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조 207CC가 5백만 원이나 싸졌다. 길거리 떳다방에 걸려 있는 ‘사장님이 미쳤어요’ 현수막이라도 걸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국내에서 팔리는 오픈 보디 중에서는 가장 싸다. 전동식 하드톱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3,410만원이라는 가격은 꽤나 솔깃한 유혹이다. 에디션이라서 200대만 판다.
글/ 한상기 (rpm9.com 객원기자)
사진/민병권 (rpm9.com 에디터)
사실 차 자체는 그대로다. 바뀐 건 없다. 파워트레인도 동일하고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전동식 하드톱이 더 좋아진 것도 아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가격이 싸졌다. 그것도 5백만 원이나! 벤츠 S 클래스라면 별 티도 안 나겠지만 3천만 원대인 207CC가 5백만 원이나 싸진 건 파격적인 할인이다.
보통 에디션은 기본 모델보다 비싼데, 밀레짐 207CC는 반대다. 한 마디로 저렴한 에디션 모델이다. 푸조 창립 20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인데, 약간은 고개가 갸웃 거리긴 한다. 어쨌든 가격이 내려가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올해는 푸조 브랜드가 생긴지 200주년이 되는 해이다. 푸조가 생긴지 이렇게 오래됐다. 최초의 자동차라는 영예는 벤츠가 갖고 있지만 푸조 역시 유구한 역사를 갖고 있다. 200년 전부터 자동차를 만들었으면 역사는 어찌 변했을지 모른다. 푸조가 첫 네 바퀴 자동차를 만든 것은 1890년부터다. 참고로 밀레짐은 프랑스어로 빈티지를 뜻하고 밀레짐 207CC는 200주년을 기념해 200대만 한정 생산된다.
그래서 사이드 미러 앞에는 밀레짐 로고가 붙는다. 외관에서 밀레짐 에디션을 구별할 수 있는 확실한 단서다. 200주년 기념인데 좀 더 구분되는 요소가 있어야 하지 않나 싶다. 그렇다고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이전에 비해 측면 몰딩이 보디 컬러와 같은 색으로 변경됐고 테일램프에는 LED가 적용됐다.
푸조의 패밀리룩은 차를 커보이게 한다는 장점이 있다. 그릴이나 헤드램프가 크기 때문이다. 푸조에서 노린 게 이런 점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더욱 내세운다는 측면도 있다. 볼록하게 튀어나온 헤드램프 커버는 참 감각스러운 디자인이다.
가격을 내린 모델이지만 타이어는 브리지스톤의 포텐자 RE050A(205/45R/17)이다. 수입차에서 가장 흔하게 보는 타이어이다. 너무 자주 봐서 브리지스톤이 수입차 협회와 계약이라도 맺은 줄 알았다. 반대로 생각하면 가장 안전빵인 선택이고 성능이 검증된 타이어라고 해야겠다.
실내는 당연히(?) 썰렁하다. 소재나 편의 장비를 본다면 메리트가 없다. 실내의 소재는 간신히 싼 티가 나지 않는 수준이다. 단순하게 가격만 생각하면 섭섭할지 모르지만 이 차가 전동식 하드톱 모델인 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시승차의 시트는 직물이다. 사실 직물은 어중간한 가죽 보다 감촉이 좋은 경우가 많다. 밀레짐 207CC의 직물 시트는 까끌한 감촉이 나쁘지 않다. 시트의 형상은 등받이의 날개도 제법 튀어나와 있어 보기엔 좋은데 막상 앉으면 등이 그렇게 편하진 않다. 적응의 문제일 수도 있다. 시트는 당연히 수동 조절이다. 밀레짐 에디션에는 가죽 시트가 적용된다.
내비게이션은 옵션이다. 내비게이션이 들어갈 자리에는 기본적인 정보만 보여주는 작은 액정이 있다. 아무래도 액정만 갖고서는 썰렁한 기분을 지울 수 없다. 요즘은 국산 경차에도 그럴싸한 모니터가 달리니 말이다. 그래도 글로브 박스에는 냉장 기능도 있고 밀레짐 207GT처럼 알루미늄 페달을 빼지 않은 것에 감사해야 할 것 같다. 이번에는 원터치 방향지시등도 추가됐다.
