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ENT 영화] ‘레드슈즈’ 개념화된 자기, 맥락으로서의 자기 “난 있는 그대로의 당신이 좋아요”

발행일자 | 2019.07.12 14:17

홍성호 감독의 <레드슈즈>는 게임 캐릭터 같은 움직임이 눈에 띄는 3D 애니메이션이다. 주크박스 애니메이션처럼, 기존에 알고 있던 동화, 애니메이션을 비틀고 뒤튼 이야기는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다. “난 있는 그대로의 당신이 좋아요”라는 애니메이션 속 대사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말로, 관객들에게도 위로와 힐링을 선사한다.

‘레드슈즈’ 스틸사진. 사진=싸이더스. NEW 제공
<‘레드슈즈’ 스틸사진. 사진=싸이더스. NEW 제공>

◇ 기존에 알고 있던 동화, 애니메이션을 비틀고 뒤튼 이야기
 
<레드슈즈>는 감독이 어릴 적 읽었던 동화를 성인이 돼 다시 읽었을 때 드는 의문을 떠올리며 ‘언제 봐도 모든 이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에서 시작한 애니메이션으로 알려져 있다.
 
관객은 여러 가지가 섞인 이야기이고 어디서 봤던 이야기와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내가 알고 있던 이야기와는 다르게 진행된다는 점에 호기심을 자극될 수도 있고, 정말 새로운 창작이 아니라 이거저거 섞어 놓았기 때문에 자극추구가 만족스럽게 이뤄지지 않는다고 느낄 수도 있다.

‘레드슈즈’ 스틸사진. 사진=싸이더스. NEW 제공
<‘레드슈즈’ 스틸사진. 사진=싸이더스. NEW 제공>

<레드슈즈>에서 저주가 풀리기를 원하는 일곱 난쟁이들과 아빠를 찾고 싶은 스노우(레드슈즈)는 모두 결핍을 가진 존재이다. 새엄마인 왕비 레지나 역시 결핍을 가진 존재이다.
 
그런 결핍 속에서도 스노우(레드슈즈) 캐릭터의 당당함은 눈에 띈다. 스노우일 때의 결핍과 레드슈즈일 때의 결핍이 있지만, 스노우일 때의 당당함과 레드슈즈일 때 당당함이 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른 모습으로서의 당당함은 관객으로 하여금 스노우의 매력에 더욱 공감하게 만든다.

‘레드슈즈’ 스틸사진. 사진=싸이더스. NEW 제공
<‘레드슈즈’ 스틸사진. 사진=싸이더스. NEW 제공>

스노우가 마법으로 만들어진 빨간 구두를 신으면 레드슈즈로 바뀐다. 레드슈즈는 빨간 구두를 뜻하기도 하고, 빨간 구두를 신은 스노우를 뜻하기도 한다. 스노우는 자신이 되고 싶은 이미지를 빨간 구두에 넣기도 하고, 빨간 구두를 통해 자신에게 그런 이미지를 장착하기도 한다.
 
스노우는 모습이 바뀌면서 더욱 매력적으로 바뀌었고, 꽃세븐은 모습이 바뀌면서 당당하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서로 반대 방향으로 바뀐 것인데, 반대 상황에 대한 상상은 어른 관객에게 더욱 흥미로울 수 있다. 키스를 기다리는 공주가 아닌 키스를 기다리는 왕자, 위기에 빠진 남자를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버릴 수 있는 여자의 모습에는 진심과 진정성이 있다는 점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레드슈즈’ 스틸사진. 사진=싸이더스. NEW 제공
<‘레드슈즈’ 스틸사진. 사진=싸이더스. NEW 제공>

◇ “난 있는 그대로의 당신이 좋아요” 개념화된 자기 vs. 맥락으로서의 자기
 
<레드슈즈>에서 과거와 바뀐 모습과 위치에 있는 등장인물의 내면은, ‘개념화된 자기(conceptualized self)’와 ‘맥락으로서의 자기(self as context)’라는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심리치료 방법 중 수용전념치료(Acceptance commitment therapy, ACT)는 수용(Acceptance)과 전념(Commitment)을 강조하는 심리치료 방법이다. 수용전념치료에서는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문제를 그 자체로 수용하고 인정하는 것에 초점을 둔다.

