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스포츠카의 창세기, 현대 제네시스 쿠페 380GT

발행일자 | 2008.12.03 14:18

연타석 안타에 이은 홈런은 현대 제네시스 쿠페다. GT의 성격이 강하긴 하지만 제대로 된 후륜구동 스포츠카의 첫 신호탄이자 이 땅의 수 많은 자동차 매니아들에게 늦게나마 희망을 안겨 준 역전 홈런 같은 존재다. 세계 유수의 스포츠카와 경쟁하기엔 아직 턱없이 모자란 점이 많지만 첫 걸음치고는 훌륭한 기본기를 갖추었다. 점점 고래가 되어가는 현대를 춤추게 하기 위해서라도 아껴 두었던 칭찬을 마음껏 베푸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하다. 글, 사진 : 박기돈 (www.rpm9.com 편집장)

현대는 이제 승용차를 만드는 데는 상당한 수준의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특히 소형차 부문에서는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평가할 만하고, 중 대형에서도 최근 제네시스를 통해 보여 준 현대의 실력은 높이 살 만하다. 그런 현대가 후륜구동 럭셔리 세단인 제네시스 개발을 터전 삼아 후륜 구동 스포츠 쿠페에 도전했다. 어차피 후륜 구동 세단을 만든 플랫폼을 활용하는 것이고, 이미 스쿠프, 티뷰론, 투스카니에 이르는 오랜 쿠페 개발 경험이 있으니 어렵지도 않은 일이라고 판단했을 수도 있겠다. 그렇게 제네시스에 이은 또 하나의 제네시스가 뉴욕 모터쇼와 부산 모터쇼에서 공개되었고, 마침내 지난 달 우리의 곁을 찾아왔다. 그런데 이제 막 후륜구동 스포츠 쿠페에 첫 발을 들인 애송이임을 티라도 내듯이, 마치 뒷바퀴가 돌고 미끄러지기만 하면 그것이 스포츠카의 전부인 양 모든 동영상은 드리프트 일색이다. 어쨌든 출시 전 뜨거웠던 기대는 출시와 함께 발표된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인해 벌써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 차를 좋아하는 이들 사이에서는 여기저기 제네시스 쿠페 이야기로 들썩인다.


자동차를 일반 소비자보다 먼저 만나고, 평가하고, 또 촬영하는 일이 직업인 필자도 역시 제네시스 쿠페에 높은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현대가 늘 그렇듯이 시승차를 만나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렸다. 기다림에 지쳐 현대자동차 영업소를 찾아가 시승 신청도 해봤고, 결국은 200 터보 모델을 잠깐이나마 시승해 보기도 했다. 그리고 나서 드디어 380GT, 그 중에서도풀 옵션에 화려한 RED패키지까지 더해진 시승차를 만나게 되었다. 정작 제네시스 쿠페를 만나고 보니 갑자기 머리 속이 복잡해졌다. 제네시스 세단과 플랫폼을 공유하는, 제네시스의 쿠페 모델이라고 말하는데, 일반적으로 쿠페 모델이 더 고급차종으로 세단보다 비싼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제네시스는 세단이 쿠페보다 훨씬 더 비싸다. 차이가 나도 너무 난다. 어차피 하나 밖에 없는 후륜 구동 플랫폼을 이용하는 만큼 럭셔리 세단인 제네시스의 후광을 입어 보자는 계산으로 이름에 제네시스를 붙인 셈이다. 그러면서 가격을 끌어 올릴 여지가 있는 장비들을 대거 생략해서 가격을 맞추는 거지.

