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규어의 미래를 열어 줄 XF는 이안 칼럼이 그려낸 우아한 디자인을 마음껏 뽐냈다. 아름답고 화려한 내 외장 디자인 속에는 최초로 선보인 재규어 드라이브 셀렉터, 재규어 센스 등의 재미난 장치도 듬뿍 담았다. 420마력을 뿜어내는 SV8은 진정한 스포츠 세단의 퍼포먼스와 어우러진 화려함의 가치를 높여준다. 글, 사진 / 박기돈 (RPM9 편집장)
우리 세대가 알고 있는 재규어의 이미지는 낮고 늘씬한 차체에 동그란 헤드램프를 두 개 가지고 있어서 언제나 복고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복고적인 이미지가 아니면 재규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재규어의 정통성일까? 꼭 그렇다고만은 할 수 없다. 혁신적인 이미지와 성능을 가지고 있었던 재규어가 오랫동안 부침을 겪으면서 그런 이미지가 굳어져 버린 듯하다.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 재규어 보다는 과거에 대한 향수를 간직하고 살아가는 재규어가 더 재규어답다고 애써 억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랬던 재규어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미래를 열어갈 재규어의 신호탄은 스포츠카 XK였다.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자동차에 뽑히기에 전혀 어색하지 않은 재규어 E 타입을 모티브로 하는 XK는 2세대로 진화하면서 알루미늄 바디를 적용하고 뛰어난 강성과 강력한 엔진, 그리고 세련된 서스펜션과 변속기, 화려한 실내와 첨단 이미지 등 여러 면에서 이전 재규어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세련된 모습을 더하고 등장했다. 그 다음으로 등장한 새로운 재규어 스포츠 세단 XF는 기존의 S 타입을 대체하게 된다. 2007년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공개된 컨셉트카 C-XF는 새로운 재규어의 스포츠 세단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부풀렸다. 컨셉트카는 우아함이 강조되었던 최근 재규어들과는 달리 날렵하면서 미래적인 느낌이 물씬했다. 거기다 XK를 통해서 경험한 새롭고 강력한 하드웨어가 접목된다면 새롭게 등장할 XF는 이제 당당히 프리미엄 스포츠 세단의 정상을 노려 볼 수도 있을 터였다.
재규어 C-XF 컨셉트카
그렇게 새로운 재규어에 대한 기대는 커져갔고 지난해 9월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XF 양산형이 공개됐다. 컨셉트카가 그대로 양산될 것으로 보기는 힘들었지만 많은 부분에서 컨셉트카의 이미지가 그대로 적용되었다. 특히 실내의 혁신적인 재규어 드라이브 셀렉트가 현실화된 것은 무척이나 반가운 일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맹수의 인상을 느낄 수 있었던 가늘고 날렵한 헤드램프가 현실화 되지 못한 것이 무척이나 안타깝다. 기술적으로 아직까지 적용하기 힘든 디자인이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5월 부산 국제 모터쇼를 통해서 공식 데뷔를 하게 되었는데, 기자는 지난 4월 말 제주도에서 XF를 미리 만나볼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서울에서 XF의 최상위 버전인 SV8 모델을 만났다. 이미 그 속에 담겨진 야수 본능을 짐작하고 있는 터라 대면이 예사롭지 만은 않다. 하지만 XF는 역시 디자인에서부터 먼저 강한 인상을 풍긴다. 멋진 애스턴 마틴을 그려냈던 디자이너 이안 칼럼의 터치는 우아하고 화려한 재규어의 이미지를 잘 간직하면서 미래를 향해 질주할 재규어의 본성 또한 멋지게 표현했다.
