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기] 현대차·기아차 가상현실 품평장에서 미래를 만나다

발행일자 | 2019.12.18 08:30
사진제공=현대차, 기아차
<사진제공=현대차, 기아차>

“기자 여러분, 이제 VR기기를 착용하시고 스튜디오 가운데로 나와 주세요.”

17일 경기도 남양에 자리한 현대기아차 기술연구소에서는 색다른 체험행사가 진행됐다. VR(Virtual Reality, 가상현실) 기술을 활용한 디자인 품평·설계 검증 시스템이 국내 언론에 처음 공개된 것.


연구원의 안내에 따라 VR 기기를 착용하니 눈앞에 신세계가 펼쳐졌다. 아무 것도 없던 공간에 갑자기 현대차의 수소 전용 트럭 컨셉트카 ‘넵튠’, 테슬라의 세미트럭 등 총 다섯 대의 대형 트럭이 떡하니 등장해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VR 품평은 트럭을 실제 크기로 비교할 수 있어 편할뿐더러, 배경화면을 다양한 날씨와 지역으로 설정할 수도 있다. 즉, 밤과 낮에 따라 차가 어떻게 보이는지, 서울 도심과 시베리아 벌판에서 차의 모습이 어떻게 다르게 보이는지를 알아낼 수 있다.

기자들은 연구원이 안내하는 대로 넵튠의 실내로 들어섰다. 투박한 지금의 트럭들과 달리 넵튠의 화려한 실내가 눈앞에 펼쳐지면서 실감나는 체험이 이어진다. 뒤쪽에는 주방과 세탁시설이 있고, 그 위에는 침대도 마련된다. 말이 트럭이지, 캠핑카만큼이나 고급스럽다.

새로운 기술인만큼 적응하는 데에 시간도 필요하다. VR 기기를 오래 착용하고 있으면 처음에는 어지러울 수 있다. 익숙하지 않은 탓에 옆 사람과 부딪히는 해프닝도 벌어진다.

사진제공=현대차, 기아차
<사진제공=현대차, 기아차>

박순택 책임연구원은 “설계 품질 검증에 VR 기술의 도입을 검토한 것은 2015년 말부터”라면서 “디지털 모델링 차량을 큰 화면에 띄워놓고 진행하는 방식의 기존 검증에 한계가 보였다. 3D로 구현된 입체적인 디지털 모델링을 평면으로 봐야 했던 탓에 꼼꼼한 검토가 힘들었다”고 VR 도입 배경을 설명했다.

연구소에서는 곧바로 VR 설계 품질 검증 프로세스를 도입할 수는 없었다. VR의 필수 장비인 HMD(Head Mounted Display)가 2015년 이전만 해도 굉장히 고가였기 때문. 하지만 2015년을 기점으로 HMD의 가격이 저렴해졌다. 동시에 HMD의 해상도가 높아지고 이질감이 줄어드는 등 기술도 발달하면서 본격적으로 설계 품질 검증에 VR을 도입할 수 있었다. 현대차 신형 쏘나타(DN8)와 기아차 3세대 K5가 VR을 활용해 완성됐다.

디자인 평가에서 VR을 도입키로 한 것은 2018년 4월부터다. 현대디지털 디자인팀의 박영수 책임연구원은 “지난 1년여 동안 여러 차종의 디자인을 개발하며 VR을 사용해 봤고, 그 과정에서 VR 디자인 검증이 효과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사진제공=현대차, 기아차
<사진제공=현대차, 기아차>

VR로 자동차 디자인을 검증하고 완성해 나가는 과정은 오늘날 자동차 업계가 쓰고 있는 최신 방법 중 하나다. 현대차의 경우 올해 3월, 20명이 동시에 가상공간에 접속해 디자인을 평가할 수 있는 VR 디자인 품평장을 구축했다. 이는 세계 최대 규모다.

가상공간에서 진행하는 디자인 평가는 공간과 시간 등 물리적인 제약을 모두 뛰어 넘는다. 컨트롤러를 조작하는 것만으로 차의 재질, 컬러, 부품을 변경해 내외장 디자인을 실시간으로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원하는 시간과 공간에서 디자인이 주변 환경과 얼마나 잘 어울리는 지까지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대형 상용차 개발에서 유용하다. 현실에서는 크기 때문에 디자인 모델을 검토하는 게 쉽지 않지만, 가상공간에서는 크기와 부피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박영수 책임연구원은 “VR 디자인 평가의 가장 좋은 점은 디지털 데이터만 있으면 언제든지 품평을 하고 수정 피드백이 가능하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모든 디자인 품평 과정을 VR로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실물 검증과 VR 검증을 병행하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차, 기아차
<사진제공=현대차, 기아차>

그렇다면 앞으로 VR 디자인 평가 과정이 기존 검증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을까?

박영수 책임연구원은 “지금은 가상공간의 모든 정보를 시각에만 의존하기 때문에 사물의 질감이나 부피 등을 확인하기 어렵다”면서 “데이터 글러브라는 장비로 가상공간에서 각 요소가 어디에 위치하는지 정도를 손으로 파악할 수 있지만, 촉각을 느끼는 건 불가능하다”라고 설명한다. 디자인 품평에서 중요한 소재 질감 확인에 쓸 수 있을 만큼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물리적인 검증 과정을 완전히 대체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디지털차량검증팀의 한명빈 팀장은 “우리가 설계하는 차뿐 아니라 경쟁사의 제품도 데이터만 수집된다면 우리 VR로 구현이 가능하다”면서 “요즘에는 리버스 엔지니어링(만들어진 제품을 역으로 추적해서 설계기법 등을 알아내는 기술)이 발달해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제공=현대차, 기아차
<사진제공=현대차, 기아차>

현대차·기아차 디자인 부문은 조만간 유럽디자인센터, 미국디자인센터, 중국디자인센터, 인도디자인센터 등과 협업해 전 세계의 디자이너들이 하나의 가상공간에서 차량을 디자인하고, 디자인 평가에 참여하는 원격 VR 디자인 평가 시스템도 구축할 예정이다. 또한 디자인 품평 외에 아이디어 스케치 등 초기 디자인 단계로까지 VR 기술을 점차 확대하고, 실제 모델에 가상의 모델을 투영시켜 평가하는 AR(Augmented Reality) 기술도 도입하는 등 버추얼 개발 프로세스를 더욱 강화하기로 했다.

현대차·기아차는 버추얼 개발 프로세스가 연구개발 전 과정에 완전 도입될 경우 신차개발 기간은 약 20%, 개발 비용은 연간 15% 정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대차·기아차 연구개발본부 알버트 비어만 사장은 “버추얼 개발 프로세스 강화는 자동차 산업 패러다임 변화와 고객의 요구에 빠르고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한 주요 전략 중 하나”라며 “이를 통해 품질과 수익성을 높여 R&D 투자를 강화하고 미래 모빌리티에 대한 경쟁력을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임의택 기자 (ferrari5@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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