우선 크기부터 살펴보자. 제네시스와 플랫폼을 공유하긴 하지만 차체 크기는 고사하고 휠베이스와 앞, 뒤 트레드까지 모두 축소되었다. 제네시스가 준대형 사이즈인 만큼 고성능 쿠페로 개발하기엔 차체 크기가 너무 커 플랫폼 내에서 차체를 줄인 것이다. 이와 같은 경우는 BMW 5시리즈와 6시리즈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6시리즈가 5시리즈보다 휠베이스가 더 짧다. 그래도 가격은 더 비싸다. 반면 인피니티 G35(37) 세단을 베이스로 한 G37 쿠페는 세단과 동일한 휠베이스를 유지하고 있다. 가격은 역시 쿠페가 더 비싸다. 어쨌든 스포츠 쿠페로서는 상당히 큰 차체를 가지고 있다. 휠베이스를 살펴보면 제네시스는 2,935mm, 제네시스 쿠페는 2,820mm, 그리고 투스카니는 2,530mm다. 투스카니에 비해 거의 30cm 정도나 더 길다. 그리고 세계적인 스포츠카들과 비교해 보더라도, 메르세데스-벤츠 CL클래스 2,955mm, 인피니티 G37 쿠페의 2,850mm를 제외하고는,메르세데스-벤츠 SLR 멕라렌 2,700mm,BMW 6시리즈 2,781mm,아우디 S5 2,751mm, 애스턴 마틴 DB-S 2,740mm, 닛산 GT-R 2,780mm,포드 머스탱 2,720mm,시보레 콜벳 2,685mm정도로 모두 제네시스 쿠페보다 짧다. 디자인적인 요소로 인해 제네시스 쿠페가 그리 커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스포츠쿠페로서는 큰 차체임을 알 수 있다. 제네시스 쿠페는 휠 베이스가 길고 앞 뒤 오버행이 짧으며, 롱노즈 숏 데크 스타일이라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아주 특징적인 것은 노즈가 상당히 낮은 전형적인 쐐기형태라는 점이다. 이를 실현하려면 기술적으로 엔진을 최대한 낮게 배치해야 하는데, 현대는 이런 점까지 세심히 배려해 엔진을 낮게 배치함으로 무게 중심을 낮추었다. 디자인적으로 낮은 노즈를 유지하기 위해 엔진 커버까지도 생략하는 과감성을 보인 것은 (결과적으로는 원가 절감도 되긴 하겠지만) 상당히 높이 살 만하다. 노즈 부분이 낮아지면서 정면에서 바라보면 아주 낮고 평평하면서 떡 벌어진 형상을 만나게 된다. 이전 세대인 페라리 550(575M) 마라넬로나 최신 599 GTB 피오라노를 보더라도 유사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뒤로 가면서는 서서히 어깨 선이 높아지면서 트렁크 리드부분은 상대적으로 높게 형성되어 있다. 통일성을 강조한 헤드램프와 리어램프는 곡선으로 이루어진 날카로움이 돋보인다. 반면 강렬한 루드 캐릭터 라인에서 이어진 라디에이터 그릴은 최근 대형화 추세와는 달리 왜소해 보여 앞모습에서의 공격적인 스타일에 다소 감점요소가 되는 듯하다.

제네시스 쿠페의 외관 스타일에서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서로 평행을 이루는 두 줄의 강렬한 사이드 캐릭터 라인과 뒤쪽 삼각창 아래쪽을 오목하게 그려낸 터치다. 캐릭터 라인은 과거 화려한 스타일을 자랑했던 티뷰론을 떠 올리게 할 정도로 선이 굵고 이미지가 강렬하다. 반면 삼각창 아래쪽의 곡선은 강한 개성을 만들긴 하지만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그 곡선으로 인해 필자는 근대 서양의 권총이 연상되기도 한다. 옆 모습에서 또 하나의 키워드는 화려하고 멋진 19인치 하이퍼실버 도장 알로이 휠이다. 타이어는 고성능 후륜 구동 스포츠카답게 대형 광폭 타이어를 신고 있는데, 사이즈가 앞 225, 뒤 245로 다르지만 독특하게도 편평비는 앞 뒤 모두 40시리즈에 R19인치를 장착하고 있다. 그 안으로 보이는 브렘보제 빨간색 캘리퍼도 강렬함을 더한다. 타이어는 브리지스톤 포텐자 RE050A 제품이다.

