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24년 전, 기아자동차는 카렌스를 출시했다. ‘내 집처럼 편안한 차’를 내세운 카렌스는 당시 승합차에만 허용되던 LPG 엔진을 얹고 큰 인기를 끌었다. 2000년에 나온 대우 레조 역시 LPG 엔진을 얹으면서 국내에 ‘LPG MPV 시대’가 활짝 열렸다.
당시 자동차 전문지 기자였던 나는 레조 동호회의 2박 3일 시승회에 참석해 시승하면서 레조의 매력에 흠뻑 빠져버렸고, 결국 레조의 오너가 됐다. 이후 수입차로 갈아타면서 레조는 아버지의 차로 변신했는데, 2014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다시 내 품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레조와의 인연은 어느덧 24년째를 맞고 있다.
레조를 그토록 오래 탈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는 ‘꺾이지 않는 마음’이 아니라 LPG 엔진 특성 덕분이다. LPG 엔진은 구조적으로 디젤 엔진보다 깨끗하므로 관리만 신경 쓰면 오래도록 탈 수 있다. 레조는 초기 일부 모델에서 엔진에 냉각수가 유입되는 결함이 있었으나 내 차는 다행히 그렇지 않았고, 엔진오일도 5000㎞마다 꼬박꼬박 교환해준 덕에 지금까지 문제없이 달리고 있다.
이렇게 LPG 차와의 오랜 인연을 가진 나에게 대한LPG협회 측에서 시승 제안이 들어왔다. 기아의 신형 스포티지 LPI가 그 주인공이었다.
◆기대 이상의 운동성능
신형 스포티지는 출시 직후 시승회에서 하이브리드 모델을 타본 적이 있으나 LPI 모델은 이번이 처음이다. 스포티지에는 1.6 가솔린 터보, 2.0 디젤, 1.6 하이브리드, 2.0 LPI 등 네 종류의 차종이 있는데, 이들 가운데 1.6 하이브리드와 1.6 가솔린 터보가 주력 차종이다.
기아가 스포티지에 LPI 모델을 추가한 건 르노코리아의 QM6 LPe 모델의 영향이 컸다. 중형 SUV에 LPG 모델이 더해지면서 실용성과 경제성을 중시하는 고객의 마음을 빼앗았고, LPG 시장이 커지는 효과를 가져온 덕이다. 한 가지 첨언을 하자면 스포티지는 LPI이고 QM6는 LPe라고 부르지만, 브랜드마다 호칭이 다를 뿐 사실상 모두 LPG 차를 지칭하는 것이다.
기아 스포티지 LPI는 최고출력 146마력, 최대토크 19.5㎏·m의 엔진을 얹었다. 경쟁차인 QM6보다 최고출력은 6마력 높지만, 최대토크는 0.2㎏·m 낮다. 공차중량은 19인치 기준으로 스포티지가 1555㎏, QM6가 1610㎏이다.
제원표만 보면 스포티지가 더 가볍고 출력이 높은 덕에 상대적으로 운동성능도 살짝 앞선다. 과연 그런지 꼼꼼하게 체크하기 위해 멀리 남쪽으로 시승을 떠났다. 시승 시기가 지난해 12월 말이었던 만큼, 한 해를 정리하면서 다가오는 새해를 잘 맞이하기 위함이었다.
스포티지 LPI는 라인업에서 가장 출력이 낮지만, 일상적인 주행에서는 힘 부족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6단 자동변속기와 맞물려 변속 시점도 적당히 착착 찾아 들어가고, 필요할 때는 시프트 패들로 빠르게 변속할 수 있어 편하다. 시프트 패들은 노블레스 이상에 기본이고 프레스티지 이하 트림은 선택 사양인데, 꼭 선택하길 권한다.
QM6는 상대적으로 최고출력이 살짝 낮지만, 최대토크가 3700rpm에서 나오므로 4200rpm에서 최대토크를 내는 스포티지보다 중저속 발진감이 더 나은 특성이 있다. 따라서 시내 주행에만 놓고 보면 QM6의 주행성능도 만족스럽다.
