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 기자님, 이번에 페라리 트랙 익스피리언스에 초대하려고 하는데, 오실 수 있죠?”
지난달 어느 날, 갑자기 받은 전화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페라리로 트랙을 달려볼 흔치 않은 기회 아닌가. 단 4명만 초대하는 특별한 시승행사라는 말에 더욱 귀가 솔깃해졌다.
그동안 트랙과 공도에서 페라리의 여러 모델들을 시승해봤지만, 인제스피디움을 무대로 한 건 지난해 GTC4 루쏘 T이후 이번이 두 번째다. 이번엔 두 종류의 차가 마련됐다. 488 스파이더와 포르토피노 두 가지 모델이다.
이 가운데 포르토피노는 아쉽게도 트랙에서 체험해볼 수 없었고, 공도에서만 주행이 가능했다. 페라리 수입사인 FMK의 관계자는 “본사의 방침”이라고만 설명해줬다.
두 차 모두 90도 뱅크각의 V8 4.0ℓ 엔진을 얹었지만 출력과 최고속도, 차의 성격 등이 조금씩 다르다.
포르토피노는 최고출력이 600마력, 488 스파이더는 670마력이고 최고속도는 488 스파이더가 325㎞/h, 포르토피노가 320㎞/h다. 성능만 보자면 포르토피노보다는 488 스파이더가 더 돋보인다.
한데 차의 성격은 좀 다르다. 488 스파이더는 308GTB의 뒤를 잇는 스포츠카이고, 포르토피노는 캘리포니아 T의 뒤를 잇는 2+2의 컨버터블 GT다.
포르토피노를 트랙에서 탈 수 없는 건 아쉬웠지만, 제원표를 자세히 살펴보니 어쩌면 이 차의 성격을 제대로 느끼기에는 공도가 훨씬 낫다는 생각이다. 앞좌석 뒤에 보조석 개념의 +2 좌석을 마련한 GT 모델의 성격에 어울리는 시승이다.
프로토피노의 성격은 날렵한 디자인과 눈에 띄는 경량화, 놀라운 안락함으로 요약된다.
차체는 이탈리아 항구도시이자 관광명소의 이름에서 따온 차답게, 우아함과 세련미가 철철 넘친다. 헤드램프는 다른 페라리 모델과 살짝 비슷하지만 좀 더 부메랑 모양에 가깝다. 또한 라디에이터 그릴이 범퍼 하단부를 거의 차지하는 다른 페라리 모델들과 달리 모서리를 살짝 말아 올리는 한편, 그 좌우 쪽에 브레이크를 냉각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에어 인테이크를 배치했다. 차체 측면에는 엔진 열을 배출시키는 숨구멍을 깊은 칼자국으로 만들었다. 페라리니까 가능한 스타일이다.
페라리의 실내는 경쟁 브랜드인 포르쉐, 람보르기니에 비해 확실히 감성적이다. 포르쉐, 람보르기니가 ‘공대 오빠’의 작품이라면, 페라리는 ‘미대 오빠’가 디자인한 느낌이랄까.
프로토피노의 공차중량은 1664㎏이고, 선택사양을 장착하면 1705㎏이다. 전작인 캘리포니아 T보다 경량화된 차체는 시승을 하면서도 오감으로 느껴진다. 최고출력까지 뽑아내지 않더라도 가볍게 툭툭 치고 나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여기에 과거 다루기 까다로웠던 페라리 모델의 전통과 이별하면서 여성들도 다루기 쉽도록 개선한 점도 돋보인다.
속도가 빨라질수록 엔진 사운드도 커지고 내 심장 박동수도 빨라진다. 그러면서 귓가에는 ‘퀸’의 ‘Don’t stop me now’가 맴돈다. 최대토크는 3000~5250rpm 구간에서 플랫 토크를 보이는데, 실제로는 그 이상의 회전수에서도 힘이 넘친다.
엔진을 미드십에 장착한 488 스파이더의 앞뒤 무게배분이 41.5:58.5인 반면, 엔진이 앞에 있는 포르토피노는 46:54로 이뤄진다. 설계 자체가 트랙보다는 일반도로에 맞춰졌음을 알 수 있다. 프로토피노의 앞뒤 무게배분 비율은 GTC4 루쏘 T와 정확히 일치한다.
프로토피노에는 페라리 라인업 최초로 3세대 전자식 차동제한장치(E-Diff3)와 F1 트랙션 컨트롤이 적용돼 한계상황에서 그립 능력과 조절 능력을 높인다. 페라리 GT카 최초로 장착한 전자식 파워스티어링은 전자식 차동제한장치와 짝을 이뤄 반응성을 향상시켰다. 여기에 듀얼 코일 타입 자기유동식 서스펜션(SCM-E)은 주행안전성을 지키면서도 승차감까지 보강해준다.
페라리 공식 홈페이지에는 대시보드 컬러부터 시트 로고 색상, 브레이크 캘리퍼 색상과 림(휠) 디자인과 컬러 등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조합해볼 수 있다. 자신이 선택한 옵션과 같은 차가 도로에 굴러다닐 확률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시승차에는 앞 245/35ZR20, 뒤 285/35ZR20 사이즈의 미쉐린 타이어가 장착됐다. 미쉐린 말고 피렐리가 장착되기도 하는데, 아쉽게도 타이어의 선택권은 없다.
페라리가 경쟁 브랜드보다 결정적으로 앞서는 건 역시 디자인이다. 톱을 닫으면 감쪽같이 쿠페 같은데, 톱을 열면 멋진 컨버터블로 변신한다. 이렇게 접이식 하드톱을 장착할 경우 톱을 수납하는 뒤쪽이 뚱뚱해진다던지 하는 어색한 모습이 나오기도 하는데, 포르토피노 비율은 완벽에 가깝다.
시속 40㎞ 정도로 속도를 낮추면 톱을 활짝 열어젖힐 수 있는데, 역시 늦가을 고속주행은 좀 무리인가보다. 강한 바람이 들이치니 오래 달리기는 힘들다. 선선한 봄이나 가을에는 타면 제격이겠다.
포르토피노의 인증 연비는 도심 7.3, 고속도로 9.5, 복합 8.1㎞/ℓ로, 시판 중인 페라리 모델 중 가장 뛰어나다. 이 정도면 데일리카로 타고 다녀도 크게 부담스럽지 않다.
이날 시승에서 488 스파이더는 트랙주행을 즐거움을 느끼게 해줬다면, 포르토피노는 일상생활에 다가선 페라리의 현주소를 일깨워줬다. 결국 페라리를 갖고 싶다면 둘 다 소유하라는 것 아닐까. 포르토피노의 국내 시판 가격은 2억원 후반대에서 시작하며 옵션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평점(별 다섯 개 만점. ☆는 1/2)
익스테리어 ★★★★★
인테리어 ★★★★★
파워트레인 ★★★★★
서스펜션 ★★★★★
정숙성 ★★★★
운전재미 ★★★★★
연비 ★★★★
값 대비 가치 ★★★★☆
총평: 일상생활 속으로 다가온 슈퍼카. 다루기 쉬운 것도 매력적이다.
임의택 기자 (ferrari5@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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