그 동안 티뷰론과 투스카니가 해치백 스타일의 쿠페였던 것과는 달리 제네시스 쿠페는 정통 쿠페에 가까운 노치백 스타일이다. 재미있는 것은 뒷유리창을 최대한 뒤쪽으로 뽑아 내면서 마치 뒷유리 안쪽에 엔진이 들어 앉아 있는, 페라리나 람보르기니 같은 미드십 스포츠카의 느낌을 준다는 점이다. 유리창이 멀리까지 뻗어 있는 덕분(?)에 트렁크 입구는 다소 좁아졌다.

시승차는 380GT 모델 중 최고급 풀옵션 사양인 GT-R에 인테리어를 레드/블랙 투톤으로 장식한 레드 패키지가 더해진 차량이다. 도어를 열면 도어 트림에서 시작해서 데시보드와 센터터널, 그리고 시트 가운데 부분까지 장식된 레드의 강렬한 색감이 자극적이다. 시트와 센터 콘솔 덮개에는 빨간색 스티치도 더해졌다. 데시보드가 좌우대칭이면서 운전자와 동승자의 공간을 개별적으로 감싸는 듯한 느낌이 스포츠카에 잘 어울린다. 많은 이들이 이미 지적하고 있듯이 플라스틱의 질감은 고급스러운 수준은 아니고 무난한 수준이다. 제네시스 쿠페가 제네시스 급의 럭셔리 스포츠카가 아니고 일반 중형차 수준의 실속형 스포츠카라는 점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제네시스 쿠페의 실내에서 가장 만족도가 높은 부분은 멋과 기능이 모두 우수한 스포츠 버켓 시트다. 디자인이 멋지고 레이싱카로 사용할 목적이 아니라면 이 정도 버켓시트로도 몸을 잘 잡아준다. 액티브 헤드레스트가 장착되어 있어 후방 충돌 시 목을 보호해 주고, 헤드레스트는 앞 뒤로 슬라이딩이 되어 목을 편안하게 받쳐 줄 수 있다. 굳이 단점을 지적하자면 시트 전체 사이즈가 조금 작아 필자의 체형으로 봤을 때 어깨 부분까지 감싸주지 못하는 것이 조금 아쉽다. 운전석 시트의 앞 뒤 슬라이딩만 전동식이고 나머지는 모두 수동 조절식이다. 동반자석 시트의 등 부분에는 폴딩 레버가 마련되어 있어 뒷 좌석 승하차를 돕는다. 2열 시트는 분할되지는 않고 전체를 폴딩 할 수 있어 큰 짐도 실어야 할 때 유용하다. 3스포크의 가죽 스티어링 휠은 디자인이 스포티하고 직경이 작아 스포츠카에 잘 어울린다. 하지만 가죽의 질감이 싸 보이면서 거칠어 오히려 손이 미끄러지는 느낌이 든다. 스포츠카에서는 체형에 맞게 정교한 운전자세가 요구되는 만큼 스티어링 휠의 위치를 정교하게 조절하는 것이 필수임에도 텔레스코픽 기능이 없는 것도 아쉽다. 다만 필자의 체형의 경우에는 시트의 조절 만으로 적당한 운전자세가 나와주어 크게 불만은 없었다.

계기판은 SLK를 닮은 트윈 실린더 타입으로 계기에는 파란색 띠를 더해 스포티하고, 트립컴퓨터로는 순간연비나 구간 평균연비 등도 제공된다. 하지만 고성능 스포츠카를 지향하는 제네시스 쿠페로서는 다소 심플한 구조다. 센터 페시아 디자인은 개성적이고 독특하다. 버튼 배열이 깔끔하고 다이얼의 조작감도 좋다. 시승차에 장착된 JBL 오디오 시스템은 R 그레이드에 포함된 사양으로 외장 앰프 및 10개의 스피커로 구성되어 있다. 고성능 스포츠카에 고성능 오디오는 금상첨화 아니던가? JBL은 세계적인 프리미엄 제품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섬세한 표현력과 강한 베이스로 기대 이상의 만족스런 사운드를 제공한다. 다만 스피커 주변 패널들의 떨림으로 인해 사운드 손실이 일어나는 만큼 진동에 대한 보강은 필요해 보인다. 센터 콘솔 박스에 마련된 USB 단자에 USB메모리를 꽂으면 불과 2~3초 만에 MP3 파일을 찾아 재생해 준다. USB 메모리의 속도가 빨라서인지 MP3플레이어의 성능이 좋아서인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지금까지 만난 차들 중 가장 빠른 초기화 속도다.

