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디자이너 김태완의 '내 사랑 자동차'

발행일자 | 2011.10.13 16:43

한국 GM 디자인 부문 김태완 부사장 인터뷰 (1)

자동차 디자이너 김태완의 '내 사랑 자동차'

과거에 한국 사람들이 외국에 나가서 국산차를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고 이야기하던 때가 있었다. 단지 내 나라에서 만든 자동차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그렇게 반가운데, 만약 내가 직접 디자인한 자동차를 내 나라 도로뿐 아니라 전세계 도로에서 만나게 된다면 그 뿌듯함이 얼마나 클지 상상하기 힘들다. 수 많은 예술 분야 중에서 자동차 디자이너가 더 멋져 보이는 이유다.

올해로 GM의 쉐보레가 100살이 되었다. 그리고 쉐보레 핵심 모델의 디자인과 개발, 그리고 생산을 담당하는 곳이 한국 GM이다. 쉐보레 100년을 기념하여 한국 GM에서 디자인을 총괄하고 있는 김태완 부사장을 부평 공장 내 디자인센터에서 만났다.


김태완 부사장은 한국 GM의 신차가 출시될 때마다 발표회장에서 꼭 만날 수 있는 디자이너다. 그가 무대에 올라 새로운 자동차의 디자인에 대해 명료하게 설명해 주면 한층 더 신차를 잘 이해하게 된 느낌이 드는 건 당연하다. 그는 정장 차림일 때가 많지만 신차의 성격에 따라 어떤 때는 바이크 수트를 입고 등장하기도 하고, 청바지 차림으로 등장하기도 하는데, 매번 느끼는 거지만 김태완 부사장의 옷차림은 언제나 멋지다. 아름다운 자동차를 그려 내는 디자이너답게 패션에 대한 안목도 수준급임을 알 수 있다.

미국 브리엄 영 대학 (Brigham Young Univ.)에서 자동차 디자인 학사 학위를, 그리고 영국 왕립 예술 대학(Royal College of Art)에서 자동차 디자인 석사 학위를 한 그의 이력은 1991년부터 영국의 I.A.D(International Automotive Design)사에서 근무한 것으로 시작된다. 후에 대우 자동차에 인수되기도 했던 I.A.D는 영국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당시 자동차 디자인으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큰 회사였다. 그 곳에서 그는 야마하의 슈퍼카, 랜드로버 프리랜드 등을 디자인했고, 폭스바겐에 파견 가서 스코다 차량을 디자인했다. 자동차 외에도 브리티시 에어웨이의 항공기 퍼스트클래스 인테리어 디자인을 하기도 했다.

야마하 수퍼카 OX99-11
<야마하 수퍼카 OX99-11>

이후 1995년부터 대우자동차 익스테리어 디자인담당 최고 책임자로 일하다 다시 유럽으로 떠나게 되는데, 피아트로 가게 된 경위를 물었다. “미국과 유럽에서 공부를 했던 터라 더 넓은 곳에서 보다 많은 경험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트라이하게 되었는데, 기회가 주어지더군요”

지금은 한국인 디자이너들이 세계 여러 브랜드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2000년 당시로서는 미국에 몇 명의 한국인 디자이너가 있었던 것을 제외하면, 특히 유럽에서는 그가 1세대이자 최초의 한국인 디자이너였다고 한다. 김부사장이 피아트 근무 당시, 현재 피아트의 가장 유명한 아이콘과 같은 모델인 ‘500(이태리어로 친퀘첸토)’을 디자인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어서 그 이야기를 해 달라고 청했다.

“피아트 친퀘첸토는 2007년 데뷔했는데, 제가 근무하던 2004년에 컨셉트카가 나왔습니다. 3+1이라는 뜻의 이테리어 ‘뜨레삐우노’가 그것인데, 여기 그때 제작했던 모형을 제가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이 컨셉트카 모형은 가격으로 따지면 자동차 가격보다 훨씬 비싼 건데, 당시 4개를 제작해서 피아트 회장과 사장, 디자인 총괄, 그리고 제가 하나씩 소장하게 되었죠.”

