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젤 스포츠 세단의 화려한 정상, BMW 535d

발행일자 | 2009.08.24 14:15

최근에 더욱 성능이 향상된 새 엔진이 등장하긴 했지만 그래도 세계 최고의 디젤 엔진이라고 부르기에 큰 무리가 없는 BMW의 직렬 6기통 트윈터보 286마력 디젤 엔진을 장착한 535d는 BMW가 전통적으로 주장해온 스포티한 이미지와 디젤 엔진이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535d는 엄청나게 강력하고 화려한 디젤 스포츠 세단이다. 글, 사진 / 박기돈 (www.rpm9.com 팀장)

지난 가을 BMW 코리아가 보유하고 있는 디젤 엔진 차량 전체를 시승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사실 그 행사의 주인공은 BMW가 한국 시장에 처음 선보이는 세 가지 디젤 세단, 320d, 520d, 그리고 535d였다. 당시 필자는 320d를 집중적으로 시승한 후 시승기를 썼었고, 그 후 520d도 RPM9을 통해서 소개했었다. 하지만 가장 매력적인 모델인 535d는 그 당시 잠깐 시승해 본 이후 다시 시승의 기회가 잘 오지 않다가 이번에 전격적으로 시승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당시 수입되었던 535d와는 아주 약간 사양의 변화도 있었다. 그리고 535d가 가지는 의미에서도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우선 최근 BMW 모델에서 시리즈 뒤에 붙는 두 자리 숫자가 단순한 배기량 대신 엔진의 위상을 반영한 숫자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35’가 그렇다. 335i, 535i 등에 사용된 엔진은 직렬 6기통에 배기량이 3리터 이지만 트윈터보를 장착해 최고출력이 306마력에 이르러 그 성능의 위상을 반영해 ‘30’대신 ‘35’를 사용한 것이다. 276마력을 발휘하는 자연흡기 3.0 엔진은 그대로 30을 사용하고 있고, 5시리즈의 경우 236마력을 발휘했던 3.0 엔진은 28을 붙여 528i로 국내에서 판매하고 있다. 같은 배기량에 같은 트윈터보 시스템을 사용하지만 더욱 높아진 326마력의 출력을 발휘하는 직렬 6기통 3.0 트윈터보 엔진은 7시리즈에 얹히며 740i로 명명되고 있다. 디젤 엔진에서도 이런 상황은 마찬가지다. 2006년에 공개된 직렬 6기통 3.0 디젤 엔진은 피에조 인젝터를 사용하는 3세대 커먼레일 시스템과 가변 트윈터보를 장착해 디젤엔진으로서는 혁명적이라 할 수 있는 286마력을 발휘했다. 3시리즈와 5시리즈에 얹혀 335d, 535d로 명명되었다. 530d로 명명되었던 3.0 디젤 엔진은 218마력을 발휘했었다. 535d에 얹힌 이 엔진은 발표 이후 최근까지 가장 뛰어난 디젤엔진의 명성을 누려오다 최근에 더욱 성능이 향상된 306마력 엔진에 그 자리를 내 주었다. 같은 직렬 6기통 3리터 트윈터보 디젤이면서 고정밀 직분사 시스템과 개선된 트윈터보 시스템을 통해 306마력을 얻어낸 새로운 엔진은 7시리즈에 얹혀 740d로 이름이 붙여 졌다. 740i에 장착된 휘발유 엔진의 326마력과 740d에 장착된 디젤 엔진의 306마력을 동급으로 평가하고 있는 셈이다.


이번에 시승한 차는 535d로 지난 해 잠깐 시승했던 차와 같지만 자세히 보니 기어 레버 디자인이 변경되었다. 5시리즈의 디자인은 데뷔 초기 논란이 많았던 디자인이었지만 지금은 매우 높게 평가를 받고 있는 디자인이다. 최근 BMW 디자인의 행보에 약간 불만이 있는 필자로선 이제 모델 체인지가 얼마 남지 않은 이 멋진 5시리즈의 디자인이 어떻게 바뀔 지 기대와 우려가 함께 한다. 국내에서 판매하는 535d는 강력한 디젤 엔진의 위상만큼이나 535d 자체가 가지는 위상 또한 특별하다. 보급형이라 할 수 있는 520d가 있는 만큼 535d는 비록 디젤 세단이긴 하지만 5시리즈에 적용 가능한 최대한의 장비를 모두 장착해 BMW 5시리즈의 현 주소를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가 강한 모델이다. 이를 위해 도어를 충격 없이 당겨 주는 오토 클로징 도어, 헤드업 디스플레이, 냉방 시트, 무려 20여 군데나 조절이 가능한 최첨단 시트, 뒷좌석 전동 썬 쉐이드까지 모두 갖추었다. 그러다 보니 가격이 만만치가 않다. BMW가 보유한 세계 최고의 디젤엔진을 얻기 위해서는 위와 같은 첨단 편의 장비들도 함께 구입해야 한다. BMW 코리아 측에서야 어차피 많이 팔리지 않을 모델인 만큼 최고라는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은 듯하지만, 이 멋진 디젤 엔진을 탐내는 사람들의 입장에선 상당히 안타까운 가격 정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외관에서 디젤 세단임을 눈치 챌 만한 힌트는 트렁크 리드에 붙은 535d 엠블렘 밖에는 없다. 시동이 걸려 있을 때 신경 써서 엔진음을 들어보면 디젤임을 눈치 챌 수 있지만 무심코 곁을 지나친다면 외부 엔진 소음으로 구분하기도 쉽지 않다. (실내에서는 엔진 소음을 주의해서 들어도 구분하기 어렵다.) BMW 차들은 아직 도어을 잠그고 열 때 리모컨 키를 이용해야만 한다. 아직까지 스마트 키 시스템이 없다. 적어도 이 부분은 더 이상 고집을 부릴 문제가 아니라고 보여진다. 스마트 키 시스템이 하루 빨리 도입되길 기대해 본다.

