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어야 더 아름다운, 벤틀리 컨티넨탈 GTC 스피드

발행일자 | 2009.06.30 17:36

에덴 동산이 아니어도 벗은 것이 더 자연스러운, 아니 벗어야 더 아름다운 ‘컨티넨탈 GTC’의 고성능 버전 ‘스피드’는 최고속이 320km/h에 이르는 수퍼 컨버터블이 얼마나 화려하고 안락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었다.

글, 사진 / 박기돈 (www.rpm9.com 편집장)


수퍼 럭셔리 분야에서 베스트 셀러로 확고하게 자리잡은 벤틀리는 컨티넨탈 GT, 컨티넨탈 플라잉스퍼, 컨티넨탈 GTC의 라인업을 완성한 후에, 각 모델 별로 다시 고성능 버전인 ‘스피드’ 라인을 추가하기 시작했고, 컨티넨탈 GTC 스피드를 통해 스피드 라인을 완성했다. 스피드 라인의 데뷔는 오리지널 벤틀리 시절인 1923년 선보인 스피드의 뒤를 따른 것이다. 그리고 다시 과거의 전통을 이어받아 스피드를 능가하는 ‘수퍼 스포츠’ 라인에 불을 붙이며 컨티넨탈 GT 수퍼 스포츠까지 선보였다. 과거의 수퍼 스포츠는 1925년에 등장했었다.

그러고 보니 벤틀리의 신차 발표 행보에 갈수록 가속이 붙고 있다. 2003년 컨티넨탈 GT를 시작으로 2005년 컨티넨탈 플라잉스퍼, 2006년 컨티넨탈 GTC, 2007년 컨티넨탈 GT 스피드, 2008년 컨티넨탈 플라잉스퍼 스피드, 그리고 올해에는 1월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컨티넨탈 GTC 스피드를 공개한 후, 연이어 3월 제네바 모터쇼에서 컨티넨탈 GT 수퍼 스포츠를 선보인 것이다.

국내에 벤틀리가 공식 진출할 당시 컨티넨탈 GT와 플라잉스퍼를 시승한 후 오랜 만에 다시 벤틀리를 시승하게 되었다. 시승차는 지난 1월 디트로이트 모터쇼를 통해 데뷔했고, 갓 국내에 상륙한 따끈따끈한 모델이며, 국내에서 판매하고 있는 컨티넨탈 시리즈 중 가장 비싼 모델인 컨티넨탈 GTC 스피드다.

스피드 모델인 만큼 내 외관에서 일반 GTC와 차별화 되고, 운동 성능에서 스피드의 명성에 어울릴만한 고성능을 뿜어 낸다. 사실 벤틀리 컨티넨탈과 관련해서는 약간의 오해(?)가 있어 왔다. 최고속도가 300m/h를 넘어서는 ‘가장 빠른 4도어 세단’을 표방하는 벤틀리인 만큼 많은 이들이 큰 기대를 하게 되지만, 실제 벤틀리를 타보고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운동 성능에 약간 실망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필자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벤틀리라는 브랜드의 특성 자체가 스포츠카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대한 이해의 폭이 조금씩 넓어져 가게 되었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벤틀리가 오랫동안 롤스로이스의 가지치기 모델 정도로 전락해 있다가 폭스바겐 산하에서 새롭게 거듭난 지 이제 불과 7년여가 지났지만, 과거 화려한 모터 스포츠의 역사를 되살리는 작업은 그 동안 점진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첫 번째 결과가 바로 스피드 모델들이다. 그런 만큼 이번 시승은 컨티넨탈 GTC 스피드가 충분한 ‘스피드’ 본능을 갖추고 있는지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하지만 막상 토플리스 차림으로 화려한 속살을 한껏 자랑하고 있는 컨티넨탈 GTC 스피드를 만나면서 초점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그 화려함에 눈을 어디다 두어야 좋을 지 모를 지경이다. 그래도 급한 마음에 출발을 서둘렀다. GTC를 타고 따가운 태양을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탑을 닫는 것이다. 버튼을 누르고 있으면 25초 만에 전자동으로 열리고 닫히는 탑은 4인승의 공간을 모두 덮고도 깔끔하게 마무리된다.

