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ENT 연극] ‘대학살의 신’(1) 부부의 마음이 정말로 상하는 이유는? 무조건적으로 아들을 편들지만...

발행일자 | 2019.02.21 14:18

신시컴퍼니 제작, 야스미나 레자 원작, 김태훈 연출, 연극 <대학살의 신>이 2월 16일부터 3월 24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 중이다. 이번 공연은 2년 전 공연의 출연배우인 남경주, 최정원, 이지하, 송일국이 그대로 무대에 올라 재공연의 묘미와 깊은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부부 사이에 정말로 마음을 상하게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조건적으로 아들을 편들면서도, 남편을 편들거나 아내를 편들지는 않는 모습을 <대학살의 신>의 등장인물들은 보여준다. 가장 내 편일 것 같은 사람이 내 편이 아니라고 느낄 때의 상실감과 배신감, 분노, 공허함과 허전함에 대해 공감하는 관객들은 많을 것이다. 본지는 2회에 걸쳐 리뷰를 공유할 예정이다.

‘대학살의 신’ 공연사진.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대학살의 신’ 공연사진.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 ‘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한정된 공간은, 정형화되고 고정화된 어른 네 명의 경직되고 좁은 내면을 표현하는 듯하다
 
<대학살의 신>은 ‘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가식적으로 볼 수도 있지만, 논리적인 척, 교양 있는 척, 똑똑한 척, 고상한 척, 평화주의자인 척하지 않고는 자신을 그대로 내보일 수 없는 네 명의 모습은, 불쌍하게 보이기도 한다. 진정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면 굳이 ‘척’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연극은 한정된 공간에서 등퇴장이 없이 진행된다. 변화가 없는 한정된 공간은, 정형화되고 고정화된 어른 네 명의 경직되고 좁은 내면과 잘 어울린다. ‘대학살’이라는 살벌하고 섬뜩한 단어 때문에 관람을 주저하는 예비 관객이 있을 수도 있는데, 실제로 공연을 관람하면 사건보다는 내면을 표현한 말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대학살의 신’ 공연사진.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대학살의 신’ 공연사진.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대학살의 신>은 공연 시작 전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와 음향으로 시작한다. 아이 문제 때문에 갈등이 생기고 마음에 상처를 받는 것처럼 시작하지만, 어른들이 상처받은 내면의 이야기가 각자에게 별도로 존재한다.
 
공연의 부제는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 된다!’인데, ‘애들 싸움이 어른들이 원래 가지고 있었던 갈등과 상처를 건드린다!’라고 받아들여도 될 것이다. 아이 문제를 꺼내면서 나오게 되는 진짜 속마음과 불편한 관계성이 이 작품의 핵심이라고 볼 수도 있다.

‘대학살의 신’ 공연사진.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대학살의 신’ 공연사진.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 정말로 마음이 상하는 이유는? 무조건적으로 아들을 편들지만, 남편을 편들거나 부인을 편들지는 않는다!
 
<대학살의 신>에서 알랭(남경주 분)과 아네뜨(최정원 분), 베로니끄(이지하 분)와 미셸(송일국 분)은 각자의 아들을 무조건 방어한다. 철저하게 아들 편에서, 아들 입장에서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아들 편을 들면서도 남편 편, 부인 편은 잘 들지 않는다는 점을 놓치면 안 된다. 아들은 무조건적으로 편들면서, 남편을 편들거나 부인을 편드는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를 공격한다. 아군이라고 믿고 싶은 사람이 정말 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다.

‘대학살의 신’ 공연사진.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대학살의 신’ 공연사진.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4명의 등장인물은 상황과 각자의 입장에 따라 2:2로 서로 3가지의 조합을 만든다. 부부인 알랭과 아네뜨가 한 편이고, 또 다른 부부인 베로니끄와 미셸이 한 편이 돼 이야기가 시작되지만, 남자끼리 여자끼리 같은 입장을 내세우기도 하고, 알랭과 베로니끄, 아네뜨와 미셸이 한 편처럼 보이면서 각자의 남편과 부인에게 뭐라 하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한다.
 
여기에 붙었다 저기에 붙었다 한다고 상대방을 기회주의자라고 말하면서 본인들도 그렇게 행동한다. 위로한다고 방어한다고 하면서 같은 팀을 공격해 팀의 구조가 바뀌는 것인데, 내부 공격에 모두 상처를 입는다.

‘대학살의 신’ 공연사진.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대학살의 신’ 공연사진.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남편이 가장 속상할 때 중 하나는 부인이 자신을 편들지 않을 때이고, 부인이 가장 속상할 때 중 하나는 남편이 자신을 편들지 않을 때라는 말에 공감하는 사람이 꽤 있을 것이다. 이것은 남자친구, 여자친구, 애인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똑똑한 척, 고상한 척하던 베로니끄가 폭발한 시점은, 남편인 미셸이 본인 편을 들지 않고 아네뜨 편을 들었을 때였다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무조건적으로 자식 편을 들면서도, 부부끼리 같은 편이 되지 못하는, 아니 어쩌면 되지 않으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학살의 신’ 공연사진.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대학살의 신’ 공연사진.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알랭은 “모욕도 공격의 일종이다”라고 말하면서 자신은 다른 사람을 모욕한다. 알고 그러는 것일 수도 있고 본인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그러는 것일 수도 있는데, 부인인 아네뜨에게도 그러는 모습을 보면서 속으로 억울해 분노한 관객도 있을 것이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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