피아트 뜨레삐우노 컨셉트
<피아트 뜨레삐우노 컨셉트>

그는 컨셉트카 뜨레삐우노의 익스테리어 디자인을 맡아서 리드했고, 후에 양산 모델인 친퀘첸토(500)를 전담하는 팀을 구성하면서 그 팀을 맡게 되었다. 당시 친퀘첸토 팀은 다른 디자인팀과 별도의 공간에 따로 사무실을 만들고, 심지어 배지도 새로운 것을 만들어 붙이면서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스페셜 팀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보통 그는 익스테리어 디자인을 맡는 경우가 많은데, 친퀘첸토 때는 익스테리어와 인테리어를 모두 맡아서 팀을 이끌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가 친퀘첸토의 양산까지 마무리하지는 못했다. “제가 피아트를 떠나기 얼마 전에 그 프로젝트가 잠깐 중단된 적이 있었는데, 그 때는 그란드 푼토와 그 세단형인 리니아 같은 모델의 디자인을 하기도 했죠.”

문득 그 당시 아주 기괴한 외관이 인상적이었던 물티플라(2002)가 떠올라 그 차의 디자이너가 누구인지 물어봤다. 혹시 그 기괴한 차도 김부사장의 디자인이 아니었을까? “물티플라는 이태리에 있는 동안 저도 가지고 있었는데, 제가 디자인한 것은 아니구요. 개인적으로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익스테리어 디자인입니다. 지금 피아트 디자인을 맡고 있는 로베르또 지오리토가 조그만 에스프레소 머신을 디자인 컨셉으로 가분수 형태로 디자인한 차죠. 참 재미있는 시도였습니다. 외관과는 달리 인테리어가 참 재미있었고, 운전 편의성도 좋았습니다.”

피아트 물티플라
<피아트 물티플라>

2006년에 GM 대우로부터 좋은 조건으로 초청을 받은 그는 과거의 대우와는 달리 GM이라는 이미지가 더해진 것에 기대를 걸고 다시 한국 행 비행기에 오르게 되었으며,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다.

그가 자동차 디자이너가 된 계기가 궁금해서 언제부터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는지 물었다. “제가 기억을 하고 있는 가장 어린 때부터 제 꿈은 자동차 디자이너였던 것 같습니다.” 어려서부터 차, 비행기, 배 이런 걸 좋아해서 관심 있게 책도 많이 보곤 했던 그는, 그렇게 어렸을 때부터 지나가는 차들도 관심 있게 보고, 조금 다른 부분이 있으면 그런 것을 찾아내고, 어떤 차인지를 알아 맞히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 당시라면 국내에 아직 자동차가 흔하지 않았던 시절일 텐데, 그는 정신과 의사셨던 부친 덕분에 좀 더 쉽게 자동차를 접할 수 있었다. “한 때는 집에 차가 몇 대 있기도 했습니다. 제일 처음 운전을 직접 해 본 것이 국민학교 때였습니다. 하면 안 되는 일이긴 하지만 기사 분께 부탁해서 학교 운동장에 차를 가져 가서 방석도 깔고 이렇게 해서 운전을 해 본 경험이 있습니다. 또 집에 있는 차를 폐차할 때는 그 차를 뜯어 보기도 했습니다. 중학교 때쯤엔 헤드램프를 뜯어서 전원을 AC, DC 바꿔서 서치라이트로 개조해 보기도 했죠”.

자동차 디자이너 김태완의 '내 사랑 자동차'

한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미국과 영국에서 디자인 공부를 했는데, 그 때도 그의 자동차에 대한 열정은 빛이 났던 것 같다. “국내에서는 차를 직접 뜯고 고치는 이런 기회가 많지 않았지만 미국에 있을 때는 좀 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자동차 디자인을 공부하다 보니까 미국 친구들은 어려서부터 자기 아버지 할아버지와 함께 자동차를 뜯고, 조립하는 등의 경험을 한 친구들이 대부분인 겁니다. 그래서 한번은 여름방학 동안 창고를 빌려서 옛날 차, MG B GT를 사서 혼자 리빌트를 다 하고, 의자를 떼어내고, 카펫을 다 재단해서 깔고, 페인트까지 직접 샌딩하고 칠하기까지 했습니다. 헤드램프, 벨트라인, 후드 등에 있는 크롬 파츠를 주문해 놓고는 부품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기도 했죠.”

