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ENT 무용] 시댄스 난민 특집(7) ‘나의 배낭’ 공포감을 전달하지 않고 불안감을 전달한 이유는?

발행일자 | 2018.10.17 00:02

플로랑 마우쿠 안무, 마호 스튜디오의 <나의 배낭(Mon sac au dos (My Backpack))>이 10월 16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됐다. 국제무용협회(CID-UNESCO) 한국본부가 주최한, 제21회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2018, 시댄스 2018) 난민 특집의 일곱 번째 작품이다.
 
콩고 대학살에서 탈출한 플로랑은 항상 배낭을 갖고 다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배낭은 그가 가졌던 불안을 극복하는, 새로운 만남과 이야기를 의미하고 상징한다. 그렇지만 <나의 배낭>은 공연 내내 불안감을 형성하는데, 공포감을 전달하지 않고 불안감을 전달한 이유는 무엇일까?

‘나의 배낭’. 사진=Eric Legrand 제공
<‘나의 배낭’. 사진=Eric Legrand 제공>

◇ 공연 시작 전부터 조성된 불안감! 안무가는 본인의 과거 정서 속으로 관객들을 이끌고 간다
 
공연 시작 전부터 음산하게 들리는 음악, 점멸을 반복하는 넘어져 있는 모니터, 흔들리는 조명, 통신을 하는 것 같은 목소리가 관객들을 맞이한다. 맞이한다기보다는 의도적으로 불편하고 불안하게 만든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안무가는 관객들에게 ‘당신들이 방문한 공간은 이런 곳이다’라고 말해주는 것 같기도 하고, ‘내가 과거에 힘들었을 때의 마음과 정서 속으로 그대들을 데리고 갑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조명은 공간 창출과 함께 불안한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종교의식을 연상하게 만드는 음악과 안무가 미디어아트처럼 펼쳐진다는 점이 흥미롭다. 공연에는 많은 대사가 나오는데, 자막을 제공하지 않은 것은 불친절일 수도 있지만 뉘앙스만으로 파악하라,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고 관객을 믿는 것일 수도 있다.

‘나의 배낭’. 사진=LDC 제공
<‘나의 배낭’. 사진=LDC 제공>

◇ 공포감을 전달하지 않고 불안감을 전달한 이유는?
 
불안감과 공포감은 비슷한 감정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로는 다른 디테일과 성격을 가진 감정이다. 불안감은 어떤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아서 마음이 편하지 않고 조마조마한 느낌이고, 공포감은 특정한 사물이나 사람에 대해 극렬하면서도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두려움이다. 즉, 불안감은 일어나기 전의 감정이고, 공포감은 실제로 마주쳤을 때의 감정이다.
 
<나의 배낭>은 음악, 조명, 모니터, 안무 등을 통해 공연 내내 불안감을 조성한다. 그런데, 더 강렬한 공포감을 전달하지 않고 불안감을 전달한 이유는 무엇일까? 만약 공포감을 전달하려고 했으면 더 자극적이고 극한적인 상황이 펼쳐졌을 것이다. 감정이입한 관객들은 더욱 두려웠을 것인데 그렇지만 현실이 아니기 때문에 그 공포감으로부터 관객은 상대적으로 쉽게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다.
 
불안감은 플로랑이 과거에 느꼈던 감정임과 동시에 현대를 사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느끼는 감정이다. 잠재된 위험요소에 대한 불안감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공통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안감은 공포감보다 순간 강도는 약하지만, 관객에게 더욱 깊숙이 침투될 수 있는 감정인 것이다.
 
음악이나 조명, 안무가 공포감을 준다면 결정적인 순간에 관객은 눈을 감고 귀를 막아 충격을 피할 수 있다. 그렇지만, 불안감은 어떤 순간을 피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할 정도로 연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결국 다 받아들이게 되기 때문에 지속시간과 총량의 측면에서 볼 때 더욱 강력하게 관객을 사로잡을 수 있다. <나의 배낭>은 그런 미묘한 차이를 잘 선택해 여운을 남긴 작품으로 사료된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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