워낙 많은 관심이 집중된 모델인 만큼 이제는 누구나 알고 있듯이 제네시스 쿠페에는 2.0 터보 TCI RS 세타 엔진이 얹힌 200Turbo 모델과 3.8 RS 람다 엔진이 얹힌 380GT 모델이 있다. 배기량 1,998cc 2.0 TCI RS 세타 엔진은 최고출력 210마력/6,000rpm과 최대토크 30.5kg.m/2,000rpm을 발휘한다. 3,778cc 3.8 RS 람다 엔진은 최고출력 303마력/6,300rpm과 최대토크 36.8kg.m/4,700rpm을 발휘한다. 이들 RS 엔진들은 흡배기 양쪽에 모두 가변 밸브 타이밍 기구가 적용되어 있으며 스포츠카에 적합하도록 튜닝되었다. 0~100km/h 가속 성능은 각각 8.5초, 6.5초다. 기본적으로 가격 경쟁력이 높은데다 200터보 모델과 380GT 모델의 가격차가 생각보다 크지 않아 고성능을 지향하는 380GT 모델의 선전이 기대되긴 하지만 아무래도 대부분의 제네시스 쿠페 오너들은 200Turbo에 자동변속기를 선택하게 될 것이다. 제네시스 쿠페에는 전 라인업에 스마트키가 기본으로 제공된다. 엔진 스타트 버튼은 브레이크를 밟은 상태에서 길게 누르지 않고 한 번만 살짝 눌러주면 시동이 걸린다. 시동을 끌 땐 모든 전원 장치가 한꺼번에 꺼져 버리는 것은 타 모델들과 동일하다. 이 시스템은 주로 일본 차량들에서 동일하며, 아우디의 경우 스타트 버튼으로 시동을 거는 시스템에서도 시동을 끌 때 오디오와 기본적인 전원 장치들이 그대로 작동되도록 하고 있어 편리하고 안정적이다. 시동을 걸면 아이들링 상태에서는 엔진음이 상당히 정숙하게 유지되고, 회전수가 올라가면 아주 매력적으로 엔진 사운드가 상승한다. 6,400rpm까지 상승하면서 내 뿜는 엔진 사운드는 지금까지 현대차에서 만날 수 없었던 최고의 사운드다. 특히 회전 상승이 몰라보게 매끄러워졌다. 배기량과 차의 성격을 감안할 때 303마력은 다소 부족한 느낌이지만 이처럼 매끄러운 엔진의 특성은 제네시스 쿠페가 가진 매력 중 가히 최고라고 평가해도 부족함이 없다. 이제 막 첫 발을 내디딘 만큼 향후 버전을 높여 가면서 출력과 토크는 조금씩 개선해 나가면 되는 것이고, 아쉬움을 느끼는 일부 오너들은 튜닝을 통해 성능을 올릴 것이므로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회전이 매끄럽고 안정적인 엔진이야말로 아주 중요한 기본이 되는 것이다. 이제는 정말 ‘엔진도 잘 만드는 현대’라고 말해줘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변속기는 200터보 모델에는 수동6단과 자동5단이, 그리고 380GT 모델에는 수동6단, 자동6단이 얹힌다. 시승차인 380GT에 얹힌 자동6단 변속기는 그 동안 일본 제품을 주로 사용해 오던 것과는 달리 독일의 ZF사에서 가져온 것으로 스텝게이트 방식에 스팁트로닉 기능이 더해졌다. 기어 레버는 윗부분을 타원모양 크롬으로 장식해 고급스럽다. 명성에 걸맞게 변속 충격이 없고, 변속이 빠르며 부드럽다. 하지만 ZF 변속기 중 (정확히 모델명을 확인해 보진 못했지만) 최신 모델이 아니거나 상위 모델이 아니다. 우선 D레인지에서 기어 레버를 좌측으로 밀면 상황에 따라 주행 단수보다 한 단 낮은 단수로 변속되긴 하지만 별도의 스포츠모드가 없다. 그리고 수동모드에서 기어를 내릴 때 회전수 매칭 기능이 없다. 최신 스포츠카에서 회전수 매칭 기능은 너무나 당연시되고 있을 뿐 아니라 고성능 스포츠 주행에서 큰 역할을 하는 기능이므로 제네시스 쿠페에 적용되지 않은 것은 무척이나 아쉬운 부분이다. 그래서 더욱 현대가 독자 개발한 후륜 구동형 수동 6단 변속기가 궁금해진다. 풀 가속 기준으로 변속은 50, 90, 140, 185, 250km/h에서 각각 이루어 진다. 5단 6,400rpm에서 250km/h를 기록하고는 속도가 차단되면서 더 이상 가속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상태에서 조금 있으면 기어가 6단으로 변속되면서 5,100rpm 부근으로 떨어져서 속도를 유지하게 된다. 1단의 경우에는 6,250rpm에서 변속이 이루어지고, 나머지 단수에서는 모두 6,400rpm에서 변속된다. 100km/h로 주행할 때의 회전수는 6단 2,100, 5단 2,600, 4단 3,600, 3단 4,600rpm이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엔진은 회전이 아주 매끄럽게 상승한다. 그리고 ZF제 6단 자동 변속기는 변속이 부드럽고 신속하다. 결과적으로 제네시스 쿠페 380GT의 가속은 매끄럽고 강력하다. 지금까지 고성능 스포츠카를 타 보지 못한 국내 승용차 오너들이라면 그 강력한 가속력에 무척이나 놀랄 만한 수준이다. 제원상으로 0~100km/h 가속은 6.5초가 걸리는데 체감상으로도 비슷한 수준임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3.8리터 303마력으로 6.5초의 가속력은 약간 아쉬운 수준이다. 5초 대 중반의 가속도 충분히 내다볼 수 있겠지만 현대는 이 정도로 타협한 듯하다. 많이들 비교하는 인피티니 G37 쿠페와 비교해 보더라도 뻗어 나가는 힘에서 부족함이 느껴진다. 333마력과 303마력의 차이 정도라고 볼 수도 있겠다. 어쨌든 제네시스 쿠페는 강렬하고 시원하게, 그리고 매끄럽게 가속한다. 200km/h를 지나서도 가속력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고, 힘겹게 250km/h에 다다르는 것이 아니라 가뿐하게 제한 속도에 도달하고도 더 달려나갈 태세다. 속도 제한이 없고 도로 여건이 허락한다면 계기판 상으로 270km/h도 노려 볼 만하다. 앞 듀얼 맥퍼슨 스트럿, 뒤 멀티링크 서스펜션의 세팅은 충분히 단단하게 이루어졌다. 과하게 통통튀는 느낌이 아니면서 일상적인 주행으로도 크게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 단단하다. 따라서 중속영역에서 노면을 읽고 접촉하는 느낌이 경쾌하면서 기분 좋다. 하지만 몸으로 접지력이 높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현대차 특유의 들뜨는 수준은 아니지만 노면을 좀 더 적극적으로 장악하는 서스펜션 세팅이 요구된다. 200km/h 이상의 고속에서도 서스펜션이 보여주는 직진 안정성은 비교적 우수하다. 하지만 저 중속에서 약간 무겁게 느껴지는 스티어링 휠이 고속으로 가도 더 이상 무거워지지 않아 고속에서는 상대적으로 스티어링 휠이 가볍게 느껴지고, 그로 인해 약간만 고르지 못한 노면에서도 차체는 허둥대는 거동을 보여 스티어링 휠의 고속 직진 안정성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물론 초고속 영역에서 정교한 스티어링 조작도 어려워질 수 있다.

