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 골프 GTD는 좋은 연비와 운전 재미를 동시에 추구했다. 슬로건도 디젤 엔진의 GTI다. 2.0 TDI와 GTI의 하이브리드라고나 할까. 물론 연비와 성능에서 두 모델에는 못 미치는 게 확실하다. 반면 2.0 TDI와 GTI가 갖고 있는 약점을 훌륭히 커버해 줄 수 있다. 디젤차로서는 찾아보기 힘든 런치 컨트롤도 자랑이다.
글 / 한상기 (rpm9.com 객원기자)
사진 / 박기돈 (rpm9.com 팀장)
새삼스럽지만 디젤의 장점을 생각해 보자. 디젤은 우선 가솔린 보다 연비가 좋다. 통상적으로 30% 내외로 좋다고 한다. 연비가 좋으니 CO2 배출량도 적다. 환경 규제가 강화되는 시대에 CO2 배출량 감소는 아주 중요하다. 그리고 저속 토크가 좋다. 거기다 기술이 발전해 터보 작동으로 지체 현상도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단점으로는 소음과 진동을 들 수 있지만 이 역시도 많은 개선이 이뤄지고 있다.
이렇게 디젤의 발전은 눈이 부시지만 의외로 재미를 위한 자동차는 쉽게 보기 힘들다. 기본적으로 연비가 우선시되는데다 상대적으로 느린 반응이 걸림돌이 된다. 그리고 재미를 위해서는 엔진뿐만 아니라 다른 부분도 받쳐줘야 하기 때문에 세팅 자체도 쉽지 않다.
폭스바겐의 골프 GTD는 운전의 재미를 추구한 디젤 모델이다. GTD의 성격은 디젤 엔진의 GTI이다. 디젤로 GTI 따라잡기라고나 할까. 출력도 2.0 TDI와 GTI 사이에 절묘하게 위치한다. 그렇다고 연비를 양보한 건 아니다. 출력이 30마력 높긴 하지만 2리터에 기대할 수 있는 연비를 제공한다. 골프 GTD의 컨셉트는 사실 새로운 게 아니다. 구형에 비슷한 성격의 GT 스포트 TDI가 있었다. GT 스포트 TDI도 출시 당시 상당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골프 GTD가 출시되니 이전의 기억이 생각난다. 2008년의 시승 행사에서 강남→남해에 이르는 404km의 거리를 3시간 정도에 주파한 적이 있다. 당시 차는 GT 스포트 TDI였고 운전 조건은 ‘시승 모드’였다. 장거리 크루징 시 연비 좋은 건 빤한데 또 다시 확인할 이유는 없으니.. 어쨌든 도착했을 때 연료 게이지의 바늘은 정확하게 1/4에 걸려 있었고 주행 가능 거리는 140km였다. 같은 조건에서 동일 배기량의 가솔린이었다면 무급유 주행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어쨌든 골프 스포츠 디젤은 꽤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시승차는 섹시한 레드이다. 골프라면 오버라고 생각되겠지만 GTD에는 썩 잘 어울린다. 색상부터 GTI 필이다. 시승차는 색상 선택부터 GTI를 지향한다. 독일 고성능 버전의 묘미는 안 바뀐 듯 바뀐 외관이다. 자세히 보거나 마니아만이 알아 챌 수 있는 경우가 많다. 골프 GTD도 그렇다. 보통 사람이 보기에 GTD 로고만 떼버린다면 골프로 착각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본다면 GTD만의, 아니 오히려 GTI에 가깝다. 외관에서도 GTI를 지향하는 디젤 골프인 셈이다.
우선 벌집 모양의 그릴과 안개등이 GTI와 비슷하다. 2.0 TDI의 안개등이 원형인 것에 반해 GTD는 직사각형이다. 그릴의 상하에는 가는 크롬 라인도 추가돼 일반 골프 보다는 비싼 모델임을 알리고 있다. 범퍼의 인테이크도 커졌다.
어딘지 허전했던 2.0 TDI의 그릴에는 GTD 배지가 붙었다. 작은 장식이지만 없으면 아쉬운 요소이다. 구형의 GT 스포트 TDI와 구별되는 것은 트렁크에 붙은 배지이다. GT 스포트 TDI는 2.0 TDI가 붙었지만 ‘GTD`는 정식 배지이다. 평범한 2.0 TDI(I가 빨간색이긴 했지만) 보다는 GTD가 훨씬 보기 좋다.
차고도 15mm가 낮다. 사실 차고를 내리는 것은 기능과 성능 개선에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왕년에 로워링 스프링 장착해 본 분이라면 모두 알 것이다. 로워링 스프링 장착으로 차고만 내려도 핸들링이 달라지고 타이어의 접지력이 다르다. GTD는 차고를 15mm 내린 덕분에 스포티한 스탠스를 갖추고 있다.
