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어떤 모임에서 차 연비에 관해 얘기를 하다가 가솔린 엔진과 디젤 엔진 중 어느 쪽이 더 환경에 부담을 주는지를 얘기하게 되었다. 나는 같은 배기량이라면 가솔린 엔진보다 디젤 엔진이 더 친환경적이며, 현재 널리 퍼진 디젤 엔진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과도하다고 주장했다.
2015년 폭스바겐의 ‘디젤 게이트’로 인해 디젤 엔진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넓게 퍼졌고, 그 결과로 디젤 엔진 차량의 판매량 또한 급격히 줄었다. 일례로, 쏘렌토의 경우 2019년에는 전체 판매의 87%가 디젤 엔진이었는데 2021년에는 9%만이 디젤 엔진이었다. 디젤 엔진 감소의 대부분을 가져간 것은 하이브리드인데, 2021년 전체 판매의 74%를 차지했다고 한다. 하이브리드가 디젤 엔진보다 연비가 좋은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판매 비중을 유지하고 있는 가솔린 엔진과 비교해 볼 때 디젤 엔진의 판매 감소는 확연히 눈에 띈다. 그렇다면 과연 가솔린 엔진보다 디젤 엔진이 환경에 더 해로운 것일까?
디젤 엔진이 가솔린 엔진보다 연비가 좋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개별 엔진의 성능에 따라 다소의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대체로 디젤 엔진이 가솔린 엔진보다 약 30% 포인트 정도 연비가 좋다. 따라서 같은 거리를 주행할 때 배출하는 오염물질의 총량은 디젤 엔진이 적을 수밖에 없다. 배출하는 성분들의 유해성을 따져봐야 하겠으나, 나는 전체적으로 볼 때 배출하는 총량이 적은 쪽이 환경에 덜 유해하다고 생각한다.
같은 거리를 주행할 때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디젤 엔진이 가솔린 엔진보다 20~30% 포인트 적다는 것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디젤 엔진의 오명은 질소산화물에서 나온다. 질소산화물이 해로운 물질이라는 것이 하나의 이유이지만, 부정적인 인식에 불을 붙인 진짜 이유는 메이커(폭스바겐)가 제시했던 수치보다 실제로는 수십 배 더 많은 양이 배출된다는 점에 있었다. 폭스바겐이 한 거짓말을 두둔하거나 질소산화물의 유해성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디젤 엔진을 퇴출하기 전에 가솔린 엔진과의 유해성을 공정하게 비교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가솔린 엔진이 비록 연비가 낮아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하기는 하지만, 그 외에는 다른 오염물질을 배출하지 않아 깨끗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 구형 가솔린 엔진은 이산화탄소와 함께 일산화탄소를 배출한다. 일산화탄소가 무엇인가? 과거 1970~8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연탄가스에 중독되어 사망하는 사고가 심심치 않게 일어났다. 사람을 죽이는 연탄가스가 바로 일산화탄소다. 직접 분사와 터보차저가 적용된 신형 가솔린 엔진은 어떤가? 놀랍게도 신형 가솔린 엔진은 디젤 엔진과 마찬가지로 질소산화물을 배출한다. 왜 이런지 이해하기 위해 가솔린 엔진의 작동원리를 간단히 설명하겠다.
구형 가솔린 엔진은 공기와 연료가 엔진의 실린더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혼합되어 ‘혼합기’가 된 상태로 실린더에 흡입된다. 흡기밸브가 닫힌 후에 피스톤이 밀고 올라와서 혼합기를 압축한 후 실린더 안에 있는 점화플러그에서 전기 스파크를 튀겨서 혼합기에 불을 붙인다. 혼합기가 연소하면서 부피가 팽창하고, 이로 인해 피스톤이 아래로 밀려 내려가면서 크랭크축을 돌려 엔진이 회전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혼합기를 만들 때 공기와 연료의 혼합비를 정밀하게 제어하는 데 한계가 있어 연료를 완전히 태울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산소가 공급되지 않는 경우가 많고, 노킹을 방지하기 위해 최적의 점화 타이밍보다 약간 늦게 점화를 시키기 때문에 가솔린 연료가 완전연소 되지 않아 일산화탄소가 발생하게 된다.
