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ENT 뮤지컬] ‘차미’ 분석심리학자 ‘융’의 시야에서 바라본, 정우연의 차미

발행일자 | 2022.05.11 12:40

PAGE1 제작, 뮤지컬 <차미>가 4월 22일부터 7월 16일까지 플러스씨어터에서 공연 중이다. <차미>는 그냥 일상의 이야기로도, 내면의 무의식을 바라보는 심리학적 입장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다.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이자 분석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의 ‘그림자(shadow)’라는 시야에서 보면, 정우연의 포인트 있는 연기력과 해석력이 얼마나 관객에게 위로와 안정을 선사하는지 그 울림이 어떤 의미인지 더욱 느끼게 만든다.

‘차미’ 공연사진. 사진=PAGE1 제공
<‘차미’ 공연사진. 사진=PAGE1 제공>

◇ 부캐 또한 자신의 모습으로 받아들이는 세상에서, SNS 속 만들어진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이야기의 해석도 달라질 수 있다
 
뮤지컬 <차미>는 소심한 성격에 인기도 없고 되는 일도 없는 현실을 사는 ‘차미호’가 SNS에서 만들어진 자신의 모습인 ‘차미(CHA_ME)’와 현실에서 만나게 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이런 상황에 대해 SNS 속 ‘가짜’가 ‘진짜’로 되어 나타났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을 것인데, 부캐(부가 캐릭터)를 자신의 일부이자 장점, 특기로 받아들이는 세상이 되면서 <차미>의 SNS 속 모습 또한 ‘진짜 현실’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많아졌을 것이다.

‘차미’ 공연사진. 사진=PAGE1 제공
<‘차미’ 공연사진. 사진=PAGE1 제공>

‘차미’가 가짜라는 점에 초점을 맞췄다면 ‘차미호’와 ‘차미’의 갈등(시각적인 외적 갈등을 통한 내적 갈등)이 주된 스토리텔링이고, 결국 ‘차미’가 소멸하면서 ‘차미호’만 남는 이야기가 만들어졌을 수 있다.
 
하지만 ‘차미’ 또한 ‘차미호’의 본모습의 하나라고 본다면, 결국 ‘차미호’와 ‘차미’는 통합되어야 하는 존재이다. ‘차미’ 또한 숨겨진 본모습 중 하나이기 때문에 ‘차미’가 소멸하는 것은 온전한 ‘차미호’를 영구적으로 결핍되게 만드는 것이다. ‘차미’와 ‘차미호’의 통합이라는 측면에서 <차미>의 설정과 해석은 최신 트렌드를 담고 있으며 통합적이고 미래적이라고 볼 수 있다.
 

‘차미’ 공연사진. 사진=PAGE1 제공
<‘차미’ 공연사진. 사진=PAGE1 제공>

◇ ‘칼 구스타프 융’의 그림자와 열등기능의 수용과 발달을 다루고 있는 작품
 
‘칼 구스타프 융’은 무의식 속에 있는 열등한 인격(성격)을 ‘그림자(shadow)’라고 했다. 융의 그림자는 의식에 가장 가까이 있는 무의식이다.
 
<차미>에서 ‘차미호’는 ‘차미’가 자신의 열등기능을 수용하고 드러내어 발달시킨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차미호’가 열등감을 가졌고 ‘차미’가 우월감을 가진 존재라고만 받아들이면, 왜 ‘차미호’가 열등기능을 드러내는 그림자인지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차미’ 전체 단체사진. 사진=PAGE1 제공
<‘차미’ 전체 단체사진. 사진=PAGE1 제공>

‘차미호’가 내재적으로 열등감과 우월감을 모두 가지고 있고, 그중에서 열등감을 더욱 증폭시켜 열등감을 숨기고 우월감만 남게 만든 것이 ‘차미’라는 점을 고려하면, ‘차미’는 ‘차미호’가 자신의 열등기능을 수용하고 드러내어 발달시키는 작업을 무척 잘 이뤄낸 과정이자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융에 의하면 열등기능은 무의식 속에 있는 기능이며 이런 무의식 속에 있는 기능을 수용하고 변화시키는 의식화가 자기실현의 핵심적인 과정이다. <차미>는 현실에 있는 열등기능을 더 극대화하여 열등함의 열등함, 즉 강한 우월성과 자신감 또한 부각한다는 점이 주목된다.

‘차미’ 차미 단체사진. 사진=PAGE1 제공
<‘차미’ 차미 단체사진. 사진=PAGE1 제공>

‘차미’는 ‘거짓의 나’가 아닌 ‘내 안의 또 다른 나’이다. ‘차미호’와 ‘차미’의 대극의 합일, 대극의 통합을 보면, <차미>는 의도적이든 감각적이든 융이 바라본 시야를 일관성 있게 끝까지 스토리텔링에 담았다고 볼 수 있다.
 
◇ 정우연의 차미는 매력적이고, 정우연의 연기는 스토리텔링에 포인트를 준다
 
<차미>에서 정우연은 차미 캐릭터를 표현할 때 존재감을 발휘하면서도 차미호 캐릭터와의 정서적 연결고리를 끝까지 유지하려고 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차미 캐릭터가 너무 존재감을 발휘하여 차미호 캐릭터 자체를 점령해 버렸다면 차미호와 차미의 대극의 합일에 관객들이 심리적 개연성을 느끼지 못하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 정우연은 움직임과 표정 연기, 목소리와 노래 부를 때의 시선 처리를 통해 차미호와 다르면서도 차미호와 연결된 차미를 멋지게 보여준다.

‘차미’ 정우연(차미 역). 사진=PAGE1 제공
<‘차미’ 정우연(차미 역). 사진=PAGE1 제공>

<차미>는 감정이입한 관객이 볼 때 큰 흐름의 이야기가 예상될 수도 있다. 정우연은 예상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에 포인트를 주는 연기력을 발휘한다. 극 중에서 차미호 캐릭터에 긴장감을 주면서도 차미 캐릭터 또한 결국 사랑스럽게 만든다.
 
정우연의 차미는 차미호를 무시하거나 짓누르려 하지 않고, 그렇다고 차미를 파생 캐릭터 내지는 부가 캐릭터에만 머무르게 만들지도 않는다. 정우연의 역할 몰입도와 강약 조절, 수위 조절은 현실 속에서 각각 자신의 ‘차미’를 만들고 사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수용하게 만든다. 정우연의 연기력과 해석력이 차미를 악역이 아닌, ‘내 안의 사랑스러운 나’로 만드는 마법 같은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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