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향신문에 실린 서울대학교 김영민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추석이란 무엇인가” 되물어라’라는 글이 지금도 SNS를 중심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김 교수는 “추석에 만나는 웃어른들이 곤란한 질문을 집요하게 한다면, 그들이 평소에 직면하지 않았을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게 좋다”고 조언한다.
“당숙이 “너 언제 취직할 거니”라고 물으면, “곧 하겠죠, 뭐”라고 얼버무리지 말고 “당숙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 “추석 때라서 일부러 물어보는 거란다”라고 하거든, “추석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 엄마가 “너 대체 결혼할 거니 말 거니”라고 물으면, “결혼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 거기에 대해 “얘가 미쳤나”라고 말하면, “제정신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
김 교수는 칼럼에서 “정체성의 질문은 위기 상황에서 제기되는 것”이라면서 “이러한 대화들은 신성한 주문이 되어 해묵은 잡귀와 같은 오지랖들을 내쫓고 당신에게 자유를 선사할 것이다”라며 글을 마무리한다.
칼럼을 읽다보니 평소 시승기를 읽다가 한숨을 쉬던 때가 생각났다. 시승기를 작성한 이들은 대부분 자동차 출입처에 막 입문했거나, 아무리 써도 글 솜씨가 늘지 않는 기자들의 글이다.
이들의 문제점은 과연 무엇일까? ‘맛 칼럼니스트’들의 음식 평가와 비교해 설명해보자.
문제의 시승기는 대부분 이렇게 시작한다.
▲차에 앉았다
-당연히 차에 앉아야 시승을 할 수 있다. 쓸 필요가 없는 말이다. 어떤 맛 칼럼니스트도 “식탁에 앉았다”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시동을 걸었다
-당연히 시동을 걸어야 차가 움직인다. 어떤 음식 평에서도 “숟가락을 들었다”라는 표현을 볼 수 없다.
▲가속 페달을 밟았다
-당연한 과정이므로 쓰지 않아도 된다. “음식을 목에 넘겼다”와도 같은 ‘사족’에 불과하다.
시승기에는 이런 표현도 있다.
▲“고무줄처럼 튀어나갔다”
-이런 애매한 표현은 요즘처럼 눈높이가 높아진 독자들의 욕구를 맞출 수 없다. “끝내주게 맛있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시속 100㎞까지 금방 가속됐다
-요즘 경차들도 시속 100㎞까지 금방 가속된다. “눈코 뜰 새 없이 후다닥 먹었다” 같은 표현이다.
그럼 시승기는 어떻게 써야할까?
▲차의 성격에 대한 설명이 들어있을 것
-이 차가 어떤 차이며, 어떤 세그먼트에서 어떤 차와 경쟁하는지를 언급해야 한다. 그래야 차의 성격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구형과 비교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언급할 것
-완전히 새로운 세그먼트에 진입한 차가 아니라면 전 세대 모델이 있기 마련이다. 구형 모델은 어땠고, 신형은 뭐가 달라졌다는 걸 언급할 것.
▲경쟁 모델과 비교해 장단점이 무엇인지 밝힐 것
-이건 조금 어려울 수 있다. 다른 차종을 다 타봐야 하는 건데, 모른다면 주변인들의 평가라도 언급해야 한다. 주위의 자동차 전문가들에게 물어보면 대체로 공통되는 의견이 있게 마련이다. 그걸 언급하면 된다.
▲가격 역시 분석해서
-맨 마지막에 OOO의 가격은 얼마. 이렇게 끝내는 시승기가 굉장히 많다(대체로 일간지). 그건 그냥 홍보자료로 보일 수 있다. 구형에 비해 얼마 올랐고, 경쟁차와는 어떻게 차이가 나며 적당한 가격인지 분석해서 언급해야 정확한 정보가 된다.
국내 자동차 언론의 역사가 선진국보다 짧다보니 함량 미달의 시승기가 넘쳐나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시승기를 대충 써도 된다고 생각하는 기자들이 많다는 것. 특히 전문지보다는 일간지 기자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생각들이 쌓이고 쌓이면 부실한 기사로 이어지게 되고 ‘기레기’라는 소리까지 듣게 된다. ‘기레기’ 소리 들었다고 “기레기란 무엇인가”라고 답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나.
나는 오늘도 나지막이 되뇌어 본다. “시승기란 무엇인가?”
임의택 기자 (ferrari5@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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