타이어의 사이즈도 205/55R/16에서 225/45R/17로 커졌다. 외관에서 보는 차이는 사이즈 이상으로 크다. 확실히 휠, 타이어가 외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휠 디자인은 기본적으로 2.0 TDI와 비슷하지만 GTD의 라인이 더 굵고 스포티하다. 그래서인지 상당히 튼튼해 보인다. 타이어는 던롭의 SP 스포트 01A이다.
실내도 2.0 TDI와는 다르다. 우선 센터페시아에 모니터가 들어섰다. 기대치 못한 변화이다. 2.0 TDI는 조금 큰 액정 수준이었지만 GTD는 번듯한 모니터다. 모니터만으로도 훨씬 분위기가 산다. GTD 보다 2.0 TDI를 보면 너무 수수해 보일 정도다. 모니터 양쪽에는 폰과 DVD/CD, 내비게이션, DMB 등의 메뉴 버튼이 있어 기능도 많아졌지만 조작 편의성도 좋아졌다. 조작은 모두 터치스크린이다.
거기다 모니터에는 공조 장치의 정보도 표시가 된다. 공조 장치 디자인은 바뀌지 않았지만 조작할 경우 바람 세기와 온도 등의 정보가 모니터에 뜬다. 큰 그림이 모니터에 나오니 시인성이 좋아진 것은 분명하고 시선을 뺏기는 시간도 그만큼 줄었다.
기어 레버의 디자인도 조금 다르다. 2.0 TDI의 레버 상단은 상당히 두툼하고 네모났지만 GTD는 수동처럼 작고 동그랗다. 레버 가운데에는 메탈 장식도 추가된다. 거기다 레버 하단을 감싼 가죽에는 하얀색 바늘땀이 선명하게 수놓아져 있다. 잘 찾아보면 은근히 메탈 장식이 많이 추가됐다. 그리고 시트와 플라스틱 등의 소재, 오버헤드 컨솔까지 모두 블랙톤으로 마감했다. 작은 차이지만 2.0 TDI와의 느낌 차이는 꽤 크다.
스티어링 휠도 GTI처럼 하단이 잘린 D 컷 디자인이다. 림 하단에는 GTD 로고도 선명하다. 아무것도 없이 깨끗한 2.0 TDI는 물론 GT 스포트 TDI와 비교해도 훨씬 화려하다. 림의 모양새나 가죽의 질 자체도 좋다. 양 스포크에 추가된 버튼은 보너스라고 할 수 있다. 작은 시프트 패들은 손에 잘 닿는 위치에 있고 스티어링과 함께 돌아간다. 계기판 디자인은 동일하지만 속도계의 스케일이 280km/h로 확대됐다. 출력이 170마력인 것을 생각하면 다소 오버스럽다. 현 2.0 TDI는 240km/h, GT 스포트 TDI는 260km/h이다.
몸에 딱 맞는 시트는 GTD 실내의 백미다. GTI처럼 좌우 날개가 강조돼 있는 것이 스포츠카에 사용되는 시트가 부럽지 않을 정도다. 등받이와 방석에도 굵은 주름이 들어가 옷과의 밀착성이 아주 좋다. 조절은 모두 수동이지만 전동이 아쉽지 않다. 다이얼로 등받이를 젖히기가 귀찮은 것은 분명 있지만 정확한 운전 자세를 잡기가 더 좋다. 시승차에는 컵홀더 사이에 있던 병따개가 없다. 누가 가져간 것인지 원래 빼놓은 것인지는 확인하진 못했다.
파워트레인은 170마력(35.7kg.m)의 힘을 내는 2리터 디젤과 6단 DSG로 구성된다. 출력과 토크 모두 GT 스포트 TDI와 동일하다. 2.0 TDI는 출력은 같아도 발생 회전수가 조금 달랐지만 GTD는 완전히 같다. 35.7kg.m의 최대 토크는 1,750rpm에서 시작해 2,500rpm까지 일정하게 발휘되고 여기에 성능을 입증 받은 6단 DSG가 조합된다.
신형 골프는 구형 보다 아이들링 시 정숙성이 좋아진 게 특징이다. GTD도 GT 스포트 TDI에 비해서는 공회전 소음이 줄었다. 반면 GTD라는 성격 때문인지 전반적인 소리에 대해서는 조금 관대한 것으로 보인다. 가속 시 실내로 들어오는 엔진 음량도 크지만 하체 뒤에서 들리는 소음도 큰 편이다. 물론 엔진의 음색이 고회전에서도 부담스럽지는 않다.
동력 성능은 GT 스포트 TDI와 거의 동일하다. 0→100km/h 가속 시간은 8.1초로 스포트 TDI의 8.2초 보다 조금 빨라졌다. 물론 GTI의 6.3초와는 큰 차이가 있다. GTD는 시작부터 당차게 움직이고 속도가 붙는 것도 2.0 TDI와는 격이 다르다. 2.0 TDI와는 30마력 차이지만 가속 능력은 그 이상이다.
