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와 기아의 전기차 개발 행보가 놀랍다. 불과 7년 전인 2016년만 해도 주행거리 200㎞대의 아이오닉을 내놨는데, 이제는 글로벌 메이커들과 당당히 겨룰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한 전기차를 선보이고 있다.
기아 라인업에서는 EV6가 획기적인 전환점이었다. 멋진 디자인과 긴 주행거리, 빠른 충전 속도 등으로 전 세계 자동차 전문가들의 찬사를 끌어냈고, 국내외에서 수많은 상을 받았다.
이제 기아는 새로운 도전을 펼친다. 국내 최초의 3열 대형 전기 SUV EV9이 그 주인공이다.
기아는 올해 EV9을 기자들에게 공식적으로 선보이기에 앞서 수많은 행사를 통해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디자인 설명회, 개발자 간담회 등이 그것이다.
EV9의 진면목을 확인한 건 미디어 시승회가 열린 지난 12~13일이었다. 경기도 하남에서 충남 부여까지의 장거리 시승회를 통해 차의 성능을 느껴보도록 했고, 시승 도중 개발자 간담회도 열어 궁금증을 해결할 시간도 줬다.
◆낯설고 새로운 디자인 언어
EV9은 처음 볼 때부터 꽤 오랫동안 낯설게 느껴졌다. 마치 종이상자를 접은 듯한 각진 외모가 기존 기아의 모델들과 연결감이 없어서다. 여러 행사를 통해 자주 보게 된 지금은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굳이 비슷한 차를 찾자면, 앞모습은 버티컬 주간주행등을 계속 사용해온 캐딜락, 뒷모습은 볼보의 분위기가 난다.
EV9의 크기는 길이 5010㎜, 너비 1980㎜, 높이 1755㎜, 휠베이스 3100㎜다. 차체 길이만 보면 아우디 e-트론(4900㎜), BMW iX(4955㎜)보다 길고, EQS SUV(5125㎜)보다 살짝 짧다. 휠베이스 역시 e-트론(2928㎜), iX(3000㎜)보다 길고, EQS SUV(3210㎜)보다는 짧다.
EV9의 3열은 좁지 않을까 궁금했는데, 실제로 앉아보니 예상보다 넓다. 2열 공간을 어느 정도 확보한 상태에서 키 177㎝ 성인이 3열 시트에 앉을 수 있고, 헤드룸도 꽤 넉넉하다. 성인이 7명까지 앉을 수 있다는 점은 EV9의 확실한 장점이다. 스위블 시트나 릴렉션 시트를 고르면 3열 시트를 전동으로 조작할 수 있어 더욱 편리하다.
파노라마 디스플레이는 현대차와 기아의 다른 차종에서도 자주 봐서 익숙한데, 메뉴 버튼이 햅틱 반응을 넣은 히든 스위치로 바뀐 게 가장 큰 차이점이다. 우드그레인 위에 글씨를 새겨 넣고, 이 글씨를 누르도록 했는데, 처음에는 터치식인 줄 알고 살짝 눌렀다가 다시 힘을 줘 누르는 걸 반복했다. 익숙해지면 큰 문제는 없을 듯하다.
이보다는 공조 디스플레이 위치가 조금 이상하다. 기존에 중앙에 두던 것을 파노라마 디스플레이의 중앙 왼쪽 구석에 배치하다 보니, 운전할 때 스티어링 휠에 일부가 가려서 잘 보이지 않는다. 이를 정확하게 확인하려면 고개를 오른쪽으로 살짝 움직여야 해서 불편할 수 있다.
◆3열 전기 SUV의 새로운 세계
시승차는 EV9 어스 4WD 트림으로 풀옵션 모델이다. 6인승 옵션에 릴렉션(200만원), 21인치 휠(120만원), 부스트(100만원), 듀얼 선루프(120만원), 빌트인캠2(60만원), 스타일(150만원), 메리디안 프리미엄 사운드(120만원)가 추가돼 있다.
최고출력은 283㎾(384마력), 최대토크 71.4㎏·m의 성능을 낸다. 공차중량은 2585㎏으로 무게 또한 상당하다. 1회 충전 주행거리는 복합 기준 454㎞. E-GMP 플랫폼을 사용한 첫 모델인 EV6 롱 레인지 4WD의 최고출력이 239㎾(325마력), 공차중량 2055㎏, 주행거리 403㎞인 것과 비교하면, 늘어난 배터리와 공차중량만큼 모터 출력과 주행거리를 상당히 키운 것을 알 수 있다. 주행거리가 가장 긴 EV9 7인승 19인치 모델은 주행거리가 501㎞에 이른다. 다만 2WD 모델은 150㎾(204마력) 출력의 싱글 모터가 탑재돼 가속력은 상대적으로 느리다.