탑을 닫은 상태로 주행하는 모습을 촬영하면서 어딘지 어색함을 느꼈다. 우선 뒷좌석과 트렁크 사이에 탑을 수납할 공간을 확보하면서도 넉넉한 트렁크 공간을 유지하려고 하다 보니, 자연스레 뒷좌석 공간이 줄어들게 되었고, 따라서 탑을 닫았을 경우 C 필러에 해당하는 소프탑의 끝 부분이 상당히 앞쪽으로 전진한 모습이 된다. 결국 트렁크 데크가 상당히 길어져 컨티넨탈 GT의 멋진 쿠페라인은 사라지고, 플라잉스퍼의 우아한 모습도 아닌, 엉덩이를 뒤로 쭉 뻗은 듯한 모습이 되고 말았다.

거기다 탑의 높이 또한 아주 낮은 편이다. 두터운 차체 옆면에 비해 낮은 지붕이 그려내는 선이 상당히 특이하다. 그래도 B필러가 없어서 지붕을 닫은 상태에서도 앞, 뒤 창문을 모두 내리고 달리는 모습이 시원해 보인다.

결국 GTC는 벗었을 때가 확실히 더 예쁘다. 어색했던 라인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명품 드레스를 완벽하게 소화해 내는 화려한 패셔니스타로 다시 태어난다. 지붕을 벗으면 무엇보다 낮은 앞쪽 윈드실드의 개성이 돋보인다. 낮은데다 살짝 누워있어 마치 스피드스터 같은 멋이 살아난다. 스타일이 멋진 컨티넨탈 GT를 스타일에서 저 만치 앞서는 대목이다.

벗었을 때 더욱 매력적으로 변하는 또 하나의 요인은 살짝살짝 비치는 화려한 속살이다. 시승차의 화이트 샌드 외장 색상 도어 너머로 붉은 갈색 빛 나는 피부가 조금씩 드러나 묘한 긴장감을 형성한다. 도어를 열었을 때 드러나는 군살 없는 다이아몬드 패턴의 초콜릿 복근에는 섹시함이 넘쳐난다.

GTC 스피드의 외관에서의 특징이라면 보다 오똑하게 솟으면서 윤곽이 선명해진 라디에이터 그릴과 크롬이 더해진 헤드램프, 더 확대된 에어 엔테이크와 그로 인해 더 낮아진 에어댐, 스피드의 본능이 살아나는 화려한 빗살 무늬의 20인치 알로이 휠 등이다. 에쿠스의 등장으로 다시 한 번 주목을 받은 뒤 펜더 위쪽 캐릭터 라인은 여전히 섹시하다.

한편 실내는 다이아몬드 무늬로 수 놓은 탄탄한 시트와 자수 처리된 벤틀리 엠블렘이 화려하기 그지없다. 헤드레스트가 분리형인 플라잉스퍼와 달리 GT와 GTC는 일체형이어서 더욱 스포티한 멋이 돋보인다. 그럼에도 허벅지 부분 길이 조절을 포함한 14웨이 전동 조절식에 안마 기능까지 더해 편의성을 높였다. 물론 탄탄하고 두터운 날개로 인해 몸을 지지하는 능력도 탁월하다. 뒷좌석은 상대적으로 많이 좁아 어른이 타기에는 부족해 보이지만 그 화려함에서는 앞 좌석 못지 않아, 좁은 뒷좌석에 타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운전석에 앉으면 낮은 윈드실드가 살짝 누워 있어 외부에서 스피드스터처럼 보이던 것과는 달리 여유가 충분하다. 눈으로 보이는 부분은 가죽과 리얼 우드, 알루미늄으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화사한 ‘Madrona’ 베니어가 ‘Newmarket Tan’ 가죽의 색과 너무나 잘 어울려 마치 인테리어가 한가지 재질로 꾸며진 듯한 착각이 든다.