1~4단에서 낼 수 있는 최고 속도는 약 40, 70, 118, 160km/h로 거침없이 속도가 붙는다. 적어도 5단까지는 속도가 올라가는데 멈칫거림이 없다. 5단의 최고 속도는 200km/h로 배기량이 2리터인 것을 감안하면 여기까지 가속력은 최고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6단으로 넘어가면 가속이 처지기 시작하지만 220km/h까지는 무난하다. 2.0 TDI는 내리막에서 220km/h을 찍지만 GTD는 평지에서도 어렵지 않다. 제원상 최고 속도는 220km/h로 GT 스포트 TDI 보다 2km/h 높아졌다.
출력이 동일하다고 느낌이 같은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배기량이나 출력이 동일하지만 엔진의 반응은 좀 다르다. 그 중 하나가 엔진의 변속 시점이다. GTD는 재미있게도 각 단마다 변속 시점을 달리하고 있다. 급가속 시 2, 3단은 5천 rpm을 살짝 넘긴 후 윗단으로 변속되고 4단에서는 4,900 rpm, 5단에서는 4,600 rpm으로 변속 시점이 조금씩 낮아진다. 당연히 회전수를 많이 쓰는 2, 3단에서의 가속이 가장 짜릿하다. 5천 rpm까지 회전하는 디젤도 정말 흔치 않다.
재미있는 게 하나 또 있다. 바로 고성능 가솔린 모델에서나 만날 수 있는 런치 컨트롤이다. 200마력 이하에서도 흔치 않지만 디젤차 중 런치 컨트롤이 달린 모델은 GTD 뿐이다. 런치 컨트롤은 운전자를 대신해 가장 빠른 순발력을 만들어주는 장비이다. 런치 컨트롤 모드를 가동하면 변속기의 클러치와 엔진 회전수가 가장 빨리 달릴 수 있는 상황으로 변한다.
사용 방법은 M3나 포르쉐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선 ESP를 해제하고 변속기는 S 모드 또는 수동 모드로 전환한다. 그리고 왼발로 브레이크 페달을 밟고, 오른발로는 가속 페달을 힘껏 밟는다. 그럼 엔진의 회전수는 2천 rpm을 넘어 고정된다. M3나 포르쉐처럼 런치 컨트롤 실행이 준비됐다는 별도의 표시는 없다.
이 상태에서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면 약간의 지체 후에 튀어나간다. 초기 가속에서는 약간씩 좌우로 비틀거리기 때문에 그 재미가 배가 된다. 170마력의 디젤에서 런치 컨트롤을 사용한다고 얼마나 빨라질지는 의문이지만 운전자가 갖고 놀 수 있는 장비 하나가 늘은 것은 분명하다. 속도가 붙었다면 ESP 다시 켜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GTD를 타면서 다시 한 번 골프의 고속 안정성에 감탄하게 됐다. 어디서 오는 차이인지 궁금할 정도이다. 작은 차체인 것을 생각하면 이런 안정성은 더욱 놀랍다. 시승 당일은 약간의 비가 내리는 상황이었지만 200km/h을 넘어도 별로 불안함이 없다. 시야만 조금 가릴 뿐이다. 탄탄하게 노면을 지지하는 하체는 GTD의 주행 성능을 더욱 빛나게 한다.
하체는 2.0 TDI 보다 단단하다. 엔진의 출력 차이만큼이나 스트로크가 짧아졌고 그에 따라 승차감도 딱딱해졌다. 물론 승차감이 나쁘지는 않다. 사람에 따라서는 GTD쪽이 더 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거친 노면을 달려도 말끔하게 충격을 흡수하고 여진도 많지 않다. 2.0 TDI도 구형에 비한다면 핸들링이 좋아졌는데 디젤 GTI를 표방하는 GTD는 한술 더 뜬다. 좀처럼 언더스티어가 나지 않고 상황에서 따라서는 GTI처럼 약한 오버스티어를 보인다. 운전의 재미를 위한 의도적인 세팅이라고 보인다. EPS는 개입을 절제할 줄 알고 작동도 아주 세련됐다.
파크 어시스트는 주차에 어려움을 겪는 여성 운전자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운전자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장비이다. 어지간한 운전자보다도 주차를 잘한다. 베테랑 운전자라도 파크 어시스트만큼 빠르고 반듯하게 차를 놓기가 쉬운 게 아니다. 거기다 야간 또는 우천 시에는 그 차이가 더 벌어질 것이다.
GTD에 대한 기대가 너무 크다면 이도저도 아닐 수 있다. 연비는 2.0 TDI 보다 못하고 운전 재미는 GTI 보다 떨어지는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돋보이는 것은 공인 연비가 17.8km/L로 2.0 TDI(17.9km/L)와 큰 차이가 없고 GT 스포트 TDI(14.6km/L) 보다는 월등히 좋다. 물론 좀 달리는 상황에서의 연비는 이보다 더 벌어지긴 한다. 폭스바겐은 2.0 TDI와 GTI 사이에서 고민하는 사람을 위해 GTD를 내놨다. 2.0 TDI의 연비와 GTI의 재미를 아우르는 게 GTD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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