타이어가 노면을 움켜쥐는 듯한 느낌에서 부족함이 보였던 제네시스 쿠페는 코너에서 비교적 쉽게 오버스티어를 발생시켰다. 단적으로 비유하자면 10여 년 전의 일본 스포츠카들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인피니티 G37 쿠페가 보여주고 있는 향상된 그립력에는 많이 미치지 못한다. 그 만큼 쉽게 드리프트가 가능하다고 볼 수도 있다. 극한 상황까지 그립을 유지하다 놓쳐 버리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오버스티어를 보이므로 보다 쉽게 카운터스티어가 가능하다. 단지 가속력과 드리프트를 즐기기 위한 목적으로라면 크게 부족함이 없는 세팅이다. 하지만 고성능 스포츠카는 당연히 뛰어날 그립이 확보되어야 한다. 광폭타이어를 장착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 아닌가. 포르쉐가 세계 최고라고 칭송 받는 데에도 포르쉐의 상상을 초월하는 노면 장악력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사실이다. 뛰어난 그립으로 코너를 돌아나가면서 몸으로 느끼는 높은 횡 G(중력 가속도)의 매력을 느끼기엔 제네시스 쿠페는 오버스티어 성향이 높은 편이다. 하지만 VDC가 켜져 있는 상황에서는 즉시 개입해 자세를 바로 잡아 주므로 일반인들이 타기에도 안전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코너를 달릴 때는 잦은 변속을 하기 마련인데 회전수 매칭 기능이 없는 변속기는 매력적인 제네시스 쿠페의 옥의 티라고 할 수 있다. 패들 시프트가 없는 것도 아쉽다. 그리고 변속 프로그램에서도 90km/h 약간 위에서 2단에서 3단으로 변속이 이루어지는데, 3단으로 주행하다 코너 진입전 브레이크를 밟아 80km/h 정도까지 속도가 내려갔을 때 기어를 2단으로 내리려고 해 보면 내려가 지지 않는다. 거의 70km/h까지 감속해야 2단으로 내려간다. 코너를 보다 적극적으로 공략하는데 있어서 역시 아쉬운 부분이다. 브렘보에서 가져온 브레이크는 필요한 만큼의 충분한 제동력을 보여 줘 아쉬움이 없다.