아름답다, 그리고 빠르다 XF는 ‘Beautiful Fast’ 라는 표어가 저절로 떠 오를 만큼 멋진 모습이었다. 앞모습에서는 보닛 위를 가르는 네 줄의 캐릭터 라인과 붕긋 솟아 오른 가운데 부분이 힘을 느끼게 해주며, 범퍼 아래 좌우에 날카롭게 자리하고 있는 크롬 도금 ‘스플리터’ 블레이드가 맹수의 이빨 마냥 번득인다. 많이 둥글었던 이전 S 타입의 라디에이터 그릴은 좀 더 길어졌다. 그릴 위쪽에 자리하던 재규어 형상은 그릴 중앙에 얼굴만 박아 넣었다. 헤드램프는 나름 두 개의 원형 램프를 간직하면서도 변형을 시도해 새로운 재규어의 이미지를 완성한다. 하지만 아는 것이 병이라고 이미 컨셉트카 C-XF를 통해서 너무나 멋진 모습을 보고 말았기에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XF의 옆모습은 더없이 멋진 영국 신사의 수트를 연상케 할 만큼 군더더기 없는 매끈한 라인을 자랑한다. 앞 펜더 뒤쪽에 자리한 에어 벤트는 비록 감상용이긴 하지만 엑센트의 역할을 확실히 하고 있다. SV8을 위한 5스포크 20인치 휠은 옆 모습의 백미다. 디젤 버전에는 다른 디자인의 두 가지 18인치 휠이 더해지는데 사이즈와 디자인에서 역시 20인치 휠이 가장 멋지다. XF의 보디라인 중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 쿠페 형상의 C필러에서 시작해서 트렁크로 이어지는 라인이다. 뒤쪽에서 비스듬히 봤을 때 정말 명품 수트의 우아한 라인이 느껴지는데, 이 라인이 최신형 애스톤 마틴을 많이 닮은 점도 무척 마음에 든다. 이안 칼럼이 애스톤 마틴에서 재규어로 넘어오면서 그 라인도 함께 가져 왔나 보다. 헤드램프보다 더 멋진 리어 램프도 뒤쪽 라인들과 잘 어울린다. 다만 중앙에 재규어 얼굴 엠블렘이 자리하던 곳에 재규어의 뛰는 옆모습을 부착한 것은 아직까지 다소 어색해 보인다.
야수의 심장을 깨우는 인테리어 실내 역시 재규어답게 화려하게 꾸몄다. 그 중에서도 데시보드를 모두 가죽으로 감쌌는데, 럭셔리 세단이라 하더라도 이 급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사양이다. 모든 트림에 기본으로 적용된다. 풍부하게 사용된 가죽과 함께 알루미늄과 우드 트림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며 고급스럽게 마감되었다. 일부 부품은 기존 재규어 모델들과 공유하고 있긴 하지만 계기판, 센터 페시아, 센터 터널 등 대부분 눈에 보이는 부분이 새로운 모습이다. 조금 닮았다면 스티어링 휠과 계기판, 센터 모니터 등이 XK와 동일하거나 닮았다.
그리고 실내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역시 재규어가 세계 최초로 선보인 재규어 드라이브 셀렉터다. 드라이브 셀렉터를 만나려면 우선 시동을 걸어야 한다. 키를 소지하고 실내에 들어서면 센터 터널 앞 부분에 위치한 ‘엔진 스타트 스톱’ 버튼에 주목하자. 마치 재규어의 심장이 뛰기라도 하듯이 빨간색 조명이 두둥, 두둥하고 깜빡이고 있다. 버튼을 눌러 시동을 걸면 잠든 재규어가 깨어나면서 재규어 드라이브 셀렉터가 조용히 올라온다. 레버를 움직여 드라이브 포지션을 선택하던 방식에서 다이얼을 돌려서 선택하는 방식으로 바뀐 것뿐이지만 그 미래적인 이미지는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물론 시프트 바이 와이어 기술이 적용된 덕분이다. 시동이 걸리면 에어 벤트 커버도 자동으로 열리면서 호흡을 시작한다.
XF의 실내에서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재규어센스다. 실내등을 켜고 끄는 것과 글로브 박스를 여는 것은 버튼을 누르는 대신 손만 살짝 갖다 대면 되는 센서 방식이다. 그저 재미있는 발상이라고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미래를 향해 나아가려는 재규어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재규어가 자랑하는 것 중에 또 하나는 센터 페시아의 패널 들 사이사이 간격아래에 은은하게 내장된 조명장치다. 밤이 되면 푸르스름한 빛이 은은한 실내를 만들어 준다. 다만 공조 장치 버튼 주변부 디자인에서 링컨 느낌이 나는 점은 다소 아쉽다. 이 외에도 도어를 잠그면 사이드 미러가 자동으로 접히고, 코너링 램프도 내장되어 있다.