실내로 들어서도 다른 5시리즈 모델들과 차이는 없다. 디젤 차량임을 알 수 있는 힌트는 계기판의 회전계 숫자가 5에서부터 레드존으로 되어 있는 것이 유일하다. 디젤 차량이라고 해서 옵션이 빠진다거나 하지도 않다. 오히려 5시리즈가 갖출 수 있는 최대한의 옵션을 모두 갖추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먼저 도어를 열고 실내로 들어서서 문을 살짝 닫아주면 부드럽게 문을 당겨서 밀착시켜 준다. 소프트 클로징 도어다. 메르세데스-벤츠 S 클래스가 처음 선보인 지 벌써 오랜 시간이 지난 만큼 이제는 국산 대형 차량에도 장착되어 있는 기능이다. 하지만 여전히 최고급 차량에만 적용되고 있는 최고급 옵션이다.

535d의 편의 장비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최첨단 시트다. 전동으로 조절되는 방향이 무려 20 방향이다. 수동으로 헤드레스트 좌우 날개를 조절하는 기능까지 마련되어 있다. 거기다 냉방시트도 지원된다. BMW가 선보이고 있는 시트 조절 장치 중 유일하게 허벅지 부분 날개 조절 장치만 빠진 최고급 시트임에 틀림없다. 수 많은 관절 중 필자가 가장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등받이 위쪽 어깨 부분만 앞뒤로 꺾이는 관절이다. 어깨부분을 앞쪽으로 살짝 굽혀 주면 평상시에도 어깨와 머리 부분이 자연스럽게 시트에 밀착되면서 안정적이고 편안한 운전 자세를 유지할 수 있다. 헤드레스트 앞쪽의 날개는 시트를 눕히고 잠시 낮잠을 잘 때 머리를 받쳐 주므로 아주 편하다.

535d에는 속도, 네이게이션, 트립컴퓨터 정보 등이 창문 너머에 표시되는 헤드 업 디스플레이도 마련되어 있다. 운전 중 시선을 크게 움직일 일이 없어져 안전 운전이 크게 도움이 된다. 네비게이션 관련 정보다 상당히 자세하게 전달해 준다. 뒷좌석에는 뒷유리창뿐 아니라 좌우 창에도 썬 쉐이드가 마련되어 있다. 전자식으로 바뀐 기어 레버는 디자인이 살짝 변경되었다. 전투기 조종간 느낌이 났던 이전 것에 비해 개성은 떨어지지만 크기도 조금 작아져서 더욱 안정적으로 보인다.

오디오는 로직 7 프리미엄 오디오가 장착되어 수준 높은 사운드를 제공한다. i드라이브와 연결된 모니터는 해상도가 1024픽셀에 이르는 고화질 와이드 모니터다. 센터 콘솔 박스 뒷면에 마련된 AUX 단자를 이용하면 게임기나 PMP 등 외부기기를 연결해서 실감나는 사운드를 즐길 수도 있다.

도어를 열어주는 스마트키 시스템은 없지만 시동은 버튼을 눌러서 거는 방식이다. 음악을 듣다가 시동을 꺼도 오디오 등의 전원이 한꺼번에 차단되지 않는 방식이어서 편리하다. 535d는 시동을 걸어도 실내에서 진동과 소음으로 디젤 차량임을 인식하기 힘들 정도로 정숙을 유지한다. 이 멋진 디젤 엔진은 직렬 6기통 3리터 트윈터보 디젤 엔진으로 최고출력 286마력/4,400rpm과 최대토크 59.2kg.m/1,750~2,250rpm를 발휘한다. 디젤 엔진으로 리터당 95마력을 넘는 강력한 파워를 자랑하는 최첨단 엔진이었다. 이 후 여러 회사에서 (현대 R 엔진 포함을 포함해) 비슷한 수준의 디젤 엔진이 속속 발표되었고, BMW는 자체적으로 더욱 성능을 향상시켜 리터당 100마력을 넘긴 306마력 엔진을 최근에 다시 발표했다. 하지만 이 엔진은 아직 5시리즈에는 얹히지 않고 있으니 535d는 동급 최강의 디젤 모델임에는 틀림없다.