이와 같은 구형 가솔린 엔진의 단점을 보완한 신기술이 직접 분사와 터보차저다. 직접 분사와 터보차저가 가져온 효과를 한 마디로 압축비의 증가다. 그런데 압축비가 증가하게 되면 가솔린 엔진의 연소 특성도 디젤 엔진과 유사하게 되어 가솔린 엔진에서도 질소산화물이 배출되게 된다. 통상적으로 가솔린 엔진의 압축비가 대략 10:1 전후인 데 비해 디젤 엔진의 압축비는 20:1 수준이다. 압축비가 높을수록 동력 전환의 열역학적 효율이 높아지므로 디젤 엔진이 가솔린 엔진보다 높은 연비를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직접 분사나 터보차저 등의 기술을 이용하면 가솔린 엔진에서도 약 16:1 정도로 디젤 엔진에 근접한 높은 압축비를 얻을 수 있다. 이 결과로 가솔린 엔진은 연비가 향상되는 효과를 얻지만, 동시에 디젤 엔진과 마찬가지로 질소산화물과 미세분진(검댕이)을 발생시키게 된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질소산화물은 연소 조건에 의해 생성되는 것이지 연료의 성분에 의해서 생성되는 것이 아니다. 가솔린이나 디젤 연료 모두 성분은 탄화수소, 즉 탄소와 수소로 구성된 물질이다. 질소산화물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질소는 가솔린이나 디젤 연료가 아니라 흡입된 공기에서 온다. 공기는 대략 산소가 20%, 질소가 80%로 구성되어 있다. 연소실에 흡입된 공기에는 언제나 80%의 질소가 포함된 것이다. 질소는 매우 안정적인 가스이므로 대체로 연소 과정에 관여하지 않지만, 연소가 고온 고압에서 진행되면 질소가 산소와 반응해 질소산화물이 생성된다. 연소 온도와 압력은 압축비가 높을수록 높아지기 때문에 높은 압축비에서 작동하는 디젤 엔진에서 질소산화물이 많이 생성된다. 그런데 가솔린 엔진도 압축비를 높이면서 연소 온도와 압력이 높아져서 질소산화물이 생성될 수 있는 조건이 된다.
디젤 엔진에 오명을 씌워 시장에서 퇴출해 놓고는 하이브리드와 신형 가솔린 엔진이 그 자리를 차지했는데, 신형 가솔린 엔진은 디젤 엔진과 마찬가지로 ‘지저분한’ 엔진이라고 지적하는 목소리는 거의 없다. 그리고 미세분진(검댕이)에 대해서는 문제가 더 심각하다. 2~30년 전의 구형 디젤 엔진들은 덜덜거리는 진동과 함께 배기 파이프에서 나오는 검은 연기로 유명했다. 그 검은 연기가 미세분진이다. 디젤 엔진의 미세분진은 워낙 눈에 잘 보이는 단점이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책이 적극적으로 연구되었고, 결과적으로 요즘 나오는 엔진은 모두 DPF(Diesel Particulate Filter)를 장착하여 미세분진의 배출을 극도로 억제하고 있다.
그런데 가솔린 엔진에 있어서는 미세분진을 대부분 고려하지 않는다. 비록 신형 가솔린 엔진이 구형 디젤 엔진처럼 검은 연기를 내뿜는 것은 아니지만, 연소 특성이 디젤 엔진과 유사해지면서 가솔린 엔진에서도 미세분진이 발생하게 되었다. 문제는 가솔린 엔진에는 이에 대한 대책이 적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미세분진이 그대로 대기 중으로 배출되고 있다. 물론 가솔린 엔진에서 발생하는 미세분진의 양은 디젤 엔진보다 적지만, 대기 중으로 배출되는 미세분진의 양은 DPF가 적용된 디젤 엔진보다 가솔린 엔진 쪽이 더 많다.
이제 내용을 요약하자. 신형 가솔린 엔진은 디젤 엔진이 배출하는 것과 같은 종류의 오염물질을 배출하며, 배출가스의 총량은 가솔린 엔진이 더 많다. 그렇다면 과연 어느 쪽이 환경에 더 해로운 엔진인가? 디젤 엔진에 대한 일방적인 폄하와 퇴출은 과연 합리적인 결정이었는가? 이런 문제 제기가 이미 대세로 굳어진 디젤 퇴출의 물줄기를 돌리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디젤 엔진을 대변하여 합리적인 목소리를 내어 주는 게 좋겠다 싶었다. 앞으로도 계속 되풀이될 사회적 의사결정의 합리성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서라도 이런 의견은 필요하다.
이용욱<전 LS오토모티브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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