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ENT 연극] ‘대학살의 신’(2) 내 이야기라면 웃을 수 있을까? 나를 보고 사람들이 저렇게 웃는다면 난 괜찮을까?

발행일자 | 2019.02.22 00:05

2월 16일부터 3월 24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연극 <대학살의 신>이 공연 중이다. 등장인물이 곤란을 겪는 상황에서 많은 관객들은 웃는데, 속으로 우는 관객도 있을 것이다. 내 이야기라면 웃을 수 있을까? 나를 보고 사람들이 저렇게 웃는다면 난 괜찮을까?

‘대학살의 신’ 공연사진.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대학살의 신’ 공연사진.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 완벽주의자 베로니끄의 강박! 잘 해결되는 것보다, 잘못돼도 내 탓이 아니라는 명분을 찾는데 집중한다
 
<대학살의 신>에서 베로니끄(이지하 분)는 있는 자리에 그대로 있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진 것으로 추정된다. 테이블 위에 있는 책도 줄을 맞춰 정리해야 하고, 조금만 어긋나도 눈에 거슬려 바로 다시 정리했다, 연극 속 갈등이 파국에 이르기 전부터 베로니끄는 그런 모습을 보였다.
 
스트레스를 받은 아네뜨(최정원 분)가 토하자, 베로니끄는 그 이유가 자신이 준비한 파이 탓이 아니라고 말한다. ‘내 탓이 아니다’를 강조하는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힘을 쓰기보다는, 문제가 생기더라도 자신이 잘못한 게 아니라 남 탓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그 명분을 찾는데 초점을 맞춘다.

‘대학살의 신’ 공연사진.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대학살의 신’ 공연사진.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토한 사람을 챙기기보다 카탈로그가 훼손된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데, 지금 힘든 사람을 배려하기보다는 자신이 만들어 놓은 세상이 원하는 대로 있지 않은 것을 훨씬 크게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베로니끄는 집착에 집착한다는 표현이 연극 속에 나오는데, 자신의 세계에 집착하면서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는 하지 않는 모습과 일맥상통한다.
 
그렇지만 공연 후반부 베로니끄의 돌직구에 여자 관객들은 공감하고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해야 할 것 같은 말을 주로 하면서 살았기에 하고 싶은 말을 억눌러왔던 관객은, 답답함에서 해방되는 그녀에게 감정이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살의 신’ 공연사진.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대학살의 신’ 공연사진.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베로니끄의 남편 미셸(송일국 분)은 평화주의자처럼 보이고 행동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정작 베로니끄의 마음의 평화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미셸은 관계성 속에서의 평화는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정작 소중한 사람의 마음의 평화를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았다고 할 수 있는데, 비슷한 경험을 했던 많은 관객들에게 베로니끄의 돌직구는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 알랭의 반복된 통화, 전화 속 내용과 현재 상황을 이중적으로 표현
 
<대학살의 신>에서 알랭(남경주 분)의 반복된 통화는 부인 아네뜨뿐만 아니라 관객들도 짜증나게 만든다. 통화 내용은 알랭 캐릭터를 확실하게 구축함과 동시에, 현재 상황에 대한 알랭의 마음을 표현하는 이중적 역할을 한다. 내면 심리를 전화를 빗대 표현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대학살의 신’ 공연사진.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대학살의 신’ 공연사진.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다른 사람에 대해 이야기할 때 비꼬는 것처럼 말하는 알랭은, 다른 사람이 자신에 대해 말할 때 사용하는 단어 하나, 표현 하나에 불편하고 불쾌함을 표출하는데,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서로의 감정이 상하기 시작한다.
 
칭찬하는 것처럼 비꼬는 대화를 들으면서 관객은 ‘우리 주변에 저런 사람 꼭 있다’라고 누군가를 떠올릴 수도 있는데, 어쩌면 연극 속 대화를 들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나를 떠올릴 수도 있다는 점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된다.

‘대학살의 신’ 공연사진.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대학살의 신’ 공연사진.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 내 이야기라면 웃을 수 있을까? 나를 보고 사람들이 저렇게 웃는다면 난 괜찮을까?
 
<대학살의 신>에서 아네뜨는 과도하게 신경 쓰고 스트레스를 받아 토한다. 많은 관객들이 이 장면에서 웃는데, 그렇지만 속으로 우는 관객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제3자가 아닌 본인이라고 생각하면 웃을 수 있을까?
 
얼마나 마음이 힘들면 신체화된 행동이 나오는 것인지, 상대방의 괴로움을 헤아려줄 수 있어야 한다. <대학살의 신>에서 토하는 장면은 웃음을 선사하도록 연출됐지만, 아네뜨의 모습을 보면서 단순히 웃는데 그친다면 알랭이나 나는 별 차이가 없는 사람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대학살의 신’ 공연사진.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대학살의 신’ 공연사진.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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