무려 60에 가까운 강력한 토크가 1,750rpm부터 뿜어져 나오긴 하지만 정지상태에서 막 엑셀을 밟는 순간에는 살짝 반응이 더딘 듯 보인다. 하지만 그 순간은 말 그대로 순간일 뿐, 즉시 강력한 토크가 차체를 밀어 부치면 웬만한 스포츠카 수준의 강력한 가속이 터져 나온다. 0~100km/h 가속에 걸리는 시간은 6.4초. 6.9초가 걸리는 골프 GTI를 생각하면 얼마나 경쾌한 가속인지 상상이 가지만 실제 느낌은 조금 다르다. 더 작고 더 단단한 GTI와는 달리 중형 세단인 535d는 상대적으로 체감 가속력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더욱 안정적이고 편안하게 강력한 가속을 해 낸다는 의미도 된다. 더욱이 중고속으로 올라가도 변함없이 빠르고 안정적인 주행 성능은 소형 스포츠카가 따라 오기 힘든 부분이다. 순식간에 도달하는 200km/h에서도 그냥 응접실 소파인양 편안하고 속도 제한이 걸리는 250km/h까지도 큰 무리 없이 도달해 낸다. 리미트를 풀고 디젤 세단이 얼마나 더 속도를 올릴 수 있는지 확인해 보고 싶은 욕심이 자꾸 끓어 오른다. 정지 상태에서 풀 가속을 하면, 50, 90, 145, 195km/h에서 변속이 이루어진다. 변속 시 회전수는 4,800rpm. 그리고 다시 레드 존에 근접하면서 헤드업 디스플레이 상으로 252km/h를 표시하면서 속도 제한에 걸린다. 회전이 4,800rpm까지 밖에 올라가지 않는 것이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지만 250km/h까지 가속하는 느낌은 웬만한 힘센 가솔린 세단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고속으로 달리다가 재 가속할 때는 휘발유 차량으로는 흉내내기 힘든 강력한 토크로 시원하게 가속해 준다. 그야말로 달리는 재미가 넘쳐난다. 그리고 그런 재미를 소리 없이 뒷받침 하는 것의 하나는 그렇게 달려도 기름을 많이 먹지 않는다는 안심감이다. 이처럼 강력한 파워를 뿜어내면서도 연비는 12.9km/L에 이른다.

터치감과 시각적 엑센트를 더한 시프트 패들을 사용하면 적극적으로 낮은 기어를 사용할 수 있지만 회전수를 높게 사용할 수 없는 디젤 엔진의 특성상 시프트 패들의 효용성은 휘발유 엔진에 비해 떨어진다. 정교하게 공략해야 하는 와인딩이 아니면 도로상의 추월 등에는 굳이 패들을 사용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시프트 패들을 사용하지 않고 기어 레버를 왼쪽으로 밀기만 하면 S모드가 되어 D모드에 비해 좀 더 낮은 기어를 선택해서, 더 높은 파워를 사용하면서 주행이 가능하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BMW의 S모드와 D모드의 차이는 크지 않다. 한편 기어 레버 아래 쪽에 있는 SPORT 버튼을 누르면 더욱 적극적인 스포츠 모드가 된다. 기어선택과 엑셀 반응 등에서 모두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주는데, 1단으로 주행하는 상황에서는 엑셀 반응이 민감해져 움찔거리기도 할 정도다. 서스펜션 세팅은 최근 점차 부드러워져 가는 BMW의 추세가 잘 반영된 듯 예전처럼 단단함으로 다가오기 보다는 작은 요철도 잘 걸러 내주는 느낌 선에서 다가온다. 비록 스포츠 세단을 지향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스포츠카일 필요는 없는 것이니 일반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반가운 변화로 볼 수 있겠다. 저속에서는 스티어링 휠을 조금난 돌려도 타이어 각도가 많이 돌아가는 액티브 스티어링과 경사로에서 정차했다 출발할 때 일시적으로 브레이킹을 유지해 뒤로 밀리지 않도록 해 주는 홀딩 기능 등도 모두 갖추어져 있다. 액티브 스티어링은 정지 상태에서 1.7회전에 조향이 모두 마무리된다.

535d는 디젤 세단이 얼마나 강력하고 얼마나 화려할 수 있는지를 가감 없이 보여주는 좋은 표본 모델이다. BMW 자체적으로는 더 강력한 엔진과 화려한 장비를 갖춘 740d가 있긴 하지만 성능에서는 535d가 한 수 위가 아닐까 생각된다. 스포츠카 뺨치게 빠르고, 페밀리 세단 혹은 비즈니스 세단으로 전혀 손색이 없는 안락성과 정숙성에 화려한 장비까지 더하고도 소형 승용차 수준의 연비를 자랑하는 535d 만한 자동차가 어디 있겠는가? 이처럼 매력적이다 보니 범부로서는 감히 가까이 하기 힘들 만큼 멀리 있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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