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ENT 오페라] ‘투란도트’(5) 류의 환심사기 투사적 동일시, 투란도트의 힘 투사적 동일시

발행일자 | 2019.08.14 08:09

2019 예술의전당 가족오페라 <투란도트(Turandot)>에 대상관계이론(Object Relations Theory) 중 멜라니 클라인(Melanie Klein)의 ‘투사적 동일시(projective identification)’ 개념을 적용하면 투란도트 공주(소프라노 이윤정, 이다미 분)가 겁에 질려 있는 이방인들의 상태를 어떻게 이용하는지, 칼라프 왕자(테너 이정환, 한윤석 분)를 향한 류(소프라노 김신혜, 신은혜 분)의 헌신적인 사랑을 류는 어떻게 어필하려고 했는지 알 수 있다.

2019 예술의전당 가족오페라 ‘투란도트’ 공연사진. 사진=예술의전당 제공
<2019 예술의전당 가족오페라 ‘투란도트’ 공연사진. 사진=예술의전당 제공>

◇ 대상관계이론, 멜라니 클라인의 투사적 동일시
 
멜라니 클라인은 투사(projection)가 투사적 동일시로 이어지는 원리를 정립했다. 투사는 자기 내면에 있는 스스로 견디기 힘든 부분을 무의식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전가해 고통과 괴로움을 줄이려는 것을 의미한다. 자기 마음 안에 있는 것을 외부 세계에 있는 대상으로 돌리려는 것인데, 주로 죄의식, 열등감, 공격성, 수치심 등 직면하기 어려운 면들이 투사된다.
 
실제로는 내가 상대방을 미워하는데, 자신감 부족, 사회적 제약 등의 이유로 상대방에게 내 마음을 투영해 상대방이 나를 미워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투사이다. 투사는 의식의 영역에서 이뤄지기보다는 무의식의 영역에서 이뤄진다. 의식의 세계에서는 내가 감당할 수 없기에 무의식이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2019 예술의전당 가족오페라 ‘투란도트’ 공연사진. 사진=예술의전당 제공
<2019 예술의전당 가족오페라 ‘투란도트’ 공연사진. 사진=예술의전당 제공>

내가 투사한 대상을 내 마음이 투사한 상태로 그냥 두지 않고 투사한 것이 실제로 일어나도록 만드는 적극적인 투사가 이뤄질 수 있는데, 클라인은 이를 투사적 동일시라고 했다.
 
내가 상대방을 미워하는데 상대가 나를 미워한다고 감정을 전이한 것이 투사라면, 전이된 상태로만 있으면 불안하고 안전감이 확보되지 못하기 때문에 실제로 상대가 나를 미워하게 만드는 것이 투사적 동일시인 것이다. 상대가 나를 미워하게 만들 만한 행동을 내가 무의식적으로 하는 것이다. 투사와 투사적 동일시는 모두 무의식의 영역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실제로 행한 사람은 의식의 영역에서는 알지 못한다.

2019 예술의전당 가족오페라 ‘투란도트’ 공연사진. 사진=예술의전당 제공
<2019 예술의전당 가족오페라 ‘투란도트’ 공연사진. 사진=예술의전당 제공>

만약, 의식적으로 상대방을 미워했다면 그것은 투사나 투사적 동일시가 아니다. 투사적 동일시는 실제적으로 시작한 것은 나이지만, 무의식의 영역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상대방이 나에게 마음을 주고 있다고 자기 스스로도 착각하게 만드는 위력을 발휘한다.
 
◇ 투사적 동일시의 대표적인 네 가지 종류 : 의존적 투사적 동일시, 힘 투사적 동일시, 성적 투사적 동일시, 환심사기 투사적 동일시
 
투사적 동일시는 수많은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그중 대표적인 네 가지는 의존적 투사적 동일시, 힘 투사적 동일시, 성적 투사적 동일시, 환심사기 투사적 동일시이다.

2019 예술의전당 가족오페라 ‘투란도트’ 공연사진. 사진=예술의전당 제공
<2019 예술의전당 가족오페라 ‘투란도트’ 공연사진. 사진=예술의전당 제공>

의존적 투사적 동일시는 무의식적 상태에서 “나는 너 없이는 살 수가 없어”라고 의존하는 마음을 상대에게 전가해 상대방이 나를 도와줄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반대로, 힘 투사적 동일시는 “너는 나 없이는 살 수가 없어”라는 힘의 메시지를 무의식적으로 전달해 상대방을 자신의 통제 하에 두려고 하는 것을 뜻한다. 힘 투사적 동일시는 상대방을 불완전한 존재로 보며, 의존적 투사적 동일시는 자기를 불완전한 존재로 본다.
 
