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탐정 말로’ 이익을 쫓아 움직이는 사람 vs. 명분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

발행일자 | 2024.03.18 01:07

닐 조단 감독의 <탐정 말로(Marlowe)>는 사건을 중심으로 관람할 수도 있고, 그 안에 있는 인물의 심리를 추적하며 볼 수도 있다. 심리에 더 중점을 둘 경우, 영화 속 인물들은 이익과 명분 중 하나에 각각 편중되어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대상관계이론(Object Relations Theory) 심리학자 멜라니 클라인(Melanie Klein)의 투사적 동일시(projective identification)의 측면에서 보면, 사건의 의뢰자인 클레어 캐빈디쉬(다이앤 크루거 분)가 얼마나 복잡한 방어기제를 사용하는지 알 수 있다.

영화 ‘탐정 말로’ 스틸사진. 사진=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영화 ‘탐정 말로’ 스틸사진. 사진=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 이익을 쫓아 움직이는 사람들 vs. 명분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

<탐정 말로>는 숨겨진 충격적인 비밀, 화려함 뒤에 가려진 추악한 진실을 탐정 말로(리암 니슨 분)가 파헤쳐가는 여정을 담은 작품이다. 영화 속 배경이 할리우드이기 때문에, 다소 클리셰로 느껴질 수 있는 장면도 관객에 따라서는 더욱 판타지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영화에는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범죄, 추리 영화라는 측면에서 크게 보면, <탐정 말로>의 등장인물은 이익을 쫓아 움직이는 사람들과 명분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로 크게 양분된다.

영화 ‘탐정 말로’ 스틸사진. 사진=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영화 ‘탐정 말로’ 스틸사진. 사진=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범죄물을 볼 때 사건에 집중하는 관객이라면 숨겨진 사건이 무엇일까에 초점을 맞춰 관람할 수 있다. 그런데 사건보다 등장인물의 심리를 따라가는 것을 더 선호하는 관객이라면, <탐정 말로>의 등장인물이 이익과 명분 중 어떤 것에 움직이는 인물인지를 장면마다 되새기며 영화를 즐길 수도 있다.

무엇이 최종적으로 이익이 되는 것일까? 누가 최종적으로 이익을 얻는 것일까? 어떤 명분으로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명분으로 시작한 일일지라도 이익 앞에서 변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런 점에 주목한다면 <탐정 말로>를 영상으로 보는 소설처럼 심리적인 면을 만끽하며 즐길 수도 있다.

영화 ‘탐정 말로’ 스틸사진. 사진=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영화 ‘탐정 말로’ 스틸사진. 사진=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 대상관계이론, 멜라니 클라인의 투사적 동일시의 관점에서 보면

심리학자 멜라니 클라인은 투사(projection)가 투사적 동일시로 이어지는 것을 정립한, 대상관계이론 학자이다.

투사는 자기 내면에 있는 스스로 견디기 힘든 부분을 무의식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전가해 고통과 괴로움을 줄이려는 것을 뜻한다. 자기 마음 안에 있는 것을 외부 세계에 있는 대상으로 돌리려는 것인데, 주로 죄의식, 열등감, 공격성, 수치심 등 직면하기 어려운 면들이 투사된다.

영화 ‘탐정 말로’ 스틸사진. 사진=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영화 ‘탐정 말로’ 스틸사진. 사진=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내가 투사한 대상을 내 마음이 투사한 상태로 그냥 두지 않고 투사한 것이 실제로 일어나도록 만드는 적극적인 투사가 이뤄질 수 있는데, 클라인은 이를 투사적 동일시라고 했다.

투사적 동일시는 수많은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그중 대표적인 네 가지는 의존적 투사적 동일시, 힘 투사적 동일시, 성적 투사적 동일시, 환심사기 투사적 동일이다.

영화 ‘탐정 말로’ 스틸사진. 사진=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영화 ‘탐정 말로’ 스틸사진. 사진=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탐정 말로>에서 이익을 쫓아 움직이는 사람, 가진 자가 자신의 권력을 휘두르는 방법을 투사적 동일시의 측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탐정 말로에게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애인 ‘니코’를 찾아 달라고 요청하는 매력적인 여인 캐빈디쉬는 다양한 투사적 동일시를 말로에게 행한다.

캐빈디쉬가 맨 처음 찾아가 말로에게 사건을 의뢰할 때는 의존적 투사적 동일시를 사용한다. 본인의 무력함과 어려움을 은연중에 전가하며 ‘당신 밖에 없다.’라는 생각을 말로가 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영화 ‘탐정 말로’ 스틸사진. 사진=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영화 ‘탐정 말로’ 스틸사진. 사진=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하지만 말로가 자신이 의도한 대로만 움직이지 않자, 캐빈디쉬는 의존적 투사적 동일시와 반대되는 방어기작인 힘 투사적 동일시를 말로에게 사용한다. 자신이 가진 힘의 메시지를 무의식적으로 전달해 상대방, 즉 말로를 자신의 통제 하에 두고 그에게서 주도권을 얻기 위해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캐빈디쉬의 엄마인 할리우드 유명 배우 도로시 퀸캐넌(제시카 랭 분)는 말로에게 더욱 강하게 힘 투사적 동일시를 사용한다. 말로에게 겉으로는 품격 있게 대하기에 아주 강하게 협박하거나 억누르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영화 ‘탐정 말로’ 스틸사진. 사진=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영화 ‘탐정 말로’ 스틸사진. 사진=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하지만 퀸캐넌은 말로에게 ‘너는 나 없이는 사건을 해결할 수 없어.’라는 힘의 메시지를 무의식적으로 자주 전달한다. 관객은 이런 모습을 스크린을 통해 제삼자의 관점에서 보면서, 힘 투사적 동일시를 떠올릴 수도 있고 암시나 복선의 장면이라고 추측할 수도 있다.

캐빈디쉬의 투사적 동일시로 다시 돌아오면, 캐빈디쉬는 말로에게 성적 투사적 동일시도 사용한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유혹적인 몸짓과 움직임으로 상대방을 성적으로 각성하게 만드는 성적 투사적 동일시만 하는 게 아니라, 캐빈디쉬는 말로에게 노골적인 성적 유혹도 한다.

영화 ‘탐정 말로’ 스틸사진. 사진=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영화 ‘탐정 말로’ 스틸사진. 사진=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성적인 자존감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사람이 행할 수 있는 성적 투사적 동일시와 성적인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노골적 유혹을 번갈아한다는 점에서 보면, 현실에서 캐빈디쉬 같은 사람을 만났을 때 말로처럼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궁금하다.

<탐정 말로>에서 캐빈디쉬는 적어도 말로에게는 환심사기 투사적 동일시를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헌신과 공로를 상대방인 말로에게 무의식적으로 어필할 정도의 시간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았을 뿐일 것이라 추측할 수도 있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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