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ENT 영화] ‘맨 오브 마스크’ 영화적 반전이 아닌 문학적 반전이 주는 깊이

발행일자 | 2018.03.31 01:10

알베르 뒤퐁텔 감독의 ‘맨 오브 마스크(Au revoir la-haut, See You Up There)’는 소설가 피에르 르메트르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오르부아르’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원작은 세계 3대 문학상 ‘콩쿠르상’ 수상작이며, 영화는 제43회 세자르 영화제에서 감독상, 각색상, 촬영상, 의상상, 미술상의 5개 부문을 수상한 작품이다.

원작이 주는 탄탄하고 촘촘한 스토리텔링과 촬영, 의상, 미술 등 압도적인 미장센 속에 인간 내면의 사랑과 인정, 체면, 자존심, 그리고 지키고 싶은 심리적 마지노선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작품이다. 영화적 반전이 아닌 문학적 반전이 주는 깊이를 느낄 수 있는데, 아직 책을 읽지 않은 예비 관객이라면 영화를 먼저 관람하기를 추천한다.

‘맨 오브 마스크’ 스틸사진. 사진=미디어소프트 제공
<‘맨 오브 마스크’ 스틸사진. 사진=미디어소프트 제공>

◇ 카메라가 바라보는 시선, 내려다보거나 올려다보거나

‘맨 오브 마스크’는 부감숏(High Angle Shot)으로 바라보는 영화 초반의 경찰서의 모습부터 카메라 워킹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부감숏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을 뜻하며 카메라 각도는 정면 위에서 아래를 향하고 있고,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이 영화 속 피사체, 즉 경찰서를 지배하고 있는 느낌을 받게 한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카메라는 디테일까지 심하게 몰입하는 관객에게는 현기증을 유발할 수도 있는 구도를 만드는데, 부감숏을 비롯한 카메라의 시선은 인물이 처해진 상황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반전이 일어날 수 있는 암시를 이미지적으로 펼치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

‘맨 오브 마스크’ 스틸사진. 사진=미디어소프트 제공
<‘맨 오브 마스크’ 스틸사진. 사진=미디어소프트 제공>

카메라는 사람을 바라볼 때 정면에서 보기도 하지만, 군인이 걸어갈 때 대각선 위에서 내려다보기도 하고 대각선 밑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시야를 선택하기도 한다. 카메라가 어디에서 어떤 시야로 피사체를 바라보느냐에 따라 관객이 어떤 지배력을 느끼게 될지를 선택한 점은 무척 인상적이다.

‘맨 오브 마스크’에서 신비로운 마스크를 쓴 천재화가 에두와르(나우엘 페레즈 비스카야트 분)와 그의 곁에 있는 알베르(알베르 뒤퐁텔 분)의 자존감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데, 카메라는 그런 심리적인 위압감과 통제감을 정말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맨 오브 마스크’ 스틸사진. 사진=미디어소프트 제공
<‘맨 오브 마스크’ 스틸사진. 사진=미디어소프트 제공>

◇ 살아있다는 것과 예전의 나의 모습으로 살아있지 않다는 것! 어느 것이 더 중요하고 어느 것이 더 의미가 있을까?

‘맨 오브 마스크’에서 에두와르는 전쟁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았지만 부상으로 인해 원래와 같지 않은 자신의 얼굴을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한다. 생명을 유지했다는 것과 얼굴이 훼손돼 이전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 중 어떤 점이 더 큰 의미를 가질 것인가? 죽지 않은 것만으로도 위안을 삼을 수 있는가? 제3자의 시선에서는 쉽게 답을 내릴 수도 있지만, 막상 그게 나의 이야기이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영화는 보여준다.

은둔해서 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분명히 있는데, 자신이 만든 가면을 쓰고 삶은 자신만의 방식이라고 보이기도 하고, 아주 삐뚤어졌다고 볼 수도 있다. 원하는 삶을 원하는 모습으로 살 평범한 권리와 기회를 잃어버렸다면, 미술에 대한 천재적인 재능 또한 의미축소될 수 있다는 것을 영화는 보여준다.

‘맨 오브 마스크’ 스틸사진. 사진=미디어소프트 제공
<‘맨 오브 마스크’ 스틸사진. 사진=미디어소프트 제공>

◇ 영화적 반전이 아닌 문학적 반전이 주는 깊이

‘맨 오브 마스크’는 중요한 메인 이야기가 다 끝났다고 생각됐을 때 아직까지 남아있는 허무함과 찜찜함, 그리고 어쩌면 감정이입한 관객의 마음속에 없어지지 않은 죄의식을 한 번에 정리하는 마무리가 무척 인상적인 영화이다.

영화적 반전이 아닌 문학적 반전이 주는 깊이는 강도와 자극성으로만 평가할 수는 없는 울림을 전달한다. 만약 원작 소설을 읽기 이전이고 영화와 소설을 모두 볼 마음이 있다면, 더 이상 자료 또한 찾지 말고 영화부터 보기를 추천한다. 영화를 통해 문학적 반전이 어떻게 영상화됐는지 느끼고 원작을 음미하면 감동은 배가될 것이다. 마지막 순간에 시나리오가 아니라 소설이었다는 게 소급해서 느껴지는 감동은, 개연성을 뛰어넘는 흡입력을 발휘한다.

‘맨 오브 마스크’ 스틸사진. 사진=미디어소프트 제공
<‘맨 오브 마스크’ 스틸사진. 사진=미디어소프트 제공>

사랑과 인정, 체면, 자존심, 지키고 싶은 심리적 마지노선은 에두와르에게 미술에 대한 천재성 못지않게 중요한 화두이다. 나한테 저런 천재성이 있으면 그런 갈등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속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막연히 생각하면 맞는 이야기이지만,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달라질 수 있다. 천재적 재능은 부족과 훼손, 결핍을 훨씬 더 크게 받아들이게 만들었을 수 있다. 아티스트이기 때문에 민감하게 느껴 그 간극은 더 확장됐을 수도 있다.

에두와르에게 공감하게 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우리도 마음속에 마음의 상처를 숨기기 위해 하나 이상의 가면을 쓰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마음속 가면은 거짓이 아니라, 훼손된 사실로부터 진실을 지켜주기 위한 심리적인 보호막일 수 있다.

‘맨 오브 마스크’ 스틸사진. 사진=미디어소프트 제공
<‘맨 오브 마스크’ 스틸사진. 사진=미디어소프트 제공>

에두와르에게 가면을 벗으라고 한다면 그야말로 폭력인 셈인데, 가면을 벗지 않았어도 가면 속의 자신을 들키게 된 에두와르는 한순간도 견딜 수 없게 된다. 에두와르의 마지막 모습을 보면서, 내 마음속 가면에 대해 죄책감과 창피함에서 너그러워져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긴 여운으로 남는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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