국내에 소개된 XF는 2.7리터 디젤 엔진과 V8 4.2리터 수퍼차저 엔진 2가지가 얹히며, 트림으로는 2.7D 럭셔리와 2.7D 프리미엄, 그리고 SV8의 3가지로 소개된다. 2.7D 프리미엄에는 럭셔리와 다른 18인치 알루미늄 휠과 오디오 시스템, 통풍시트 등 다양한 편의장비가 추가된다. SV8에는 당연히 초고성능의 V8 수퍼차저 엔진이 장착되며, 5스포크의 강인한 20인치 알루미늄 휠과 최고급 440와트 돌비 프로로직 7.1채널 서라운드 B&W 오디오 시스템이 장착된다. 물론 최신 경향에 따라 AUX와 USB, 아이팟 연결단자도 마련되어 있다. 뒷좌석을 위해 천정에는 모니터를 포함한 AV 시스템이 설치되어 있다. 수퍼차저 420마력이 선사하는 스포츠 세단의 세계 지난 번 제주도에서는 디젤 버전을 주로 많이 탔었는데, 그래서 이번 시승차는 SV8이다. 수퍼차저 V8 엔진을 얹었다는 뜻이다. V8 4.2리터 수퍼차저 엔진은 기존 재규어와 랜드로버 등에 고루 얹히고 있는 엔진이지만 최고출력을 420마력/6,250rpm으로, 최대토크를 57.1kg.m/3,500rpm으로 높였다. 0~100km/h 가속은 5.4초, 최고속도는 250km/h에서 차단된다. 하지만 실제 계기판 상으로는 그 이상까지 올라갔다.
실내에 앉아서 시동을 걸기 전 먼저 심장 박동을 살펴 보는 것은 새로운 재미로 다가온다. 하지만 주간, 야외의 밝은 조건에서는 버튼 배경의 빨간 조명이 쉽게 식별되진 않았다. 재규어 같은 맹수가 야행성이라는 점을 기억해야만 할까? 버튼을 눌러 시동을 걸면 이제는 유명해져 가는 재규어 드라이브 셀렉터가 우아하게 솟아 오른다. 마치 가수가 콘서트 무대 아래에서 올라오듯이…… 브레이크를 밟고 드라이브 셀렉터를 돌려 D에 위치시키면 계기판의 인디게이터도 D 위치로 이동한다. D에서 한 단계 더 이동하는 S로는 그냥 돌려서는 안되고 다이얼을 살짝 눌러서 돌리면 S로 이동시킬 수 있다. 비록 세단이긴 하지만 420마력의 위력은 대단하다. 5.4초 만에 끝내는 100km/h 가속은 부드러우면서도 강렬하다. XF SV8 버전은 서스펜션이 기존의 재규어에 비해서는 상당히 경쾌한 편이다. 노면의 잔 진동이 경쾌하게 전달된다. 편평비 35시리즈의 20인치 광폭 타이어로 인해 노면도 좀 타는 편이다. 엑셀에 대한 반응도 민감한 편이고, 스티어링에 대한 응답성도 좋다. 이런 느낌들이 모여서 이루어내는 이미지는 바로 스포츠 세단이다. 하지만 유럽에서 만들어지는 재규어이지만 흔히 말하는 유러피안 스포츠 세단과는 늘상 약간의 거리를 두고 있었다. 경쾌하지만 부드러움이 늘 함께 하는 차이다. 새로운 XF도 역시 기존의 재규어 세단에 비해서는 더욱 스포티한 느낌이 강해졌지만 전통적인 유럽 스포츠 세단에 비해서는 여전히 부드러움이 많이 묻어있다. 딱딱함이 싫은 이들에게는 더 없는 선택이 될 수 있다. 변속기는 자동 6단이 적용되었다. 엑셀을 끝까지 밟으면 60, 110, 170, 230km/h에서 각각 변속이 이루어진다. 회전수는 6,000rpm을 조금 넘어선다. 수퍼차저 420마력의 힘은 대단했다. 제원상 최고속도로 표시되어 있는 250km/h를 지나 5,300rpm에서 거의 270km/h까지 도달하고서는 가속이 차단되었다. 부드러움을 간직한 하체지만 고속에서도 직진 안정성은 나무랄 데 없었다. 다만 250km/h를 넘나드는 초고속 영역이라면 더 단단한 하체를 가진 스포츠 세단들에 비해 긴장이 더 많이 필요하긴 하다.