207CC를 타는데 전동식 하드톱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푸조는 206CC로 전동식 하드톱의 대중화를 불러 일으켰다. 206CC 이후 전동식 하드톱 모델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206CC의 단점 중 하나는 율리에즈가 제공한 전동식 하드톱의 품질이었다. 하지만 207CC부터는 푸조가 스페인에서 직접 생산해 품질 문제를 해결했다.
207CC의 전동식 하드톱은 심플한 구조의 2피스 디자인이다. 개폐에 걸리는 시간은 25초로 하드톱의 크기를 생각하면 아주 빠르다고는 할 수 없다. 그래도 과거에 비한다면 밀폐감은 비약적으로 좋아졌고 잡소리도 없다.
톱을 열고 주행하면 바람은 많이 들어오는 편이다. 시승차에는 윈드 디플렉터가 없었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윈드 디플렉터 없으면 A5 카브리올레 같은 고급 모델도 바람 많이 들어온다. 오픈 보디는 강성 저하로 인해 주행 시 삐걱 대는 느낌이 생기기 쉽다. 207CC는 그런 점을 별로 느낄 수 없다. 오픈 시 섀시 강성은 17,500 Nm으로 상당히 높은 게 눈에 띈다.
파워트레인은 120마력(16.3kg.m)의 힘을 내는 1.6 VTi(Variable valve lift and Timing Injection) 엔진과 4단 자동변속기로 구성된다. 1.6리터 엔진의 출력은 평균적이지만 4단은 아무래도 뒤떨어지는 느낌이 있다. 물론 전체적으로 본다면 아직 207급에 4단이 더 많긴 하다.
207CC 사이즈에 120마력이 부족한 힘은 아니다. 넘치진 않아도 필요할 때엔 괜찮은 가속을 끌어낼 수 있다. 대신 4단 자동 때문에 답답할 때가 있다. 4단 변속기는 필요할 때 빠르게 기어를 내리지 않는다. 초기에는 이렇지 않았던 거 같은데, 혹시 연비를 고려해 세팅이 바뀌지 않았을까 싶다.
예를 언덕길이나 가속력이 필요할 때 가속 페달을 좀 더 깊이 밟아야 한다. 보통의 자동 변속기를 생각할 때 이 정도 밟으면 기어가 내려가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변속기 버퍼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답답할 순 있지만 이것도 운전자가 207CC에 맞춰야 하는 부분이다. 207CC는 디자인이나 전동식 하드톱이 주는 매력이 크기 때문에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이런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동력 성능은 괜찮다. 딱 배기량과 출력에 기대하는 만큼의 가속력을 보인다. 100km/h 이상에서는 가속력이 처지긴 하지만 꾸준하게 속도계 바늘을 밀어 붙인다. 작은 차체임에도 불구하고 고속에서의 안정성도 좋다.
ESP는커녕 ABS도 없는 차를 타고 다니지만 ESP 없는 시승차를 탄 기억은 손에 꼽는다. 평소엔 시승차를 더 많이 운전하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ESP에 상당히 길들여졌다고 해도 무방하다. ESP 없다고 생각하니 손발이 오그라드는 건 뭔지. 그래도 207CC는 그렇게 불안하지 않다. 기본적인 하드웨어가 좋기 때문이다. 참고로 ESP는 시승차에만 빠져 있다.
207CC의 가장 큰 장점은 역시나 핸들링이다. 정평난 푸조의 하체에 질 좋은 타이어까지 있으니 괜찮은 궁합이다. 206CC는 너무 하체가 쉽게 튄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207CC는 민첩하면서도 묵직하게 움직인다. 가벼운 발놀림은 차종을 불문하고 푸조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207CC 사이즈에 운전대가 너무 큰 게 아닌가 싶다.
밀레짐 207CC는 일단 저렴한 가격이 가장 큰 장점이다. 국내서 팔리는 오픈 보디 중에 이 보다 싼 차가 없다. 매력적인 전동식 하드톱인 것을 감안하면 가격이 주는 메리트는 더 커진다. 자자, 발빠른 200분만 모십니다.
© 2024 rpm9.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