‘레드슈즈’ 스틸사진. 사진=싸이더스. NEW 제공
<‘레드슈즈’ 스틸사진. 사진=싸이더스. NEW 제공>

문제를 없애는데 주력하기보다는 문제가 큰 문제가 되지 않도록 하는데 더욱 초점을 둔다. 심리적 고통(Pain)을 회피하거나 통제하려고 하면서 더 큰 괴로움(Suffering)을 겪게 된다고 보기 때문에, 수용과 전념이 더욱 필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개념화된 자기’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가 만들어낸 이야기를 믿고 그에 따라 살아가는 자기를 뜻한다. ‘나는 회사 대표이다’, ‘업무 이외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웃질 않는 얼음공주이다’라는 개념화된 자기는 ‘나’를 ‘회사 대표’에 융합해 나의 정체성을 ‘나=회사 대표’로 설정하고, ‘나’를 ‘다른 사람에게 관심 없는 사람’에 융합해 ‘나=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는 게 어울리지 않는 사람’, ‘나=얼음 공주’로 여기는 것이다. 개념화된 자기는 ‘직업적인 나’, ‘관계성 속에서의 나’, ‘심리적인 나’ 등 다양하게 표출될 수 있다.

‘레드슈즈’ 스틸사진. 사진=싸이더스. NEW 제공
<‘레드슈즈’ 스틸사진. 사진=싸이더스. NEW 제공>

중요한 점은 개념화된 자기가 과거의 나를 결정하는데 머물지 않고, 현재와 미래의 나를 결정해버린다는 것이다. 나와 개념화된 자기가 융합됐기 때문인데, 탈융합되기 전까지는 개념화된 자기에 얽매여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레드슈즈>에서 일곱 난쟁이는 저주에 걸려 초록 난쟁이가 되기 전에는. 꽃세븐이라고 불리는 일곱 왕자였다. 이들은 왕자로 봐야 할까, 난쟁이로 봐야 할까? 일곱 명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개념화된 자기’는 ‘꽃세븐이라고 불리는 일곱 왕자’이다. 그러지만 현재의 모습인 ‘맥락으로서의 자기’는 ‘키와 외모 등이 다 바뀐 초록 난쟁이’이다.

‘레드슈즈’ 스틸사진. 사진=싸이더스. NEW 제공
<‘레드슈즈’ 스틸사진. 사진=싸이더스. NEW 제공>

스노우는 빨간 구두를 신으면 레드슈즈로 외모가 변한다. 외모가 변하기 전 ‘별로 매력적이지 않았던 스노우’가 ‘개념화된 자기’라면, ‘빨간 구두를 신고 모습이 바뀐 후 모든 남자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레드슈즈’는 ‘맥락으로서의 자기’이다.
 
그런데 스노우의 입장이 아닌 멀린을 비롯한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처음부터 마음을 빼앗아간 미모의 레드슈즈’가 ‘개념화된 타인’이고, ‘빨간 구두를 벗은 후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간 스노우’가 ‘맥락으로서의 타인’일 수 있는 것이다.

‘레드슈즈’ 스틸사진. 사진=싸이더스. NEW 제공
<‘레드슈즈’ 스틸사진. 사진=싸이더스. NEW 제공>

“난 있는 그대로의 당신이 좋아요”라는 <레드슈즈>의 대사는 무척 중요한데, 맥락으로서의 자기, 맥락으로서의 타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수용하고 전념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했기 때문이다.
 
경험으로 인해 만들어진 이미지, 과거의 이미지가 아닌 현재의 모습 자체에 대한 인정과 수용은 <레드슈즈>에서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메시지일 수 있다. “난 있는 그대로의 당신이 좋아요”라는 대사를 들으며,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으면 정말 좋겠다고 바라는 관객도 많을 것이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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