환심사기 투사적 동일시는 자기의 헌신과 공로를 상대방이 인지하게 한다. 상대가 자기에게 빚진 마음으로 늘 미안해하게 만드는데, 많은 자기희생적 행동을 인정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환심사기 투사적 동일시를 행하는 경우가 많다.

2019 예술의전당 가족오페라 ‘투란도트’ 공연사진. 사진=예술의전당 제공
<2019 예술의전당 가족오페라 ‘투란도트’ 공연사진. 사진=예술의전당 제공>

성적 투사적 동일시는 나도 모르게 표현하는 유혹적인 몸짓과 움직임을 통해 상대방을 완벽하게 성적으로 각성하게 만드는 것이다. 성적 투사적 동일시를 당한 상대방은 스스로의 자발적 선택으로 행동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투사적 동일시를 행한 사람을 유혹했다는 인정하기 힘든 불편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
 
◇ 이방인들이 겁에 질려 있는 상태를 이용하는 투란도트! 힘일까? 힘 투사적 동일시일까?
 
<투란도트>에서 투란도트는 이방인들이 겁에 질려 있는 상태를 이용한다. 자신의 힘과 권력을 이용하는 것인데, 관객 중에는 투란도트가 직접 힘을 사용한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투란도트가 직접적으로 힘을 과시하지는 않는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2019 예술의전당 가족오페라 ‘투란도트’ 공연사진. 사진=예술의전당 제공
<2019 예술의전당 가족오페라 ‘투란도트’ 공연사진. 사진=예술의전당 제공>

투란도트는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언어를 통해 상대방에게 힘을 과시하기보다는, 의식적으로는 힘을 과시하지 않으면서도 힘의 영향력을 전달하려고 한다.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는 남자를 힘으로 내쳐 직접 죽이기보다는, 풀 수 없는 문제를 낸 후 못 풀 경우 죽게 만든다.
 
투란도트는 힘을 직접 사용하지 않는 것처럼 하면서도 자신이 가진 힘을 발휘하려고 하는데, 직접 힘을 사용하기보다는 힘 투사적 동일시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관객은 투란도트가 힘을 사용한다고 볼 수도 있고 직접적으로 힘을 사용하지는 않는다고 볼 수도 있다.

2019 예술의전당 가족오페라 ‘투란도트’ 공연사진. 사진=예술의전당 제공
<2019 예술의전당 가족오페라 ‘투란도트’ 공연사진. 사진=예술의전당 제공>

◇ 칼라프에게 환심사기 투사적 동일시를 사용하는 류
 
<투란도트>에서 류는 희생의 아이콘이다. 칼라프를 위해 헌신하고 목숨까지 바치는데, 그렇다고 칼라프에게 직접 어필하지는 않는다. 그러면서도 칼라프가 자신의 헌신과 공로를 알아주고 인정해주길 바란다.
 
칼라프는 류의 자기희생적 행동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가지기는 하지만, 류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도 마음을 열지도 않는다. 류는 신분상 칼라프에게 직접 자신의 마음을 전할 수 없기 때문에 의식의 영역에서 어필하지 못하고 무의식의 영역에서 환심사기 투사적 동일시를 한 것이다.

2019 예술의전당 가족오페라 ‘투란도트’ 공연사진. 사진=예술의전당 제공
<2019 예술의전당 가족오페라 ‘투란도트’ 공연사진. 사진=예술의전당 제공>

류의 환심사기 투사적 동일시에 칼라프는 크게 반응하지는 않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투란도트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류는 직접적으로 칼라프에게 사랑을 어필하지 않고 자기희생적 사랑을 인정받기를 원하는 무의식적 행동을 했는데, 그것을 알아챈 투란도트는 칼라프에게 매력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한 것이다.
 
류는 신분상 칼라프에게 직접 어필하지 못하고 투사와 투사적 동일시를 사용했는데, 만약 류가 현대적 개념의 인물이라면 자신의 감정을 상대에게 무의식적으로 전이하기보다는 돌직구로 자신의 마음을 전했을 수도 있다. 류를 보면서 답답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한 이유이기도 하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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