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ENT 영화] 서울독립영화제2018(13) ‘경치 좋은 자리’(감독 박중권, 임혜령) 잊혀져가는 자리에 익숙해지는 우리

발행일자 | 2018.11.17 07:46

박중권, 임혜령 감독의 <경치 좋은 자리>는 제44회 서울독립영화제(SIFF2018, 서독제2018) 새로운선택 부문에서 상영되는 장편 영화이다. 댐의 수위 조절로 인해 곧 물속에 잠기게 될 엄마의 묘지를 여자는 수습해야 한다. 산사람의 자리뿐만 아니라 죽은 자도 자리를 옮겨야 하는 현실에 엄마의 자리를 정리해야만 한다.
 
잊힘과 익숙해짐은 정말 다른 것 같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영화는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댐 사업으로 인한 수몰로 원래 있던 삶의 터전을 떠난 사람들에게 세상은 별 관심이 없는데, 처음부터 세상은 그들에게 관심이 없었을 수도 있다. 세상은 댐 사업에만 관심이 있었지, 댐 사업에 관련된 주민 자체에 대한 관심은 없었을 수도 있는 것이다.

‘경치 좋은 자리’ 스틸사진. 사진=서울독립영화제(SIFF) 제공
<‘경치 좋은 자리’ 스틸사진. 사진=서울독립영화제(SIFF) 제공>

◇ 세상이 더 이상 관심을 주지 않는 것일까? 세상은 원래 관심을 주지 않았던 것일까?
 
감독은 ‘잊혀가는 자리에 익숙해지는 우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라고 연출의도를 밝힌 바 있다. ‘산사람의 자리와 죽은 자의 자리는 어디이며 그 자리는 누가 정하는 것일까?’에 대한 화두를 던져 관객들이 곰곰이 생각할 수 있게 만든다.
 
<경치 좋은 자리>에서는 거대한 댐 사업으로 인해 살던 사람들은 삶의 터전을 떠나고, 죽은 이들의 자리도 옮겨야 한다. 원래 있던 자리를 떠난 사람들에게 세상은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엄밀하게 따지고 보면 세상은 원래 그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었다.
 
댐 사업에만 관심이 있었고, 댐 사업을 위해서 이전 조치가 필요했기 때문에 잠깐 그들에게 관심을 가졌던 것이다. 댐 사업 때문에 그들에게 보였던 관심이지, 그들 자체에게 줬던 관심이 아닌 것이다. 세상이 더 이상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게 아니라 원래 관심 없었을 때로 돌아간 것일 수도 있다
 
정말 잊혀가는 건 그들이 살았던 삶의 터전을 그들이 잊는 것일 수 있다. 수몰 전 삶의 터전은 그들에게 의미 있었던 공간이고, 현재도 의미 있는 공간이어야 하지만 점점 그렇지 않게 되는 모습을 영화는 담고 있다.

‘경치 좋은 자리’ 스틸사진. 사진=서울독립영화제(SIFF) 제공
<‘경치 좋은 자리’ 스틸사진. 사진=서울독립영화제(SIFF) 제공>

◇ 여기가 마지막인 것 같아도 마지막이 아니다, 추락은 아직도 계속된다
 
어린 시절 집이 수몰되면서 삶의 터전을 잃게 되면서 생긴 멸절의 고통이 가장 큰 것 같지만, 보상금까지 잃게 되면서 한 가정은 예측할 수 없는 불행의 소용돌이에 휩싸인다.
 
영화는 빠른 전개를 하지 않고, 서서히 장소를 이동하며 감정 또한 관객에게 서서히 스며들게 만든다. 속도감이 느껴지는 추락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더 이상의 추락은 없을 것 같고 여기가 끝인 것 같아도 끝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추락은 아직도 진행 중인 것으로 보인다.
 
어디까지 떨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의 두려움, 언제까지 견뎌야 하는지 모르는 상황에서의 답답함, 희망이 눈앞에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의 막막함의 정서가 영화 속에 담겨 있는데,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돌아가야만 하는 허무함과 허탈감에 마주한 주인공은 회피를 하지 않고 직면해 정면돌파하기를 선택한다.
 
지나고 나서 생각하면 크게 어려운 방법도 아닌데, 그 당시에는 잘 생각나지 않거나 실행할 엄두를 내지 못했던 일이 꽤 있을 수 있다는 게 <경치 좋은 자리>를 보면서 떠오른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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