일반 모델을 LPG 모델로 바꿀 때는 LPG 탱크의 하중으로 인한 승차감 변화도 주목해야 한다. 앞서 선보인 QM6 LPe 모델은 이 부분에서 만족감을 줬는데, 스포티지 LPI 역시 아주 만족스럽다. 앞 스트럿, 뒤 멀티 링크 방식의 서스펜션은 탄탄함과 안락함 사이를 절묘하게 오가며 장거리 주행에서도 꽤 편안했다.
연료탱크는 QM6와 마찬가지로 원형으로 만들어 트렁크 바닥에 배치했는데, 그로 인해 트렁크 바닥이 가솔린이나 디젤 모델보다 살짝 올라와 있다. 따라서 트렁크 바닥 아래에 별도의 넓은 수납공간을 기대할 수 없는 건 아쉽다.
◆경제성과 친환경성을 동시에 잡다
LPG 차의 가장 큰 장점은 역시 경제성이다. 1월 25일 기준 유종별 국내 평균 가격을 보면, 휘발유는 1567.82원, 경유는 1651.85원, LPG(부탄)는 1019.32원이다. 휘발유와 경유 모델 외에도 LPG, 하이브리드 모델까지 갖춘 스포티지를 기준으로 비교해 보면, 차량 가격에 5년 동안의 유류비(1만5000㎞ 주행 기준)를 합친 유지비는 하이브리드가 가장 높고 LPG 모델이 가장 낮다. 경유차처럼 요소수 보충이 필요치 않다는 것도 LPG 차의 장점이다. 복합 연비는 18인치 2WD 기준으로 LPG가 9.1㎞/ℓ, 2.0 디젤 13.9㎞/ℓ, 1.6 가솔린이 12.3㎞/ℓ, 하이브리드는 16.7㎞/ℓ다.
친환경성 역시 뛰어나다. 국립환경과학원의 시험 결과에 의하면, 경유차의 질소산화물 배출량은 실내 시험에서 0.036g/㎞, 실외 도로시험에서 0.56g/㎞이고, LPG 차는 실내 0.005g/㎞, 실외 0.006g/㎞이었다. LPG 차는 배출량이 적을뿐더러, 실내와 실외의 차이가 적은 점이 눈에 띈다. 경유차는 엔진오일 교체나 흡배기 클리닝을 소홀히 하면 이 차이가 훨씬 크게 벌어진다. 또한 경유차는 고압 연료분사장치가 고장 날 때 수리비도 상당히 비싸다.
이 모든 걸 고려해도 마지막으로 주저하게 되는 건 충전의 편리함 여부다. 현재 국내에는 2000여 개의 충전소가 있는데, 충전소의 위치가 시내 중심가에는 많지 않고 주유소보다 절대적인 숫자가 적은 건 사실이다. 그래도 본인의 동선에 따라 편리한 위치의 충전소를 미리 파악해두면 실생활에서는 크게 불편하지 않다.
스포티지는 1.6 가솔린 터보가 2474만원부터 시작하는데, LPG 모델은 2538만원이 기본 가격이다. 시승차인 노블레스 트림은 2965만원이고, 18인치 휠과 전자식 변속 다이얼, 시프트 패들, 풀 오토 에어컨, 동승석 파워 시트, 공기청정 시스템 등 다양한 편의장비가 기본형에 추가된다. 노블레스 트림에 선택 가능한 모든 옵션을 더하면 3670만원이 된다. 과거 준중형 SUV라면 3000만원 초반으로 풀 옵션을 갖췄던 때와 비교하면 많이 오른 가격이지만, 그만큼 편의장비도 풍부해지고 중형 SUV 못지않게 실내도 넓어져서 값어치는 충분히 한다고 본다.
종합적으로 보면 스포티지 LPI는 가성비와 친환경성, 정숙성, 승차감 등에서 상당히 높은 점수를 줄 만하다. 급가속 때의 발진감이 1.6 가솔린 터보나 하이브리드, 디젤보다 살짝 떨어지긴 하지만, 그 점을 빼면 딱히 흠잡을 게 없다. 조금만 신경 쓰면 새차와 같은 엔진 컨디션을 유지하기 수월하다는 점도 LPG 차의 매력이다.
임의택 기자 (ferrari5@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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