시동 버튼은 현대차, 기아 라인업 최초로 칼럼 타입 변속기에 통합됐다. 이렇게 하면 대시보드와 센터콘솔 부위를 더 깔끔하게 마무리할 수 있는데, 스티어링 휠 안쪽으로 손을 넣어서 조작해야 하므로 익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승차감은 기본적으로 단단한 편인데, 거북하지 않게 안락함을 아주 잘 조화시켰다. 특히 전자제어식 서스펜션 없이 이 정도의 셋업을 이뤘다는 게 놀랍다. 기아 관계자는 “전자식 서스펜션을 장착하면 차 무게가 늘어나므로 다른 방법을 찾았는데, 그게 맥 멀티 서스펜션이었다”라고 설명했다.
맥 멀티는 맥퍼슨 스트럿 서스펜션의 하부 로어암을 두 개의 링크로 나눠서 설계한 구조를 말한다. 일반적인 로어암은 차체의 움직임에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지만, 이를 멀티 링크로 나눠서 더 세밀하게 대응토록 했다는 설명이다. 기아는 여기에 차고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셀프 레벨라이저를 더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승차감과 주행안전성 향상을 꾀한 것이다.
4WD 모델의 0→100㎞/h 가속 시간은 6초인데, 부스트 옵션을 고르면 5.3초로 단축된다. 이 옵션이 적용된 시승차는 가속감이 상당히 뛰어났고, 전기차 특유의 즉각적인 토크 감이 돋보였다. 속도감을 즐기는 운전자라면 부스트 옵션을 꼭 고르길 권한다.
기아가 자랑하는 HDP(고속도로 부분 자율주행) 기능은 아직 탑재되지 않았다. 대신 차로 유지 보조(LFA)2 기능을 테스트해봤는데, 완성도가 꽤 높았다. 1세대 장비는 토크 센서를 이용해 운전자가 스티어링 휠을 잡고 있는지 판단한 후 조향각을 토크 센서로 조절했는데, 이번 장비는 스티어링 휠에 정전식 그립 센서를 추가했다. 덕분에 실제로 스티어링 휠을 잡았는지 더 정확하게 감지하며, 조향각도 토크 센서 대신 조향각 센서로 제어해 정확도가 높아졌다. 이번 시승에서도 꽤 가파른 커브 길에서 차로 중앙을 잘 유지했다.
EV9의 가격(이하 모두 세제 혜택 전 기준)은 2WD 모델이 7814만원부터(에어)다. 어스 트림은 8324만원이고, 여기에 몇 가지 선택 사양이 있다. 7인승은 기본이고, 6인승을 고르면 50만원이 추가된다. 또한 19인치 휠&타이어가 기본이고 20인치 휠&타이어는 60만원이 추가된다. 아이보리 매트 실버와 오션 매트 블루 등 두 가지 무광 컬러는 50만원을 더 줘야 한다. 이들 옵션 외에도 듀얼 선루프(120만원)와 빌트인 캠(60만원), 스타일(150만원), 메리디안 사운드(120만원)가 마련된다.
기아는 여기에 커넥트 스토어를 통해 라이팅 패턴(18만원), 원격 스마트 주차 보조2(평생 이용 50만원, 월 1만2000원), 스트리밍 플러스(월 7700원)를 고를 수 있도록 했다. 이 구독 서비스는 앞으로도 다양한 기능이 새로 더해질 예정이다.
4WD 모델은 에어 8184만원, 어스 8694만원, GT라인 8924만원이며, GT라인에 모든 옵션을 갖추면 1억562만원이다. 풀 옵션을 갖추면 가격이 비싼 감이 있고, 선택의 폭이 다양하므로 꼭 필요한 옵션만 갖추는 것도 괜찮다. 개인적으로는 어스 트림에 듀얼 선루프와 메리디안 사운드 옵션을 더해 8934만원 정도로 견적서를 받으면 적당한 듯하다.
EV9의 정확한 경쟁차는 현재로서는 없다. 수입 중대형 전기 SUV의 경우 모두 2열 시트를 갖춘 모델이기 때문이다. 2열 시트 모델 중에는 아우디 e-트론이 먼저 떠오른다. 이 차는 230~300㎾(313~408마력)의 최고출력을 지녀 EV9보다 파워가 앞서며, 가격은 9722만~1억1650만4000원이다.
파워가 더 강력한 BMW iX는 523마력의 최고출력에 가격은 1억4440만원이다. 355~536마력을 지닌 EQS SUV는 1억5270만~1억8540만원이다. 렉서스의 전용 전기차 RZ는 21일에 데뷔하며 가격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EV9은 경쟁차보다 더 넓은 공간에 더 저렴한 가격을 갖춰 경쟁력은 충분한 것으로 보인다. 기아의 내연기관 SUV보다는 비싼 편이지만, 전기차 특유의 매력을 잘 어필한다면 시장에서 충분히 성공할 것으로 보인다.
임의택 기자 (ferrari5@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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