맷 브라운 감독의 ‘무한대를 본 남자(The Man Who Knew Infinity)’는 하늘이 내린 수학 천재 라마누잔(데브 파텔 분)과 그를 알아준 단 한 사람 하디 교수(제레미 아이언스 분), 두 남자의 특별한 우정과 천재성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뇌가 섹시한 남자를 일컫는 뇌섹남이 대세인 시대에 천재성을 지닌 수학자들의 이야기는 충분히 흥미를 끌 만하다. 뇌섹남이 매력적인 이유는 단지 똑똑함으로 결과를 잘 도출해내기 때문만이 아니라, 결과를 도출해가는 과정의 아이디어와 추론이 흥미와 공감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 기득권 경계 밖에 있는 사람이 더 큰 능력을 갖게 된다면?
머릿속에 그려지는 수많은 공식들을 세상 밖으로 펼치고 싶었던 라마누잔은 인도 빈민가의 수학 천재이다. 그의 천재성을 알아본 괴짜 수학자 하디 교수는 그를 케임브리지 대학으로 불려들이면서 엄격한 학교의 반대에 부딪히게 된다.
‘무한대를 본 남자’는 기득권의 경계 밖에 있는 사람이 기득권 층보다 더 큰 능력을 갖게 되었을 때 기득권의 반응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인도는 한때 영국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영국인이 인도인을 이해한다는 것의 한계가 있다는 것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지독한 시기의 대상이 된 라마누잔의 천재성은 국가, 인종, 종교 차별 속에서 차가운 편견과 싸워야 하는 어려움과 맞물려있다. 라마누잔의 이야기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단순히 천재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그만큼 시기와 차별이 우리 주변에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 세상에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재능을 알아보고 인정한 하디 교수와 어려운 수학 공식보다 차별의 세상에서 풀어야 하는 것이 많은 라마누잔은, 성격도 가치관도 신앙심도 다르지만 수학에 대한 뜨거운 열정으로 함께 한다. 천재성을 알아주는 진정한 멘토와의 이야기는, 영화를 보면서 세상에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와 나눈 교감은 낭만이라고 말하는 하디 교수를 보면서, 수학이 보이지 않는 색깔로 칠해진 그림이라면, 라마누잔과 하디 교수는 그 그림의 윤곽에서 서로의 색을 보는, 세상에서 서로를 알아주는 사람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영화를 보면서 왜 나를 알아주는 사람은 없는지 깊게 생각하는 사람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디의 인정을 받는 라마누잔이 되는 것도 좋겠지만, 라마누잔을 인정할 수 있는 하디가 되는 것 또한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 증명, 과정 없이 직관으로 만든 공식, 영화가 제대로 표현 못한 공감
누군가에게서 배우지 않고 터득한 진리는 매혹적이기도 하지만, 공감하기에는 매력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영화에서 라마누잔은 증명이나 과정없이 직관으로 공식을 만들어서, 하디 교수가 아닌 케임브리지 대학의 다른 교수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하게 되는데, 수학의 가정과 과정을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어쩌면 하디 교수나 라마누잔이 아닌 다른 교수들에게 감정이입할 수도 있다.
인간적인 면이 강조되면서 진실에 접근하는 방법은, 수학의 풀이 과정을 좋하하거나 논리적인 인과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관객들 입장에서는 불편할 수 있다. 또한, 라마누잔의 천재적 이야기는 과정이 너무 많이 생략되어 있기 때문에 수학이 아닌 함축적인 이미지로 느껴질 수도 있다.
한 쪽으로 몰입해 말하자면 영화에서 라마누잔은 수학자라기 보다는 종교적 예언자로 표현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만약 신이 라마누잔에게 가르쳐 준 것이라면 신은 왜 가정과 근거없이 결과인 공식만 알려준 것인지 궁금해진다.
라마누잔과 하디 교수의 수학에 대한 깊이와 독창성은, 독창성이 주는 자극과 함께 세기가 지난 후 블랙홀을 이해하는데 공식들이 활용되었다고 전해진다. 영화가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공감은 아쉽게 느껴지는데, 라마누잔이 무한대를 증명한 남자가 아닌 무한대를 본 남자라는 것은 중요한 포인트로 여겨진다.
지적 호기심, 수학적 호기심에 대한 강한 화두를 던져놓고 과정을 생략한 것은 뇌섹남 코드를 좋아하는 우리나라 관객들에게는 영화적 환상이 아닌, 논리를 채우지 못하는 빈공간으로 생각될 수 있다.
최초의 컴퓨터 개발자 앨런 튜링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은 천재들이 천재성을 발휘한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을 관객들과 공유하여 관객들의 마음 속에 공통의 목표를 갖도록 만들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만약 ‘무한대를 본 남자’가 관객들의 추리력을 자극해, 논리적으로 따라오게 만들었다면 더욱 어필할 수 있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뇌섹남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영화 속 논리를 추론해가면서, 자진해서 자연스럽게 영화홍보를 했을 수도 있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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