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ENT 영화] ‘빠삐용’ 학습된 무기력, 반복된 무력감! 희망이 없는 곳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발행일자 | 2019.02.16 00:26

마이클 노어 감독의 <빠삐용(Papillon)>은 전 세계 30개국 1,300만 부 베스트셀러 원작, 앙리 샤리에르의 실화를 바탕으로 새롭게 각색된 영화이다. 살인 누명을 쓰고 종신형을 선고받은 빠삐(찰리 허냄 분)는 죽어서야 나올 수 있다는 악명 높은 프랑스령 기아나 교도소에 수감된다.
 
희망이 없는 곳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학습된 무기력, 반복된 무력감을 극복해가는 빠삐의 굴복 당하지 않는 의지와 함께 끝까지 변하지 않는 의리는, 특히 우리나라 관객들에게 많은 위로를 선사할 것이다.

‘빠삐용’ 스틸사진. 사진=풍경소리 제공
<‘빠삐용’ 스틸사진. 사진=풍경소리 제공>

◇ 빠삐용이 이 시대에 전하는 메시지는? 영화 시작부터 관객의 마음을 가둔다
 
카메라가 작은 문을 통해 흐릿한 형체의 빠삐를 바라보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점점 클로즈업되며 그 작은 문으로 빠삐가 고개를 내밀어 어딘가를 바라본 후, 영화 타이틀이 바로 올라간다. 영화의 정서를 함축적으로 표현해 시작부터 관객의 마음을 가둔 시간이었다.
 
억울한 누명을 쓴다면? 그리고 종신형에 처해진다면? 누명을 뒤집어쓴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항소가 아니라 탈옥이라는 대사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살인죄를 뒤집어쓴 것은 매우 억울하지만, 빠삐가 금고털이범이었다는 점은 관객의 마음에 갈등을 줄 수 있는데 영화 시작할 때부터 관객의 마음을 밀착해 이끌고 간다는 점이 주목된다.

‘빠삐용’ 스틸사진. 사진=풍경소리 제공
<‘빠삐용’ 스틸사진. 사진=풍경소리 제공>

처음에는 무조건 빠삐에게 감정이입하기에 불편한 점이 없지 않지만 관객은 점점 빠삐와 같은 마음을 가지게 된다. 공감할수록 답답해지고, 감정이입할수록 아픔이 느껴진다. 지금 우리가 사는 곳은 기아나 교도소가 아니지만, 이 시대는 우리 모두를 각자 마음의 감옥에 가두기 때문에 빠삐의 이야기, 드가(라미 말렉 분)의 이야기, 네네트(이브 휴슨 분)의 이야기가 남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 학습된 무기력, 반복된 무력감! 희망이 없는 곳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희망이 없는 곳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빠삐가 드가에게 낙관주의자라고 말한다. 영화 속에서 직접적으로 표현되지는 않지만 빠삐는 긍정주의자라고 볼 수 있다. 막연히 잘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드가와 상황을 인정하고 행동에 옮기는 빠삐가 서로 시너지를 이룬다는 점을, 영화를 보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빠삐용’ 스틸사진. 사진=풍경소리 제공
<‘빠삐용’ 스틸사진. 사진=풍경소리 제공>

<빠삐용>은 탈옥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빠삐의 인생 전반에 관심을 가진다. 전체적인 인생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에 빠삐가 감옥에서 한 행동과 노력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다.
 
기아나 교도소에서는 죄수를 사람 취급하지 않는다. 죄수를 죽이는 것 또한 망설임 없이 이뤄진다. 그런데 탈옥을 시도하다 잡혔을 때 바로 사형에 처하지 않고 독방에 2년 넣고, 재탈옥을 했을 때는 독방에 5년 넣은 후 악마의 섬으로 유배를 보낸다. 나름의 기준이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기아나 교도소가 사람을 다루는 악랄함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빠삐용’ 스틸사진. 사진=풍경소리 제공
<‘빠삐용’ 스틸사진. 사진=풍경소리 제공>

탈옥을 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죄수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 학습된 무력감)을 주입하는 것이다. 반복된 무기력(반복된 무력감)에 의해 학습된 무기력이 생긴다.
 
학습된 무기력은 피할 수 없거나 극복할 수 없는 환경에 반복적으로 노출된 경험으로 인해 실제로 자신의 능력으로 피할 수 있거나 극복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그러한 상황에서 자포자기하는 것을 뜻한다.

‘빠삐용’ 스틸사진. 사진=풍경소리 제공
<‘빠삐용’ 스틸사진. 사진=풍경소리 제공>

<빠삐용>을 보면서 빠삐에게 몰입한 관객 또한 학습된 무기력에 빠질 수 있는데, 감정이입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관객 각자의 삶 속에서 학습된 무기력을 경험했고 경험하고 있기 때문에 빠삐의 무기력이 자신의 무기력을 활성화시키기 때문이기도 하다.
 
상상일까? 환각일까? 영화를 통해 보이는 빠삐의 모습, 자신도 모르게 미쳐가는 과정에 몰입해 있으면 관객은 마음 아파지는데 그치지 않고 갑작스러운 편두통이 생길 수도 있다. 남의 금고문을 손쉽게 열었던 빠삐는 자신을 가둔 감옥문을 열지는 못하는데, 답답함에 관객은 머리가 더 아플 수 있다.

‘빠삐용’ 스틸사진. 사진=풍경소리 제공
<‘빠삐용’ 스틸사진. 사진=풍경소리 제공>

◇ 굴복 당하지 않는 의지! 변하지 않는 의리!
 
굴복 당하지 않는 의지! 변하지 않는 의리! 이 두 가지를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체력이라는 것, 정신력을 확고하게 뒷받침해주는 것이 체력이라는 것을 <빠삐용>은 보여준다.
 
빠삐가 보여준, 굴복 당하지 않는 의지와 변하지 않는 의리는 우리나라 관객들이 추구하는 대표적인 가치에 속한다. <빠삐용>을 보면서 우리가 빠삐를 응원하게 되는 이유는 두 번의 탈출 성공과 여덟 번의 실패에도 계속 도전했다는 의지 이외에, 드가에 대해 변하지 않는 의리를 보여줬다는 것이다. 나만 살겠다고 다른 사람을 버리지는 않는 빠삐를 보며 관객들은 마음의 위로를 받을 것이다.

‘빠삐용’ 스틸사진. 사진=풍경소리 제공
<‘빠삐용’ 스틸사진. 사진=풍경소리 제공>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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