고속 주행 못지않게 코너링도 상당히 안정적이다. 광폭 타이어와 함께 안정적인 서스펜션이 노면의 상황에 적절히 대응하면서 높은 접지력을 유지해 주었다. 강력한 파워로 코너를 탈출할 때도 쉽게 오버스티어가 발생하지 않았다. 안정적이고 빠르게 코너를 돌아나가는 재미에 빠지다 자칫 모션이 다소 과격해 지면 차체는 오버스티어를 일으킨다. 하지만 아주 급격한 오버스티어만 아니라면 카운터스티어로 쉽게 차체를 바로 잡을 수 있다. 물론 운전자가 미처 대응하지 못할 때도 DSC는 차체를 빠르게 안정시켜 준다. 이처럼 완전히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재규어의 신병기가 보여준 높은 안정감은 뛰어난 강성에 기인하는 바도 크다. 차체 소재는 강철이 주를 이루지만 무려 25가지 등급의 다양한 강철이 사용되며 그 중에는 아주 뛰어난 강도를 자랑하는 보론 강철도 포함되어 있어 미려한 차체에 뛰어난 강성을 확보하였다고 한다. D로 주행 중에도 패들 시프트를 사용해서 수동처럼 원하는 포인트에서 변속할 수 있어 높은 토크를 마음껏 끌어내 사용할 수 있다. 패들 시프트를 사용하면 수동모드로 전환이 되지만 레드존에 이르면 기어는 자동으로 시프트업이 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수동모드로 달리다가도 정속 주행을 하면 다시 자동모드로 돌아가게 되는데 XF는 그렇지 않다. 수동모드로 달리다 다시 D로 전환하고 싶으면 오른쪽 패들을 약 1초 이상 당기고 있으면 된다. S모드로 전환하면 D모드에 비해 한 두 단 낮은 기어가 선택되면서 회전수가 올라가고, 더 큰 토크를 보다 편하게 사용할 수 있어 다이나믹한 주행을 즐길 수 있다. 속도에 따라서는 6단으로 주행하다 킥다운 했을 때 3단까지 내려가기도 한다. 그리고 S 모드에서 패들을 사용하면 레드존에 이르러도 자동으로 변속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단 킥다운은 S모드에서도 가능하다. SV8 모델에는 드라이브 셀렉터 아래쪽에 체커기 모양의 버튼이 추가된다. S 모드에서 체커기 버튼을 누르면 트랙 DSC 모드가 되면서 DSC의 개입을 최대한 늦추면서 결정적인 순간에만 개입해 안정성을 확보해 주게 된다. 말 그대로 트랙이 아닌 상황에서는 적극적인 테스트를 해 볼 수는 없었다.
재규어의 미래, XF는 재규어다운 아름다움과 화려함을 잘 간직하면서 높아진 품질과 뛰어난 성능을 선보였다. 그 중에서 강력한 수퍼차저 엔진을 장착한 SV8은 본격적인 스포츠 세단으로서의 탁월한 가치를 자랑한다. 프리미엄 세그먼트 중에서도 니치 프리미엄을 지향하는 재규어로서 가격 정책만큼은 혁신적일 수 없었던 점이 아쉽지만, 이제는 프리미엄 본선 무대에서 어깨를 펴고 경쟁할 당당함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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