그리고 곳곳에 배치된 크롬과 알루미늄 부속들이 화려한 액센트의 역할을 해낸다. 크롬 중 돋보이는 것은 에어 벤트를 열고 닫는 동그란 푸시 버튼이다. 버튼을 누르면 벤트가 닫힌다. 알루미늄 중 가장 화려한 것은 기어 레버 윗 부분의 벤틀리 로고를 감싸고 있는 테두리다. 쇠 깎는 줄을 연상시키는 패턴으로 마감해 까칠까칠한 손맛이 너무나 매력적이다.

기어 레버 아래에는 시동 버튼과 히팅 시트 조절 다이얼, 감쇄력 조절 장치, 차고 조절 장치, 그리고 탑 개폐 버튼이 일렬로 나열돼 있다. 최고의 퍼포먼스를 자랑하는 벤틀리 컨티넨탈 GTC 스피드와는 다소 어울리지 않게 왜소한 시동 버튼은 위치나 크기 면에서 다소 의외다. 과거 그랑프리의 전통을 이어 받아 스티어링 휠 왼쪽에 키를 꽂아서도 시동을 걸 수 있다.

개인적인 취향으로 인테리어에서 아쉬운 부분은 일반 컨티넨탈 모델에 장착되는 4 스포크 스티어링 휠이다. 속도감이 묻어나는 날카로운 스타일의 스피드 전용 3 스포크 스티어링 휠을 필자는 더 멋지게 보았는데, 아쉽게도 시승차에는 별도로 4 스포크 휠을 주문해 장착한 상태였다. 반면 시승차에는 옵션으로 제공되는 최고급 나임 오디오가 장착되어 있어 스피드와 어울리는 최상의 음악을 즐길 수 있었다. 나임 오디오를 장착하려면 천 만원을 추가 부담해야 한다.

스피드를 몰고 도로에 들어서면서부터 몸으로 느끼게 되는 부분은 역시 ‘스피드’다. 일반 컨티넨탈 모델과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으며, 거동에서 몸무게는 전혀 느낄 수 없다. GTC 스피드의 0~100km/h 가속 시간은 4.8초로 GTC에 비해 0.3초가 줄어 꿈의 4초대에 진입했다. 최고속도는 320km/h에 이르고, 탑을 연 상태에서도 312km/h까지 달릴 수 있다.

이처럼 ‘스피드’가 가능하게 된 것은 더욱 강력해진 엔진 때문이다. 폭스바겐이 공급하는 W12 6리터 엔진에 트윈터보를 더해 기존 컨티넨탈 모델들은 560마력을 발휘했었는데, 여기에다 커넥팅 로드와 피스톤 등을 경량 소재로 바꾸어 회전 저항을 줄이고, 엔진 관리 시스템을 개선해 토크 밴드를 넓히면서 반응속도도 높였다. 이렇게 얻은 최고출력은 610마력/6,000rpm이며, 최대 토크 76.5kg.m는 1,700~4,500rpm 사이의 넓은 구간에서 뿜어져 나온다.

물론 엔진 성능 향상과 함께 차체 곳곳에도 고성능을 위한 개선이 이루어졌다. 우선 엔진과 서스펜션 등에 알루미늄을 적용해 경량화를 추구했는데, 경량화의 또 한 축인 카본 세라믹 브레이크는 시승차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한편 뛰어난 운동 성능을 위해 차체의 앞쪽은 10mm, 뒤쪽은 15mm를 낮추고, 이를 보강하기 위해 댐퍼와 스프링, 리어 액슬의 부싱도 단단한 것으로 교체했다. 결과적으로 안락함을 크게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주행 안정성이 향상되면서, 주행하는 내내 안정감과 편안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무게감을 살짝 느끼면서 가속되던 일반 컨티넨탈 모델들과는 달리 GTC 스피드는 가속 페달을 밟음과 동시에 경쾌하고도 강렬하게 가속한다. 0~100km/h 가속에서 불과 0.3초 차이라 하더라도 5.1초에서 0.3초가 줄어 든 것이니 무려 6% 가까이 향상된 것이다. 그러니 실제로 몸에서 그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다.