결론을 말하면 제네시스 쿠페는 아주 매력적이다. 세계적인 고성능 스포츠카와 비교하면 이제 막 선보인 애송이인 만큼 부족한 부분이 많을 수 밖에 없지만 적어도 기대 이상의 기본기를 갖추었고, 지금 현재 모습 그대로도 충분히 강력한 스포츠카로 인정 받을 만하다. 소비자의 구매력을 감안해 가격을 책정하고 그 가격에 맞추기 위해 기본기를 제외한 부분에서 비용을 절감한 노력도 칭찬할 만하다. 현대가 충분한 기본기를 갖춘 후륜구동 스포츠카를 선 보인 시기가 분명 늦은 것은 사실이다. 좀 더 일찍 이런 시도가 있었어야 했다. 하지만 늦는 것이 안 하는 것보단 낫다는 속담이 있지 않은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세계적인 고성능 스포츠카가 갖추어야 할 가치들을 더욱 연구해서 조금씩 개선해 간다면 머지 않아 우리도 최고 수준의 스포츠카를 가질 수 있을 것으로 충분히 기대할 수 있겠다. 항상 선두에 서서 쉼 없이 60년을 달려 온 오늘의 포르쉐가 이룬 경지, 그 포르쉐를 따라 잡기 위해 2~30년 걸려 닛산 GT-R이 이룬 경지, 그 경지에 이제 현대가 과감히 도전해 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15년, 10년, 아니 그 보다 더 짧은 시간에 그런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해 주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하지만 결코 쉬운 길은 아닐 것이다. 미국산 스포츠카들도 힘들어 하고, 일본에서도 혼다와 토요타는 여전히 숨고르기를 하고 있다. 부디 교만하지 말고, 어렵다고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달릴 수 있도록 우리도 따가운 질책과 함께 칭찬과 격려도 아끼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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