이런 경험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후에 부하직원들에게 이런 경험을 강요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대우 자동차에 있을 때, 디자이너 28명을 이탈디자인에 데리고 가서 3년 동안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는데, 당시 디자이너들이 차를 잘 모르고, 심지어 면허가 없는 디자이너도 있다 보니, 엔지니어와 회의를 할 때 제대로 된 주장을 펼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5명씩 그룹을 만들게 하고 출장비로 여러 군데 창고를 빌리고, 어렵게 폐차를 구해서 저녁과 주말에 분해 조립을 시켰습니다. 당시 이태리에서는 폐차를 반출해서 이런 일을 하기가 무척 어려운 일이었는데, 제가 책임을 지기로 하고, 큰 모험을 한 것이죠. 제게 그런 일이 워낙 값진 경험이었기 때문에 그 친구들도 꼭 경험해 보도록 해 주고 싶었습니다.” “당시에는 불평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 친구들이 모두 갚진 경험으로 간직하면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후 엔지니어와 토론할 때 많은 도움을 얻게 된 건 당연한 일이죠.”

자동차를 보는 눈이 남다른 그가 개인적으로 자동차 역사 상 가장 아름다운 자동차로 꼽는 모델은 무엇일까? “하나를 고르기는 너무 어렵습니다. 그래도 굳이 몇 대를 고르자면, 베르토네가 디자인한 람보르기니 미우라, 란치아 스트라토스, 그리고 쉐보레 콜벳 중에서 68년에 나온 스팅레이를 좋아합니다.

람보르기니 미우라
<람보르기니 미우라>
란치아 스트라토스
<란치아 스트라토스>
쉐보레 콜벳 스팅레이
<쉐보레 콜벳 스팅레이>

그 스스로 예술가이다 보니, 예술에 대한 관심도 남달라 고호나 색을 많이 사용했던 마티스 같은 그림 그리는 사람도 좋아하고, 노래하는 성악가들도 다양하게 좋아한다. 음악은 성악, 재즈, 모던 팝, 국내 음악 등 다양하게 즐긴다. 그래서 좋은 디자인을 위해 영감을 얻는 특별한 활동이 있는지 물었다. 그는 활동적인 스포츠를 즐기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영감을 얻기 위해 뭔가 특별한 활동을 하기 보다 영감은 일상 생활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여행을 좋아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시도해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스키를 타도 다운힐과 크로스컨트리를 다 하는데, 스위스,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에서 스키를 타면서 자연을 통해서 많을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익스트림한 스포츠인 복싱도 옛날부터 많이 했습니다. 자연을 통해서는 창조자가 만든 순수한 자연을 보면서 기본에 충실해지는 것을 배웠고, 스포츠를 통해서는 역동적인 면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여러 브랜드에서 다양한 작품을 선보인 그가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무엇일까? “부모가 자식 생각하는 거랑 같다고 생각합니다. 다 소중하죠. 친퀘첸토도, 스파크도, 크루즈도…” 참 쓸데없는 질문을 한 것 같다.

자동차 디자이너라면 많은 차들을 살펴 보는 것은 당연할 테고, 새로 나오는 차들은 많이 타보기도 할까? “예. 요즘도 해외에서나 국내에서나 기회가 되는 데로 많은 차들을 타 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전에 미국에 있다가 영국으로 갈 때, 타고 있던 차를 팔고 나서 그 돈으로 미국에 있는 차들을 매 주 한 대씩 렌트해서 타 보는 식으로 미국에 있는 거의 모든 차들을 다 타 봤습니다. 그 때 미국차들을 많이 타 본 것이 디자이너로서의 제 인생에 좋은 경험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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