변속기는 ZF 6단 자동이며, 변속은 45, 95, 145, 200km/h에서 각각 이루어진다. 최고속도가 320km/h에 이르는 자동차가 순식간에 200km/h를 넘어서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하지만 200km/h를 넘어서 다음 변속이 이루어지는 270km/h까지 가속하는 데는 추진력이 약간 줄어든다. 6,500rpm에서 다시 한번 변속하고 나면 초반의 폭발적인 기세는 한 풀 꺾이지만 그래도 가속은 꾸준하다. 최고속도를 직접 확인해 보진 못했지만 최고속도를 기록하려면 충분히 긴 도로가 필요해 보인다. 역시나 300km/h를 가뿐하게 돌파하는 수퍼카와는 성격에서부터 차이가 나는 대목이다.

최고속을 확인해 보진 못했지만 패들 시프트를 사용하면서 중고속 영역을 넘나드는 맛은 일품이다. 차의 무게를 감안했을 때 오히려 이런 세팅이 훨씬 실용적이고 만족감이 높을 것이다. 패들은 스티어링 휠에 부착되지 않고 칼럼에 장착되어 있어 스티어링 휠을 돌리는 것과 상관없이 일정한 위치에서 작동 시키면 된다. 물론 기어 레버를 한 칸 더 내려서 스포츠 모드로 주행하는 것도 재미있다.

탑을 열고 달릴 땐 비록 600마력을 품고 있다고 해도 마음 자세가 살짝 달라짐을 느끼게 된다. 숨가쁘고 각박한 도시 생활에 지쳐 있어서 스피드를 탈출구 삼다가도, 탑을 여는 순간 파란 하늘과 눈 부신 태양, 그리고 스쳐 지나가는 푸르름을 즐길 여유가 생겨난다. 이런 점이 GTC 스피드의 존재 이유가 아닐까?

벤틀리 컨티넨탈 모델들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모두 4륜 구동을 기본으로 장착하고 있어 뛰어난 안정감을 확인할 수 있다. 가장 최근 등장한 GT 수퍼스포츠에는 4:6으로 구동력이 배분되는 방식이 적용되었지만 스피드 버전까지는 구동력 배분이 5:5가 기본이다. 2.5톤에 육박하는 차체임에도 뉴트럴에 가까운 거동을 오랫동안 유지하고, 코너 탈출 시 엑셀을 깊숙이 밟으면 살짝 언더스티어의 느낌이 전달되지만, 즉시 ESP가 자세를 바로 잡아 준다. ESP가 8.1 버전으로 업그레이드 되면서 개입 시기를 늦추어 주는 다이나믹 버전이 도입되었다고 하는데 미처 확인해 보진 못했다.

가볍고 고성능인 카본 세라믹 브레이크 옵션이 장착되진 않았지만 거대한 20인치 휠에 장착된 275/35ZR20 피렐리 P-제로 타이어와 어우러진 브레이크 성능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캘리퍼에는 벤틀리 로고가 새겨져 있다.

한국형 옵션이 적용된 컨티넨탈 GTC 스피드는 3억 3,300만원이며, 나임 오디오를 선택할 경우 3억 4,300만원이다.

벤틀리 컨티넨탈 GTC 스피드는 ‘가장 빠른’이라는 수식어에 부합할 만한 스피드를 갖추었다. 동시에 수퍼 럭셔리 다운 화려함과 안락함에서도 부족함이 없다. 그런데 벤틀리는 다시 컨티넨탈 GT 수퍼스포츠를 선보였다. 벤틀리는 만족을 모르는 것일까? ‘수퍼 럭셔리 스포츠’가 ‘수퍼카’와 같아 질 때까지 계속 나아갈 것인가? 궁금해진다.

▶ [rpm9] 벤틀리 컨티넨탈 GTC 스피드 시승사진 고화질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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