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조 밀레짐 207은 푸조 브랜드의 탄생 200주년을 맞아 국내 수입사에서 기획한 파격특가 상품이다. 5도어 해치백인 207GT의 경우 기존 사양에서 가죽시트와 ESP를 제외시키는 방법으로 가격을 500만원이나 낮췄다. 차 값은 수입차 최저가이지만 사양은 기대이상으로 좋다. 연비도 좋아졌다. 푸조 특유의 핸들링과 승차감도 여전히 만족스럽지만 자동변속기는 바꿔줄 때가 됐다.
글,사진 / 민병권(www.rpm9.com 에디터)
‘수입차 최저가’라는 타이틀 때문에 뒤로 묻혀 버린 듯 하지만 이번 207은 페이스리프트 모델이다. ‘facelift’라는 말 그대로 얼굴부분이 가장 많이 바뀌었다. 그래도 ‘쫙 벌어진 입’처럼 특징적인 부분들은 그대로이기 때문에, 기존 모델과 나란히 세워놓지 않으면 차이를 잘 모를 수도 있겠다. 잘 보면 입모양이 달라졌다. 가로선을 강조해 조금은 점잖아진 인상이다. 삐져 나온 이빨처럼 보였던 안개등을 바깥쪽으로 따로 뺀 것도 한 몫 한다. 아랫입술이 동그랗게 말린 원래의 얼굴은 유럽에서 보급형으로 새로 출시된 206+ 모델에 넘겨주었다. 207의 지위가 한 단계 올라간 셈이다.
검정색이었던 뒷범퍼 가로선은 차체 색으로 바뀌었고 테일램프에는 LED를 ‘ㄷ’로 배열해 한층 세련되어진 느낌이다. 이 부분 역시 전보다 가로선을 강조했다고 볼 수 있다. 도어 몰딩에는 크롬 라인이 추가되었고 휠 모양도 5스포크로 바뀌었다. 예전 휠도 잘 어울렸지만 이제 좀더 스포티해진 인상이다. 전체적으로는 ‘어라, 전보다 어딘가 세련되어진 것 같은데, 뭐지?’하는 은근함이 있다.
사이드미러 아래쪽에는 한정판임을 알리는 ‘밀레짐200’ 스티커가 붙는다. 물론 수입사에서 마련한 장식이다. 푸조는 올해로 탄생 200주년을 맞이했다. 밀레짐(Millesim)은 프랑스어로 ‘우량한’, ‘유서깊은’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3008에 붙은 ‘엑셀랑’, ‘프레스티쥬’에 이어 다시 한번 수입사의 작명센스가 발휘된 셈이다. 밀레짐 207은 하드탑 오픈카인 207CC와 이번에 시승한 207GT를 합쳐 200대만 한정 판매된다. 그 중 GT는 80대라고 들었다. 밀레짐 모델이 모두 팔리고 나면 이후의 207 모델은 가격과 사양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 아직은 결정된 바가 없다고 한다.
아무튼, 밀레짐 207GT의 가격은 2,590만원이다. 푸조 207GT의 국내 첫 출시 당시 가격이 2,950만원이었고, 나중에 3,100만원으로 인상되었던 점을 생각하면 대단한 가격인하다. 2~3천만 원대 수입차는 마진 폭이 워낙 적다 보니, ‘팔아도 과연 남는 게 있을까?’, 보는 사람들이 더 걱정이다.
가격인하 요인을 찾아보면, 일단 기존의 가죽 실내 마감을 직물로 대체한 것이 가장 쉽게 눈에 띈다. 원래의 207GT도 시트 가운데 부분이 직물이긴 했지만 도어 팔걸이까지 가죽으로 덮여있었는데, 이번에는 모두 직물로 바뀌었다. 아무리 수입차라지만 소형차에서는 어색하지 않은 부분이다. 대시보드의 직물 패턴과도 차라리 잘 어울린다고 볼 수 있다. 그래도 꼭 가죽시트여야 한다면 옵션으로 선택하면 된다. 실물은 보지 못했지만 2008년에 100대 한정판으로 나왔던 207스포츠도 시트는 직물이었다고 한다. 가격은 2,790만원이었다.
밀레짐은 여기에서 하나 더, ESP까지 뺐다. 적극적 안전장치인 ESP를 사양에서 제외시킨다는 것은 물론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ESP를 기본사양으로 넣은 차라고 해서 특별히 알아주는 시장상황이 아닌 바에야, 아예 빼버리고 가격 문턱을 낮추는 것도 합리적인 마케팅이랄 수 있을 것이다. 옵션으로 준비해놔도 선택하지 않는 소비자가 태반이라면 말이다.
