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ENT 오페라] ‘투란도트’(6) 멸절의 경험이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충분히 좋은 엄마가 있었으면 투란도트는 참 자기로 살 수 있었을까?

발행일자 | 2019.08.15 06:00

8월 8일부터 18일까지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에서 <투란도트(Turandot)>가 2019 예술의전당 가족오페라로 공연 중이다. 대상관계이론(Object Relations Theory) 심리학자 도날드 위니콧(Donald Winnicott)의 ‘멸절(annihilation)’과 ‘충분히 좋은 엄마(good enough mother)’, ‘참 자기(true self)’와 ‘거짓 자기(false self)’의 개념을 적용하면, 투란도트 공주(소프라노 이윤정, 이다미 분)는 멸절의 경험을 트라우마로 가지고 있으며 칼라프 왕자(테너 이정환, 한윤석 분)의 사랑으로 참 자기를 찾아가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19 예술의전당 가족오페라 ‘투란도트’ 공연사진. 사진=예술의전당 제공
<2019 예술의전당 가족오페라 ‘투란도트’ 공연사진. 사진=예술의전당 제공>

◇ 대상관계이론, 도날드 위니콧의 ‘멸절’과 ‘충분히 좋은 엄마’
 
태어나기 전 엄마 뱃속에서처럼 엄마와 자기는 하나의 존재라고 여기기 때문에, 자기를 인식하기 전에 엄마를 먼저 인식한다. 갓 태어난 아이는 자아라는 개념이 아직 없다. 자아 이전에 엄마를 먼저 인식하는 것이다.
 
자아가 아직 없는 절대적 의존성이 필요한 시기에 보살핌을 받지 못하면 아이는 자기의 존재 자체가 없어지는 것 같은 극도의 공포인 멸절을 경험하게 된다. 자기가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한다고 느껴지면 참 자기를 지키기 위해 거짓 자기를 만든다.

2019 예술의전당 가족오페라 ‘투란도트’ 공연사진. 사진=예술의전당 제공
<2019 예술의전당 가족오페라 ‘투란도트’ 공연사진. 사진=예술의전당 제공>

여기서 참과 거짓은 도덕적 질서의 차원에서 옳고 그름이 아닌, 타고난 자기의 기질대로 살고 있는지 아닌지에 따라 나뉜다. 도날드 위니콧에 의하면, 충분히 좋은 엄마는 아이를 이런 경험으로부터 보호하고 예방한다.
 
참 자기가 기질적으로 타고난 내 본 모습이라고 하면, 거짓 자기는 참 자기가 보호받지 못하는 환경에서 나를 보호하기 위해 원래의 나의 모습을 감추고 세상과 다른 사람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뜻한다.

2019 예술의전당 가족오페라 ‘투란도트’ 공연사진. 사진=예술의전당 제공
<2019 예술의전당 가족오페라 ‘투란도트’ 공연사진. 사진=예술의전당 제공>

아이가 멸절을 경험할 때 ‘충분히 좋은 엄마’는 이런 경험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하고 예방하기 위해 ‘안아 주기(holding)’, ‘다루어 주기(handling)’, ‘대상 제시(object-presenting)’의 세 가지 방법을 사용한다고 위니콧은 제시한다.
 
안아 주기는 신체적인 면과 정서적인 면을 모두 포함하며, 다루어 주기는 엄마의 민감한 손길과 신체에 대한 섬세한 배려를 통해 통합된 방식으로 신체적, 정서적 만족을 경험하게 해주는 것이고, 대상 제시는 엄마가 외부 세계를 유아에게 가져다주는 방식이다.

2019 예술의전당 가족오페라 ‘투란도트’ 공연사진. 사진=예술의전당 제공
<2019 예술의전당 가족오페라 ‘투란도트’ 공연사진. 사진=예술의전당 제공>

◇ 칼라프가 문제를 푸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투란도트! 멸절의 경험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투란도트에게 충분히 좋은 엄마는 없다
 
<투란도트>에서 투란도트는 자신이 낸 문제를 아무도 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제 풀기에 도전한 사람이 실패하면 목숨을 잃게 되기 때문에, 문제를 내는 투란도트는 우월감을 느끼며 경외감의 대상이 된다.
 
투란도트는 세 개의 문제를 내는데, 칼라프가 하나씩 풀 때마다 투란도트는 극도로 두려워한다. 놀라거나 당황해하는 수준이 아니라 공포감을 느낀다. 자신이 만든 방어의 왕국이 무너질 위험에 놓였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자신이 만든 영역의 경계가 무너지는 수준이 아니라 자신 자체가 없어지는 것 같은 극도의 공포를 느끼는 것이다.

2019 예술의전당 가족오페라 ‘투란도트’ 공연사진. 사진=예술의전당 제공
<2019 예술의전당 가족오페라 ‘투란도트’ 공연사진. 사진=예술의전당 제공>

오페라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투란도트의 이런 모습은 멸절의 경험이 트라우마로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과거에 특히 어렸을 때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영역이 경계가 침범당하면서 멸절까지 이어졌을 것이라고 추측되는데, 그때 투란도트에게 충분히 좋은 엄마는 없었을 것이다.
 
만약 충분히 좋은 엄마가 안아 주기, 다루어 주기, 대상제시의 방법으로 투란도트를 보호했다면 멸절의 경험이 극도의 공포심으로 기억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투란도트>에는 충분히 좋은 엄마까지도 아니고, 생물학적 엄마가 등장하지도 않으며, 투란도트에게 엄마의 역할을 하는 사람 또한 없다.

2019 예술의전당 가족오페라 ‘투란도트’ 공연사진. 사진=예술의전당 제공
<2019 예술의전당 가족오페라 ‘투란도트’ 공연사진. 사진=예술의전당 제공>

문제를 풀지 못한 도전자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투란도트의 잔인함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투란도트가 멸절의 두려움을 아직도 겪고 있다고 가정하면 자신에게 멸절을 줬던 사람에 대한 응징을 문제를 풀지 못한 사람에게 전가해 시행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합리화, 정당화될 수는 없지만, 멸절 때문에 그런 극단적 방어 행동을 하는 것이라면 투란도트는 계속 마음의 지옥에서 살고 있었을 수도 있다.
 
◇ 투란도트의 참 자기와 거짓 자기
 
멸절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면, 투란도트의 잔인함은 타고난 기질이 아닌 후천적으로 생긴 성격일 수 있다. 잔인함 자체가 기질이 아니라면, 현재 잔인해 보이는 투란도트의 모습은 거짓 자기일 수 있다. 기질대로 사는 것이 보호받지 못하는 환경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원래의 모습을 감추고 만든 모습일 수 있다.

2019 예술의전당 가족오페라 ‘투란도트’ 공연사진. 사진=예술의전당 제공
<2019 예술의전당 가족오페라 ‘투란도트’ 공연사진. 사진=예술의전당 제공>

자신을 거부했던 투란도트를 칼라프가 포용하고 받아들이고 난 후, 투란도트는 더 이상 잔인하고 냉혹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투란도트>에는 투란도트의 참 자기, 기질대로 사는 모습이 어떤 것인지 명확하게 나오지는 않지만, 칼라프에 의해 투란도트가 변화하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면 칼라프는 투란도트가 참 자기를 찾을 수 있도록 충분히 좋은 엄마의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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