 이루어졌다. 이케다는 게야골프클럽에서 시즌 준비를 하며 KBC 오거스타의 콤비 캐디를 찾고 있었다. 당시 이케다의 백을 맡은 캐디가 야마자키였다. 야마자키 외에도 2명의 후보를 두고 고민하던 이케다는 프로대회 경험이 전무한 야마자키를 깜짝 캐스팅했다.

사실 이케다는 오랫동안 전속 캐디를 두고 있었다. 프로 데뷔 후 무려 14승을 함께한 후쿠다 히사시(43·일본)다. 하지만 2016년 KBC 오거스타를 끝으로 계약이 해지되면서 전속 캐디 없이 하우스 캐디와 콤비를 이루는 일이 많아졌다.

2016 리우올림픽 출전 이후 ‘스스로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숙제를 떠안은 뒤 내린 결정이다. 베테랑 여성 캐디 사카이 메구미(40·일본)는 이케다의 통산 15승과 16승을 도우며 상금왕까지 함께했지만 끊임없는 변화와 도전을 이어간다는 이케다의 의지엔 변함이 없는 듯하다.

이케다는 KBC 오거스타 첫날 경기를 앞두고 야마자키에게 ‘틀려도 좋으니 보고 느낀 것을 자신 있게 말해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경기 중에는 “퍼팅 라인 잘못 읽으면 감봉이야”라며 농담을 건네는가 하면 버디 후에는 ‘나이스버디’ 대신 ‘나이스캐디’를 외치며 야마자키의 사기를 북돋아주곤 했다. 체력도 집중력도 잃어가던 경기 종반에는 수동카트를 끌며 힘겹게 언덕을 오르던 야마자키의 뒤에서 슬그머니 백을 밀어 올려주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되기도 했다.

△올 시즌은 7개 대회에 출전해 톱10에 두 차례 진입했을 뿐 아직 우승은 추가하지 못했다. (사진=오상민)
<△올 시즌은 7개 대회에 출전해 톱10에 두 차례 진입했을 뿐 아직 우승은 추가하지 못했다. (사진=오상민) >

경기 종료 후 이케다의 이름은 리더보드 가장 높은 곳에 있었다. 우승이다. 그는 공개 우승 인터뷰에서 야마자키를 불러 무대 위에 올렸고, 자신의 우승을 도운 사람이라며 추켜세웠다. 그리고 수줍은 얼굴로 고개를 들지 못하던 야마자키와 우승 트로피를 함께 들어 한 편의 영화 같은 시상식을 추억의 한 페이지에 남겼다.

축구는 모든 경기 벤치에 앉아있어도 팀이 우승하면 똑같이 시상대에 오른다. 하지만 골프에서 캐디는 매일 4시간 이상 나흘 내내 함께 플레이를 해도 상을 받지 못한다. 부모와 후원사, 대회 관계자 등을 일일이 호명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우승 인터뷰에서도 함께 고생한 캐디의 이름은 듣기 어렵다. 상금왕 출신 이케다 역시 프로대회 경험이 없던 하우스 캐디에게 그렇게까지 마음을 쓸 필요는 없었다.

“누구보다 노력하는 모습을 봤다. 그 열정과 노력에 나 역시 힘을 얻었다. 그에 대한 답례였다.” 쾌남 이케다다운 답변이다. 스스로에게 지나칠 만큼 모질고 냉철했던 그였다. 하지만 타인에게 한없이 관대한 모습에선 사회적 약자에 대한 속 깊은 배려가 보인다. 쉽게 잊히지 않을 명장면이다.

필자소개 / 오상민

골프·스포츠 칼럼니스트(ohsm31@yahoo.co.jp). 일본 데일리사 한국지사장 겸 일본 골프전문지 월간 ‘슈퍼골프’의 한국어판 발행인·편집장 출신이다. 주로 일본 현지 골프업계 및 대회장을 취재한다. 일본 가압골프추진기구에서 골프 전문 트레이너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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