마침 정부에서는 2011년부터 국내 시판차량에 ESC(ESP, VDC등)를 의무 장착해야 한다고 발표했는데, 207처럼 이미 시장에 나와있는 차의 경우에는 2014년까지 장착 의무가 유예된다. 타이어 공기압 경고 장치도 비슷하다. 그러고 보니 밀레짐 버전에서는 원래의 207GT에 있었던 타이어공기압 경고장치도 안 보인다. 그래도 에어백 6개는 잘 챙겼다. 어차피 소비자들은 에어백 개수만 신경 쓰지 않던가?
예전에 시승했던 207GT와 좀더 비교해보니, 이외에도 헤드라이트에서 저속 코너링램프와 프로젝션 램프가 빠졌고 실내에서는 방향제 기능이 사라졌다. 페달은 207CC와 같은 알루미늄 타입에서 일반 고무재질로 바뀌었다. 계기판에서는 속도계 아래쪽에 있었던 오일온도계가 빠졌다. 일부는 페이스리프트와 함께 정리된 사양들이다. ESP도 그렇지만 가죽시트만큼 티가 나는 부분들은 아니다. 미니 쿠퍼의 미니 유어스(SE)가 그렇듯이 중고차 시장에서는 일반 모델로 둔갑할 가능성이 크다.
어쨌든 그 외에 207GT가 자랑했던 풍부한 사양들은 그대로 가져왔다. 크루즈컨트롤, 스티어링휠 오디오 리모컨, 오토헤드라이트, 오토와이퍼, 그래픽 화면을 포함한 후방 주차센서, ECM룸미러, 화장거울 조명, 좌우 독립 온도조절 에어컨, 상세한 트립컴퓨터와 설정기능 등등. 저가형 수입차는 물론 훨씬 비싼 수입차들에서도 빼먹는 사양들이 수두룩 하다. 유리창은 전 좌석 모두 원터치로 여닫기가 가능한데, 이번에는 리모컨으로 여닫는 기능도 추가되었다. 살짝 건드리면 세 번 점멸하는 깜빡이 레버의 조작감은 국산 고급차들이 보고 배워야 할 부분이다.
삼각별 패턴으로 어설픈 카본룩을 연출했던 장식 부품들이 깔끔한 은색으로 바뀐 것은 환영하는 바다. 이 부분은 질감도 좋아졌다. 다만 가죽패턴으로 처리된 플라스틱 부품들은 대시보드의 소프트한 직물패턴과 비교해 품질이 떨어져 보인다. 에어컨 조작부의 다이얼은 손가락이 미끄러지지 않는 형상으로 바뀌었는데, 그래픽 화면을 비롯한 전체적인 분위기는 여전히 복고풍이다. 작은 차에 과분한 듀얼 온도 조절기능을 넣어준 것까지는 고마운데, 좌우를 동일하게 조절하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명서를 뒤져봐도 모르겠다.
내비게이션은 원래 옵션이었고 시트 열선 기능도 원래부터 없었다. 앞좌석용인지 뒷좌석용인지 헷갈리는 컵홀더와 함께 아쉬운 부분이다. 여성소비자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경차에도 열선시트가 달리는 시장이니 말이다. 시트는 물론 수동으로 조절한다. 등받이 각도 조절 레버가 뒤쪽으로 조금 높게 있어서 살짝 불편하지만 팔이 끼지는 않는다.
운전대는 각도와 깊이를 모두 조절할 수 있다. 천장이 낮고 시트가 앞으로 당겨진 듯 했던 207CC와 달리 207GT는 비교적 편하게 운전자세를 잡을 수 있다. 다만, 시트를 아무리 높여도 차의 보닛 윗면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전 207GT에 있었던 안쪽 팔걸이가 없어졌고 요추받침 조절기능도 없다. 동반석은 높이 조절이 안 된다. 시트자체는 타고 내리기에 불편하지 않고 좁지 않으면서도 코너링 때 지지를 잘해주는 편이다.
뒷좌석은 무릎을 세워 앉는 자세가 되고 다리나 머리의 여유 공간도 적지만 그럭저럭 앉을 만 하다. 시야가 트인데다 유리지붕 덕에 답답한 느낌이 덜하다. 1.1제곱미터 면적의 지붕 유리에는 열차단 처리가 되어있고 수동 햇빛가리개가 달려있다. 햇빛가리개는 두 칸으로 구분되어 있어서, 한 칸을 열면 선루프만큼만 열린다. 유리지붕 자체는 선루프처럼 열지 못하지만 시각적인 개방감이 더 큰 것이 매력적이다.
트렁크(해치 게이트)는 전동식 스위치로 잠금이 해제되고, 여닫을 때 무게가 가볍게 느껴져 조작감이 개운하다. 내부공간은 실제 용량(310리터)보다 넓게 보이는 편. 바닥아래에는 스페어 타이어만 들어있다. 선반과 바닥판을 두텁게 처리한 것이 특이하다. 뒷좌석을 접으면 적재공간을 확장할 수 있는데, 사용자 친화적이지는 않다. ‘어차피 잘 안 쓰잖아’라는 생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 방석의 앞부분을 잡아 뜯어 앞으로 젖힌 후 등받이를 눕히도록 되어있는데, 기구장치나 레버가 허술하게 덜렁거리고 바닥 철판과 고정부분이 고스란히 노출된다. 헤드레스트도 일일이 뽑아주어야 한다.
207GT의 1.6리터 가솔린 엔진은 푸조와 BMW가 공동 개발한 것으로, 미니 쿠퍼의 것과 같은 120마력짜리다. 시동음이 쾌활하고 주행 중에도 경쾌한 소리를 내지만 미니 쿠퍼만큼 시끄럽지는 않다. 그런데, 움직임도 미니 쿠퍼만큼 가볍지는 않다. 변속기가 발목을 잡아서다. 굳이 미니의 6단 스텝트로닉과 비교하지 않더라도 207GT에 얹힌 4단 팁트로닉은 효율이 떨어지고 반응도 늦다.
그나마 지능적인 스포츠모드와 수동모드를 갖고 있어 약간의 만회가 가능하지만, 물리적인 기어단수가 부족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주행 중 가속페달을 밟았다 뗐다 해보면 동력이 온/오프되는 과정에서의 단차가 두드러지고 변속충격도 있는 편이다. 이런 부분에만 익숙해지고 나면 어지간한 도로에서는 기분 좋게 탈수 있다. 특히 같은 구동계를 가진 207CC에 비해서는 훨씬 활달하게 느껴진다.
스포츠모드에 놓고 풀 가속을 하면 55, 100, 150km/h에서 기어가 한 단씩 올라간다. 수동모드에서도 킥다운이 가능하고 6,000rpm이면 자동 시프트업이 이루어진다. 제원상 0-100km/h 가속에 걸리는 시간은 11.4초. 미니 쿠퍼의 10.4초에는 확실히 뒤진다. 최고속도도 미니쿠퍼는 197km/h이지만 207GT는 190km/h. 실제로는 4단 5,000rpm에서 175km/h를 찍기까지에도 제법 인내심을 요한다. 에어컨을 끄면 180km/h까지는 가능했다. 물론 이것은 참고용일 뿐, 일상 주행에서 중요한 부분은 아니다.
100km/h 정속 주행시의 엔진회전수는 2,900rpm정도인데, 회전수에 비해 소음이 부담스럽지 않다. 승차감이 차 크기에 비해 편안하고 고속에서도 안정적이다. 소음과 진동 면에서도 듬직한 면이 있다. 특히 하체가 매력적이다. 요철이 심한 노면을 만나면 그 충격을 부드럽게 흡수해주는데, 그러면서도 움직임은 기민하다. 코너링에서는 일부러 심하게 방향을 틀어도 불안한 감 없이 잘도 추종한다. 시승차의 타이어는 195/55R16규격. 이에 비하면 207CC에 끼워져 있었던 205/45R17은 속 빈 강정이다. 전동식 파워스티어링의 조작감이나 요철통과시의 피드백도 만족스럽다. 소형차들에서 흔히 발견되는 저질스러운 느낌과는 차원이 다르다.
밀레짐 207GT는 엔진 자체의 회전저항을 줄이고 미쉐린 에너지 세이버 타이어로 구름저항을 줄였으며 차체의 공기저항을 낮춰 연비를 개선했다. 우리나라 공인연비도 12.4km/L에서 13.8km/L로 눈에 띄게 좋아졌다. 적산거리가 2,400km인 시승차의 트립컴퓨터에 남겨진 2,300km구간 평균연비는 8.5km/L. 하지만 200km를 살짝 넘긴 이번 시승에서는 10.6km/L의 평균연비를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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